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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족은 저가항공으로 난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2. 21. 20:56

 

 

       트렁크족은 저가항공으로 난다

[한겨레21 2005-12-20 ]    


 패키지에 기대지 않는 독립여행을 원하는 30대 여행객들에겐 최적
지금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내년2월 쿠알라룸프르- 발리 편도가 3만원

 

▣ 김용우/ 노매드관광청 <리피니언> 편집장 tonykim@nomad21.com

신문에서 흔히 ‘방콕·파타야 5일 29만9천원’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5일 39만9천원’ 등의 여행상품 광고를 볼 수 있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상품을 구매하고 여행을 떠나지만, 현지에 가서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작되는 가이드의 팁 요구, 기념품 쇼핑과 선택관광의 압박에 지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패키지에 기대지 않는 독립여행이 일반화됐다. ‘free & easy tour’ 혹은 ’free Individual tour’라고 불리는 자유여행은 여행자가 직접 일정을 만들고, 숙소를 정하고, 항공편을 예약해 떠나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보편화된 여행 방식이다.

 

이런 독립적 자유여행의 가장 큰 무기로 떠오른 게 바로 저가항공이다. 유럽에 가서 ‘라이언에어’나 ‘이지제트’와 같은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저가항공을 타고 아시아를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가항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흔히 ‘트렁크족’이라고 불리는 30대 직장인들이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대학생 배낭여행객보다는 7~10일의 짧은 휴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 저가항공은 최적의 교통수단인 것이다.

 

방콕-싱가포르 구간을 1만6천원에?

 

짧은 휴가 동안에 2개의 도시와 하나 정도의 휴양지를 여행하기 위해선 항공 이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비용의 벽이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어 ‘서울~홍콩~싱가포르~푸껫~방콕~서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2~3곳의 메이저 항공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항공료만 1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면 꿈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인프라의 빈약함과 비용의 압박을 한번에 해결한 게 바로 저가항공사다.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의 공식 항공사이기도 한 ‘에어아시아’는 2002년 설립됐다. 말레이시아 국내선만 운항했기 때문에, 설립 초기만 해도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사인 말레이시아항공은 서비스 수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국 항공사인 타이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은 자기 나라에 별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에어아시아가 2003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타이 푸켓 구간을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와 방콕 사이에 직항 노선을 띄우면서 타이항공과 싱가포르항공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푸껫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휴가철에 가장 많이 찾는 지역 중 하나이고,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당시 ‘방콕∼싱가포르’ 구간의 편도 운임이 250싱가포르달러(약 16만원) 수준이었는데, 에어아시아는 ‘방콕∼조호르바루’ 구간을 59링깃(약 1만6천원)에 팔아버렸다.

 

2시간이 걸리는 비행시간을 감안한다면 이는 거의 ‘폭탄’ 수준이었고, 사람들은 에어아시아를 타고 조호르바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싱가포르에 들어갔다. ‘누구나 날 수 있다’(Everyone can fly)는 에어아시아의 표어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에서 온 노동자가 많듯 싱가포르에도 타이에서 온 노동자가 많이 있는데, 싱가포르와 방콕 사이의 22시간 넘게 걸리는 버스 여행에 비해서도 2배 이상 저렴한 가격은 그들에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한 번씩 꿈꿔보는 ‘비행기 타는 꿈’까지 실현할 수 있으니(우리나라에도 비행기 타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타이는 어떻겠는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에어아시아는 타이에 아예 현지 법인을 차렸다. 에어아시아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과 중국까지 노선을 확장한 거대 항공사가 됐다.

 

이에 자극받은 각국은 경쟁적으로 저가항공을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싱가포르의 타이거에어, 밸루에어와 타이의 원투고, 녹에어 등이 비행기를 띄우고 가격경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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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저가항공은 어떻게 운임을 줄일까? 우선 서비스를 최소화한다. 이들은 기내식은커녕 냉수 한 모금도 주지 않는다. 배고프고 목마르면 사먹어야 한다. 에어아시아의 경우 ‘스낵어택’(Snack Attack)이라고 하여 별도의 기내식을 돈을 받고 판매한다.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메이저 항공의 기내식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특히 한국인들은 에어아시아의 컵라면을 즐겨 먹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800원 정도다. 콜라도 한 캔에 1200원으로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다.

그리고 인터넷과 콜센터에 기반한 영업으로 원가를 절감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인터넷 자동차보험이 보험설계사에게 줄 유통 마진을 없애 낮은 보험료를 책정하듯이, 저가항공도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고 결제함으로써 운임을 낮춘다. 항공사 대리점도 공항에만 있다. 대형 항공사가 여행사에 마진을 줘 이곳에서 예약하게 하고, 시내 곳곳에 사무실을 두어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배고프고 목마르면 사먹어라

 


또한 저가항공사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비행기를 최대한 빡빡하게 운항한다. 한 대의 비행기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아침 일찍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단 20분 동안만 계류장에 선다.

 

단 20분 만에 승객을 내리게 한 뒤, 다시 새 승객을 태워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간다. 다시 20분 사이에 모든 승객이 타고 내리고, 비행기는 푸껫으로 날아간다.

비행기는 하루 내내 이런 ‘노동’을 반복하고 아침 7시에 시작한 비행은 밤 11시가 돼서야 끝난다.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매달 ‘A체크’라 불리는 기본 정비를 하고 매년 2~3주간 전체 정비를 한다.

단점이 있다면 한번 연착이 되면 계속 시간이 밀려서 나중에는 한두 시간 이상 연착된다는 것이다.

 

나는 조호르바루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에어아시아를 2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다. 비행기가 아시아의 여기저기를 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초저가 운임이 탄생하는 배경에는 탄력적 가격정책이 큰 역할을 한다. 일반 항공사의 운임은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뉘어 1명이 타고 가든 100명이 타고 가든 간에 같은 값을 치르게 돼 있다.

 

그리고 어제 예약한 사람이나 1년 전에 예약한 사람이나 거의 비슷한 요금을 낸다. 그러나 저가항공의 경우에는 처음 몇 사람은 1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그 다음 몇 사람은 몇 만원 수준에, 그 다음 몇 사람은 좀더 비싼 가격을 받는다. 좌석이 찰수록 운임은 올라가는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발리까지의 2006년 2월 항공편을 검색해보면, 편도 3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가격이 나온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발리까지 약 2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서울~도쿄 구간도 2시간이 걸린다), 정말 싼 가격이다. 같은 노선의 말레이시아항공의 요금은 약 15만원이다.

 

빡빡한 운행 스케쥴로 연착될 수도

 

사실 아시아 저가항공을 처음 탈 땐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프로펠러기가 아닐까?’ 하는 상상 속에 처음 탑승했던 에어아시아는 의외로 보잉사의 737기종이었다. 보잉737은 세계적으로 단거리 노선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항공기다.

 

타이거에어나 밸루에어는 아예 에어버스의 최신 320 모델을 사들여 사용하고 있어, 오히려 우리나라 국내선보다 더 쾌적하고 안락했던 기억도 있다. 에어아시아도 5년 안에 에어버스의 최신 320기종으로 모든 항공기를 바꾸고 100대까지 보유대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의 패턴이 점점 장기화·복선화되는 추세에 저가항공은 이제 남의 나라 여행자 혜택이 아니라, 바로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똑같은 여행지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1만원짜리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나는 20만원이나 줬다고 하면 이건 상당히 억울한 일이고, 이럴 때 우리는 정보가 돈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한국, 중·소형기 띄우기 어렵네

잠재력 높지만 국내외 항공사들 사업계획 없어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국에 취항하는 저가항공은 타이의 오리엔트타이와 타이스카이, 일본의 스카이마크 정도다. 요즈음엔 인천~방콕 구간의 왕복 항공권이 덤핑 가격인 9만9800원(공항세 제외)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에 취항할 때는 정통 저가항공 방식으로 영업하진 않는다. 인터넷 구매 시스템이 아니라 여행사를 거친 일반 할인항공권으로 팔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매일에 따른 가격 차별화 △인터넷 예약 등으로 대별되는 국제 저가항공 시장이 국내에 형성됐다고 보기는 무리다.

 

그렇다면 저가항공사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무얼까? 이는 국가적 진입장벽과 지리적 장벽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제 항공노선의 운항 횟수는 일반적으로 양국 정부의 항공 협정에 따라 결정된다. 운항 횟수가 일반 항공사들에 의해 포화된 상태라면, 저가항공은 진입할 틈이 없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그간 외국 저가항공사가 한국 취항을 타진한 적은 없었다”며 “국적 항공사의 경쟁력과 내외국인 승객 비율까지 꼼꼼히 따지며 항공 협정에 임하기 때문에 노선 증편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이 방콕,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서 3천k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저가항공의 주기종인 중·소형 항공기가 뜨기 힘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아시아 저가항공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 잠재력은 크다. 현재 인천~베이징 구간(907km)의 왕복 항공권이 45만~70만원(공항세 포함)에 판매되지만, 김포~제주 구간(446km)의 경우 운항거리는 인천~베이징의 2분의 1이면서도 가격은 3분의 1인 17만원에 판매된다.

 

아시아 저가항공이 국내 항공사의 국내선 수준의 거리당 요금만 받아도 30만원대에서 베이징 항공권을 내놓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사장은 지난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가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가항공사의 미래가 밝은 시장”이라면서도 “현재로선 한국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한성항공 등 국내 저가항공사도 아직 구체적인 국제노선 취항 계획은 세우지 않은 상태다.

 

영국의 항공업계 전문지인 <오피셜 에어라인 가이드>(OAG)에 따르면, 올해 4월 전세계 227만 항공편 가운데 30만 편이 저가항공이었다. 저가항공사들은 전세계 모든 정기 항공편 8편 가운데 1편, 항공 좌석 7석 가운데 1석을 공급하고 있다.

 



일단 ‘허브 도시’를 찜해라

에어아시아는 쿠알라룸프와 방콕, 타이거에어·젯스타아시아는 싱가포르…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아시아 저가항공은 트렁크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트렁크족은 일정과 숙박, 교통편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배낭여행자와 비슷하지만, 지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샐러리맨이 대부분이다. 배낭 대신 트렁크를 모는 이들은 저가항공을 이용해 아시아의 1~2개 도시와 휴양지를 연결해 열흘 남짓의 휴가를 즐긴다.

 

아시아 저가항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저가항공의 허브 도시를 가야 한다. 에어아시아는 쿠알라룸푸르와 방콕을, 타이거에어와 밸류에어, 젯스타아시아는 싱가포르를, 녹에어와 원투고는 방콕을 허브로 여러 도시와 휴양지에 취항한다.

 

일단 싱가포르까지 간 뒤 저가항공을 이용해 싱가포르~방콕~푸껫~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일정이나 쿠알라룸푸르까지 갔다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리아프나 휴양지인 발리로 가는 것도 인기 코스다. 12월 초에 예약했을 때 에어아시아의 2월 초 싱가포르~방콕 왕복 운임은 7만원이고, 쿠알라룸푸르~시엠리아프 왕복 운임은 9만원이다.

 

세 달 전에 예약하면 대개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똑같은 구간에서 복수의 일반 항공권이나 경유편을 사는 것보다 10~30%를 절약할 수 있다. 한국 취항편이 없어 불편하지만, 허브 도시를 포함해 2곳 이상으로 일정을 짤 땐 경제성이 있는 셈이다.

 

저가항공을 타기 위해선 해당 항공사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약을 한 뒤 곧바로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한다. 환불과 예약 변경 수수료가 적지 않고 잦은 연착으로 인한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