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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 우뚝 서 바다를 등지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23. 20:42

 

              한계령

 

 

한계령에 우뚝 서 바다를 등지다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지난 2월 4일, 5일에 떠난 철원ㆍ화천ㆍ인제ㆍ홍천 여행의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광치터널을 통과해 인제땅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몸이 나른해지는 시간입니다. 꽉 막힌 차창 안에 있으니 더운 기운이 졸음을 만들고, 지루함마저 느껴집니다. 텁텁해진 입안에서 하품이 삐져나오는 사이 광치터널을 통과한 31번 국도는 44번, 46번국도와 해후한 뒤 다시 각자의 길을 따라 갑니다.

일요일 오후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빙벽등반을 한다는 매바위에 잠깐 들르기 위해서 입니다. 31번, 44번, 46번 국도가 제 갈길을 찾아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44, 46번국도가 합쳐져 설악산의 깊은 골짜기를 향해 내닫고 있습니다. 주말을 즐기고 귀경을 서두르는 동해안에서 오는 차량행렬이 어느새 많이 늘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울가는 길을 재촉하는 반면 저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동해안을 향해 달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 황태마을 용대 삼거리에 인공으로 조성된 빙벽인 매바위의 전경
ⓒ2006 문일식
매바위가 있는 곳은 용대 3리입니다. 일명 '황태마을'로 불리는 곳으로 우리나라 황태덕장의 으뜸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매년 황태축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로 8회째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백담사의 초입에 있는 만해마을과 황태의 진한 맛이 느껴지는 황태마을을 지나 용대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용대 삼거리는 양양으로 가는 미시령과 고성으로 가는 진부령으로 나뉘는 갈림길입니다. 그 갈림길 한쪽에 웅장한 바위가 하나 솟아 있는데 이곳이 바로 매바위입니다.

▲ 매바위의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
ⓒ2006 문일식
매바위는 겨울만 되면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 만드는 인공빙벽입니다. 오래전부터 매바위라고 불리웠다고 하는데 다리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합니다. 겨울만 되면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과 지나다 신기한 모습에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번 추위에 제대로 얼어붙은 매바위에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거대한 빙벽에 붙은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찮은 벌레처럼 작게만 보였습니다.

▲ 황태구이 정식의 차림상...
ⓒ2006 문일식
이제 점심시간입니다. 황태마을까지 찾아왔으니 황태국이나 황태구이 정식을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고장의 명물인 황태구이 정식을 시켰습니다. 양념을 발라 구워낸 황태구이와 북어국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두꺼운 황태가 씹히는 황태국과 함께 여러 밑반찬이 나왔는데, 한공기로는 이 많은 음식을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 황태 덕장의 오후 풍경...
ⓒ2006 문일식
황태구이 정식을 맛있게 먹고 나오니 뒷편에는 황태덕장이 있었습니다. 대구목 대구과의 바닷물고기인 명태는 만들기 나름대로 다른 명칭이 있습니다. 얼리면 동태고, 단기간에 말리면 북어가 되며, 날씨에 따라 얼렸다 녹였다를 무려 33번이나 반복해서 만들면 황태가 됩니다.

재밌는 황태의 명칭도 많습니다. 건조시킬 때 너무 추워서 하얗게 되면 백태라 부르고, 반대로 날씨가 따뜻해 검게 되면 먹태 또는 찐태라 부르고, 머리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리면 파태라 부르며,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건조하면 무두태, 실수로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건조하면 통태, 건조중 바람에 덕장에서 떨어진 것을 낙태라고 부릅니다.

▲ 오후의 햇살로 밤새 얼은 몸을 녹이는 황태들...
ⓒ2006 문일식
황태의 유래는 정확하진 않지만 함경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의 실향민들이 함경도의 날씨와 유사한 이곳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곳 용대리의 황태 생산량은 전국의 80%나 차지한다고 하며 그 외에는 대관령이나 태백 등지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덕장이 만들어진 것도 대관령 덕장보다는 10년을 앞선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황태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 한계령 오르는 길...
ⓒ2006 문일식
귀경을 하는 차량의 행렬이 더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조급함만 없다면 더욱 더 여유롭게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작거리는 국도길을 피해 또다시 반대로 한계령으로 향했습니다. 인제와 양양을 잇는 높이 1004m 정상을 기준으로 영동과 영서로 나뉩니다.

한계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소동라령으로 보는데, 그 소동라령은 조선 중종때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폐쇄되고, 현재의 미시령을 개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마의 태자가 넘었다는 고개라고도 하는데,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경주를 출발해 하늘재를 넘어간 마의태자가 한계령을 넘었다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 한계령 정상 휴게소와 주변 풍경들...
ⓒ2006 문일식
한계령으로 오르는 초입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이어서 고개라는 느낌이 그리 들지 않았습니다. 설악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옴이 느껴질 때 비로소 주변 산세가 험해지고, 오르는 길도 가팔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계령 정상… 힘겹게 올라온 차량들과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쉬느라 부산했습니다. 아스라이 동해바다가 보이는데, 오늘은 여기까지였습니다. 한계령에 올라 바다를 등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코앞에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약간의 서운함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한계령 고갯길을 넘어 100m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큰 오르막이 나오는데 바로 필례약수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인제 남부를 거쳐 홍천으로 들어가서 44번 국도를 타고 귀경하는 하기로 했습니다. 필례약수로 가는 한계령 초입은 대단히 가팔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여기만 넘어서면 끝없는 내리막 길이었습니다.

▲ 필례약수로 가는 길위에서 바라본 한계령 동쪽의 풍경
ⓒ2006 문일식
길 아래로는 멀리 동해바다부터 설악산의 설경과 함게 한계령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습니다. 필례약수가는 길은 참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동안 머물러 있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설악산의 남쪽을 향해 내려오는 길따라 펼쳐진 풍광은 마음을 한없이 넉넉하게 해주고 남았습니다.

▲ 필례약수로 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길...
ⓒ2006 문일식
필례약수는 톡 쏘는 탄산수가 나오는 약수인데 사람들이 찾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필례는 피난에서 온 말로 피난을 갈 정도로 숨기 좋은 오지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근의 필례계곡은 영화 <태백산맥>의 전투촬영지로도 알려져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필노(必勞)령이라하여 노력을 아끼는 길 즉 한계령을 넘는 지름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얼어붙은 내린천의 풍경
ⓒ2006 문일식
필례약수를 지나 내려오니 오전나절 잠시 헤어졌던 31번 국도와 다시 반갑게 해후했습니다.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방태산 자연휴양림과 방동약수로 가는 갈림길인 현리를 지나고, 다시 내린천을 따라 내려가면 상남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제 홍천은 그리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즈넉한 한계령 오르는 길, 설악산의 온갖 자태를 감상했던 한계령 정상,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길 필례약수 가는 길이 자꾸 뇌리에 스쳤습니다. 상남을 지나 홍천으로 난 길을 따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고개인 행치령을 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2-23 14:56]    
[오마이뉴스 문일식 기자]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