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밋는~한국여행/재밋는 한국의 산

광릉수목원에서 봄을 예약 ,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3. 12:35

                꽃피는 봄이오면~

 

              여기는 ''초목 나라''…

 

                광릉수목원에서

 

                봄을 예약하세요


봄이 저만치서 달려왔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광릉 국립수목원의 초록 단장을 서두른다. 전나무, 가문비나무의 푸른 잎을 가렸던 잔설은 말끔히 사라졌다.
 
풍년화의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진다. 숲길에서는 딱따구리가 “따다다다다닥” 봄의 왈츠를 연주한다. 겨우내 배 곯은 고라니는 먹이를 찾느라 다리를 재게 놀린다.
 

봄이 동장군을 누르고 개선한 것이다. 연초록빛 감도는 나뭇가지와 땅속에서 뛰쳐나온 개구리가 산천의 봄을 알린다. 도시는 어떤가. 듬성듬성한 가로수는 아직 앙상하다.

 

도시의 봄은 TV가 알려온다. 도시인들은 밥상머리에서 꽃봉오리와 개구리를 담은 영상 뉴스를 보며 “아, 봄이구나” 감탄한다. 밥술을 뜨다가 얼떨결에 맞는 봄은 싱겁고 허망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무 공화국’인 광릉 국립수목원이 있다. 나무와 흙 냄새, 새소리가 그득한 수목원에서 ‘라이브’로 봄을 느껴보자.

 

수목원에는 나무와 새들만 봄기운에 들떠 있는 게 아니다. 연구관과 연구사, 숲해설가들도 분주해진다.

 

 식물 연구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올해 처음 채용한 코디네이터들도 새 업무를 익히느라 덩달아 바쁘다. 사람들은 꽃과 나무, 숲을 가꾸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봄의 활기를 맛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영화관과 맛집에 물린 연인들의 새로운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다. 자동차 소음과 텁텁한 공기로부터 해방돼 데이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에 ‘팔짱 반드시 낄 것’이라는 팻말이라도 있는 걸까. 너른 수목원 산책로를 거니는 남녀는 다정히 몸을 밀착한 채 걷는다.

 

수목원은 가족 봄나들이에도 제격이다. 부모는 아이의 게임 중독을 탓하기 전에 숲을 거니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준 적이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학교 과제인 체험학습을 마지못해 했다면 이번에 진정한 체험학습을 수행해보는 것도 괜찮다.

 

5살 민석이를 데리고 남편 명순식씨와 수목원을 찾은 김미숙(33·경기 동두천시)씨는 “놀이방에 다니는 아이를 위해 남편과 함께 평일에 월차를 내서 찾아왔다”며 “날씨도 많이 따뜻해진 요즘 숲과 자연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숲이 잘 보존된 이유는 이곳이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묻힌 광릉의 부속림이었기 때문이다. 500여년간 신성한 황실림으로 지정돼 풀 한 포기 뽑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1999년 산림청 국립수목원으로 정식 개원된 후 나무들은 ‘주권자’로 대접받아왔다. 국립수목원은 가난과 남벌로 핍박받아온 나무들의 이상향인 셈이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주말과 휴일에 휴관하고, 주중엔 하루 입장객을 5000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3, 4월까지는 하루 전에 무난하지만 성수기인 5∼10월에는 5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수목원 정문에서 조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는 통하지 않는다. 당일 명단에 없으면 결코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숲과 생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니 수목원의 예약제 운영에 그리 화낼 일은 아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푸른 봄을 만끽하는 데 그 정도 배려는 어렵지 않다.

 

경칩이 얼마 남지 않은 봄의 초입이다. 도시의 밋밋한 봄이 개운치 않다면 수목원에서 싱그런 봄을 맞는 것은 어떨까. 수목원 입장 예약은 생생한 봄을 예약하는 일이다.

 

글 심재천, 사진 황정아, 그래픽 김수진 기자

 

 

 

 

 

        우리는 수목원 코디네이터…

 

        하루 일과는 나무와의 대화

 

[세계일보 2006-03-03 00:21]    

광릉 국립수목원 한쪽에 마련된 온실. “쏴∼쏴∼” 이곳저곳으로 물 뿌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새내기 수목원 코디네이터 박미정(21·여)씨는 온실의 여러 화초에 물을 주고 주변을 청소하느라 분주하다.

오후엔 실외에 있는 나무들에 필요한 갖가지 일을 해낸다. “사실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은 그다지 바쁘지 않아요.

 

꽃피는 봄이 오면 수생원이나 습지원 관리 등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아 꽤 기대하고 있어요.”

간단한 일 같지만 어떤 꽃은 잎이나 꽃에 물이 닿으면 안 되기에 물을 떠놓아 아래에서 스며들도록 하고,

 

꽃이 핀 나무는 꽃이 떨어지지 않도록 뿌리 쪽으로 물을 뿌리는 등 이래저래 마음 쓸 일이 많다.

축축한 데서 자라는 고사리는 물을 듬뿍 줘야 잘 자란다고.

 

우리는 수목원 코디네이터

 

원예학을 전공한 그를 비롯해 올 초 국립수목원에 둥지를 튼 수목원 코디네이터 10명이 하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길을 찾거나 수목원 방문 절차를 묻는 관람객의 문의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방문객 명단을 작성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짠다.

 

 때론 곤충 표본을 학명에 따라 정리하거나 채집한 종자의 분류학상 소속과 이름을 정하는 ‘동정(同定)’이라는 전문적인 일도 한다.

 

이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박미정씨는 평소 좋아했던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모두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단다. 대학과 전공을 고를 때에도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자연을 벗삼아 일하는 모습을 먼저 그렸다.

 

여러 사설수목원에 지원했으나 올해야 그 꿈의 첫발을 내디딘 박미정씨처럼 수목원 코디네이터는 모두가 숲과 자연 그리고 사계절을 가꿔갈 자신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박미정씨의 대학 동기인 박미진(26·여)씨가 수목원코디네이터가 된 이유도 예사롭지 않다. “사무실에 앉아서 뭘 하기보다 자연에서 흙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에요. 같은 과 친구들은 플로리스트로 많이 진출하지만 너무 흔하잖아요.”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공·사립 수목원이 올해부터 시작한 수목원 코디네이터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림청이 내놓은 제도. 올해 국·공·사립 수목원에 35명이 배치될 예정이다.

 

일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여. 보존과(3명)·표본과(3명)·조사과(3명)·관리과(1명) 등 각자 소속과 하는 일이 다르지만, 이들이 그리는 미래도 나무를 주제로 한 칼럼니스트(강지희), 학예사(김현숙), 식물분류학 관련 연구원(고은미, 김혁진) 등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식물분류학 석사를 받은 뒤 인턴 연구원으로 1년 동안 일한 김혁진(29)씨는 2년차 국립수목원 식구. “사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배우는 데에는 끝이 없잖아요.

 

학교에서 식물분류학에 한정해서 배웠는데, 전공 분야가 다양하다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여러 학문을 접할 수 있거든요.” 김혁진씨의 바람은 전문 연구직.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하찮은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식물 연구에 푹 빠지고 싶습니다.”

 

천리포수목원 수목원 전문가 양성과정 4기로 1년을 보내고 수목원 코디네이터가 된 김회원(25)씨는 국내에는 생소한 수목원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전문적인 연구 분야에서 종사하기보다 가지치기, 번식, 식물 분류 등 수목원의 모든 것을 익히고 싶어요.”

 

계약기간 1년,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지만 이들에겐 김회원씨처럼 각자 돈보다 중요한 무엇이 있다. 대중교육을 담당해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강지희(26·여)씨는 “돈 욕심을 버리고 보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지 오래”라며 “원래 식물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운을 뗀다. 아집 탓인지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강지희씨 역시 몸 편하고 보수가 그나마 나은 시공 설계 회사도 버리고 ‘식물쟁이’를 고집한 것.

 

그는 “외래종이 많은 천리포에 비해 국립수목원에는 설립 취지에 맞게 토종 식물이 대부분”이라며 “영화 ‘편지’를 보고 막연히 수목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일이 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간사, 환경영향평가 관련 회사 등 이력이 다양한 김혜련(26·여)씨는 “환경영향평가를 주업으로 했을 때 월급은 많았지만, 자연이 좋아서 일을 시작한 애초 동기와 달리 잘못된 것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역할의 한계에 답답했다”고 털어놓는다.

 

산림자원학을 전공한 그에게 환경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사무실보다 자연에서 일하기를 원했고, 지금 수목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박물관 경영을 전공하고 국립수목원에서만 2년째 일하고 있는 맏언니 김현숙(34·여)씨는 “산림청에서 꼼꼼하게 계획을 짜서 코디네이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근무 조건도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전공 관련 분야에서 자기 경험을 쌓아간다는 점에서는 좋은 제도”라고 평한다.

 

조사과 소속 박물관에서 일하는 그 역시 학예사의 꿈을 다지며 수목원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에게 맑은 공기와 향긋한 풀내, 흙 냄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에너지인 셈.

 

햇볕 따사롭고 알록달록 꽃들이 만발하는 봄이 오면 관람객들은 이들의 소박한 정성으로 잘 단정된 수목원 곳곳에서 봄 내음을 맡겠지만, 하루하루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이들의 봄은 바로 오늘일지도 모르겠다.

 

 

글 정재영, 사진 황정아 기자 sisleyj@segye.com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