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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만물과 인걸이 모이는 홍천의 '보물섬'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27. 13:03

 

           만물과 인걸이 모이는 홍천의

 

                      '보물섬'

 상남에서 행치령을 넘었습니다. 행치령 고갯길에서 바라보는 늦은 오후의 강원도 홍천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구름에 가려 가늘게 퍼지면서 내리쬐는 모습이란… 행치령은 굽이길이 생각보다 심했습니다. 몇 굽이 되지 않는데 차가 돌아야 하는 커브의 각도가 상당했습니다.

▲ 행치령을 넘어 444번 지방도에서 물걸리 절터로 가는 표지석
ⓒ2006 문일식
행치령을 내려서면서 44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홍천의 보물집결지 물걸리 절터를 들렀습니다. 앞서 '보물 집결지'라고 한 것은 물걸리 절터에는 무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5점이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간에 다섯 가지의 보물이 모여 있기란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불국사, 해인사, 실상사 등의 사찰을 빼면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합니다.

'절골'이란 표지석을 따라 얕은 고갯길을 넘어서면 물걸리 절터가 있는 동창마을에 도착합니다. 이 동창마을은 물걸리 절터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동학과 삼일만세운동 등을 통해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곳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동창마을의 역사적 사실은 쉽게 접할 수 없습니다.

▲ 동창마을의 동학운동과 만세운동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공원
ⓒ2006 문일식
동창마을은 '동쪽에 있는 창고'란 뜻으로 물산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어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제에서 발원한 홍천강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수운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나루터와 창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마을이 동창마을로 불리는 것은 바로 그 거대한 창고들이 있던 곳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물걸리는 만물 물(物), 호걸 걸(傑)을 쓰니 즉 만물과 호걸이 모이는 곳, 그야말로 상당히 컸던 활동성있는 도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걸리 절터를 가기 전에 넓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이 공원에는 기미만세상과 팔렬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는 마방이 있던 자리였음을 알리는 마방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기념물들에는 동학운동과 기미년 만세운동의 역사가 숨쉬고 있습니다.

▲ 김덕원 의사가 운영했던 마방이 있던 터로 만세운동 직후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2006 문일식
당시 북접(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동학군)의 800여 동학군이 관군과 민보군(농민군에 반대하여 유생들이 조직한 군대)을 상대로 서석의 자작고개에서 처절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고,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4월 3일에 동창마을에서는 김덕원 의사를 중심으로 주변 5개 지역의 3000여명의 주민들과 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합니다.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덕원 의사는 동창마을에서 마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방을 통해 자금이나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이용했다고 하고, 불행히도 만세운동 직후 일제에 의해 소각되어졌다고 합니다.

▲ 보물섬 물걸리절터..전각안에 모셔져 있는 4가지의 국가지정 보물들.
ⓒ2006 문일식
물걸리 절터는 마방터와 만세운동공원의 뒤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절터는 아주 작은 터에 모아져 있는데 전각 안에는 보물 541호 석조여래좌상, 542호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543호 불대좌, 544호 불대좌 및 광배가 나란히 서 있고, 바깥공간에는 보물 54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삼층석탑 주변에는 석조부재들이 널려 있습니다.

▲ 보물 544호인 불대좌 및 광배의 광배부분. 나뭇잎 모양으로 주변에는 9구의 화불이 있습니다.
ⓒ2006 문일식
절터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바로 옆 민가에 사시는 한 어르신을 만났는데 절터와 동창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절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물걸리 절터 옆에는 대승사라는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사찰이 있습니다.

이곳 절터에 사찰유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자 한 스님이 찾아와 이곳에 머무르며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하루는 배수로를 파기 위해 작업을 하다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금동불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금동불은 보상금과 맞바꿔지고, 현재 춘천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불대좌 및 광배의 하대석으로 복련과 귀꽃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2006 문일식
유물관리는 그제야 국가로 넘어오게 되고, 절터에 머물던 스님은 관리상의 이유로 그곳에서 나와 바로 옆에 대승사라는 사찰을 짓고 머물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스님은 건물도 잘 지었던지 만세공원입구에 있는 팔렬각을 지었다고 하는데, 건물이 낡아서 근래에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물걸리 절터는 아직까지 이곳에 있었던 사찰에 대한 사료나 유물이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명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걸리 절터는 흥양사라는 사찰로 짐작되어지고,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이 넓은 지역이 모두 절터였을 걸로 추측됩니다. 아울러 흥양사라는 사찰은 낙산사, 백담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던 고성의 건봉사와 그 사세가 비슷했다고 하니 절의 규모는 실로 엄청난 크기로 짐작되어 집니다.

▲ 대좌의 상대석에 새겨진 앙련. 앙련에는 예쁜 꽃잎이 새겨져 있습니다.
ⓒ2006 문일식
4개의 보물 모두 대좌는 거의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앙련을 둥그렇게 새긴 상대석은 거의 비슷하지만 앙련에 또다시 새긴 문양은 각각 틀리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중대석은 모두 8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향로, 보살입상, 공양상, 가릉빈가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편 하대석 또한 각기 다른 복련의 형태와 귀꽃을 가지고 있고 팔각형의 하대석 받침 또한 안상을 새기고 안에 가릉빈가 등을 새겨 넣었습니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릉빈가와 공양상.
ⓒ2006 문일식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가릉빈가와 공양상입니다. 가릉빈가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로 머리와 상반신은 사람, 그외 나머지부분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상상속의 새입니다. 두 손은 곱게 모으고 날개를 활짝 핀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 보이는데, 마치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 팅커벨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양상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거나 두 손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부처님께 공양을 하는 모습입니다. 무척 경건하고 신성한 모습입니다.

▲ 보물 542호 비로자나불이 입고있는 옷의 사실적이고 정교한 무늬
ⓒ2006 문일식
가운데에는 석조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 좌상이 대좌위에 앉아 있습니다. 모두 광배를 잃은 모습이고, 비로자나불이 덩치가 더 큽니다. 석조여래좌상은 마멸이 심해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고, 가슴이나 다리쪽의 새겨짐도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닳아 있습니다. 다행히 비로자나불은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조각의 정교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물걸리 절터의 바깥에 모여있는 석물 부재들.
ⓒ2006 문일식
전각 밖으로 나오면 집 마당과 같은 공간에 보물 54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고, 사찰을 지을 때 쓰였을 법한 석조 부재들이 한켠에 모아져 있습니다. 불대좌였을 법한 석조부재의 면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경계하고 꿋꿋이 지키고 있는 듯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걸리 절터가 있는 동창마을은 흥양사라는 번창했던 사찰이나 만물과 호걸이 모였던 번잡했던 마을 모두 옛 영화를 찾아볼 수 없는 폐사지가 되고 작은 마을이 돼버렸지만, 돌에 혼을 불어넣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문화재나 민초들의 안타까운 역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걸리 절터를 돌아보고 나오니 옅은 구름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동장군을 상대하며 다녔던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 때여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 짙은 아쉬움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물걸리 절터 가는 방법

44번 국도 → 홍천을 지나 철정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 → 내촌 지나 408번 지방도로 우회전 → 408번을 버리고 11번 군도로 진입(대승사, 동창마을)

*SBS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2-25 17:21]    
[오마이뉴스 문일식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