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밋는~한국여행/재밋는 한국의 섬

제주는 봄 봄 봄, 비양도 봄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23. 21:12

               [제주는 봄 봄 봄]

 

        비양도 봄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한림의 협재 백사장을 거닐 때마다 시선을 붙들어 매놓던 섬 하나가 있었다. 몰디브 바다 부럽지 않은 옥색의 영롱한 물감을 풀어내는 아담한 섬, 비양도.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을 닮은 그 섬은 물빛 만큼이나 신비롭게 느껴졌다. “저 섬엔 누가 살고 있을까.”

벼르고 별러 찾아간 비양도는 지난해 드라마 ‘봄날’로 이미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샛노란 유채꽃으로 제주의 봄이 시작된다지만 비양도는 언제나 ‘봄날’이다. 섬을 감싼 에메랄드빛 바다는 누가 뭐래도 분명 봄의 빛깔이다. 1년 365일 그 물빛을 빨아들이고 선 비양도는 사철 ‘봄의 섬’이고 ‘봄날’이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는 한림항에서 닻을 올린다. 항구의 한쪽 편 푸른색의 허름한 ‘도항선 계류장’ 간판이 비양도로 가는 이정표다. 관광지로 거듭난 우도에 비해선 선착장이 초라하다. 40여 명 태우면 꽉 찰 작은 배가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에 두 번만 뜬다. 한여름 피서객이 몰리면 중간에 두서너 번 증편한다지만 지금은 오전 배로 들어가면 오후 배가 올 때 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연초록의 낮은 바다 위를 배는 스치듯 내달렸고 15분 만에 섬에 도착했다. 60여 가구 16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비양도. ‘동국여지승람’은 고려 목종 5년(1002년) 제주 바다에 산이 솟아나왔는데 산꼭대기에 4개의 구멍이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그 물이 엉키어 기왓돌이 되었다고 적고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비양도는 이제 1,000년이 조금 지난 섬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젊은 땅인 셈이다.

섬을 구경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섬의 꼭대기인 비양봉 오름에 오르거나 섬을 빙 둘러 조성된 해안길을 따라 바다 풍경을 가슴에 담는 방법이다. 우선 산으로 올랐다. 마을 골목길이 오름 산책길로 이어진다. 그물로 담을 쌓은 밭들을 지나 오름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길이 넘는 억새는 긴 긴 겨울 바람에 마르고 또 말라 바스러질 듯 서걱거린다. 억새 사이로 난 호젓한 오솔길로 ‘천년의 시간’과 동무하며 걷고 있는데 갑작스레 ‘푸드덕’ 뭔가가 뛰쳐나온다. 흑염소 서너 마리가 이방인을 노려보고는 뒷걸음질 친다. “내 땅에 뭐하러 왔느냐”는 눈빛이다. 긴장감이 억새밭 너머 시누대 군락까지 퍼졌는지 이번에는 꿩이 또 갑자기 날아올라 놀라게 한다.

20분 만에 비양봉 정상에 올랐다. 그 꼭대기에는 하얗고 아담한 등대가 하나 서있다. 꺼칠한 표면의 허름한 등대가 외로이 서서 비양봉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등대에 등을 기대고 서니 건너편 제주 본섬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스라한 윤곽의 한라산과 경주의 왕릉을 닮은 오름 능선이 편안하다. 제법 포실해진 봄볕에 저절로 눈이 감기운다.

산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해안 일주도로를 걷는다. 코끼리를 닮은 커다란 바위에는 물새가 떼를 지어 앉아 봄바람을 맞고 있고, 갯바위에 세워진 작은 등대 가에는 나이 든 해녀가 연신 물질이다. 물 위로 얼굴을 내밀 때마다 “어~허~” 내뱉는, 휘파람 소리를 닮은 그들의 호흡 소리에는 생의 고단함이 담겨있다.

특이한 화산지형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용암기종’ 주변은 돌공원. 바다에 널브러진 돌들 위로 유독 우뚝 솟은 바위가 하나 있다. ‘애기 업은 돌’이라 부르는 이 바위는 아기를 업은 임신부가 남편을 기다리다 굶주렸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얼추 섬을 한바퀴 돌 때쯤 마을 옆에 ‘펄낭’이라는 못을 만난다. 바닷물이 스며들어와 만든 염습지다. 청둥오리떼가 볕을 쬐며 둥실 떠있는 모습이 마을의 낮은 지붕 선들과 어울려 평화로워 보인다.

산에 오르고 섬을 한바퀴 다 돌아도 겨우 2시간. 배가 오려면 4시간이 더 남았다. 그토록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건만 비양도에서의 시간은 주체할 수가 없다. 익숙치 않은 ‘느림’에 당혹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비양도가 아니면 어디서 또 느림의 미학에 빠져들겠는가.

방파제에 늘어선 낚시꾼들을 기웃거리고, 비양분교의 자그마한 운동장을 거닐어보고…

비양도의 봄볕은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가슴으로 번져왔다.

비양도(제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길에서 띄우는 편지] 제주는 봄 봄 봄

 

[한국일보 2006-02-23 18:42]
이번 제주 여행 길에서 처음으로 내비게이션을 사용했습니다. 렌터카 업체에서 무료로 설치해준 내비게이션 하나가 여행의 패턴을 바꿔놓더군요. 오로지 육감과 지도에만 의존했던 그간의 여행과는 분명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달리던 차 안에서 한 손엔 운전대를, 다른 손에는 지도를 넘겨야 했던 ‘서커스’를 하지 않게 돼 편했고 이정표 마다 놓치지 않으려 했던 긴장감에서 해방됐습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가장 큰 공은 제게 제주의 속살을 속속들이 알게 해줬다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최단코스’는 농로나 임도까지 대입해서 길을 안내하더군요. 예전 같았으면 큰 길로 우회했을 목적지를 도로번호도 없는 소로와 소로를 이어 찾게 됐습니다. 제주에서 처음 디딘 좁은 그 도로들은 제주민들을 가까이서 느끼게 해줬고 낯선 풍경을 펼쳐냈습니다.

관광용이 아닌 목장의 자연스런 풍경, 돌담 너머 빨간 당근을 캐는 농부의 모습 등. 폴폴 날리는 흙먼지 속에 한라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야생의 초지 위로 노을이 질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소로가 펼쳐내는 제주의 풍경과 코끝을 스치는 내음은 날 것 그대로였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길에서 만난 예기치 못한 기쁨에 마냥 들떴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친숙해진 내비게이션의 마력은 서울로 올라와서도 이어지더군요. 김포공항에서 되찾은 제 차.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뭔가 허전했습니다. 조금 불안하다 싶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한번도 헤매지 않던 귀가 길인데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습니다.

처음 만난 내비게이션이 편의와 감동을 선물하더니 그새 제게서 익숙한 감각을 빼앗아 갔습니다.

 

 

 

 

       [제주의 봄 봄 봄] 해안 드라이브


바람을 타고 온 제주의 봄은 해변을 물들이며 시작한다. 한라산 정상은 아직도 눈으로 하얗고 산중턱은 서걱이는 억새로 여전히 스산한 겨울을 이야기 하지만, 파도 철썩거리는 바닷가는 이미 살랑이는 봄바람에 들떠있다.

갯가 돌담 두른 밭에는 싱그러운 초록이 익어가고 성산 일출봉이나 산방산 자락 관광지엔 서둘러 피어난 노란 유채꽃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제주의 관광동맥인 12번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 중간중간 만나는 해안도로는 제주의 봄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곳. 봄빛 가득한 푸른 바다의 풍광이 걸음걸음을 멈추게 한다.

제주에서 12번 국도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돌면 삼양, 함덕, 김녕 등 제주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을 잇는 해안도로로 연결된다. 김녕해수욕장에서 시작된 해안도로의 끝 행원리에는 바람과 맞서 서있는 풍력발전기로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한다.

구좌읍 세화에서 다시 시작하는 해안도로는 성산 일출봉과 신양 섭지코지를 지나 온평리의 환해장성 등을 거치는 경관도로. 제주 해안도로의 백미다. 여름이면 하얀 꽃섬이 되는 문주란 자생지 토끼섬을 바라보며 길은 시작한다. 바다 건너 우도가 내내 동무하고 층층 포개진 돌담 두른 밭이 길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성산 일출봉을 스쳐 지날 때면 여기저기에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다. 드라마 ‘올인’으로 국민관광지로 거듭난 섭지코지는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보이는 일출봉 풍경이 장관이다. 온평리와 신산리 구간은 환해장성길로 현무암 돌들을 성기게 포개놓은 옛 성곽을 끼고 내처 바닷길을 달리게 한다.

짧은 표선의 해안도로에선 표선 해수욕장의 너른 백사장과 제주민속촌박물관을 만나고, 남원읍의 해안도로에서는 중문의 주상절리대에 비견할 해안 경승인 남원큰엉과 신영제주영화박물관을 지난다.

산방산 아래 대정 들녘도 봄빛 가득한 공간. 유채꽃밭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노란 꽃망울도 함께 터진다. 송악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라. 바다에 뜬 형제섬과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뒤돌아보면 바다 표면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가파도와 마라도를 만날 수 있다.
 
송악산 바다 절벽에는 일본군이 어뢰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작은 동굴이 숭숭 뚫려있다. 산방산에서 송악산을 지난 해안도로는 국내 최남단 항구인 모슬포까지 이어진다. 가장 최근에 뚫린 해안도로다.

대정읍 서림수원지에서 한경면 용수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석양을 위한 길. 장구 모양의 차귀도가 붙들어 맨 일몰의 태양은 언제 보아도 장엄하다. 갯바위에 올라 바다 낚시를 하는 꾼들이 유독 많은 곳이다.

금릉에서 귀덕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는 옥색 물빛의 비양도를 감상할 수 있고 애월과 하귀리를 잇는 해안도로는 현무암 절벽과 코발트 빛 바다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호해수욕장과 용두암을 잇는 도로는 제주 시민들의 데이트 길. 횟집촌과 예쁜 카페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줄지어 서있다.

제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여행수첩] 비양도

비양도-한림항을 잇는 도항선의 요금은 편도 성인 1,500원(소인 900원) (064)796-3113. 섬에서 중간에 나오고 싶을 때는 3만원을 주고 주민들의 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비양도내 식당은 보말(고동의 일종)죽으로 유명한 ‘호돌이 식당’과 슈퍼를 겸하고 있는 ‘민정이네’ 등이 있다.


 

 

         [제주는 봄 봄 봄] 숨겨진 비경


“제주가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멀고 비싸니까 자주 못 가는 거지.” 16만 원대의 왕복 항공료에다 숙박비, 음식값 등을 치르다 보면 수 십만 원이 쉽게 사라지는 게 제주 여행.

게다가 관광지마다 몇 천원, 몇 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면 지갑 든 손이 떨려오고, 가슴이 쓰려온다. 하지만 제주에도 잘 찾으면 무료나 아주 저렴한 돈으로 관광할 수 있는 곳들이 부지기수다. 입장료를 받는 명승 관광지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제주의 비경과 관광지를 안내한다.

● 서귀포 쇠소깍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 중 하나가 효돈천. 서귀포의 동쪽 끝 하효마을을 지나 바다를 만난다. 바다와 접점 지역에 용암과 물이 빚는 비경이 숨어있으니 바로 ‘쇠소깍’이다.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있는 계곡은 기기묘묘한 바위들로 장관을 이루며 울창한 수풀과 어울리는 옥빛의 호수를 담고있다. 기암 계곡의 폭은 10~30m, 길이는 120m나 된다. 옥빛의 호수를 쇠소라 부르는데 마을 주민들이 여름이면 피서를 즐기는 곳이다.

효돈천 물길은 바다 앞에서 딱 멈춘다. 화산재 같은 새까만 모래가 바다와 물을 가르고 있다. 바다로 용암의 흔적은 계속 이어져 해변에 이제 막 식어버린 것 같은 바위 덩어리들이 널려져 있다. 파도에 뻥하니 구멍이 뚫린 것에서부터 공룡의 등뼈마냥 길게 마디져 이어진 거대한 바위도 있다. 아이들은 이 바위 틈새에서 게를 잡고 소라를 캔다.

마을 주민들만 알던 이 쇠소깍은 최근 유명세를 타고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마을 옆으로 계곡을 따라 쇠소깍 진입로가 조성됐고 지금은 계곡 옆으로 나무 회랑으로 된 산책로 공사가 한창이다. 아직까지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 금능석물원

협재해수욕장 인근의 금능석물원은 돌로 그려낸 제주의 민속, 민화집이다. 정과 끌로 다듬어진 조각들은 우리네 이웃같이 투박하면서도 친근하다. 밭일 나가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선 아이,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정담을 나누는 아낙네, 옷 벗고 있는 여인을 몰래 쳐다보는 남정네 등에서 옛 제주 사람들의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입 벌리고 올려다 보는 돼지 위에서 큰 일을 보고 있는 아낙상과 노비의 딸을 불러내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도련님 상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돌하르방의 명장인 장공익(75)씨가 혼자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장 명장은 지금도 석물원 한쪽 구석에서 정과 끌로 돌을 깎아내고 있다. 쉽게 웃으며 지나치는 작품들이지만 가슴 속에 잔잔히 제주민들의 지난했던 삶에 대해 애틋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입장료는 1,000원. (064)796-3360

● 혼인지와 환해장성

섭지코지 인근의 성산면 온평리 마을 숲에는 혼인지라는 500평 규모의 연못이 있다. 고(高)ㆍ양(梁)ㆍ부(夫) 삼신인(三神人)이 삼공주(三公主)와 혼인한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다.

아득한 옛날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삼신인이 수렵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가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 찬란한 궤짝이 떠 내려와 해안가에 머물렀다.

삼신인이 내려와서 궤를 열어보니 벽랑(碧浪)국에서 온 15~16세 가량의 공주 3명과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앗이 있었다. 세 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하고 혼인지에서 혼례를 올리고 궤에서 나온 소와 말을 기르고 오곡의 종자를 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국제결혼 장소이고 제주의 문명을 연 곳이다.

혼인지 바로 옆에는 삼신인이 혼례를 치르고 신방을 차렸던 조그만 굴이 있다. 그 굴은 입구에서 세갈래로 갈라져 있어 혼인지의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입장료는 없다.

● 설록차 뮤지엄 오설록

남제주군 안덕면의 서광리에 16만 평의 차밭이 펼쳐져 있다. ㈜태평양이 운영하는 서광다원이다. 차밭 입구의 설록차 뮤지엄 전망대에 오르면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드넓은 차밭의 풍경을 완상할 수 있다.

설록차 뮤지엄 내에는 차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차의 다양한 종류와 함께 찻잔 등 차를 끓이는 도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다점에서는 따뜻한 차 한잔이나 녹차 아이스크림 등을 곁들이며 나들이에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064)794-5312

제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