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사람들

만년학생’ 이방인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 00:52

 

 

             만년학생’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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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공부하러 왔다가 영영 눌러 살게 된 유학생 출신에게 무심코 “언제 프랑스에 오셨어요”라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씁쓸한 농담처럼 들었다.

 

“우리 같은 유학생 출신 교민한테 묻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프랑스에 언제 왔나? 둘째는 뭘 공부했나? 셋째는 언제 한국 돌아갈 건가?

한국에 돌아갈 기약이 없으니 언제 한국 갈 건가 하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이요, 유학까지 와서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으니 뭘 공부했냐는 질문도 하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파리를 비롯, 유럽에서 만나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나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는 유학파 출신의 ‘가방 끈’이 긴 사람이 꽤 있다. 실업률 높은 프랑스에서 외국인이 번듯한 일자리를 구해 주류사회로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미국 유학파에 비해 기회를 잡는 것이 힘드니 어정쩡한 상태로 프랑스에 남은 것이다.

유럽이 미국보다 학위를 따는 데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고 까다롭기도 하지만, 매사 급할 게 없는 프랑스 사람들 속에서 공부하다 보면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품지 않고는 유학생활이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진다.

 

프랑스나 독일 사람 중에도 직업이 ‘만년학생’인 사람이 꽤 있다. 유학생 신분으로 조금만 공부가 길어지면 한국에 가서 강사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 만큼 훌쩍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이다.

더더욱 프랑스에 주저앉도록 만드는 것은 프랑스의 윤택한 복지제도다. 수입이 없는 학생일수록 프랑스에서는 세금이나 사회보장비는 거의 안내고, 누리는 복지 혜택은 훨씬 크다.

 

외국인 유학생도 집세 일부를 보조해주는 주택수당이 나오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수당도 프랑스 사람과 똑같이 받는다. 탁아소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면 점심값만 부담하는데, 소득에 따라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거의 공짜에 가깝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자녀의 학비 부담도 거의 없다.

외국인에게도 내국인과 똑같이 후한 복지 혜택을 주는 프랑스는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관대하기 그지없는 나라다. 하지만 어찌 보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이 관대함이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삶보다는, 혜택받는 현실을 선택하도록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학생활이 길어지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더더욱 한국에 돌아갈 용기를 내기가 힘들어진다. 한국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비용도 엄청나거니와, 끊임없는 경쟁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야 하는 중압감 때문이다.

당초 목표했던 꿈을 접었다는 회한만 빼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프랑스에서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귀천 없이, 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간다.

 

하지만 한국의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는, 유학을 오면서 품었던 목표를 이룰 수도 있지만 일자리를 못 구하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위험부담이 큰 한국에서의 미래 대신 프랑스에서의 현실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모양새만 달랐지,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 불확실하고 무모한 미래에 도전하는 삶, 우리는 이 둘을 놓고 끊임없이 저울질하지 않는가?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두 번 살 수도, 시계추를 되돌릴 수도 없으니 앞이 잘 안 보이는 미래로 성큼 달려가는 용기를 갈구하고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강경희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