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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 대체 그 길엔 무엇이 있기에?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4. 23:05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

 

         대체 그 길엔 무엇이 있기에?

 

 

 

 2년 전, 나는 처음으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 후 실크로드 전 구간을 걸어서 여행했는데, 그 여행의 준비단계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내가 실크로드에 가슴 설레어 하는 것만큼, 그러나 그 실크로드가 너무나 멀고 방대해서 섣불리 접근할 용기가 나지 않는 만큼,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그 길을 걸어보리라, 하고 막연하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즈음, 우연히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W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뒤, 그녀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갑작스런 병고 끝에 차례대로 돌아가셨다. 강인하지만 또한 눈물 많은 외동딸인 W는 오롯이 홀로 남겨졌다.
 
인간이 주체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그것을 견디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스페인으로 갔다. 그리고 남은 슬픔을 추스르기 위해 또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걸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극도로 상처 입은 영혼을 불러들이는 걸까?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반가운 책이 나왔으니, 김남희의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 스페인 산티아고 편>이 그것이다. 2005년 6월에서 10월 사이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어 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바로 그 여행기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란?

 
▲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2 - 스페인 산티아고 편> 겉그림
ⓒ2006 미래엠앤비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대한 저서의 내용을 추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산티아고로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주의 수도이다. 성인 야곱이 잠든 성스러운 땅으로 알려져 있기에 9세기부터 기독교사회는 산티아고로의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당시 강성해지는 무슬림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려는 정치적 노력에, 순례자들이 몰림으로써 생길 이익을 계산한 중세도시의 경제적 지원이 더해져 산티아고로의 성지순례는 활성화된다.

11세기와 12세기에 이르러 순례자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교회와 순례자 숙소가 길 위에 생겨났고 가이드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순례자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해서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이후, 교황의 방문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포 등에 힘입어 이 길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저자는 주저하지 않고 '걷는 행복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다. 이미 2001년 한반도 남단을 종단했고, 그 여행기 또한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로 출간된 바 있다.
 
그 이후로도 세계 여러 곳을 떠돌면서 낯선 곳을 걸었지만, 수많은 상념이 잠잠해지고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비워지는' 걷는 것의 절정을 향한 갈망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저자 또한 <나는 걷는다>를 통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이 거침없는 여성은 도보 여행자들만을 위해 열려진 그 길을 향해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체 그 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기에?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대해, '개발'과 '문명'이라는 어휘에 지나치게 찌들어 있는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 길 위에 없는 것을 먼저 예로 드는 것이 빠를 지도 모르겠다.
 
그 길엔 차가 없다. 호객하는 상인이 없고, 시야를 파고드는 광고문구가 없다. 현대에 이 세 가지 모두가 없는 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곳에는 그러한 길이 장장 800km 가량 펼쳐진다.

그렇다면, 그 길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사람들이 있다. 마음의 평화를 찾고 길의 적막함에 동화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날아 들어온 순례자들. 가방회사의 사장이 짬짬이 시간을 내어 배낭을 메고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사랑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스무 살의 당찬 아가씨도 있다. 이들은 긴 길을 걷는 동안 서로 섞이고 흩어지고 다시 만나면서,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생각들을 함께 공유한다.

걷는 행위를 통해 열리고, 길을 통해 원하는 것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이들은 정직하고 따뜻하다. 끊임없이 "너와 걷게 되어 행복해" "너를 도울 수 있어 정말 기뻐!" 라고 속삭여 주는 길동무들.

또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그 길을 걸으며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순순히 다른 순례자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 고마움을 되갚으려고 시간과 품을 내어 다시 찾아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상당하거나 아픈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해주고 음식을 나누어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빨래까지 도맡아주기도 한다.

여기에 또 순례자들이 잠시 들러 쉬어가는 마을에서 마주치는 소박하고 느긋한 사람들이 있다. 술을 멀리하는 저자를 와인향에 취하게 하는 재주 좋은 할아버지들,
 
물을 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시원한 파인애플 주스를 두 잔이나 들고 나오는 동네 아주머니들…. 어떤 날은 마을에서 벌어진 축제를 관람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광장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이 있다. 안개에 덮인 피레네 산맥, 풀을 뜯는 양떼, 온 천지가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밀밭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포도밭. 약간의 두려움을 감수하게 하는 새벽길의 어둠과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한낮의 태양. 때로 자연은 그 강인함으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기도 하고, 그 포근함으로 지친 그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기도 한다.

여기에 덤으로, 2000년 전부터 시작된 순례의 행렬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마을마다 고풍스런 교회와 성당이 기다리고, 이 모든 성스러운 곳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날의 목적지까지 도착한 순례자들은 다시 남은 힘을 짜내어 이곳을 둘러보고 예배와 미사에 참석하여 하루를 경건히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 위에서 순례자들이 찾는 것은

물론, 단순히 위에 언급한 것들의 나열을 구경하기 위해 그 많은 이들이 순례라는 이름 하에 산티아고를 찾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도 없으며,
 
순례라는 것을 굳이 종교적 의미에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인생 자체가 순례라는 말을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목적이 얼마나 다양할 지 짐작이 가능하리라.

하지만 이들의 다양한 순례의 목적에도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800km라는 강도 높고 압축된 순례를 통해 마음을 정화시키고, 그 정화의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며, 적게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크게는 마지막에 펼쳐지는 깨달음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 공통분모가 아닐까?

저자는 처음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단순히 '걷기 위해'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길을 걷는 동안, 뜻밖에도 중대한 선택을 요하는 질문 하나가 그녀의 가슴 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인생의 어느 시기에 '사랑'에 대한 선택을 접하면 담담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저자는 30대 중반의, '꽃잎처럼 웃음소리를 날리는' 아이를 사랑하는 미혼 여성인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선택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곧 정착과 출산으로 대표되는 가정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중년의 캐나다 여인 쉐리가 저자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네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믿어라.'

문득 저자는 중대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다. 답은 이미 그녀 안에 있었다는 것을. 사랑에 대한 망설임 자체가 사랑을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러주는 대답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저자는 집착과 정착 대신 더 먼 곳을 향한 또 한 번의 순례를 선택하기로 한다.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너 참 잘했어. 참 장하구나."

끝나지 않는 여행

이로써 우리는 저자의 다음 번 여행기를 기다리는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 젊고 따뜻한 영혼이 끊임없이 길 위에서 비틀대면서, 지나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연소시키는 일은 드물고도 귀한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 존재의 불완전함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또 다른 많은 존재들의 불완전함과 접속하면서, 완전함을 향해 솟아오르는 황홀한 순간을 계속해서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W는 두 번째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다 걸은 뒤, 그녀의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글을 남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 짐을 지고 걸으면서, 머릿속을 삼켜버릴 듯 수많은 상념과 눈물, 그리고 여러 사연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연을 나누고서야, 드디어 길을 찾은 듯합니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1.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 초조하게 기다려도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단지 달라지고 변화할 뿐이다.

조금씩 제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그저 있었던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주저앉아 울거나 포기하거나 성말라하지 않고 그냥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기 때문에 저도 어쨌든 가는 것이라는 걸, 가야만 한다는 걸,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알아챈 것 같습니다.

언제나 이 길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제 짐을 지고, 때론 육체적 고통과 때론 정신적 고통과 함께 혼자서 스스로 걸어야만 하는 이 길은, 제게 큰 선물을 안겨줍니다.

감사의 마음과 조금의 눈물과 함께 산티아고의 피씨방에서 글을 남깁니다.
[오마이뉴스 2006-03-14 14:49]    
[오마이뉴스 오소희 기자]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