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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도한' 베네치아, 나를 허락하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3. 23:50

 

        이탈리아 '도도한' 베네치아,

 

               나를 허락하다

 "똑똑똑…."

꿈결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누구세요?"

무의식적으로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방문을 열어 보니 어젯밤 우리 가족의 여권을 받아 갔던 객실 승무원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발음이 섞인 영어로 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베네치아(Venezia)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의 손에는 우리 가족의 여권과 샌드위치, 오렌지 주스 그리고 요구르트 등이 들어 있는 간단한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여권과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 야간 열차 침대칸을 이용하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2006 서상원
우리 가족은 지난 밤 스위스 루체른에서 출발한 야간열차에 타고 있었다. 4인 1실인 침대칸에는 다행히 우리 가족만 있게 되어 나와 아이 그리고 까탈 많은 아내까지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가족을 깨우기 위해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었다. 순간 눈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경이 차창 밖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어느 목가적인 풍경의 들판이나 도심의 변두리가 아닌 바다 위에 외길로 난,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탯줄과 같은 철로를 따라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신새벽의 맑고 푸른 기운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 수면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렇게 내게 도도한 첫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기차가 서서히 베네치아 산타루치아(S. Lucia) 역으로 진입을 했다. 더 갈데없는 종착역인데다 관광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역을 빠져 나왔다.
 
역을 나서자마자 비릿한 바다냄새가 훅하고 불어왔다. 불과 수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으로 운하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배들이 바삐 흘러가고 있었다.
 
베네치아에 오면 중세풍의 오래된 건물들과 그 사이를 흐르는 운하들을 원없이 보리라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2006 서상원
아직 근무시간 전인지 여행 안내소는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바깥 진열대에서 눈에 띄는 몇 장의 안내 팸플릿을 뽑아 대합실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가 역내 카페테리아에서 아침 요기를 하는 동안 나와 아내는 여행 안내소에서 꺼내온 지도를 펼쳐 들고 오늘의 일정을 그리고 있었다. 간단히 오늘 돌아 볼 곳들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고 짐 보관소를 찾아 배낭들을 맡긴 후 역 밖으로 나왔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 목적지인 리알토(Rialto) 다리까지는 수상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퀴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베네치아에서는 여느 도시의 대중 버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바포레토(Vaporetto)란 수상버스이다.

배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가득했다. 일터로 향하는 듯한 사람들과 등굣길 아이들이 가방을 둘러멘 채 참새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단체 관광버스가 아니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을 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다.

얼마 가지 않아 첫 목적지인 리알토 다리에 도착했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S자 모양의 대운하(Canale Grande)의 거의 중앙에 있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13세기에 처음 건설될 때는 목조였지만 16세기말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테가 대리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 리알토 다리 위에서 바라 본 대운하 풍경
ⓒ2006 서상원
다리 위로 걸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위아래에 길게 펼쳐져 있는 운하와 그 위를 바삐 흘러가는 배들 그리고 운하 양 옆으로 물과 바로 맞닿아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결코 녹록하지 않은 자연 환경을 극복하고 서 있었다.

 
▲ 그 화려함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습니다.
ⓒ2006 서상원
다리 위와 주변으로는 베네치아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 각종 가면들과 유리 세공품들을 판매하는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 탓인지 문을 연 곳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유리로 만든 세공품들과 다양한 표정을 지닌 가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천천히 기념품 상점들을 구경하며 다음 목적지인 산마르코(San Marco)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미로같이 얽히고설켜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주위의 모든 건물들은 무척 오래되고 낡아 보였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골목 모서리를 돌아 서면 기다렸다는 듯 조그마한 다리와 운하가 나타났고, 그 다리를 지나 다시 골목으로 접어들면 낡았지만 예쁘게 테라스를 장식한 집들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꿈 속을 걷는 듯 나도 모르게 점점 베네치아의 골목들과 중세풍의 집들에 빠져 들고 있었다.

▲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베네치아의 골목 풍경
ⓒ2006 서상원
얼마쯤 걷다 보니 각종 야채와 치즈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나타났다. 아마도 이곳 현지인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일종의 재래시장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여행하든 반드시 현지 시장을 찾아 둘러보는 것이 원칙인 우리 가족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정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자그맣지만 환한 햇살이 비추는 광장이 있었다. 이름 모를 광장을 빙 에둘러 각종 생필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물건을 구매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본 듯한 공동수도가 고즈넉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한 상인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싱싱한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 광장 그리고 사람들....
ⓒ2006 서상원
베네치아 사람들은 어떤 음식들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문을 연 지 오래돼 보이는 가게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햄과 수산물, 치즈 그리고 각종 채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이탈리아의 냄새가 뚝뚝 묻어나는 노래가 평화로운 아침 광장에 널리 번져 나가고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골목길이 다소 복잡했지만 갈림길이 나오는 모서리 건물마다 이정표를 붙여 놓아 그리 힘들이지 않고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아빠?"....."비둘기 자식 둔 적 없다!"
ⓒ2006 서상원
광장으로 들어선 우리 가족이 처음 마주친 것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둘기 떼였다. 드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비둘기 떼가 모이를 주는 관광객들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다는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등과 함께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지이다.
 
길이 175m, 폭 80m 넓이의 산마르코 광장을 빙 둘러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들이 늘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돈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명품 상점들과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노천카페들이 즐비하다.

광장 정면에는 산마르코 성당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성 마르코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9세기에 세워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며, 특히 성당 내ㆍ외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미술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 광장에서 바라 본 산마르코 성당
ⓒ2006 서상원
입장료를 내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풍겨 왔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그림 하나하나 조각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둘러보고 있었다.
 
정해진 이동로를 따라 올라 가다 보니 외부로 통하는 문이 나왔다. 꽤나 널찍한 외부 테라스를 따라 관광객들이 줄지어 아래 광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햇살이 따사롭게 광장을 밝히고 있었다.

▲ 산마르코 광장 전경
ⓒ2006 서상원
성당을 나와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베네치아 대운하가 끝나는 지점이다.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거셌다.

바닷가를 따라 피아노 표면같이 매끄럽게 칠을 한 베네치아 명물 곤돌라(Gondola)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여행족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아들 녀석이 곤돌라를 타자고 졸라댔지만 "나중에 커서 애인이 생기면 그때 같이 와서 타라"하고 달래 보았다. 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씩 웃더니 순순히 포기한다.

겨울 해는 짧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가 있는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베네치아의 골목길과 운하는 낮에 보았던 그것과는 또 다른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 베네치아에 밤이 찾아 오면 사랑도 무르익는다.
ⓒ2006 서상원
운하를 끼고 멋스럽게 위치한 레스토랑들은 저녁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얀 천으로 덮인 테이블마다 촛불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빛들이 모여 레스토랑 창문 밖 골목길을 따스하게 보듬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곤돌리엘레(Gondolielle)가 부르는 칸초네가 말초신경처럼 얽힌 미로 사이를 타고 날아와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2006-03-13 14:28]    
[오마이뉴스 서상원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