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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가이도 삿포로, 오타루,구름이 내려앉은 도시 삿포로와 오타루의 ‘日夜’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8. 02:09

 

             홋가이도 삿포로,오타루

 

              구름이 내려앉은 도시

 

            삿포로와 오타루의 ‘日夜’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다섯 지구로 나뉜다. 그중 ‘삿포로’와 ‘오타루’를 품에 안은 지구는 홋카이도의 정치·경제·문화의 거점이다. 국내에는 맥주 산지로 더 유명한 삿포로와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오타루. 눈과 얼음의 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와 ‘오타루 운하’의 아름다운 겨울 야경을 만나러 홋카이도로 떠났다.
 

 

일년 내내 축제의 열기로 가득한 ‘오도리 공원’

 

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여행객을 반기는 것은 눈이었다. 세상을 가득 덮고 있는 눈은 하늘하늘 떨어지지도, 서릿바람과 함께 몰아치지도 않았다.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야경을 경험한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젖히고 만난 세상은 또다른 감동이었다.

 

 

치토세 공항에서 1시간가량(JR쾌속열차 36분) 달리면 홋카이도의 중심지 삿포로에 도착한다. ‘눈축제’로 유명한 삿포로에는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삿포로 눈축제는 동서로 약 1.5km에 이르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오도리 공원’에서 펼쳐진다. 눈을 맞으며 걸어서 찾아간 오도리 공원에서는 눈과 얼음을 이용한 조각상들이 조명 불빛을 받으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오도리 공원은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월 눈축제가 끝난 후 공원은 라일락 향기로 가득 채워지고 ‘라일락 축제’를 시작한다.

 

봄과 함께 찾아온 ‘라일락 축제’는 초여름에 열리는 ‘소란 축제’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또 한여름에는 맥주로 유명한 도시답게 ‘납량 맥주 가든’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처럼 삿포로는 일년 내내 축제가 이어지는 도시다.

 

 

오도리 공원에는 1957년 건설된 높이 147m의 TV탑이 자리 잡고 있다. 입장료 700엔(어른 기준)을 내고 지상에서 90m 높이에 위치한 TV탑 전망대에 오르자 눈축제가 벌어지는 오도리 공원은 물론 삿포로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밤 야경으로 만난 눈 세상과 한낮에 지상에서 한참 떨어진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또다른 모습으로 감동을 안겨주었다.

 

항구도시의 상징 ‘오타루 운하’

 

삿포로에서 30분가량 기차를 타고 달리면 오타루에 도착한다(버스는 1시간 소요). 오타루 역에서 운하가 보이는 숙소까지 가는 동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운하를 끼고 길게 늘어선 가스등이다.

 

가스등은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창고들을 오타루 운하와 멋지게 어우러지게 하며 독특한 밤풍경을 연출했다. 창고를 등지고 가지런히 늘어선 작은 가게들, 네온 불빛은 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비추며 운치를 더해줬다.

 

 

 

오타루 운하는 다이쇼 3년(1914년)에 착공되었다. 이후 9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된 오타루 운하는 홋카이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항구도시 오타루의 상징이 되었다.

 

메이지시대에 지어진 벽돌식 창고는 조명을 받으며 길게 늘어서 있고 아사쿠사교에서 중앙교에 걸쳐진 수많은 어영석(御影石)은 산책로를 만들고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오타루의 또하나의 명소로 불리는 ‘오타루 오르골당’을 구경하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대부분의 상점이 밤 9시 전에 문을 닫는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저녁 식사도 거른 채 걸음을 재촉했지만 이미 상점은 문을 닫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 날을 기약하며 느린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미처 눈에 담지 못한 아름다운 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흡사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이노나이도리’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흰 눈에 반사돼 따뜻한 온기마저 느끼게 했다.

 

오타루는 운하와 오르골 못지않게 유리공예로도 유명하다. ‘오타루 오르골당’에서 운하까지 이어진 거리(이노나이도리)에는 유리를 이용한 생활용품 상점과 보석 상점이 즐비했다.

 

늦은 시각까지 문을 닫지 않은 유리공예 상점에 들어서자 총천연색 유리 공예품들이 저마다 다른 빛을 발산하며 눈을 간질였다. 카메라에 공예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려 했지만 이들은 눈으로만 감상하기를 바랐다. 이곳의 공예품들은 오타루를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가격도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고가품들이었다.

 

웬만하면 1만 엔이 훌쩍 넘는 공예품에 혹시 상처를 입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조마조마. 어깨에 짊어진 가방끈을 바싹 잡아당기고는 서둘러 상점을 나와야 했다.

 

 

 

격조 높은 건축물이 즐비한 ‘이노나이도리’

 

다음 날 ‘이노나이도리’를 다시 찾으니 전날 불빛에 취해 보지 못한 격조 높은 오래된 양식의 건축물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자랑하며 눈에 들어왔다.

 

과거 일본 ‘북쪽의 월 스트리트’라고 불렸던 이로나이도리 주변에는 메이지(1868~1921) 중기부터 다이쇼(1912~26), 쇼와(1926~88) 시기에 걸쳐 세워진 역사적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조 건물 중에는 홋카이도에서 건축사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건조물이 많다고 한다.

 

이노나이도리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오타루 오르골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치형 창, 건물 모서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코너 스톤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내부에서는 다양한 멜로디를 쏟아내는 오르골이 조명에 반사돼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다. 바닥을 포함한 내부를 느티나무 목재로 꾸며 놓은 ‘오타루 오르골당’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낡은 목조 건물 특유의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낸다.

 

오르골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오래된 목조 건물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했다. 지배인은 높이 9m의 천장과 계단 손잡이 장식 등을 과거와 같이 복원해 오타루시로부터 역사적 건조물로 인정받았다고 자랑했다.

 

3층에는 핸드메이드 오르골 공방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좋아하는 곡목과 액세서리를 선택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오르골’을 만들 수 있다. 가격은 일반 오르골보다 다소 비싼 1천8백엔부터이며 건조 시간은 약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오타루 오르골당’ 정문을 나서면 관광객들에게 오타루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는 기념 사진 촬영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높은 증기시계 앞이 바로 그곳. 이 증기시계는 높이 5.5m, 폭 1m, 무게 1.5톤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보일러로 발생시킨 증기를 이용해 1시간마다 시간을 알리고 15분마다 증기로 5음계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눈의 도시 삿포로와 오타루는 도시를 감싸안은 눈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여행지다.

 

사진설명

 

1 오타루 관광버스. 2 눈 덮인 오타루 항구. 3 눈이 그친 삿포로 거리. 4 삿포로 눈축제에서 얼음 미끄럼틀을 타는 꼬마. 5 오타루 인력거꾼들. 6 오타루 거리에 있는 족욕탕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커플.

7 오타루 운하. 8 삿포로 눈축제에 전시된 얼음조각. 9 오르골당. 10·11 오타루 운하 야간 조형물. 12 오르골당 내에 전시·판매되는 오르골. 13 삿포로 눈축제 거리 음식.

 

 

홋카이도에서 펼쳐지는 웨딩 이벤트

‘화이트 웨딩 in 홋카이도’

 

‘화이트 웨딩 in 홋카이도’는 홋카이도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 중 20쌍(해외 초청 3쌍 포함)을 초대해 무료로 결혼식과 부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행사다.

 

사단법인 홋카이도 관광연맹(회장:아비코 켄이치)에서 실시하는 이번 행사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관광지에서 지역 특색에 맞는 다채로운 테마로 진행됐다.

 

관광연맹측은 지난 2005년 10월 1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지원자를 접수, 일본 내 15커플, 홍콩, 대만, 한국에서 각각 1커플을 선발해 총 18커플의 결혼식을 진행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선발된 행운의 커플들은 홋카이도 내 20개 장소에서 관광을 겸한 결혼식을 올렸다. 메인 이벤트인 결혼식은 홋카이도 토착 민족인 아이누족의 전통에 따라 열리는 ‘아이누 캔들 웨딩’을 비롯, 교회에서 펼쳐지는 ‘채플 웨딩’, 그리고 홋카이도의 광대한 스키장에서 열리는 ‘파우더스노우 웨딩’ 등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꾸며졌다.

 

한국에서 치러진 이벤트 행사에서 운좋게 선발된 박기태(27)·조효숙(28) 커플은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오타루에서 ‘서약의 운하 웨딩’이라는 테마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 박기태씨는 “홋카이도는 TV나 영화를 통해 접할 때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며 “로맨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국적인 도시 오타루와 온 세상을 눈으로 덮은 아름다운 삿포로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결혼식을 올리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부 조효숙씨 역시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에서 결혼하는 만큼 주인공처럼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다”며 ‘화이트 웨딩 in 홋카이도’에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글·사진 / 김성욱 기자 취재협조 / 홋카이도 관광연맹

 

 

 

 

              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

 

 

 

[한겨레21 2006-02-28 11:03]    

 

 

 


[한겨레]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 눈의 도시 하코다테·삿포로·오타루를 가다
반갑지도 귀찮지도 않은 눈이 사라진 원주민과 징용자의 땅에 고루 쌓인다
 

▣ 훗카이도=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ㄱ형. 일본 출장에서 돌아와보니 휴대전화에 형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몇 개 남아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전화도 못 받았군요. 미안합니다. 저는 구정 연휴까지 반납하고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를 반납한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홋카이도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곳이었습니다. ‘북국’(北國)의 정취라는 게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느꼈고요.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군요.

 

홋카이도에 대한 연상이나 이미지가 영화 장면과 닿아 있는 한국인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러브레터>의 첫 장면을 보고 “홋카이도라는 곳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하고 생각했답니다. 히로코가 눈 속에서 누워 있던 첫 장면과 그 장면에 녹아들던 레미디오스의 피아노 음악은 가벼운 정신적 충격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눈이 판타지로서의 눈이었다면 취재 도중에 본 눈은 ‘일상 속의 눈’ ‘생활 속의 눈’이었습니다. 홋카이도 사람들한테 눈은 특별히 귀찮거나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도시 가운데 한국 사람들한테 가장 친숙한 세 곳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하코다테, 삿포로, 오타루의 세 도시를 저는 각각 그레이 블루, 화이트 블루, 블랙 블루라는 색깔로 구별하고 싶어졌습니다.

 

ㄱ형. 판타지는 깨지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키와 골프만을 위해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미 많더군요. 저처럼 평생에 꼭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그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삿포로 근처 신치토세 공항에서 우리보다 하루 앞서 귀국한 사실은 또 어떻고요. 한술 더 떠 황우석 교수는 홋카이도대학에서 연구를 했더군요. 아름다운 풍광만을 얘기하다 자칫 이 땅이 지닌 사연을 쉽게 타자화할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 아이누족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나, 이곳이 일본 제국주의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공간이었던 탓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이 특별히 그랬습니다.

 

ㄱ형.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생활을 한다기에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궁금합니다. 주말부부는 금슬도 좋아진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기회가 닿는다면 홋카이도의 자연을 구석구석 음미할 수 있는 가족여행을 떠나보세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28일… 눈이 내리다

3미터 고드름과 경사진 지붕, 홈 깊은 신발의 훗카이도 풍경들

 


12월27일~4월19일.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에서 첫눈이 오는 날부터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까지의 평균이다. 1년의 3분의 1은 눈과 함께 사는 셈이다. 눈이 가장 많이 오는 달은 1월과 2월. 1월에는 30일 가운데 평균 28.1일 동안 눈이 내린다. 눈이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는 셈이다.

 

2월엔 30일 가운데 평균 25.2일 눈이 온다. 삿포로시의 1년 일반회계 예산의 2%가 넘는 돈이 제설작업에 쓰인다. 150억엔 정도 된다고 한다. 눈의 나라이자 눈의 세계다.

 

사람들은 눈이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스무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쓸까 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서너 차례 눈이 오다 말다 하는 때가 많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올 때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눈을 ‘후부키’라고 불렀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옆으로도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도 솟구친다. ‘흩뿌리는 눈’이라는 뜻이다.

 

홋카이도에 머무른 일주일 동안 눈싸움을 하는 이들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눈사람을 만들어놓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눈이 많이 쌓이다 보니 지붕의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려 길가는 이들을 덮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인들이 눈덩이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1년에 몇 건씩은 꼭 생긴다. 그래서 ‘낙설주의’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3m가 넘는 ‘흉기급 고드름’도 수두룩하다. 눈이 잘 흘러내리도록 지붕의 경사도도 높다.

 

홋카이도 사람들의 신발에는 홈이 깊게 패어 있다. 눈 위에 찍힌 사람들의 신발 자국은 우리의 신발 자국과 확실히 달랐다. 신발 밑바닥 생김새가 달랐던 것이다. 잘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자동차 바퀴도 사람의 신발을 닮았다. 홈이 확실하게 나 있는 스노타이어가 아니면 빙판길을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길을 운전하려면 특별한 운전기술도 필요하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두세 단계로 나눠서 밟아야 홋카이도식 운전을 할 수 있다.

 

눈 치우는 도구의 다양성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삽도 가지가지다. 잔디 깎는 기계처럼 생긴 가정용 제설기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아예 제설용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집들도 많다.

 

길을 가다 보면 바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이 있다. 얼음이 얼지 않고 눈도 쌓이지 않는다. 얼어붙은 주변 길과 확실히 구분되는 이런 곳들에는 보도블록 아래에 열선이 있거나 뜨거운 물이 흐른다. 눈과의 투쟁은 전방위적이다.

 

부잣집에서는 마당에 열선을 깐다고 했다. “너희 집 마당에 열선 깔았어?”는 홋카이도 청소년들이 “너네 집 부자니?” 하고 묻는 말인지도 모른다. 집 앞의 눈을 치워주는 업체도 있다. 한 번 부르는 데 보통 1만엔(약 9만원) 안팎이 든다.

 

이 정도면 눈만을 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홋카이도교육대학 이학박사 추네야 다카하시 교수. 그를 찾아 학교로 갔다. 구름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눈 결정 성장’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눈 결정 연구가 이곳 삿포로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인공 눈을 만든 이도 나카야 우키지로 홋카이도대학 교수라고 덧붙였다. 나카야 교수를 기념해 홋카이도대학 안에는 눈 결정체를 본뜬 기념비가 있다.

 

그는 “홋카이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눈의 높이는 평균 6m”라며 “눈을 속성에 따라 ‘젖은 눈’과 ‘마른 눈’으로 나누는데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전형적으로 마른 눈, 즉 ‘건설’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홋카이도 사람들에게 눈은 생활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친하게 지내야 한다”면서 “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층들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는 눈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눈이 교육의 소재로 쓰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눈은 기상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공학, 교육학, 미술, 사회학 등 거의 모든 연관 학문 분야에서 교육의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쿄 중심의 교육과 문화에 비판적인 그는 “눈에 관한 한 홋카이도가 중심”이라며 웃었다.

 

홋카이도를 떠나던 날 새벽부터 큰 눈이 내렸다. 삿포로 주재 대한민국 영사관과 항공사 사무실, 비행장 등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뜰 수 있는지를 연거푸 물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난리법석 떨지 마라. 이 정도는 눈도 아니다”였다. 호들갑을 떨다 머쓱해졌다. 신치토세공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그곳에선…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한겨레21 2006-02-21 11:03]    

 


[한겨레] ‘블랙블루의 도시’ 오타루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생각함
영화 <러브레터>와 청어잡이의 추억, 운하와 창고가 명물
 
 

▣ 오타루= 글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타루는 블랙 블루의 도시다. 소박하지만 하찮지 않고,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다. 오타루는 전통과 현대의 공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래선지 오타루 시내를 걷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뜻밖에 건네받은 한글판 관광안내서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연안철도는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겨울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처럼 푸드덕거리며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설렘. 서른 즈음에서 훌쩍 마흔에 가까워져버린 사람, 마흔 고개를 넘은 사람, 오타루가 처음이 아닌 사람까지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오타루의 정체는 뭘까.

 

오타루역에서 제일 먼저 만난 이는 시청 경제부 관광진흥실 와타나베 가즈히로(41). 공무원 생활 17년째로 지역 토박이인 그에게서 건네받은 건, 뜻밖에 한글판 지도인 ‘나들이 오타루’와 관광안내서 ‘영화 <러브레터> 로케지를 찾아서’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처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당혹스런 안내지의 행간들이 오히려 따뜻한 웃음을 자아내고, 타국에서 받은 한글판 안내서는 고향의 진한 대추향처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역을 나서자마자 왼쪽에 있는 ‘산가쿠시장’을 지나 눈길 위를 조심조심 걸어 언덕길을 올랐다.

 

가파른 경사들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미끄럼틀 같다. 미끄러지는 통에 영화 같지 않은 현실에 산통은 깨져도, 연애편지를 더듬어가는 언덕길은 아직껏 숨차도록 뜨끈한 어떤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뒤를 돌아보라며 와타나베가 가리킨 팻말은 영화 속 그대로 ‘후나미자카’. ‘배를 바라다보는 언덕’이었다. 그리고 그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간 시선 끝에 바다가 한가득 밟힌다.

 


‘구일본 우선주식회사 오타루지점’ 건물은 <러브레터>에서 도서관으로 등장했던 곳이다. 오타루시 박물관이었다가 현재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건물로 들어서자 한국어를 한창 공부 중이라는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감사하므니다”를 연발한다.

 

 밖으로 나오니 오타루 운하 주변의 창고촌 공장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고 있는 일꾼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준다. 그랬다. 오타루는 또 괜스레 손을 흔들어주고 싶은 곳이다.

 

운하 지키기, 근대화 시정책에 맞서다

 

오타루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 운하다. 와타나베는 “한국에서 광고 촬영을 왔다가 다른 곳에 못 가니까 운하에다 대고 ‘오겡키데스카’ 하는 스태프들을 본 적이 있다”며 웃었다.

 

20세기 초반 오타루는 청어잡이의 중심지였다. 청어를 가득 실은 배는 항구를 거쳐 이곳 운하로 들어온 뒤 창고에 고기들을 내려놓았다. 원래 유리공예는 ‘우키다마’(어선의 램프)를 만드는 곳이 오타루가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데서 비롯했다.

 

게다가 메이지시대 ‘100만억 시대’라 불릴 정도로 청어잡이가 한창이었는데, 청어는 먹는 생선이라기보다는 ‘니싱가스’라고 불리는 일본 농가에서 쓰는 비료였다. 돈이 되는 생선이었던 셈이다. 이때 만들어지는 ‘어유’가 ‘우키다마’를 밝히는 기름이 되었으니 유리공예와 청어잡이와 운하는 한 지붕 세 가족이었다.

 

지금 운하와 창고는 애초의 용도를 잃고 새로운 용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운하와 창고가 이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1966년 오타루시는 시내 교통체증을 줄이고 항구를 근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운하를 메우고 6차선 간선도로를 뚫는 계획을 세웠다. 운하가 메워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주부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것은 1975년. 악취 나는 운하를 청소하고, 거리 연설과 신문 발행 등의 대중운동이 시작됐다.

 

‘오타루 운하 연구강좌’를 열어 전국 유명강사가 참가하도록 하면서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문화축제를 통한 선전전이 새로운 행동의 촉진제가 됐다.

 

 


토론과 협상, 투쟁 과정은 그 뒤로도 20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1986년 완성된 도로는 운하의 폭을 반으로 줄여놓았지만, 운하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대신 그동안의 논쟁 과정이 일본 내에 알려지면서 이곳은 일약 유명 관광지가 됐다.

 

창고도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식 주점과 식당으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일본은행 구 오타루지점 금융자료관이나 오타루 베인 등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그대로 쓰는 역사적 건조물들이다.

 

오타루시는 이런 노력을 통해 오타루시 전체 공간의 통일성을 기하고 있다는 게 와타나베의 설명이었다.

 

유리공예를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타루 운하 공예관’은 오징어 눈두덩이 같은 독특한 돔 양식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공예관 지하로 내려가면 섭씨 1천도의 가스 가마와 녹아내릴 듯한 결석이 투명한 유리로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한다.

 

눈빛 축제의 백미는 눈길 걷기

 

<러브레터>의 둥글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와타나베는 <일 포스티노>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시 청사에 들어서자 ‘유키 아카리(눈빛)의 길’ 축제를 준비하는 시 공무원들과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오타루시 직원 니시모토 유스케(25)의 맑은 미소는 눈축제 때 밝혀질 스노 캔들만큼이나 빛났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보통 5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몰린다.

 

2월10일부터 19일까지 오타루 운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행사의 백미는 산책로와 가스등이 놓인 눈길을 걷는 것이다. 연꽃을 닮은, 운하 표면에 피어나는 얼음 균열인 ‘하스하 고오리’도 놓치기 힘든 광경이다.

 

스시의 나라 일본에서도 오타루 스시라고 하면 알아준다고 한다. 취재진도 초밥집 130개가 몰려 있는 ‘스시도오리’로 발길을 옮겼다.

 

 

 

 

    [이동진의 세계영화기행]러브레터

 

[조선일보 2006-02-07 13:47]    

 


새하얀 눈덮인 학교, 히로코 닮은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도망간다
풋사랑 같은 첫사랑 그 상처가 가장 깊다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

그런 눈(雪)은 처음이었다. 홋카이도의 삿포로를 떠난 밤기차가 오타루(小木尊)를 향해 달리는 동안, 눈은 세상의 질료(質料)였고 환경이었으며 리듬이었다.

 

비명 대신 기적소리를 남기며 눈의 나라로 빨려 들어간 기차가 소실점을 향해 두 줄 철로를 외로이 탈 때, 철길 좌우로 생겨나는 눈보라가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던 현실감을 지웠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눈과 수평으로 펼쳐지는 눈이 호수처럼 고인 눈과 만나는 하얀 밤은 몽롱했다.


 

110년 되었다는 전통 여관에 묵었더니 아침 8시에 주인 여자가 들어와 이불을 갠 뒤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한다. 방 한가운데에 차린 정갈한 식사를 하고 ‘러브 레터’의 촬영지인 오타루 시내를 걸었다.


 

눈과 물이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운 운하 주변을 산책하다 영화 속에 나왔던 유리 공방(工房)의 전망대에 올랐더니 비망록에 한국 관광객들이 적어놓은 구절이 적잖이 보였다.

 

“△△와 ◇◇가 처음 떠난 여행. 너무 좋다. 여기 오길 잘했어요”라고 쓴 남자의 메모 밑에 여자가 짧게 한 줄 덧붙였다. “△△씨, 사랑해요.” 사랑의 추억은 사라져도, 사랑의 흔적은 불멸한다.

오전의 오타루 우체국은 분주했다.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편지를 부친 뒤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던 후지이 이쓰키(女)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릴 듣고 고개를 돌린다.

 

부른 사람은 등반 사고로 죽은 애인 후지이 이쓰키(男)를 잊지 못해 그가 중학 시절 살았던 이곳까지 찾아온 히로코였다. 방금 스쳐지나간 사람이 동급생이었던 이쓰키(男)에 대한 추억을 자신에게 편지로 일일이 알려줬던 동명이인 이쓰키(女)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파 속에서 이쓰키(女)는 히로코를 알아보지 못한다.

‘러브 레터’에선 그렇게 환상인 듯 현실인 듯 모호한 장면들이 많았다. 눈 세상인 오타루에서 찍은 그 영화에선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겨울은 ‘환(幻)’의 계절이니까.

 

새로 내리는 눈이 이미 내린 눈 위에 켜켜이 몸을 부리며 일종의 나이테를 이루는 곳에선 삶이 좀더 꿈처럼 느껴질 테니까.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겨 쌓인 눈 사이로 낸 좁은 길 위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10여분 가자 아사리(朝理) 중학교가 나왔다. 극중 두 명의 이쓰키가 다녔던 학교였다. 40대 일본어 교사 이타바시 도우루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작은 교사(校舍) 곳곳을 둘러봤다.


 


촬영 장소였다는 2학년 B반에 들어가 이쓰키(男)의 교실 뒤쪽 의자에 앉아보니 내가 지나온 10대 시절과 영화 속 학교 생활이 연이어 떠오르며 겹쳐졌다. 정문 쪽으로 되돌아갈 때 다른 교사와 마주치자 영어로 대화하느라 이제껏 과묵했던 이타바시씨가 새삼 신기한 듯 들뜬 일본어로 외쳤다.

 

“러브 레터 때문에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야.”

현관에서 여학생들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까르르 웃으며 도망간다. 3학년 농구부원이라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어른에게 아이는 언제나 어려 보인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들도 ‘러브 레터’에서처럼 그들만의 진지한 사랑을 앓는다. 풋사랑이라고 웃어넘기지 말 것. 첫 상처가 가장 깊다.


 

오타루와 삿포로 중간쯤에 있는 제니바코 역 부근엔 극중 이쓰키(女)가 살았던 집이 있다. 사전에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주소만 들고 택시를 탔다. 때마침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근처에 도착했지만 엄청난 눈 때문에 차가 집 앞까지 갈 수 없어 200여 미터를 걸었다.

 

언덕 아래 골목 끝 그 집은 한눈에 극중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작품 속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정적 속 함박눈만 쌓여갔다. 눈(雪)은 눈(眼)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침묵이었다.

히로코가 눈 속에서 누워 있던 첫 장면을 찍은 덴구산(天狗山)은 단체로 스키장에 온 초등학생들로 붐볐다. 스노보드를 든 사람들에 섞여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랐다.

 

저 멀리 눈 덮인 시가지 전체와 바다를 눈 멀도록 내려다보자니 한 해의 시작과 끝이 모두 들어 있는 겨울은 ‘환(環)’의 계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계를 없애며 세상을 침묵에 잠기게 하는 몽환적인 눈 속에선 시작도 끝도 결국 서로 꼬리를 물고 끝없이 도는 시간의 환 위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다.

스키장에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러브 레터’는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남자와의 사랑을 떠올리는 두 여자의 추억을 다룬 영화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은 하늘의 신과 땅의 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타루의 겨울, 하늘과 땅 사이엔 온통 새하얀 눈이 시간을 덮고 있었다. 퍼붓는 눈 속에서 열정도 그리움도 꿈도 현실도 모두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케이블카가 덜컹 움직였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숨을 참은 채 죽은 듯 눈 속에 한참 누웠다가 간신히 숨을 토하며 일어나 산을 허위허위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히로코처럼.

 

(오타루,일본=이동진기자 [ djlee.chosun.com])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