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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섬 / 이생진
만재도에 가고 싶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했다
아니 만재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가
아예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가
만재도는 당신의 꿈속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
만재도에 갔다 온 사람도 쉬쉬했다
만재도를 숨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만재도에 갔다 왔으면서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
섬은 동경, 섬은 그리움이다.
공중에 떠돌던 아련함이 굳어져 물 위에 바위가 되고 섬이 됐다. 그 섬들 중 하나, 먼 바다 위에 혼자 외로이 떠서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를 감추고 있던 작고 예쁜 섬이 있다. 뭍에서 뱃길로 5시간을 내처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멀고 아득한 섬. 섬을 노래하는 이생진 시인이 10년을 별러서 찾았다는 만재도가 그 곳이다.
KTX가 달리고 새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금 쾌속선으로 5시간의 뱃길은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긴 여정일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거리로는 울릉도나 가거도가 뭍과 더 떨어져 있지만 시간으로는 만재도가 가장 멀다. 뱃길의 종점에 그 섬이 있다.
지난 초여름 신안군 흑산면의 홍도를 찾았을 때 일이다. ‘홍도 마케팅 팀장’이라는 명함을 건넨 연세 지긋한 홍도 이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역시 홍도만한 섬이 없습니다”라고 추켜세우자 ‘마케팅 팀장’의 뜻밖의 말씀. “남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만재도도 홍도 이상으로 아름다운 섬입니다.”
홍도에 견줄 아름다움을 품었으면서도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비의 섬. 그때부터 만재도란 이름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곤 그 섬에 가기를 여태 별렀고 또 머뭇거렸다. 솔직히 5시간이 넘는 뱃길, 파도가 성할 때는 갓나서 먹은 어머니의 젖까지 토해내게 한다는 배멀미의 고행이 두렵기도 했다.
핑계를 더한다면 이틀에 한번 짝수날에만 배가 뜨는 탓에 섬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막상 목포항까지 갔어도 당일 주의보가 발령되면 계획은 수포가 되고, 행여 섬에 들어갔어도 파도를 잘못 만나면 나흘이고 엿새고 나오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겨울연가’의 윤석호 감독이 사계절 시리즈의 완성인 ‘봄의 왈츠’에 만재도의 풍경을 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섬을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목포행 열차에 올랐다. 다행히 배는 순조롭게 닻을 올렸다.
바다는 봄안개로 자욱했다. 땅과 물은 아직 차가운데 봄볕은 따뜻해서 이렇게 두꺼운 안개 장막이 펼쳐진다. 안개 낀 봄바다는 조용했고 울렁임도 견딜만했다. 구름 같은 나른한 풍경 속으로 배는 스르르 빠져들었다. 흑산도를 지나 하태도, 가거도를 찍고, 멀미 보다 지루함이 갑갑해 더 견디기 힘들어질 때 마침내 망망대해 한가운데 덜렁 솟은 외로운 섬 만재도가 나타났다.
여객선을 댈 수 없어 바다 위에서 목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작은 섬. 이제껏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꺼려했던 은둔의 섬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원시의 자연과 때묻지 않은 삶을 그대로 품고 있는 땅. 길게 누운 섬자락엔 연한 푸르름이 충만했고, 섬 한복판에 다소곳이 낮게 들어선 마을은 아늑했다. 그토록 벼르고 별렀던 ‘봄의 섬’ 만재도가 내게 벅차게 다가왔다.
하늘에 있는 섬 / 이생진
이 비경을 나만 보여주기 위해
어젯밤 조물주가 새로 만든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어젯밤에 태어났다
손톱 사이에도 때가 끼지 않았다
비공개리에 공개된 섬
만재도
배에서 내려 찾아가면 없고
없어서 다시 배에 올라타면 나타나던 섬
십 년을 그짓하다 오늘에야 올라간 섬
만재도
그 섬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큰산 물생산 장바위산
나도 검은 염소가 되어
염소들 틈에 끼어 따라다녔다
그들은 내가 염소인 줄 알고 마음놓고 다녔다
이 섬은 내가 염소이길 바랬다
[한국일보 2006-03-16 18:27]

만재도(신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