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마시는 이야기들/세계茶 이모저모

차 (茶) ! 전쟁의 역사속을 걸어왔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4. 1. 11:59

 

 

    차 (茶) ! 전쟁의 역사속을 걸어왔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茶! 차문화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건강한 삶을 주는 녹차가 사랑받기 까지 차문와의 기원을 알아본다.


불교(佛敎)에 얽힌 전설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달마(達麻)를 기원으로 본다. 오랜 기간 행해오던 명상에 지친 달마가 더 이상 잠을 자지 않고 모든 욕망을 없애 달라는 기도를 하던 중에 졸음이 몰려왔다.

잠깐 동안을 모르고 졸았던 달마는 잠에서 깨어나서는 자신의 그런 나약함에 실망을 하게 되는데 앞으로 다시는 잠들지 않게 벌하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서 땅 속에 묻자, 이 것이 나중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각성효과가 있는 두 그루의 차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당송시대. 차를 즐겨마셨던 연회. ⓒ데일리안

창조신화와 얽힌 전설

지구가 창조되었을 당시 신의 존재이자 중국의 전설 속의 고대 삼황(삼황-복의, 신농, 황제) 의 한 사람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임금은 백성의 안민을 위해 직접 농사법을 가르치고 밀, 쌀, 수수. 콩 등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농업의 신 이였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끓인 물을 마시게 함으로서 백성들의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등 의학기술을 발명해내는 의학의 신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잠깐 취하고 있다가 심한 갈증을 느껴 물을 끓이게 되 는데 갑자기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물속에 떨어지게 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나뭇잎과 함께 물을 끓여보니 물맛이 너무 좋아서 그 후에도 계속 음용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신비한 음료를 생산해 내는 나무에 "차나무" 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그 후 5000년이 넘는 차의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과 사랑 을 한 몸에 받아 교역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반면 쟁탈전으로까지 이어져 몇몇 나라에 전쟁을 야기하는 구실을 주어 많은 폐단을 낳기도 한다.


차와 세계사를 바꾼 전쟁

17-8세기 유럽이 중국(中國)과 행하던 무역물품은 대부분 견직물, 차, 도자기 등이었는데 그 당시 동양의 사치품들이 유럽에 들어가면 신비한 문화로 변화되어 받아들여졌던 시기 이다.

18세기 말까지는 교역량이 비교적 많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해로무역은 마카오와 광동( 廣東)지역만을 허락한다는 중국 정부의 철저한 관리무역의 결과였다.

하지만 1793년 영국의 국왕 조지 3세는 제한된 무역항을 늘리기 위해 영국사절인 매카트니를 베이징(北京)에 파견하지만 중국의 건륭제(乾隆帝)의 답신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국의 완고한 무역조치도 19세기 초부터 변동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데 그 물품이 '아편' 이였다.

그동안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와의 옥양목 수입 금지 이후 동양에서 수입하는 주력상품을 모두 중국차로 대신 하면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차가 늘어남에 따라 그 결제수단으로 부득이 은(銀)을 지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차의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은이 부족해지는 현상까지 생기고 차의 많은 양이 밀수되는 상황에 처한다. 영국정부는 은의 대량유출과 밀수방지를 위해 차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조치를 취하면서 은을 대신할 수 있는 결제수단으로 선택한 게 아편 이였다. 동인도 회사는 1773년에 아편 전매권을 장악하게 되자 대량으로 생산 판매를 하기에 이른다.
 
◇ 명청시대, 차무역으로 외국인들의 내방 ⓒ 데일리안


17세기 중엽 네델란드를 통해 소량으로 아편이 중국 푸지엔성(福建省)에 전해진 후 영국이 18세기 말 인도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중국에 판매하게 되자 영국 동인도 회사는 다시 중국차를 매입하는 구조를 반복하게 된다.
 
아편이 대량 유입되면서 많은 폐단을 낳게 되자 중국 청나라 때 황실에서 몇 번 칙령을 내리기도 하고 아편금지 캠페인까지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837년 중국 정부는 아편단속을 강경하게 시행하여 중국인을 체포하고 아편을 몰수하는 노력 끝에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영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결국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름하여 "아편전쟁"(1839-42년)이다.
전쟁 결과 영국에 패한 청조는 결과적으로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되고 많은 배상금 지불에 광둥(廣東)이외에 5개의 항구(샤먼(厦門), 푸저우(福州), 닝보(寧波), 상하이(上海) )를 개항한다는 내용의 난징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영국은 차를 필요로 한 강한 욕망으로 인해 은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결국 아편으로 중국과 맞서서 아편전쟁을 일으켜 아주 유리한 조항을 만들어 난징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중국에서 보면 세계에 차를 알릴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모두가 차(茶)로 인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었다.

 

 



차의 종류

◇ 티백으로 마시는 차. ⓒ 데일리안

차나무는 상록수로 비교적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녹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그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백차. 흑차로 나뉜다. 어떤 차를 제조하든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사용한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며, 대개 5월 ·7월 ·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5월에 딴 것이 가장 좋은 차가 된다.

◇ 국내의 녹차다원 ⓒ 데일리안

차나무는 상록수로 비교적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녹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딴 잎을 즉시 가열하여 산화효소를 파괴시켜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수분을 증발시켜 잎을 흐늘흐늘하게 말기 좋은 상태로 말린다.

예전에는 사람이 가마솥에서 직접 잎을 손으로 비벼 말렸다. 그 후 가열을 계속하여 대부분의 수분을 제거하여 어느 정도 바삭바삭하게 만든다. 근래에 와서는 증열기 ·조유기(粗揉機) ·유염기(揉捻機) ·재건기(再乾機) ·정유기(精揉機) ·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한다./ 김선영 기자

[데일리안 2006-03-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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