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중국여행

태산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6. 20. 18:14

 

          태산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다

대규모의 문화유적을 소장한 중국 산둥(山東)성 지방이 최근 한국 여행객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경제 기반시설이 조성되고 대형 물류센터가 들어서기 시작한 르자오(日照)와 린이(臨沂)시, 취푸(曲阜)는 그동안 조선족과 한국 보따리 상인들이 생계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에 머물렀다.

 

그러던 곳이 역사적 향취 풍부한 관광자원과 교과서에서나 접하던 중국의 역사적 인물과 문화유물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부상한 것이다.

 

르자오는 모래사장의 길이만 45㎞에 달하는 만평구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해변도시로 생태공원 등 풍부한 관광자원 덕분에 휴가철을 맞은 중국인이 꽤 찾는다. 우수한 시설을 갖춘 국제 규격의 요트경기장이 있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요트경기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1,700년 만에 잠깬 ‘손빈병법’

 

린이시는 삼국지에 나오는 책략가 제갈량과 대서예가 왕희지의 고향이다. 왕희지가 거처하던 집에 들러 그의 행적을 더듬으며 서예를 감상하면 색다른 감흥에 취할 수 있다.

 

린이시의 자랑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인췌산(銀雀山)의 죽간(竹簡, 댓가지에 쓴 책) 박물관. 이곳에는 1972년 4월 전한시대 1·2호 고분에서 출토된 엄청난 양의 죽간이 전시되어 있다.

 

죽간은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손빈병법(孫兵法)의 저자가 ‘손자’ 외에 ‘손빈’이라는 다른 인물이 있음을 밝혀 1,700년에 걸친 수수께끼를 풀어준 중국 고고학계의 10대 발견 중 하나다. 이때 발견된 육도(六韜) 등 고서적과 무제(武帝) 때의 달력(기원전 134년)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공자의 정신이 이어지는 취푸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으로 이루어진 취푸성엔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세의 스승’ 공자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대성전

공부는 공자의 직계 자손들이 취푸를 다스리던 관청이자 거주지로 왕궁 못지않은 위용을 자랑한다.

 

역대 황제들이 공자가(家)를 ‘천하제일 가문’으로 보호하기 위해 증축과 재건축을 거듭한 덕분에 자금성에 버금갈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본청인 대성전(大成殿)은 자금성처럼 황금기와로 덮여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가족묘지인 공림은 공씨 후손들만 묻힐 수 있는 ‘성역’이다. 면적이 20ha에 달하는 묘역 안에는 2만그루가 넘는 고목이 울창한 산림을 이룬다. 한나라 때부터 수차례 확장 보수를 거듭한 공림에는 3,600여개 비석과 40여개가 넘는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문화혁명 기간 중 홍위병의 습격을 피하지 못한 상당수 비석과 유물이 상처 입은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아 아쉬움을 남긴다.

 

취푸의 또다른 볼거리 하나. 바로 야외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자쇼’다. 공자의 행적과 공덕을 기리는 일대기가 서커스와 악극이 혼합된 형태로 선보인다. 출연인원이 300명에 달하며 조명과 무대시설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중국이 공자의 사상으로 전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다소 엉뚱한 주제를 내세운 이 작품에선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공자의 이름으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한다. 사회주의의 어설픈 상혼에 씁쓸한 뒷맛이 남는 공연이다.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주유천하를 한 공자가 오늘에 살아 이 혼탁한 쇼를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취푸에선 타이산 관광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시인묵객, 영웅호걸이 노래한 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양사언), ‘타이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인다’(공자), ‘타이산에 오르면 다른 산들이 보이지 않는다’(두보) 등.

 

그러나 이들의 노래와 달리 실제 높이는 해발 1,545m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의 오악(五岳) 중 으뜸으로 대접받는 것은 아마도 도교의 성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인 옥황봉 아래엔 도교의 성지인 벽하사(碧霞祠)를 비롯해 57개에 달하는 사찰이 산재해 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까지 간 후 걸어서 30분이면 정상에 도달한다.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려면 7,412개의 돌계단을 오르는 것도 좋다. 3시간 정도 걸린다.

공자쇼

》길잡이

황해훼리를 이용, 평택항을 출발하는 4박5일 상품이 나와 있다. 계명국제교류원(02-736-0110)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수학여행 특별상품을 내놓았다. 7월29일부터 8월19일까지 4차례에 걸쳐 실시되며 매주 토요일 출발한다.

〈글·사진 고금석기자〉

경향신문 2006-06-20 15:33]    

 

 

 

 

태산의 역사, 노구의 어깨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6-19 12:14]    

 

[오마이뉴스 윤영옥 기자]
▲ 태산에 오르는 곳곳, 넓다란 바위에는 모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2006 윤영옥
ⓒ2006 윤영옥
중천문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중천문 근처에는 식당과 상점과 호텔이 많습니다. 이제 와서 위로를 하려는 셈인지 꽤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이 평지 덕분에 조금 기고만장해졌나 봅니다. "점심 먹고 갈까요"라는 조 교수님의 제안에 "아뇨, 그냥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먹죠 뭐"라는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태산님은 저의 이 불손함을 조금도 용서치 않으셨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엄청난 계단을 다시 제 눈앞에 펼쳐 보이셨습니다. 바로 기가 죽어 대답을 수정했습니다. "조 교수님, 점심 먹고 가야겠어요."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관광지의 음식이란 게 다 그러한지, 정말 무성의해 보이는 국수 한 그릇이 나옵니다. 뜨거운 맹물에 면만 말아놓은 것 같은 국수입니다.

정말 조금만 덜 힘들었더라면, 정말 조금만 덜 배고팠더라면 먹지 못했을 겁니다. 간신히 배를 채우고 계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태산에 오르면서 약간 실망스러웠던 점은, 산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수려한 한국의 산세에 익숙한 제게 태산은 크기만 하지 황량한 느낌입니다.

만약 한국에 이런 산이 있었다면 별로 인기 없는 산이었을 텐데, 중국인들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먹고 봐야 제맛? 알고 봐야 제멋?

▲ 조그만 매점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2006 윤영옥
ⓒ2006 윤영옥
여기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가 하나 드러납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을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경관보다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더 중시한답니다. 그래서 장가계(張家界)처럼 절경을 자랑하는 곳은 중국인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에게 더 인기가 많다지요.

태산은 중국의 황제들이 봉선 의식을 지냈던 곳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신앙입니다. 태산에 오르면 영생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어 일생 동안 태산에 한번 오르는 것이 중국인들의 소원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제 눈에는 별로 멋없어 보이는 이 산에 중국인들이 바글바글한 것입니다.

태산을 오르는 길 양 옆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 글씨의 바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저는 그 바위들을 보고 '인위적인 힘을 가해 자연 경관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바위에 글을 새기는 그 행위도 태산에 대한 신앙의 발현이었겠지요.

그 바위 글씨들을 구경하면서 걷는다고 해도 힘든 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럴 땐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먹어야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습니까.

그 식후경이 보통은 아무리 좋은 경치도 배가 고프면 소용없으니 먹고 나서 보아야 한다는 '식후경(食後景)'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그게 아니라 아무리 좋은 경치도 모르고 보면 소용없으니 알고 나서 보아야 한다는 '식후경(識後景)'이었다는 얘기도 있지요.

둘 다 여행에 있어서는 매우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이제는 '금강산도 식식후경(識食後景)'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일단 여기에서는 '식후경(食後景)'이라는 말을 따라 태산의 먹거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산에 오르는 길 곳곳에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간이매점들을 기점으로 쉬었다 가곤 했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드니까요.

그러나 여기에서 파는 것들은 식도락을 즐기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안전한(?) 등산을 위한 실용적인 것들입니다. 수분 섭취에 도움을 주는 오이, 토마토 등의 야채와 수박, 배 같은 과일들을 주로 팝니다.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매점에 도착할 때마다 다른 종류의 것들을 먹으며 올라가는 것도 태산 등정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한 방법이지요.

태산의 별미 소총전병... 파전+크레페

▲ 수박, 복숭아, 오이, 배.. 입맛대로 고르세요. ⓒ2006 윤영옥
ⓒ2006 윤영옥
그것 말고 태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이한 먹을거리는 '소총전병(小蔥煎餠)'이라고 부르는 밀가루부침입니다.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둥글고 널따란 철판을 뜨겁게 달군 뒤에, 그 위에 묽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퍼 올립니다.

그리고 재빨리 철판을 빙빙 돌리며 납작한 나무틀로 반죽을 얇게 펴서 익힙니다. 그러면 정말 종잇장처럼 얇고 바삭하게 되는데 그 위에 계란을 하나 깨뜨려 같은 방법으로 얇게 펴서 익힙니다.

갈색의 양념의 바른 뒤에, 마지막 하이라이트! '실파'를 하나 끼워서 돌돌 맙니다. '소총'이 바로 실파라는 뜻이지요.

서양의 크레페와 우리나라 파전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합쳐놓은 것 같은,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맛없는 이 전병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먹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이하다고 한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전병이 왜 태산의 대표 먹을거리가 되었느냐는 점입니다. 태산에서 계란이 주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실파의 주산지가 태산인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파를 넣어 만든 태산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적힌 영어 표지판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요.

물이나 맥주, 탄산음료 등 평범한 음료도 팔기는 하지만 정말 특이한 것은 그 음료수들을 실온상태 그대로 판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따뜻한 차를 즐긴다고는 해도 이 더운 날, 뜨거운 땡볕 아래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뜨뜻미지근한 음료수를 어떻게 마시는지.

저희도 정말 목이 마르고 더웠지만 차마 그 음료수에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뜨거운 맥주를 병째 들이켜고, 뜨거운 콜라를 페트병으로 들고 다니며 마시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했답니다.

▲ 태산의 대표적인 음식, 소총전병 ⓒ2006 윤영옥
ⓒ2006 윤영옥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따뜻한 음료수를 먹는 것보다 더 놀라운 건, 내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소에도 중국인들이 대체로 옷을 두껍게 많이 껴입고 다닌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북경이 겨울에는 워낙 추우니까 그런 거야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제가 태산에 간 날은 정말 한여름 날씨였습니다. 8박 9일의 여행기간 동안 가장 더웠던 날이었지요. 반팔 티셔츠를 입고도 더위를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내복이라니요. 그 사람들도 물론 사람이기에 더위는 느끼겠지요.

계단에 걸터앉아 바짓단을 걷고 있기는 했지만, 왜 내복은 안 걷고 있는지. 저라면 화장실 가서 당장 벗어버렸을 겁니다.

황당한 건 하의는 내복까지 챙겨 입을 정도로 보수적이면서 상의는 왜 이렇게 개방적인 겁니까. 청년이건 아저씨건 할아버지건 너나없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바람에 심히 괴로웠습니다.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이 광경을 보고 놀랄 외국인들을 걱정하여, 웃통을 벗지 말자고 국가적인 캠페인까지 했다는데 캠페인의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나 보네요.

노쇠한 몸으로 무거운 짐 지고 태산을 오르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태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중국인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바로 이들입니다. 태산 위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

이들은 장대를 어깨에 메고 그 장대 양끝에 물건을 매달아 산 위로 나릅니다. 온통 계단이니 수레를 이용할 수도 없지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 몸으로 오르기 힘든 이 길을, 딱 한 번만 오르는 것도 힘든 이 길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도 오르기 힘든 이 길을, 그들은 노쇠한 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같이 오르내립니다.

제가 쉬는 사이, 짐꾼 아저씨 한 분이 제 앞에 앉아 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어깨를 보았지요. 까맣게 죽어버린 딱딱하게 굳은 피부는 이미 사람의 살이 아닙니다. 그분이 살아온 생의 흔적이며 노동의 역사입니다.

저보다 나중에 앉아 쉬셨는데 저보다 먼저 일어나 다시 짐을 메고 산을 오르십니다. 걷어 올린 바짓단 아래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종아리는 이미 사람의 근육이 아닙니다. 생을 향한 치열한 의지이며 강인한 생명력입니다.

삶이란 이렇게 슬프고도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제남, 태안, 곡부, 청도를 여행한 발자국입니다.

-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체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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