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필리핀

'동양의 캘리포니아' 수비크, 한번 묵어볼까

향기男 피스톨金 2006. 9. 28. 22:27

 

                 '동양의 캘리포니아'

 

           필리핀 수비크, 한번 묵어볼까

 

 

뜨거운 태양과 백사장, 비키니와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 그리고 즐거운 밤의 여정. 마마스 & 파파스의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 선율 속에 꿈틀거리는 장면들이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내내 울려퍼지던 이 노래는 현실의 고뇌와 걱정에서 벗어나 장밋빛 낙원과 휴식으로 안내한다. '동양의 캘리포니아'라고 불리는 필리핀 수비크(Subic)에서도 그런 꿈을 꾸어보았다.

 

적도에 가까운 열대의 나라답게 필리핀에 발을 디딘 첫날 밤기온은 28℃를 넘어서고 있었다. 끈적거리며 목덜미를 엄습해오는 습기는 다시 한 번 몸서리치게 무더웠던 지난 열대야를 되뇌게 한다.

 

거대한 냉동창고 같은 호텔의 에어컨 시설마저 없었다면 필리핀의 아름다움과 여행의 즐거움은 무더위라는 단어 뒤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화창한 여름날? 항상 무더운 이곳에서 여름이라는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주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화창하고 더운 날씨 속에서 일행은 마닐라 페리항에서 배에 올랐다.

 

잔잔한 물살을 헤치고 1시간 가량 달리던 페리가 수비크를 향해가는 중간거점인 오리온(Orion) 항에 도착한 후 일행은 다시 버스로 갈아탔다.

 

길가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나무들은 열대 덩굴 식물에 목도리를 두른 듯 치렁치렁 휘휘 감겨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반인반목(半人半木)의 '엔트'족 같다.

 

천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성큼성큼 걸어나와 버스를 통째로 집어들 것만 같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을들은 허름해 보인다. 상가와 가옥의 양철지붕과 문은 까맣게 녹이 슬고 나무틀과 벽면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어 오래됐음을 짐작케 한다.

 

필리핀의 첫인상을 가늠해보는 동안 버스는 벌써 수비크의 정문(Main Gate)을 통과했다. 필리핀인들은 허가 없이 정문을 드나들 수 없다는 'SBMA(Subic Bay Metropolitan Authority, 수비크만 특구)'답게 건물과 거리 풍경이 단정하고 깨끗하다.

 

 1992년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며 두껍게 깔아놓았다는 화산재는 한 줌 볼 수가 없다. 거리의 카페와 바는 미 해군본부가 오랫동안 주둔했던 탓인지 아메리칸 스타일로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수비크만은 16세기 스페인이 점령했던 곳이다. 아직도 수비크 시내 여기저기에는 스페인풍을 간직한 오래된 석조문들이 보인다. 19세기 들어 미군이 이곳을 점령한 이후 화산 폭발 직전까지 미국의 최대 해외 해군본부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수비크의 최고급 호텔이라는 리젠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일행은 다시 페리에 올랐다. '그란데 아일랜드 리조트(Grande Island Resort)'로 향해가는 길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지만 후텁지근한 날씨는 여전히 몸을 끈적이게 한다.

 

페리가 육지에서 멀어지며 수비크만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평평한 육지에는 붉은 지붕의 건물들과 고요한 항만이 자리하고 있다. 바다에는 요트가 떠다니며 한가한 휴양지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내 페리는 반대편의 그란데 아일랜드 쪽에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공기는 상쾌해지고 아래를 보니 물빛도 달라져 있다. 수비크만 쪽이 짙은 초록빛이라면 이곳은 옅은 푸른빛에 가깝다.

 

15분간의 거리를 두고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백사장이 길게 펼쳐진 뒤로는 야자수 아래 샬레들이 들어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리조트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이국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야자수가 그려진 주황색 상의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필리핀인 3명이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환영의 노래를 부르며 휴양지의 느낌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연주자들을 뒤로 하고 리조트 안으로 들어서자 열대의 숲이 둥그렇게 리조트를 둘러싼 한가운데의 수영장과 그 둘레를 짚으로 엮은 파라솔들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파라솔 아래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필리핀인 일가족이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하다.

 

넓게 조성된 인공 파도수영장은 바다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호텔 야외 수영장의 고급스러움과 열대 해변의 평화로운 이미지를 함께 보여주는 듯했다. 물가의 그늘에 누워 책을 펴면 한 줄을 읽기도 전에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의 나락에라도 빠져들 것만 같다.

 

파도 풀의 오른쪽으로는 샬레가 들어서 있다. 지붕에는 짚을 얹고 벽면은 흰색으로 색칠한 샬레는 주변을 둘러싼 잔디, 느티나무, 야자수의 초록빛과 푸른 하늘빛의 대비를 이루며 리조트의 운치를 더한다.

 

샬레 안쪽으로 들어서자 수비크만을 향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며 가슴을 확 틔워준다. 베란다 벤치에 앉아 차가운 '산 미구엘' 한 모금을 머금으면 천국 같은 휴식이 될 것 같다.

 

산책길을 따라 조성된 하늘 높이 솟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부드러운 흙길은 발걸음마저 가볍게 한다.

 

'마야마야'라는 물고기를 비롯해 오징어, 새우 등 해산물과 열대 과일을 재료로 한 식사메뉴는 군침을 돌게 하고 스쿠버다이빙,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등 해양스포츠는 리조트의 낭만과 즐거움을 한 단계 높여주고 있었다.

 

섬 안쪽으로는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커다란 대포들이 5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남겨져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대변해 준다.

 

Tip_ 여행정보


수비크는 1996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열렸던 곳이자 국제항공우편업체인 페덱스(FeDex)의 아시아 본부가 있는 곳이다. 수비크에서는 미 해군본부가 사용했던 건물들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지가 차로 10-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지리

 

필리핀은 북위 4~21°의 열대권에 위치한 나라로 7천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 이름 없는 암초나 산호초이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880여 개이다. 수비크는 수도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섬의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태평양의 낭만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이다.

 

▶기후

 

적도와 가까운 열대권에 위치, 연교차가 적고 연평균 기온은 27℃로 습하고 무덥다. 우기는 9~10월 2개월간 이어진다. 여행할 때는 여름옷이 좋으나 우기의 밤중에는 얇은 긴팔 옷이 필요할 때도 있다.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통화

페소화를 사용하며 1페소는 한화 20원 정도이다.

 

▶둘러볼 곳

>>트리보아(Triboa Bay) 컨트리클럽

 

APEC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로 현재는 관광객들의 여행 코스로 공개되어 있다. 본관 건물에서는 정상회담 당시 주방장이 선보이는 메뉴를 맛볼 수 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향기 좋은 커피도 즐길 수 있다. 당시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빌라는 일반인에게 임대되어 있다.

 

>>제스트(JEST) 캠프

미군들의 캠프였던 곳을 개조해 정글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군에게 밀림에서의 생존법을 가르쳤던 아에타족이 대나무와 칼을 이용해 숟가락, 밥그릇, 도시락 등 생활용품을 만들고 대나무에서 레몬맛 나는 수액을 뽑아내는 시범을 보인다. 수십여 종의 열대 나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비정원 및 전시관, 수비크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이곳에 있다.

 

>>요트클럽(Yacht Club)

수비크만 요트클럽은 필리핀 최고 부자들의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다. 요트클럽에 들어서면 수비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들의 아름다움으로 세계 3대 미항이 부럽지 않은 곳이 된다.

 

침실, 화장실, 냉장고 등이 갖춰진 호화요트를 타고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즐기는 요트크루즈는 수비크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아름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빅 사파리(Zoobic Safari)

미군의 벙커를 동물원으로 개조한 곳으로 호랑이를 비롯한 타조, 뱀, 악어 등의 동물들이 있다. 호랑이 사파리는 가장 스릴 있는 경험으로 호랑이가 살아있는 닭을 공격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

 

 

 

                                              뉴에이지 곡
                   Richard Abel - Le Lac De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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