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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에 앙코르 와트를 방문하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4. 22:08

 

       꼭두새벽에 앙코르 와트를 방문하다

▲ 앙코르 와트 중앙탑 너머로 동이 터오는 모습.
ⓒ2007 서부원
새벽 5시 30분 시엠립,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 같았으면 환한 가로등 불빛에 분주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북적일 시간인데도 전기가 귀한 탓인지 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빛만 가득한 채 차분합니다. 꼭두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난 까닭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랄 수 있는 앙코르 와트를 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 국기의 한 가운데에 그려질 만큼 이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조금 과장이 섞인 것일 테지만 혹자는 앙코르 와트가 캄보디아 재정 수입의 절반을 벌어들인다고 말하기도 하고, 거의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 유적의 위대함으로 인해 현재의 크메르 민족은 과거에 비해 외려 퇴보한 것이라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앙코르 와트는 조금 과하게 대접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내로라는 문화재이긴 하지만, 그것은 앙코르 와트 주변의 모든 유적군(群)을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앙코르 와트는 개별 유적임과 동시에 주변 유적군의 대표 명사격으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 정문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 원경. 앙코르 와트는 서향을 하고 있다.
ⓒ2007 서부원
앙코르 와트는 웅장한 규모도 그렇지만,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위대한 종교적 예술품입니다. 또,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시대쯤인 10세기 전후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크메르 제국의 영화로웠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벅차도록 가슴 설레는 것도, 달콤한 새벽잠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가로등도 없는 시엠립 시내를 벗어나 앙코르 와트의 입구에 들어서자 이내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요란합니다. 앙코르 와트는 동트기 전 새벽에 와야 제격이라더니, 관광객들과 그들에게 기념품을 팔기 위해 몰려든 상인들이 엉켜 북새통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이곳에서 인파를 피해 한적함(?)을 즐기고자 한다면 우기(5월~10월)의 장대비가 퍼붓는 어느 날에나 찾아와야 한답니다.

성곽 둘레의 해자(垓字) 같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널찍하고 긴 돌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1층 회랑에 들어서게 됩니다. 훼손된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곳에서는 성물(聖物)인 머리 일곱 달린 뱀(나가)을 조각한 돌다리의 난간이 인상적입니다. 군데군데 동그란 홈들이 불규칙적으로 패어 있으며, 뱀의 머리들이 잘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 등을 보면 이곳 역시 험난했던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피해가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 부조로 머리 일곱 달린 뱀(나가)이 그려진 1층 회랑의 벽면 모습.
ⓒ2007 서부원

▲ 2층 회랑 기둥 곳곳에 고대 크메르 문자가 새겨진 기둥이 남아있다.
ⓒ2007 서부원
알싸한 새벽 공기를 쐬며 돌다리를 두드리듯 건너다보면 왜 이곳을 동트기 전 새벽녘에 찾으라는 것인지 알게 됩니다. 돌다리 왼편으로 족히 100여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각기 카메라를 세워두고 앙코르 와트에 아침 해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앙코르 와트는 여느 것과는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은 톤레삽 호수의 석양만큼이나 아름다운 광경인 탓에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웬만한 사진첩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여느 곳처럼 '캄보디아 8경' 같은 게 있다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 풍광입니다. 가운데 우뚝 선 탑들 사이에 여명이 걸리니 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사람들 탄성 소리에 묻혀버립니다.

▲ 1층 회랑의 천정에는 연꽃 문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어, 불교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07 서부원
1층 회랑에 들어섭니다. 사실 앙코르 와트 여행의 백미는 단연 돌로 된 정교한 회랑과 그 벽면에 새겨진 수많은 벽화와 문양들입니다. 힌두교를 구현한 종교 건축물인 탓에 웬만한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지만, 아무 말 없는 그것들과 차분하게 대면하다보면 낯익음과 낯섦이 교차해 가며 눈을 즐겁게 합니다.

앙코르 와트에서 아침을 맞으며 여유를 갖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살피자면 반드시 손전등을 지니고 가야 합니다. 해가 들지 않는 천정과 안쪽 벽면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벽, 천정, 기둥 곳곳에 빈 틈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히 수놓아진 그림과 문양은 그저 값싼 카메라에 담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1층 회랑의 사방 벽면에는 크메르 제국의 신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벽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역사 교과서와 같은 존재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훑어보듯 돌아보아도 족히 1시간은 걸리는 방대한 '4단 병풍식' 유물입니다.

▲ 2층 회랑 옆 널브러진 채 방치되어 있는 석재들 중 일부.
ⓒ2007 서부원

▲ 신의 영역, 3층 회랑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두 손 두 발을 다 써야 오를 수 있다.
ⓒ2007 서부원
한 바퀴를 돌아 2층 회랑에 오르면 이곳저곳에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는 돌무더기와 만나게 됩니다. 세월의 더께라기보다는 후세에 의해 파괴된 흔적에 가깝습니다. 몇 군데는 울타리를 친 채 복원 공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석재들은 아예 방치된 채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회랑의 안쪽에도 머리가 잘려나간 조상(彫像)들과, 무언가에 의해 심하게 긁혀진 벽면과 부러진 돌창살 등 파괴의 흔적은 또렷합니다. 그럼에도 화려한 압사라(무희)상과 고대 크메르 문자들이 벽과 기둥 곳곳에 남아 앙코르 와트가 현재와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제 신의 영역이라는 3층 회랑에 오를 차례입니다. 막상 오르려니 계단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위험을 알리는 생뚱맞은 '경고' 안내판이 길을 막아섭니다. 입구란 것이 웬만한 사람들은 아예 오를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족히 70도 경사는 돼 보이는 성벽, 그 자체입니다. 두 손 두 발을 써서 기어올라야만 닿을 수 있도록 한 신의 배려(?)입니다.

▲ 앙코르 와트 입구에 수문장처럼 곧게 뻗은 채 선 '키다리' 야자수.
ⓒ2007 서부원
60미터가 넘는 중앙탑을 에워싼 회랑의 모서리에 네 개의 탑을 세워둔 이곳은 앙코르 와트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궁궐처럼 화려한 건물들이 이곳을 감싼 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면 탑 높이의 키 큰 나무와 울창한 숲이 덮칠 듯 펼쳐져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이곳을 뒤덮고 있었을 밀림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그토록 가깝습니다.

사실 그들에 의해 발견되고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경외의 공간이었습니다. 누구든 함부로 들어오면 신의 저주가 따랐고, 그 '살벌한' 이미지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신앙이자 삶의 일부가 되어왔습니다. 이제는 과연 이곳이 얼마 전까지 밀림에 덮여 있었을까 싶을 만큼 찾아드는 관광객의 등쌀에 이곳저곳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그렇고 그런 관광지가 돼버렸습니다.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한 벽안의 중년 여성이 회랑의 기둥에 기댄 채 명상을 하듯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깨에 카메라만 둘러메지 않았다면 성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요란스럽게 사진 찍기 바쁜 우리나라 관광객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과연 무슨 내용일까 괜히 궁금해졌습니다.

▲ 1층 회랑의 기둥에 기댄 채 명상하듯 책을 읽고 있는 벽안의 여성 관광객이 낯설었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2007 서부원
앙코르 와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발굴 중이고, 연구 중이고, 복원 중이지만 이미 밝혀진 것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관련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화적, 역사적 상상력이 묻혀있는 앙코르 와트의 신비를 드러내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릴없이 기둥에 기댄 채 책 읽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앙코르 와트에 숨어있는 보물을 캐내려는 진지한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녀를 통해 앙코르 와트를 '친견하려는' 관광객들이라면 시간에 쫓기는 않는 여유로움과 보이는 것을 훌쩍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어선 정문을 나오려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걸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언덕 사원'인 프놈바켕을 지나 크메르 제국의 왕궁이었던 앙코르 톰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앙코르 와트는 그저 수많은 앙코르 유적군을 찾아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만나 '첫인사'를 나눈 것일지도 모릅니다. 넋 놓고 감동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미입니다.

덧붙이는 글
앙코르 유적군 관람권은 매 유적지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서 일자별로 일괄 구입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당일만 유효한 관람권은 20달러, 3일 동안 여행하려면 40달러짜리 관람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다 그렇다고 말할 순 없어도 이곳을 찾는 다른 나라(특히 서양)의 관광객들은 주로 ‘3일권’을 끊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일권’이 대부분입니다. 단지 우리에 비해 거리상 훨씬 멀고 찾을 기회가 적어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사실 앙코르 유적군은 하루, 이틀에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시엠립에 한 달 넘게 머무르면서 둘러봤는데도 아직 다 못 봤다고 할 정도입니다.
‘언제 또 와 보겠느냐’며 그저 ‘다녀왔다’는 것에 의미를 둔 채 사진 찍기에 바쁜 우리나라 사람들(특히 단체 관광객)의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본적이랄 수 있는 이러한 관광 정보조차 제공해주지 못하는 여행사들의 책임이 더 커 보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7-02-03 12:49]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