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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호수 위 신의 궁전에서 인간의 한계를

향기男 피스톨金 2006. 8. 15. 15:35

 

             캄보디아,앙코르와트,

 

             호수 위 신의 궁전에서

 

             인간의 한계를 엿보다

 
▲ 앙코르 유적지의 백미 앙코르와트 사진입니다.
ⓒ2006 김강임
씨엠립에서 앙코르유적지 근처를 달리는 소형버스는 마치 포장되지 않은 시골버스를 탄 느낌이랄까.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뒷좌석에서는 "아이쿠, 엉덩이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앙코르 유적지의 도로 실정은 곧 캄보디아 도로 사정을 증명해준다.

▲ 인간계와 천상계를 가르는 앙코르와트의 해자입니다. 용도는 군사와 농업용수로 쓰여집니다.
ⓒ2006 김강임
타프롬의 거무튀튀한 돌 사원을 빠져 나와 앙코르와트로 달려가는 소형버스 차창 가에 인공호수가 펼쳐졌다. 30도 이상 달아오른 씨엠립에서 호수를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인간과 신을 가르는 인공호수도 알고 보면 그리 시원한 역사를 간직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갈까

▲ 탑문에 서면 나가신이 마중나와 있지요
ⓒ2006 김강임
앙코르 유적 백미라 불려지는 앙코르와트 차량 대기장에서 가이드는 당시 크메르 왕국의 신화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유난히 '신이 많은 나라' 앙코르, 힌두교를 섬겼던 그들만의 종교 때문인지 왕의 경지는 곧 신의 경지로 통한다. 비슈누 신을 비롯하여 압살라, 드바라팔라, 데바타. 뱀 신, 원숭이 신, 기억하기도 어려운 신들의 이야기는 종교와 역사, 신화를 접목시킨다고나 할까.

이를 증명하듯, 앙코르와트의 해자테라스에 7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신(뱀신)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사찰 입구에서 '귀신의 왕' 사천왕의 모습을 본 것처럼, 뱀신의 형상을 보니 죄지은 사람마냥 몸이 움츠려 진다. 해자를 사이에 두고 걷는 통로에서부터 드디어 12세기 역사는 시작되었다.

▲ 시루떡 쌓아올린 12세기 역사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2006 김강임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문은 서문 뿐, 이곳에서 서문은 죽음, 곧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천년 전, 크메르왕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의 행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은 '절대군주의 무덤'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이라도 하듯 탑문을 지나 불가사의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라보는 위치마다 다르게 보이는 탑

▲ 5개의 탑은 3개(입구에서)로도 보이고 10개(연못에 비춰)로도 보입니다.
ⓒ2006 김강임
탑문 앞에서 본 탑은 3개, 그러나 장서각(도서관) 뒤에서 보는 앙코르와트의 탑은 5개로 변했다.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랄까. 일상의 이치도 정면에서 보는 것과 그 이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과 같다.

탑문에서 바라본 3개의 탑이 연못 앞에서 보면 5개로 변하는 모습에서 착각의 여유를 느껴보기도 한다. 하지만 5개의 탑은 때로는 10개의 탑으로 투영되는 모습을 볼 수 도 있다. 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다름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5개의 탑 그림자를 띄워 놓은 연못에서 더위를 식히는 순간, 시루떡을 쌓아올린 것 같은 앙코르와트 알몸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인들, 신화를 즐기다

▲ 3층 천상계, 멀리 계단을 타고 오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2006 김강임
희망과 탄생, 전쟁과 죽음, 인간의 세상, 그리고 천상의 세계가 한곳에 집중한 앙코르와트. 사원 도시를 이룬 회색빛 사암 돌덩어리들은 씨엠립의 날씨처럼 우중충 했다.

▲ 3층에서 본 앙코르와트 풍경입니다.
ⓒ2006 김강임
30년이 넘게 수리야바르만 2세가 축조한 신의신전, 해자 건너에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왕의 죽음이 곧 신의 화신이 되고, 그 신은 악을 몰아내는 정의의 화신으로 탄생한다는데, 현대인들은 신화를 즐기고만 있다.

▲ 중앙탑에는 신의 궁전을 의미하듯, 양각 부조(신을 묘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2006 김강임
지상 60m가 넘는 탑 속에 박혀 있는 압살라와 데바타의 유희는 감탄사를 늘어놓기에는 너무나 숙연하다. 4개의 탑과 중앙 탑에 그려 넣은 양각의 부조는 극치 그 자체다. 하지만 왕이 비슈누에게 바친 사원 안에서 그 극치를 예찬한다는 것은 당시 백성들의 희노애락을 외면하는 처사 같다. 그렇기에 넓은 해자에 담긴 호수의 물이 농업용수이길 바랄 뿐이다.

불사조는 사원을 축조한 인간의 한계

▲ 사원안에는 압살라 춤을 추는 캄보디아 인이 있습니다. 1달러를 주면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습니다.
ⓒ2006 김강임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그곳에도 선신과 악신이 있었다. 몸통이 잘린 석조상, 귀가 잘린 석조상. 이들을 대하는 여행자들은 "신이시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말한다.

▲ 원통형 구조를 이룬 2층 창입니다.
ⓒ2006 김강임
원통 구조를 깎아 만든 2층의 창문, 고개를 쳐들고 아스라이 보이는 중앙 탑 속에서 춤추는 압살라, 분명 그 속에는 인간의 무한한 한계가 숨어 있었다.

불사조를 꿈 꾼 왕의 존재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30년의 역사 속에 사원 도시를 설립한 인간의 한계였으리라.
[오마이뉴스 2006-08-15 14:00]    
[오마이뉴스 김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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