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동남아

라오스여행/ 휴식 같은 삶, 느림의 미학

향기男 피스톨金 2007. 3. 30. 11:59

 

        라오스① 휴식 같은 삶, 느림의 미학
 

라오스인은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신비감을 주는 산수(山水)처럼 오랫동안 문명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은둔의 땅'이라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을 50년 전쯤으로 돌려놓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들이 사는 시간과 생활의 속도에 여정을 맞추지 못한다면 라오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모습을 감춰온 은둔의 땅 라오스. 동남아 최대의 관광지인 태국과 앙코르 와트를 품은 캄보디아, 산자수려한 베트남 사이에 끼인 라오스는 바다와의 거리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여행자들의 관심에서 배제되어 왔었다.

 

더구나 한국의 50년 전쯤 모습처럼 발전이 정체된 땅이라는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으로의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했는지도 모른다. 600여년 전 남아시아의 최대 강국이었던 란쌍(Lane Xang)왕국. 그러나 지금은 은둔과 정체의 땅,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불교국으로 알려진 땅.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찾아가게 될까?

 

◆파리 개선문 닮은 '파투싸이'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달의 도시)을 향해가는 도로 양쪽으로는 농부들이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모를 심고 있었다. 모가 가지런하게 심어진 들판은 한국 농촌의 봄풍경과 흡사하다. 군데군데 하늘을 향해 넓은 잎을 펼친 열대의 식물들을 제외한다면 멀리서 본 이들의 모습은 우리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30여분을 달려 비엔티안 시내로 접어들었다. 허름해 보이는 낮은 건물들과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 도로를 빽빽하게 메운 자동차와 뚝뚝. 중앙선도 없는 도로에서는 뚝뚝들이 자동차 옆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간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볼 것 없고 비싸기만 하다'는 어느 여행안내자료가 안겨준 인식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라오스의 수도는 번화함마저 느끼게 한다. 식당 앞 큰길가에 놓인 식탁에 앉아 식사와 음료를 즐기는 모습은 이채롭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들어온 유럽식 문화가 그들의 생활에 남아있는 탓이었다.

 

느닷없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거대란 건축물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둘레로 초록 잔디공원을 조성해놓은 개선문을 닮은 콘크리트 건축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958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파투싸이(Patouxai)'라 불리는 독립기념문이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벗어나며 제국의 상징인 개선문을 옮겨다 놓은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건축물에는 미국이 공항 건설을 위해 라오스에 지원한 달러 중 일부가 몰래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파투싸이 아래에 서서 올려다보니 천장에는 비슈누, 브라마, 인드라 등의 힌두교 신들과 머리가 셋 달린 코끼리가 새겨져 있다. 불교 국가에서 세운 건축물에 힌두교 신들을 세긴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정교함은 황홀할 뿐이다.

 

각 층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 꼭대기에 오르자 야자나무에 뒤덮인 비엔티안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야자나무의 초록빛 사이로 회색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비엔티안은 열대의 정글에 파묻혀 문명과는 단절된 도시 같다.

 

◆ 재래시장의 진귀한 먹을거리

라오스의 재래시장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비엔티안의 통칸캄(Thongkhankham) 시장이나 농두앙(Nongduang) 시장 등 도로변의 아무 재래시장이라도 들러본다면 좌판에 진열된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린 박쥐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들쥐, 꼬챙이에 여러 마리를 끼운 개구리 튀김, 살쾡이와 오소리,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산새 등 진귀한 먹을거리들과 메콩 강이나 주변 호수에서 잡은 어린아이 만한 메기와 이름 모를 거대한 민물고기들을 지켜보는 것만도 흥미롭다.

 

또 재래시장에서 바게트를 팔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가 라오스인에게 남겨준 거의 유일한 기술이라고 한다. 재래시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와 닮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배추와 풋고추, 붉은 고추, 파, 마늘, 양파, 콩, 파래 등과 심지어 풋고추를 썰어 넣은 물김치와 청국장과 비슷한 맛이 나는 된장까지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의 시골 장터를 찾아온 듯한 착각이 인다.

 


"라오스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것은 순수 자연산입니다. 천연 무공해 식품이지요. 그래서 어릴 때 죽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을 제외한다면 한국인보다 장수할지도 모릅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죠." 라오스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의 설명이다.

 

재래시장은 아니지만 비엔티안 최대의 시장인 '아침시장(타랏사오, Morning Market)'으로 향했다. 이름은 아침시장이지만 영업은 하루 종일 하는 상설시장으로 라오스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혼잡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국적 불명의 조악해 보이는 기념품을 비롯해 책과 전자제품, 생필품, 섬유제품과 보석이 판매되고 있는데 품질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시장이라는 설명에 비해서는 재래시장보다 흥미가 떨어지는 곳이었다.

 

◆ 삶을 두 갈래로 나눈 메콩 강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을 짧게 휘돌아본 후 메콩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 '파응움(Fa Ngum) 거리'로 향했다. 늦은 오후의 강둑 위로는 나무 그늘 아래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몇 가지 안주를 시켜놓고 라오 맥주를 들이키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등을 보인 채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도 보인다. 사람들 뒤로는 건기를 맞이한 한겨울의 메콩 강이 느린 흐름의 한가운데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한없이 얕아졌지만 넓은 강폭을 유지한 채 도도하게 흐르는 강 위로는 젊은이들이 누런 물살을 가르며 제트스키를 즐기기도 한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멀리 강 건너편은 태국의 농카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헤엄쳐 넘어갈 수 있는 거리이다. 나라를 2개로 나눠놓은 메콩 강은 삶도 2개로 나누고 있었다.

 

순간, 분단의 벽에 가로막힌 한반도가 머나먼 인도차이나에서 생각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동남아 5개국을 지나는 메콩 강은 라오스에서만 1500km를 흘러가며 라오스인의 삶 속을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라오스④ 비경에 취한 몽롱한 객(客)
       

나룻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물결을 따라 하류로 흘러가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파노라마를 눈 앞에 펼쳐준다. 술에 취한 듯 경치에 취한 듯 시야에 초점을 잃어버린 객(客)은 강물에 빠져 가뭇없이 사라져도 좋으리라.
 

아직 사위가 어둠에 잠긴 이른 새벽. 난데없이 울어대는 닭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소리의 파장을 막아보지만 여기저기에서 목청을 높여대는 닭들의 불연속과 부조화의 돌림노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두 손 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어스름 새벽이 찾아온 왕위앙(Vang Vieng)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과 취기 어린 배낭여행객들의 부산한 발걸음이 이어지던 전날 밤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인기척 하나 없는 적막한 고요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새벽 선잠을 깬 누렁이들만 가끔 길가에 삼삼오오 짝지어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침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한낮이면 30℃를 넘어서는 뜨거운 날씨지만 이곳의 새벽은 외투라도 걸쳐야할 듯 소름 돋는 차가움을 느끼게 했다. 새벽의 차가운 기운이 여행자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조금씩 터오는 여명은 배낭여행객의 천국인 왕위앙 거리의 윤곽을 점점 뚜렷하게 해준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해주는 황톳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왕위앙 서쪽을 흐르는 남쏭(Nam Xong) 강으로 향했다. 몇 채의 가옥과 여행자의 숙소인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를 지나자 이내 자욱한 안개의 이불에 휘감긴 남쏭 강과 그 뒤로 희끄무레하게 꼭대기의 윤곽만을 내민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강가에 나와 있던 여행객들이 누르는 셔터소리만이 조용하게 새벽 공기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개 낀 남쏭 강의 운치

 

안개 자욱한 새벽 강은 바닥의 푸른 이끼가 환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얕게 흐르며 졸졸졸 소리를 내고, 가늘어 보이는 통나무를 버팀목으로 그 위에 얇은 판자를 덮어 만든 위태로워 보이는 다리가 그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 발씩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다리 위를 걸어보지만 위험을 알리는 다리의 삐걱거림은 갈수록 커지고 졸졸거리던 강물 소리는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 위에 선 때문인지 집어삼킬 듯 커다랗게 들려온다.

 

다리를 건너다 채 건너지 못하고 강 한가운데의 모래톱에 내려섰다. 강 건너편의 윤곽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또렷해졌지만 뒤돌아본 풍경은 뭉게구름 같은 안개에 파묻혀 흐릿한 모습이다. 이대로 다리를 건넜다가는 지나온 집들과 다리가 안개 속에 사라져 돌아갈 곳이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안개에 가려졌던 산들은 험준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개에 몸통을 잘리고 구름 위에 뜬 듯 신비하게만 보였던 거대한 산들은 강을 병풍처럼 둘러선 거대한 모습이다.

 

선인(仙人)이 커다란 칼을 마구 휘둘러 놓기라도 한 듯 베고 깎이고 깨져나간 각양각색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왕위앙의 아름다운 절경이 '소계림(小桂林)'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대한데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라는 최고의 칭송을 듣는 중국의 계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안개 낀 남쏭 강의 낭만적인 풍경과 산들의 위용에 빠져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이미 태양이 떠올라 있다. 왕위앙 거리의 식당들은 아침식사 손님맞이에 분주하고 여행객들은 한가로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침식사를 일찍이 마친 여행객은 미니버스 위에 래프팅용 고무보트를 싣고 강 상류를 향해 가기도 한다.

 

◆날 세운 산들은 하늘을 찌르고

 

남쏭 강을 따라 북쪽으로 향해 가자 산은 더욱 위용을 드러낸다. 산꼭대기의 바위들은 하늘을 찌를 듯 날을 세우고 있고 그 뒤로는 더 큰 산이 모습을 드러내며 험준한 라오스의 북쪽 지형을 맛보기인 양 보여준다. 어느 때는 뾰족한 삼각산이 뚝 떨어져 나와 평야 한가운데를 막고 서있기도 한다. 남쏭 강은 평야를 지나고 산을 에돌아 굽이굽이 북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푸른 들에서는 펑퍼짐한 원뿔 모양의 전통 모자를 쓴 농부들이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모내기에 여념이 없고, 얕은 강에서는 여인들이 치마를 가슴팍까지 올려붙이고 물을 끼얹으며 목욕을 한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이방인의 눈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차는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황톳길을 달린다. 차가 일으키는 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이지만 라오스인들은 피해 달아나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오히려 차가 지나고 나면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한다. 차로 지나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산들이 도로 양쪽에 가파르게 우뚝 선 곳에서 차를 멈췄다. 번개를 맞아 두 개로 쩍 벌어진 것 같은 커다란 바위가 강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이 저 아래 땅 밑이라도 되는 듯 현기증이 인다.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산이 곧 기울어질 것만 같다.

 


강가에 대나무로 지은 허름한 가옥들 앞으로는 참게와 살쾡이, 산양의 뿔이 좌판에 올려져있다. 강 속에서는 얼굴을 가릴 정도의 커다란 물안경을 낀 사내아이들이 허벅지까지 물에 담그고는 물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허리춤에 찬 짚으로 엮은 동그란 바구니를 들여다보니 작은 참게가 서너 마리 들어있다. 아이들이 잡은 참게가 좌판 위에 진열되어 관광객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 이글거리는 태양과 오수, 한가로움

 

왕위앙 지역은 석회암지대답게 동굴이 많다. 탐짱(Tham Chang), 파푸악(Pha puak), 푸캄(Pou Kham), 파타오(Pha Thao) 등 대표적인 동굴 이외에도 수많은 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래프팅이나 카야킹, 소수민족 마을을 둘러보는 트레킹 등의 관광상품에는 언제나 동굴탐사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동굴은 왕위앙 중심가의 남쪽에 위치한 탐짱인데 왕위앙 남쪽의 중국계 라오스인이 개발한 왕위앙 리조트 안에 위치해 있다. 나무 그늘이 잘 가꿔져 있어 산책을 즐기기 좋은 리조트를 거닐다 붉은빛 철교를 건넜다.

 

강 건너의 잔디밭에 라오스인 청춘남녀 10여명이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라오스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명소인 듯하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탐짱이 시작되는 입구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종유석과 석순이 푸르고 붉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관광객들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시멘트로 길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오히려 유치하면서도 굴의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았나 싶다.

 

밖으로 나오자 굽이치는 강굽이와 위세 높은 산의 모습 등 왕위앙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비치는 풍경이 오수라도 몰아오듯 한가롭기만 하다.

사진/김병만 기자(kimb01@yna.co.kr)ㆍ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연합르페르 2007-03-30 09:00]

 


라오스
휴식 같은 삶
느림의 미학
불심으로 다져진
황금빛 불탑
순진무구
평화로운 미소
배낭여행자의 천국
여행 정보


 


 



          

 

  
                        Peter Piper - Frank Mi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