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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컬트여행지‘카미노 데 산티아고’800㎞도보 순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4. 23:00

 

    세계의 컬트여행지‘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도보 순례

피레네 산맥을 넘던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안개가 걷히는 산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 사랑에 허기지고, 일에 지친 당신. 어느날 당신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인생이 정말 이것뿐일까.’

 

 당신은 소진되어 가고 있었고, 비에 젖은 창호지처럼 늘어져 보낸 날들의 끝이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중얼거리며 당신을 지켜보던 나, 마침내 지도 한 장을 건넨다.

 

당신은 그 이름이 낯선지 망설이는 눈빛이다. 당신의 흔들림을 짐짓 모른 체하며 등을 떠민다. 낡은 배낭을 메고 출국장에 들어서는 당신의 뒷모습이 아직 불안하다. 괜찮아, 돌아오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야.

 

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울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그런 날. 꼭 그렇게 절박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다.

 

방향타도 없이 떠밀려 온 속도전에서 벗어나 느리게 숨쉬고 싶을 때, 짧지만 짜릿한 일탈을 꿈꿀 때, 길 위의 자유 그 불온한 냄새가 그리워질 때, 당신은 어디로 향하는가. 공간의 이동이 삶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당신, 몰래 품어온 이름이 있는가.

 

그곳에 서면 왠지 삶이 달라질 것만 같다. 마음의 주름을 활짝 펴서 팽팽해진 얼굴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두고 온 곳에 대한 망각, 지금 서 있는 곳에 대한 몰입, 돌아갈 곳에 대한 긍정이 마법처럼 생겨나는 곳. 길의 끝에서 만나는 건 결국 익숙하면서 낯선 자신, 자기 자신과 뜨겁게 소통할 수 있는 곳.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고픈 당신을 위해 준비된 길. 흔들리는 당신의 등을 떠밀어 보내주고 싶은 그 길의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땀 흘렸고, 파올로 코엘료의 삶을 바꾼 길. 그리고 당신과 나, 이름 없는 이들의 눈물과 땀을 지켜본 길이다.

 

길이 품은 풍경은 다양하다. 황금빛 밀밭이 지평선을 이루며 펼쳐지는 길의 끝에는 푸른 포도밭이 일렁인다. 세월의 더께로 반짝반짝 빛나는 돌길이 깔린 옛마을과 위풍당당한 교회를 지나면 양떼와 함께 걸어가는 푸른 초지와 구릉이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고, 다시 작은 마을을 지나 나무와 숲이 우거진 산을 넘으면 마침내는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그토록 질투하는 스페인의 태양이 지긋지긋해질 무렵이면 “햇볕을 위해 기도하되, 비옷 준비를 잊지 마라”는 땅이 이어져 가는 비가 흩뿌리기도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 당신이 아플 때 약을 나눠주고, 목마를 때 물을 건네고, 배고플 때 밥을 해준다. 지친 다리를 사심 없이 주물러 주고, 냄새나는 발바닥의 물집을 따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원봉사협회에서 파견이라도 나온 듯,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들이 여기 저기 가득하다. 잠시 어리둥절했던 당신도 곧 친절 바이러스에 감염돼 나누는 기쁨, 베푸는 행복을 체험한다.

 

길에는 역사의 향기가 배어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그 길을 걸어왔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던 길. 그래서 길의 끝은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한다.

 

 전설보다 오래된 교회와 십자군 전쟁의 흔적, 성당기사단의 비밀과 마녀로 몰린 여자들의 화형대, 로마시대의 돌길까지 당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길의 끝에 서면 증명서가 선물로 주어진다. 하지만 그 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당신 자신이다. 800㎞를 걸어가 만나는 대성당에서 천년된 돌기둥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당신.

 

삶에 대한 희열과 감사로 압도되는 그 순간을 겪고 나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신은 이미 변해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안에서 당신은 알고 있다. 문명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등 돌릴 힘이 당신 안에 있다는 을.

 

▲여행길잡이


◇경비와 기간=

 

길의 길이는 약 800㎞. 다 걸을 계획이라면 한 달이 필요하다. 하루에 필요한 비용은 2만원을 잡으면 된다(숙박비 3유로, 아침 3유로, 점심 8유로, 저녁 3유로. 순례자 전용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자고, 저녁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다). 항공료를 포함한 총 경비는 150만원 전후를 예상하면 된다.

 

◇배낭꾸리기=

 

모든 여행의 제1원칙, 배낭은 깃털처럼 가벼워야 한다. 배낭의 무게가 곧 당신 삶의 무게다. 당신의 삶은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넣어 떠날 수 있을 만큼 간결한가. 배낭을 보면 당신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포기하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니 낯선 이에게 배낭을 열어 보이는 건 당신의 가슴을 여는 것과 같다. 배낭을 꾸리는 원칙은 간단하다. 뺄까말까 망설여지는 것을 모두 뺀 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으로 짐을 꾸린 후, 다시 그 짐의 절반을 덜어낸다.

 

체중감량이 아닌 삶의 무게의 감량 능력, 신나는 인생을 위한 당신의 무기이다. 갈아입을 옷 한 벌과 방수점퍼, 가벼운 침낭, 손전등과 세면도구, 필기도구면 충분하다. 한 가지 더, 좋은 배낭과 워킹화에 대한 투자를 잊지 말자.

 

◇출발=

 

천년의 역사를 가진 길인 만큼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가장 인기 있는 길 ‘카미노 프란세스’가 무난하다. 보통 프랑스-스페인 국경지역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건너오는 800㎞의 구간이다.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가 몇 ㎞마다 있어 하루에 걸을 거리를 조절하기에 가장 편하다. 알베르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순례자용 여권 크레덴시알을 만들어야 한다. 생장피드포르나 대도시의 산티아고 협회 혹은 성당에서 1~2유로를 내고 발급받는다.

 

◇순례자의 하루=

 

당신이 올빼미형 인간이라면 이 길에서는 변해야 한다. 순례자의 하루는 새벽 5시 기상으로 시작된다. 여름의 경우 보통 5시에서 6시 사이에 눈을 떠 6시에서 7시 사이에 걷기 시작한다. 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시간인 오후 1시를 전후해 걷기를 마친다.

 

일사병으로 길 위에서 장렬히 순교하지 않으려면 시간조절이 필수다. 순례자는 스페인의 마을이 잠들어 있을 때 길을 나서서 스페인의 마을이 낮의 더위와 침묵에서 깨어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여권에 도장을 받고, 침대를 배정받는다.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그리고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엽서를 쓰며 휴식을 취한다. 저녁은 근처 슈퍼에서 장을 봐 만들어먹고, 9시면 잠자리에 든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의 길.’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중세부터 내려온 길로 다양한 경로가 있으나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카미노데프란세스’다. 카미노데프란세스는 프랑스-스페인 국경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을 말한다. 원래는 가톨릭 성지순례길이었으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김남희씨는

세계 곳곳을 시속 4㎞로 걸어서 여행하는 도보여행가다. 2003년 중국을 시작으로 라오스, 미얀마, 태국, 인도, 터키를 거쳐 유럽을 여행했고,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3권을 펴냈다. 2005년 여름엔 50여일간 카미노 데 산티에고를 걸었다. 그 경험을 ‘세계의 컬트여행’ 시리즈에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사진 김남희 www.skywaywalker.com〉

   [경향신문 2007-02-01 09:54]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