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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선 50대 여성인 내게도 ‘짓궂은 눈길’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4. 22:28

 

     터키선 50대 여성인 내게도 ‘짓궂은 눈길’


“50대의 여성은 토마토이다. 자신이 아직도 과일이라 착각한다.” - 한국 남성이 만든 성희롱적 농담

 

“50대의 여성은 유럽과 같다. 여기저기 무너진 고적이 많으나 그래도 아직 볼 것이 있다.” - 터키 남성이 만든 성희롱적 농담

 

여성 혼자 이슬람 문명권의 나라들을 여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이슬람 문명권에선 여성 혼자 여행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어 나처럼 혼자 다니는 여성은 ‘이상한’ 또는 ‘정숙하지 않은’ 여성으로 간주되기 쉽다. 물론 대도시, 이스탄불 같은 곳은 예외지만 조금만 지방으로 내려가도 여자 혼자 불쑥 들어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

 

30~40대 때 이슬람 국가들을 방문했다가 거의 성폭력을 당할 뻔한 기억이 있기에 처음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나이를 믿었다. 나는 이제 소위 말하는 남성들이 규정한 ‘여성성’에서 해방되는 50살이 아닌가? 그래서 한국 남자들이 만들어낸 ‘10대 여성 호두, 20대 여성 복숭아, 30대 여성 수박, 40대 여성 석류, 50대 여성 토마토, 60대 여성 곶감’이란 성희롱적 농담을 들었을 때도 50대를 토마토로 규정한 것이 내겐 그런대로 괜찮게 들렸다.

 

남자의 눈에 들기 위해, 남자의 마음에 ‘필이 꽂히게’ 하기 위해, 남자에게 ‘간택’ ‘선택’되는 여성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젊은 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가? 가부장적 억압이 우리들의 제도, 문화, 감성에 남아있는 한 여성들은 항상 ‘뽑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도록 길들여질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50대 초쯤에 거의 맞이하게 되는 ‘폐경기’(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을 ‘완경기’로 표현한다)를 해방으로, 제2의 인생의 시작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달콤한 과일’이어야 하는 사회의 기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과일보다 토마토를 더욱 좋아한다.

 

내 젊은 날, 낭만과 달콤함의 꿈을 쫓아가다 얼마나 깊은 상사병들을 앓고 나가떨어졌는가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해독과 치유를 할 수 있는 에너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래선지 세계 종교에서도 50대 여성에게는 가정을 뒤로 하고 순례자가 될 수 있는 권한(힌두교), 그리고 메카에 갈 수 있는 자유(이슬람교)를 보장해준다.


이 나이에 성희롱 당하랴
이슬람권 여행 나섰는데
샅샅이 훑어보고 엉덩이 때리고
급기야 12살 소년이 “나 잘해요”

 

나는 이 ‘토마토’의 긍지와 자유를 가지고 이슬람 16개 나라 순례길에 올랐다. 이제는 나도 오십이니 남성들의 불쾌한 시선과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믿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이스탄불에 내리는 첫날부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남자들의 눈길을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감당해야 했다. 휘파람, 가까이와서 말걸기, 차한잔만 마시자는 제의 등등…. 그러면서 이슬람교와 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우선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터키에서 겪은 대표적인 경험만 열거하고 잠정적인 결론을 말하고 싶다. 어느날 이스탄불에서 한 중년 신사를 만났다. 그는 내게 어쩌면 그렇게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느냐고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대답하자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라면서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바로 앞에 있는 보석가게가 그의 상점이었고 나는 그를 따라들어가 사진을 보았다.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자 차 한잔을 마시고 가라고 했다.

 

차를 마시자 그 다음에는 금고를 열고 아름다운 보석들을 들고 나왔다. 나는 신학교수라 그런 귀금속을 살 여유가 없다고 하자 그냥 한번 목에 걸어보라고만 했다. 그는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면서 나의 목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의 에너지가 얼마나 기품있는지 나와 별로 상관없는 미모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부탁하라고,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과도한 친절이 불편해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그는 다시 한번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whatever you want)이라고 강조했다. 이정도의 신사적인 접근은 ‘성유희’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여성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나 남편 소유로 보는
터키를 혼자 다닐땐 조심하라
여성의 몸은 마지막 식민지다

 


그러다 성희롱에 가까운 사건도 겪었다. 카파도기아에서 해돋이 벌룬(일종의 열기구)을 타기 위해 새벽에 관광여행사에 갔다. 기구를 타기 전에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게 했다.

 

내 생년월일을 적자 직원이 거짓말이라고 했다. 정말이라면서 여권을 보여주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변의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회사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10여명이 몰려들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50살이라는데 믿을 수 있냐고 물었다. 모두가 나보고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내가 여권을 다시 보여주자 그들은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의사가 신체검사하듯 허리, 목, 다리, 손 등 신체 모든 부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건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남녀노소, 종교, 인종, 직업의 귀천 없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일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더 가까이와서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피부도 찔러보면서 다시 못 믿겠다고 난리들이었다. 꼭 노예시장의 판매대 위에 서있는 여자 노예처럼 느껴졌다. 이정도면 ‘성희롱’이라 할 수 있겠다.

 

한번은 고속버스를 타는데 직원이 버스에 올라타는 내 엉덩이를 말 엉덩이를 치듯 소리를 지르며 세게 때렸다. 하도 기가 막혀 돌아보니 19살쯤 되는 청년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희극적이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혼자 이슬람 나라를 여행할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생각하며 따귀를 한대 세게 때리며 영어로 크게 소리쳤다.

 

“너는 네 엄마의 엉덩이를 때리는 배은망덕한 놈이냐? 마호메트 예언자가 뭐라고 가르쳤냐?” 이렇게 몸을 침범하면서 폭력을 쓰는 것은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을 만났다. 최초의 기독교가 선언되었던 안티옥의 초대교회 동굴에 갔다가 있었던 일이다. 12살쯤 되어보이는 소년이 나를 동굴로 안내했다. 관람이 끝나고 팁을 주었는데도 소년이 가지 않고 계속 서있었다.

 

그러더니 두 검지를 부비면서 “아이 엠 굿(I am good)”을 연발한다. 이해할 수가 없어 뭘 잘하느냐고 묻자 그 아이가 내게 “섹스”라고 대답한다. 손자같은 아이가 섹스를 하자니까 이 인생이 너무 슬펐다. 이 아이는 몸을 파는 소년인가 아니면 성적으로 억압된 이슬람 나라에서 한번도 건강한 성교육을 못 받은 불쌍한 아이인가? 아이를 달래서 보내고 빗속을 혼자 걸으며 울었다.

 

과도하게 남녀의 공간을 분리하고, 여성의 몸과 성을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로 생각하면서 결혼 외에는 어떤 성적 표현도 허락하지 않는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혼자 여행하는 비무슬림 여성은 어쩌면 성적으로 억압된 많은 남자들의 ‘밥’이 될 수도 있다.

 

여성의 몸은 마지막으로 해방되어야 할 식민지이다. 여성의 몸이 욕망의 전쟁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성간의 평등과 정의를 체화하고 교육하고 제도화하고 체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

[한겨레 2007-02-01 17:36]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