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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문명의 교차로, 터키 이스탄불

향기男 피스톨金 2006. 6. 13. 18:04

 

    동서 문명의 교차로, 터키 이스탄불

 

[마이데일리 = 박은정 기자]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터키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명과 가톨릭 문명이 만나는 찬란한 역사 문화 유적으로 ‘가장 가고 싶은 인기 여행지 톱 10’으로 항상 꼽혀 왔다.
 

그 동안 인천과 이스탄불간 정규 비행 노선이 없어 전세기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한국 관광객들은 고가의 항공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지난 해부터 이스탄불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월 3천여명 가량 몰리면서 정규편 취항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최근 대한항공이 터키 이스탄불에 정기취항함으로써 200만원대 8박9일 이스탄불 여행상품이 160만원대로 떨어졌다.

주요 일정은

 

 ▲ 기암괴석의 조형미를 자랑하는 카파도키아,

▲ 석회암 온천 휴양지 파묵칼레,

▲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 보아즈칼레,

▲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 관광,

▲ 톱카피 궁전,

▲ 트로이 등이다.

A330 기종이 투입되는 인천~이스탄불 노선은 매주 화·금·일요일 출발, 오후 10시 50분 이스탄불 도착이다. 롯데관광은 세계문화유산의 보고인 터키를 둘러보는 8박9일의 상품을 1백 69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문의 : 02-399-2305)


[직경 27.5미터, 높이 43미터의 터키 최대의 회교사원 블루모스크(사진 위), 블루모스크의 조명쇼. 사진제공=롯데관광]

(박은정 기자 pej1121@mydaily.co.kr)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서울신문 2006-05-11 08:36]

 


[서울신문]무너져 내린 돌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에 손을 대어보자. 느껴지는가,2000년 전의 그들의 외침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터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었던 대표적인 ‘신탁’의 성지였다.
 

무채색의 올리브 나무,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해안 도시로의 여행은 낯선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에게해, 마르마라해, 흑해 그리고 지중해 사이에 기묘한 모양으로 떠있는 나라, 터키 여행은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또한 지중해를 따라 가득 들어선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과 아폴로 신전, 고대 기독교 문화의 에페소 등 세계 문명의 흔적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시계를 2000년 전으로 맞추어 놓고 코발트빛 바다가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터키를 돌아보자.

글 사진 터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터키 서남부 해안을 달리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다란 해안도로가 뻗어 있는 터키의 서남부 해안을 버스로 달렸다. 따스한 봄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바다 내음에 기분이 들뜨기도 하고, 로마와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를 칭송하듯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의 노랫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시작했다.

 

# 진짜 코발트 블루, 이런 색이야

 

터키의 지중해 여행은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이스탄블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지중해 해안 도시로 터키 관광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급 호텔과 빌라 등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편의시설이 많다.

 

 또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탈리아에서 주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는 유럽인들에게는 인기.

 


첫번째 목적지인 올림포스까진 이름 모를 크고 작은 해변들을 끼고 달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니 ‘김형영씨 시’가 생각난다.‘하늘과 바다가 내통하더니/넘을 수 없는 선을 하나 그었구나/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낯선 땅이라서일까, 슬픔을 간직한 색 ‘블루’때문일까. 뜻모를 슬픔이 가슴을 메운다.

 

파란 도화지에 흰점 같은 버스는 하얀 선을 그리며 달리고 또 달린다.

올림포스 해변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해안 절벽 위에는 집터들이 남아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도굴되어 겉모양만 남아 있는 AD2세기 오데모스 장군의 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 흔적과 담장 등이 기다린다.

 

또한 올림포스는 레포츠의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산과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져 캠핑이나 산장에서 머물며 트레킹, 카약, 스쿠버다이빙, 암벽 등반 등을 즐긴다.

 

많은 산장 중에 트리하우스가 유명하다.

산타클로스로 유명한 성니콜라스 교회와 바위절벽에 굴을 파 만든 암굴 묘가 있는 미라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 게코바가 있다.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웠던 도시가 수차례 지진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지금은 산 정상에 있는 리키아인들의 무덤만 슬픔 역사를 조린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이젠 로마와 그리스의 거대한 문화에 취해보자.

 

# 아폴로 신을 만나다

 

‘아폴로 신전’이 터키에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게코바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리면 디딤이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스와 로마시대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그러나 지금 남겨진 것은 아폴로 신전이 유일하다.

 

아폴로 신전으로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터키에도 디딤을 비롯한 아폴로 신전이 두개나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규모 면에서는 그리스 델포이보다 크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기둥이 3개에 불과해 세상에 덜 알려졌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에 발을 디뎠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신들의 영역은 지금 몇 번의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신전 앞에 뒹굴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몇 아름도 넘는 기둥에 눈을 감고 손을 대어보았다. 혹시 아폴로 신을 만날까 하고 말이다.

 

BC6세기경에 지어진 이 신전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듣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이나 백성들에게 전하는 그런 곳이었다.

 

# 황홀한 로마의 도시

 

에게해 해안 도시 이즈미르는 오디세이로 유명한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셀주크에는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에페소가 기다린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하며 로마시대에는 25만 명이 살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에페소로 들어서자 기다리는 것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신전의 기둥, 나뒹구는 대리석, 허물어진 건물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돌멩이는 모두 로마의 역사다. 특히 에페소는 기독교인이면 꼭 한번 들러보는 성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갖은 핍박을 받으며 전도를 했던 곳이며 옥중에서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바로 신약성서의 ‘에베소서’이다. 또한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에 머물며 요한복음을 썼던 기독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에페소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여러 신전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위한 목욕탕, 돈을 받고 운영했다는 화장실, 평민과 귀족들의 공간을 나누었던 헤라클래스가 새겨진 기둥문, 병원을 상징하는 조각, 대리석에 새겨진 ‘발’보다 작으면 미성년자로 취급해 들어 갈 수 없었던 창녀의 집,

 

도서관, 각종 하수도 시설 등 정말 고대 로마의 발달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원형극장도 두개다. 귀족들이 회의를 했던 작은 것과 무려 2만 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원형극장도 재미나다. 과학적인 설계로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뒤쪽까지 잘 들린다.

 

에페소에서 가장 멋있는 건물은 단연 켈수스 도서관이다. 비록 거의 다 무너져 내려 앞쪽만 간신히 건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건물의 높이가 16m나 되고 1만 2000권의 책을 가지고 있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2000여년전 기계도 하나 없던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대한 신전과 건물들을 오직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리쬐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발을 멈춘다.

 

한쪽에서 3인조 오케스트라가 관광객을 위해 음악을 선물한다. 정말 2000년 전 그들의 삶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인근 셀주크 박물관이나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터키 여행정보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은 터키항공(02-777-7055)이 월·목·토요일 1주일에 3차례 뜬다. 현재 전세기를 띄우고 있는 대한항공(1588-2001)도 조만간 주 3회 정식 취항할 예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터키 리라인 에테르(YTL)를 쓴다. 1달러에 1.25 YTL 정도.1유로는 1.45YTL. 우리 돈으로 720원 정도. 달러와 유로 모두 통용된다. 미리 달러로 환전을 해서 출국하는 편이 좋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연이 만든 기묘한 매력 터키

 

[조선일보 2006-05-11 03:00]    

 


터키는 관광객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역사·문화·자연·음식,
관광거리를 빠짐 없이 골고루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터키.
종합선물세트 포장을 벗기고 관광거리를 하나씩 맛보았다.

[조선일보 김성윤기자]

 

역사-에페스 사도바울과 마리아, 요한이 머물던 곳


 

에페스(Efes)는 로마제국 시절 인구 25만명이 넘던 대도시로, 로마의 소(小)아시아 지역 행정수도였다. 지금은 에게해에서 1㎞ 정도 내륙으로 들어서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에게해에 인접한 항구로서 교역 중심지였다. 햇볕 따뜻한 4월이면 다산(多産)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던 거대한 신전에 몰렸다.


 

에페스의 은(銀)세공업자들에게 2000년쯤 전 나타난 사도 바울은 골칫거리였다. “신은 하나 뿐”이며, 그 신의 아들 예수가 전해준 복된 말씀을 외치는 바울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은제물로 떼돈을 벌던 은세공업자들의 생계마저 위협했다.

 

이들의 음모로 죽을 뻔한 바울은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에페스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에베소서(書)’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 요한도 에페스에 머물었다.

아르테미스 신자들과 무역상인들로 복작대던 에페스는 관광객들로 다시 전성기다. 아르테미스 신전과 행정기관이 있었던 도시 위쪽에서부터 옛날 항구가 있던 외곽까지, 도시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내려가니, 에페스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창녀의 집 앞 대리석 바닥에는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발자국보다 발이 작으면 미성년자라 ‘입장 불가’였다.


 

백미(白眉)는 역시 ‘켈수스(Celsus) 도서관’이다. 켈수스는 에페스 집정관으로, 아들 아퀼라(Aquila)가 서기 135년 아버지 무덤을 세우려다 승인을 얻지 못하자 대신 기념 도서관을 지었다.

 

켈수스는 도서관 지하에 안치됐다. 대리석으로 지은 도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문 양 옆으로 기둥이 두 개씩 있다. 자세히 보면 건물 양 끝에서 가운데 갈수록 기둥이 조금씩 크고 높아진다. 건물이 더욱 웅장하게 보이도록 일종의 눈속임 기법을 썼다.


자연-카파도키아 수백만년 전 화산폭발 후 만들어진 풍광


‘요정이 사는 마을 같다’, ‘우주선을 타고 화성이나 목성에 온 것 같다’. 그만큼 기괴하고 매력적인 풍광이다. 유네스코가 카파도키아(Kapadokya)를 세계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까닭이리라.


 

수백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땅 위에 진흙, 먼지, 재가 켜켜이 시루떡처럼 쌓였고, 그 위로 용암이 흘러 돌처럼 굳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진흙과 먼지, 재로 된 연약한 바위가 깎여나갔다. 용암에 덮인 부분은 견고하게 기둥으로 남았다.

 

과정이 반복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광을 만들었다.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세상을 피해 종교에 몰두하려는 은둔자들이 이곳에 바위 교회, 수도원을 세웠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바위 교회가 2000여개. 이중 200여개가 몰려있는 괴레메(G?reme)는 통째로 ‘야외 박물관’(Open Museum)으로 지정됐다.


이슬람문화-이스탄불 힘있는 사람들이 세운 이슬람사원


 

이스탄불은 ‘모스크(이슬람사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탄(황제)과 황후, 파샤(재상) 등 오스만제국 시절 힘과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앞다퉈 모스크를 세웠다. 명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라(신)가 준 부와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이른바 사회환원 차원에서 모스크를 세웠다.


 

모스크에는 예배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메드레세(medrese·교리학교), 이마레트(imaret·무료급식소), 하맘(hamam·공중탕), 카라반사라이(caravansarai·카라반), 한(han·가게 병원 숙박시설)과 같은 다양한 부속시설이 예배당을 둘러싼 복합건축물이다.


 

관광객은 대개 ‘술탄 아흐메트 자미(camii·터키어로 모스크를 의미한다)’만 구경하지만, 모스크를 제대로 보려면 좀 떨어진 ‘쉴레이마니예(S?leymaniye) 자미’를 시간 내 가볼 만하다. 쉴레이마니예 자미는 오스만제국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술탄(황제) 쉴레이만 1세가 1550년~1557년 세웠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크고,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터키음식 전반적으로 수준 높지만 최고는 이스탄불에


 

터키요리는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힌다. 그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요리법이 복잡하다. 가지 요리만도 22가지. ‘고기 구이요리’를 총칭하는 케밥(kebab)은 넓고 깊은 터키요리의 일부일 뿐이다. 터키 어디를 가건 음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

 

그래도 역시 최고는 이스탄불에 몰려있다. 톱카프 궁전, 소피아 사원, 술탄 아흐메트 자미가 있는 유럽쪽 구시가지보다는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편 베욜루(Beyoglu) 지역이 낫다.

 

정통 터키·오스만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하즈 압둘라’(Haci Abdullah·212-293-8561), ‘투그라 레스토랑’(Tugra·212-258-3377)이 훌륭하다. 둘 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즈 압둘라는 요리 한 접시 가격이 미화 3~8달러선, 투그라 20~40달러선.

구시가 쪽에서는 쉴레이마니예 자미 부속 이마레트를 식당으로 개조한 ‘다뤼지야페’(Dar?zziyafe·212-511-8414)가 맛, 분위기 모두 훌륭하다. 아케이드로 둘러쌓인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우거졌고, 가운데 작은 분수에서 졸졸 솟는 물소리가 상쾌하다.

 

요리 2~6달러선. 커피(약 1달러)만 마셔도 된다. ‘고등어 샌드위치’도 1달러 정도로 싸고 맛있다. 그릴에 구운 고등어를 바게트빵에 끼워주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파는 배가 갈라타(Galata) 다리 주변 다닥다닥 붙어있다.

터키 과자는 혀가 아리도록 달다.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고 알려진 로쿰(lokum)이 특히 유명하다. 피스타치오와 같은 견과류를 고소하게 박아 넣거나, 레몬과 같은 과일즙으로 새콤달콤하게 맛 낸 쫄깃쫄깃한 젤리 과자다.

 

1777년 문을 연 ‘알리 무히딘 하즈 베키르’(Ali Muhiddin Haci Bekir·212-522-0666)가 원조 가게. 들어간 재료에 따라 1㎏ 당 2~6달러. 기념품으로 알맞다. ‘스파이스 바자’(Spice Bazaar) 옆이라 찾기 어렵지 않다.

 

[여행수첩]

●터키는 한반도 3.5배 면적인 큰 나라다. 인구 7100만명.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많이 서구화돼 종교적 규율이 엄격하지 않다. 수도는 앙카라.

시간: 3월말~10월 말은 서머타임을 적용,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원래 7시간 늦다.


 

: 인플레가 심하다. 2000년~2002년 매년 무려 100%였다. 1달러=1,400,000터키리라(TL)까지 치솟기도 했다. 터키정부는 2005년 1월 1일 화폐 액면단위를 100만분의 1로 줄이는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지난해부터 인플레를 7%대로 붙들고 있지만 아직 불안하다. 기사 중 가격을 달러로 표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화폐개혁 후 새로운 통화를 ‘예테른’(YTL)이라 부른다. 1YTL=800원~850원 가량이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열기구 투어를 꼭 타볼 것! 1인당 200달러로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돈 생각은 싹 사라진다. 투어는 오전 6시 30분 이륙해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www.goremeballoons.com


 

쇼핑팁: 무조건 깎아라! 70% 정도에 사면 손해보지 않는 셈이다. 50%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서두르면 된다. 탁월한 장사꾼인 터키인들은 흥정을 즐긴다. 가게주인이 내주는 터키 홍차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흥정한다.

●터키 여행 한글 안내서 17종을 터키정부에서 최근 냈다. 터키항공 한국지사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다. (02)757-0280


 

●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최근 이스탄불에서 사망했다. 배낭여행객은 어디서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터키 정부는 “관광객 안전 확보를 위해 더 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고, 혼자 외진 곳을 다지니 말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고, 히피 스타일의 눈에 띄는 복장을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스탄불·에페스·카파도키아=글·사진 김성윤기자 [ gourmet.chosun.com])



 



동·서양이 두 팔 뻗어 맞잡은 곳…들린다,

 

 ''문명의 이중주''

[세계일보 2006-05-07 17:12]    

 


[터키, 그 세번째 이야기]이스탄불
 

‘동방의 빛’ 이스탄불. 인류사에 이 도시만큼 영욕이 교차하는 곳이 또 있을까. 이스탄불은 동로마의 수도로 1140년간 영화를 누렸고, 몽골제국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건설했던 오스만투르크와 함께 600년을 함께한 도시다.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마지막 기점이자 동양과 서양이 만나던 접점이다. 흑해와 지중해 사이, 튼튼한 다리처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로의 중심에 이스탄불이 있다. 이러한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탓에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욕에 찬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오스만투르크의 황제들은 늘 이스탄불을 주목했다.

 

이스탄불은 골든 혼(Golden Horn)과 보스포러스(Bosphorus)라는 만과 해협으로 나뉘어져 있다. 골든 혼은 육지를 파고든 만이고, 보스포러스는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잇는 유일한 해협이다. 바다가 만나고, 또 유럽과 아시아가 두 팔을 뻗어 맞잡은 곳이 이스탄불이다.

◇보스프러스 다리 밑에 자리한 오르타퀘이 모스크.

이스탄불의 이름난 유적은 모두 도시의 서쪽, 유럽쪽에 몰려 있다.

 

골든 혼을 감싼 곳에 토카프 궁전과 하기아 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가 자리했다. 이곳만 돌아보아도 세계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이스탄불의 영화를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다.

 

토카프 궁전은 오스만투르크 시절에 술탄(황제)이 머물던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교역의 요충지를 꿰차고 상업국가로 번성을 누리던 ‘술탄의 시대’를 증거할 만한 유물들이 많다.

 

이 가운데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5개의 거대한 기둥과 750개의 전등이 달린 4.5t 규모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있어 관광객의 혼을 빼놓는다.

 

하렘도 오스만투르크 왕궁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은 술탄의 왕비와 후궁, 그리고 자녀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 600년의 세월 동안 이곳은 온갖 야욕과 음모로 점철된 곳이 되고 만다.

 

 어린 술탄을 섭정하던 황후들이 이곳에서 음모를 꾸몄고, 술탄의 성욕을 채워주기 위해 끌려온 처녀들이 비탄으로 밤을 지새던 곳이다.

 

 

◇이스탄불을 감싼 마르마라해에서 한가롭게 보트를 타고 가는 어부.

 

토카프 궁전에서 몇 걸음만 더 보태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차례로 지배했던 터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4세기.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다.

 

기독교를 처음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1만명의 인부를 동원해 5년에 걸쳐 이 성당을 만들었다. 그 후 반란으로 파괴된 것을 6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당시 헌당식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이 장엄한 성당에 감동해 ‘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에게 이겼도다’고 외쳤다고 한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에서 볼 때 엄청난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건물의 지붕에는 지름 33m의 돔이 씌워졌다. 바닥에서 돔까지의 높이는 56m. 이 돔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몇 아름도 넘는 4개의 큰 기둥을 세웠다.

 

 

◇코란의 경전이 씌어진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비잔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1453년 이슬람교로 무장한 오스만투르크가 이스탄불을 함락시키면서 운명을 달리한다.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이 성당에서 밀려오는 투르크 군을 바라보며 화염 속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그의 자살과 함께 비잔틴제국과 기독교의 운명은 종말을 고한다. 그 후 이 성당은 무슬림을 위한 사원으로 변신한다.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은 성당의 네 귀퉁이에 이슬람 사원의 상징인 미나레트를 세웠다. 또 성당 내부의 벽을 장식했던 성화들은 모두 회칠을 해버렸다.

지금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무종교다. 터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이 성당은 고난에 찬 종교의 시대를 마감했다.

 

지금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에는 코란의 경전을 새긴 금문자와 최근에 복원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화가 있다. 그것들은 파란만장했던 이스탄불의 역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 마주 보는 곳에 꼭 그만한 규모의 이슬람 사원이 있다. 블루 모스크(Blue Mosk)다. 오스만투르크의 위대한 지도자 메흐멧의 명에의해 1609년부터 8년에 걸쳐 지은 사원이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에 그려진 성화.

 

이 사원의 이름은 임페리얼 슬탄아흐멧 모스크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 사원 내부를 푸른색 타일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블루 모스크에서는 지금도 이슬람교인들이 예배를 본다.

이스탄불(터키)=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시장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

 

 

◇터키 전통 공예품을 파는 그랜드 바자르의 상점.

 

유적이나 역사에 별반 취미가 없는 이들에게 그랜드 바자르는 솔깃한 곳이다. 바자르는 중앙 아시아의 도시마다 있는 시장을 뜻한다. 이 가운데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자르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물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것이 아닌 상설시장으로 변하기는 했다.

 

그랜드 바자르는 전성기 이스탄불의 역사를 말해준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시장 안에 4400여개의 상가가 있다. 상가는 들고나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거리에 지붕을 씌워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가게의 규모는 같지만 파는 물건은 제각각이다.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터키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보석과 장신구에서 화려한 터키의 그릇, 조명, 가죽류, 입맛을 유혹하는 터키식 젤리, 향신료, 액세서리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시장 곳곳에 먹을거리도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고, 이스탄불에서 환율이 가장 좋은 사설 환전소도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가격도 저렴하다. 아직까지 흥정하는 맛이 남아 있어 일명 ‘후려치기’도 가능하다. 적정한 가격을 놓고 흥정을 하면 터키인들과 정도 들고 재미도 있다. 여행자들이 몰려들어 혼잡을 빚을 때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구석구석에 상주하고 있어 안심하고 ‘바자르 탐험’을 할 수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생각보다 넓다. 들고나는 문이 40여개에 이를 만큼 많다. 따라서 처음 들어갔던 문과 거리를 기억해 두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나올 수도 있다.

김산환 기자

 

터키의 명소 그 두번째 이야기…에페스

[세계일보 2006-05-02 11:21]    

 


성지순례 떠났다 ''에게문명''을 만나다

마리아·성 바울이 머물던 곳한국인 첫 손 꼽는 필수코스
BC10세기부터 1500년간 번성거리 곳곳에 펼쳐진 옛 유적헬레니즘·로마문화 진수 만끽

 

에게해와 접한 터키 서남부는 올리브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눈부신 태양이 연중 비춰 터키에서는 가장 살만한 땅으로 불린다. 이곳은 또 고대 문명이 꽃 피웠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스에만 있는 줄 알았던 아폴로 신전이 있고, 이탈리아 로마에만 있는 줄 알았던 극장도 부지기수다.

 

이 지역은 고대 헬레니즘과 로마제국 시대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오딧세이와 일리아드를 쓴 호머가 태어난 곳도 이곳이다. 그 중심에 에페스(Efes)가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마리아와 성 바울이 머무르던 곳이라 터키에서 첫손에 꼽는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에페스로 들어가는 후문은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리스에서 에게해 크루즈 투어를 떠난 여행객들이 아침나절부터 밀어닥친 것이다. 서 있는 건물보다 허물어져 뒹구는 돌덩이가 더 많은 유적지에 장이 서기나 한 것처럼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에페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건물인 셀수스 도서관 독서광이었던 로마 집정관 셀수스를 위해 그의 아들이 지었다고 한다.(왼쪽)‘대리석 길’ 곁에 서 있는 원형기둥과 셀수스 도서관(뒤). BC10세기에 처음 건설된 에페스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치며 지중해와 에게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에페스는 기원 전 10세기 이오니아인에 의해 도시가 형성됐다. 그 후 리디아인들이 500여년간 통치를 했고,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후에는 그리스의 영토가 됐다. 그 후 로마가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지배했다. 따라서 에페스에는 이곳을 거쳐간 문명의 흔적들이 한데 뒤엉켜 있다.

 

에페스는 그리스 통치시절 에게해에서는 가장 번성한 항구로 번영을 누렸다. BC 3세기경에는 에페스의 인구가 20만명에 달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영토에 세워진 위대한 건축물 가운데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꼽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아르테미스는 이오니아인이 섬기던 가장 강력한 여신이다.

 

에페스는 크게 2개의 권역으로 나눠져 있다. 계곡 상부는 상류층, 옛날 항구와 잇닿아 있는 하단부는 서민을 위한 주거공간이다. 두 구역은 상가가 밀집했던 번화한 크레테스 거리로 연결되어 있다.

 

후문을 통해 들어가는 계곡 상단부의 유적은 상류층이 머물던 공간이다. 로마 집정관이 중요한 회의를 하거나 이웃나라에서 거상들이 찾아왔을 때 접대하던 작은 극장 ‘오데온’과 의회유적이 있다.

 

상류층 주거지에서 헤라클레스 문을 지나면 크레테스 거리와 연결된다. 이 거리에서 인상적인 것은 목욕탕이다. 로마 통치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그들이 이룩한, 고도로 발달한 도시문화의 한 단면을 느끼게 해준다. 목욕탕은 남과 여가 분리되어 있고, 온수가 공급됐다. 또한 상수도와 하수도가 각기 다른 통로를 이용했고, 이것은 집집마다 연결되어 있었다.

 

‘대리석 길’에 있는 창녀의 집을 알리는 그림.

 

크레테스 거리 끝에는 에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 서 있다. 셀수스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에페스 집정관이었던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지었다.

 

높이 16m, 넓이 21m의 이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견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조상 등 중요한 유물은 당시 이 유적지를 발굴했던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모두 비엔나로 옮겨졌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대형극장까지는 ‘대리석 길’로 이어졌다. 대리석이 깔린 이 길은 바닥을 눈여겨 보고 걸어야 한다. 길 중간에 발과 여인의 얼굴이 새겨진 돌이 있다. 이 그림은 로마시대 ‘창녀의 집’을 알리던 그림이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그림 광고라고 할 수 있다.

 

‘대리석 길’의 끝에는 거대한 극장이 있다. 무대에서 극장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60m로 에게해에서 가장 큰 극장 가운데 하나다. 관중석에만 2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극장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에페스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계단의 좌석에 쓰였던 대리석들은 후에 다른 건물을 짓는 자재로 사용되어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극장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를 향해 곧장 뻗은 길이 보인다. 지붕은 사라지고 원주형 기둥만 남은 길이다. 이 길의 끝에 항구가 있었다. 그러나 토사가 밀려와 쌓이면서 항구는 더이상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됐다. 항구가 사라지면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에게해 최대의 상업도시로 번성을 누렸던 에페스도 종말을 고했다.

 

에페스에서 항구로 이어진 길을 거니는 여행자들.

2만4000명이 앉을 수 있는 에페스의 대형극장.

에페스(터키)=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디딤의 ''아폴로 신전''

메두사 등 다양하고 생생한 조각 눈길

 

122개의 기둥 가운데 3개만 남은 디딤의 아폴로 신전.

에페스에서 자동차로 남쪽으로 2시간을 내려가면 디딤(Didim)이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스와 로마시대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그러나 지금 남겨진 것은 아폴로 신전이 유일하다.

 

‘태양의 신’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다음으로 강력한 신으로 불린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이 아폴로를 숭배했던 것은 연간 300일 이상 맑은 날이 지속되는 에게해의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스인들은 눈부신 태양이 있기 때문에 올리브 나무를 키우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폴로 신전은 그리스 델포이가 유명하다. 그러나 터키에도 디딤을 비롯해 아폴로 신전이 2개나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규모 면에서는 그리스 델포이보다 크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기둥이 3개에 불과해 세상에 덜 알려졌다. 신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던 119개의 기둥은 몇번의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신전 앞에 뒹굴고 있다. 몇 아름도 넘는 기둥의 둘레가 당시 아폴로 신전의 규모를 말해준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BC 6세기경에 지어졌다. 그 후 마케도니아의 왕이 신탁을 받으러 이곳을 찾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왕도 신전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들을 수 있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에게 전했다. 또 4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지금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아폴로 신전의 메두사 조각상.

 

아폴로 신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다양한 조각들. 특히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메두사 조각이 인상적이다.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한 메두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김산환 기자

 

●터키의 요리

케밥 한국인 입맛에 딱디저트 터키젤리도 별미

 

거리에서 케밥을 요리하는 조리사.

 

터키요리는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불린다. 이처럼 터키 요리가 발달하게 된 것은 터키의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기인한다. 터키는 동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서양의 요리에 동양의 향신료가 더해져 터키만의 음식이 됐다.

 

또 흑해와 지중해, 에게해를 끼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동부산악지대는 양을 방목해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든다.

설탕처럼 단 터키의 디저트.

터키 음식 하면 흔히 ‘케밥’을 떠올린다. 그러나 케밥은 특정 음식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터키어로 케밥은 ‘불에 구운 음식’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소고기나 양고기, 닭고기를 불에 구으면 모두 케밥이 된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이스탄불의 ‘고등어 케밥’은 터키 여행객들에게 소문난 먹거리다. 다만 이슬람교인이 많아 돼지고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케밥은 대부분 한국인의 식성에 맞는다. 다만 양고기의 경우 특유의 냄새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양고기 케밥의 경우 고기에 붙은 지방 부분을 떼어내고 먹으면 냄새가 많이 지워진다.

 

터키인들이 케밥과 함께 즐겨 먹는 것이 쌀밥과 야채볶음이다. 터키의 쌀은 모양새가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볼 수 있는 안남미와 비슷하다.

 

그러나 맛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한국쌀처럼 찰 진 것이 있는 반면 물에 불려놓은 것처럼 입안에서 겉도는 것도 있다. 가지나 호박, 토마토, 고추를 올리브 기름에 볶아 요구르트를 얹어주는 야채볶음은 담백해 입맛에 맞는다.

 

터키는 피클류가 발달했다. 만약 케밥을 먹을 때 조금 느끼하다 싶으면 고추나 양배추, 양파, 오이, 올리브 등을 소금에 절인 피클을 시켜 곁들여 먹으면 괜찮다.

 

터키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디저트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에드먼드는 얼음마녀가 준 과자 때문에 남매를 배신한다. 이 과자가 터키 젤리다. 터키 젤리를 비롯해 음식의 마지막 코스로 나오는 디저트는 하나같이 달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이용한 케밥

김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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