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마지막 주막을 찾아서 | |||||
100년 풍상 버텨온 예천 ‘삼강주막’ 주모는 갔어도 취흥(醉興)은 남아… 숫자 못 읽는 주모, 벽에 금 그어 외상 표시… 경상북도가 민속자료로 지정해 복원키로
벌써 100여년이 흘렀구려. 세월은 참말 무상한 것 같으이. 이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자리잡은 ‘삼강주막’이라오. 낙동강·내성천·금천의 3개 강물이 합치는 곳이라 해서 그렇게들 불렀지. 주막이 생긴 것은 1900년대 초반.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한다오. 그저 학자들이 “낙동강 700리 길을 통틀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전통 주막”이라며 그렇게 추정할 뿐이라오.
주막 한 켠엔 멋들어지게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있소. 사람들이 정월 보름날 제사를 지냈던 이 나무 수령이 200년이라니까, 그간 주막이 겪은 풍상을 어림할 수 있을 거요.
할매는 글도, 숫자도 알지 못했다오. 그래서 한 잔을 외상하면 담벼락에 짧은 금을 긋고,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오. 그러다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웠지. 말 그대로 외상을 ‘그은’ 거라오. 주막 주방 옆 담벼락엔 할매가 그어둔 외상 금이 여전히 남아 있다오.
동네 노인 정수흠(69)씨는 “돈이 없을 땐 쌀 같은 곡물을 들고 와서 술을 받아먹곤 했다”며 “어쩌다 돈이 생겨 외상을 그으면 한두 잔 더 주기도 하고, 돈이 떨어지면 또 외상을 먹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군. 20~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대여섯 달에 한 번, 어떤 땐 1년에 한 번 꼴로 외상을 갚았다오. 그러다 보니 미처 못 갚은 외상도 많았는지, 주막 흙벽엔 채 지워지지 않은 수십 개의 금이 남아 있다오.
소주 한 병에 1000원을 받았다니 수입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오. 전국의 대폿집을 순례해 ‘사람아 바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란 책을 쓴 화가 사석원씨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주모”로 할매를 기억한다오. 사씨는 할매가 작고하기 2년 전인 2003년 11월 ‘삼강주막’을 찾았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이 되고 말았소. 동네 노인은 “다리가 뚫리던 2004년 4월,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할매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 훔치는 모습을 봤다”고 하더이다. 주막을 감돌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허리를, 다리가 동강 막아버렸으니…. 도로가 생기면서 인적도 끊겨, 주막을 찾는 사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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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삼강주막'을 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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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Marradi 피아노
머무는 동안 편안한 자리 되세요.. *^^*
향기남그늘집
추억속에 남을 즐거운 이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족 들과 마음과 마음에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 이쁜 사랑들 나누시며
오손도손 행복한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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