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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어 숨어 피었나…봉화 산수유 마을 /옛사람들 ‘운치있는 상춘’

향기男 피스톨金 2007. 3. 15. 16:50

 

     수줍어 숨어 피었나…봉화 산수유 마을

마을 입향조가 산수유 나무를 처음 심은 것은 400여년 전이었다. 수백년 동안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띠띠미 마을은 봄마다 산수유 꽃(사진 위)으로 덮였다.

 

올 봄에도 수백 그루가 어김없이 꽃을 틔워냈다. 백년 고택의 기와 담장 위로 드리워진 산수유를, 가까운 봉화나 영주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지도에는 ‘두동마을’로 표기돼 있지만 마을 사람도, 택시기사도 모두 ‘띠띠미 마을’이라 부른다.

 

‘뒷마을’, 즉 ‘뒷띠미’가 수백년 세월 동안 ‘띠띠미’로 굳어졌다. 띠띠미 마을 가는 길, 2차선 도로변 밭엔 산수유가 곡식처럼 자랐다. 20여가구 대부분이 산수유 농사를 짓는다.

 

지금은 산수유밭이지만 두곡 홍우정 선생이 터를 잡던 때만 해도 온통 다래 덤불이었다. 때는 병자호란 말기. 일등공신 홍가신의 손자였던 두곡은 ‘청나라에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산간벽지를 찾아 들어왔다. 탄탄한 벼슬길보다 선비의 기개가 더 중요하던 시대였다. 두곡의 자손이 대대로 뿌리를 내려 마을은 남양 홍씨 집성촌이 됐다. 두집 중 한집이 홍씨다.

 

홍성원씨(72)네 마루엔 홍가신 선생의 영정이 가족사진과 나란히 걸려 있었다. “두곡 할아버지가 어디선가 두 그루를 구해 심은 것이 산수유 농사 시작”이라고 했다. 아직도 그 두 그루가 봄마다 꽃을 틔운다. 마을의 산수유 대부분은 100년이 넘었다. ‘요즘 심었다’고 하면 60~70년 된 나무다.

 

산수유 빨간 열매는 마을 사람들에겐 ‘쌀’이었다. 변변한 밭뙈기가 없는 첩첩 산골. 산수유 열매로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그래서 논이나 밭처럼 나무마다 주인이 있다. 봉화군 물야면, 의성군의 산수유도 여기서 분양받아 나간 것이다.

 

김영자씨(68)는 50여년 전 안동에서 시집왔다. 중매한 이가 “띠띠미는 산수천냥, 과일천냥, 명주천냥”이라고 했단다. “정작 와 보니 과일도 명주도 없고, 산수유만 해 먹고 살았지”라며 김씨는 어깨를 움츠렸다. 중국에서 값싼 산수유가 밀려 들어오면서 산수유 농사도 예년만 못하다. 대풍이었던 2년 전 수확한 열매 수천근이 아직도 쌓여 있단다.

 

구례처럼 산수유 축제라도 하면 좋으련만, 50·60대가 ‘젊은이’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축제 치를 엄두도 못낸다.

 

마을 옆 내성천을 따라 산수유길이 이어진다. 대개 3월25일부터 피기 시작해 한식날(4월5일께) 만개하는데, 올해는 꽃이 20일 이상 빨랐다. 이달 초부터 꽃을 보였으니 이번 주말이면 절정일 것이다. 꽃이 마을을 뒤덮는 기간은 짧으면 1주일, 길면 보름이다.

 

마을에서 500m쯤 걸어 언덕에 올라갔다. 마을은 산 속에 옴폭 들어간 노란 소쿠리 같다. 구불구불 휘고 비틀린 마을길, 주황색·하늘색 슬레이트 지붕, 그 옆으로 먹빛 기와가 보인다. 옛 모습 그대로 남은 고택이 4채. 흙과 돌로 쌓아올린 돌담 위로 산수유가 늘어졌다. 그늘마저 노랗다.

 

풍경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마을 입구에 2차선 도로가 닦이고 아스팔트가 깔렸을 뿐. 두 그루 중 한 그루는 일제 때 배 만든다고 빼앗겼지만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도 해마다 이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휘돌아 굽이치는 길이며 서로 몸을 비끼고 앉은 집….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고향의 모습 그대로다. 정할 수 있다면 이곳을 고향으로 삼고 싶다.

 

낯선 외지인에게 선뜻 마루를 내주며 잔받침까지 받쳐 커피를 끓여내 주던 마을 사람들은 “열매 열릴 때 다시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내년에도 봄이 오면 띠띠미 마을로 산수유를 보러 가야겠다.

 

▶여행길잡이


중앙고속도로 영주IC~36번 국도~봉화군 농업기술센터 앞에서 울진·봉화 방향 좌회전~50m 뒤 현동 방향 우회전~1㎞쯤 달려 다리 건너 천성사 이정표 보고 좌회전~2㎞쯤 달리면 띠띠미마을. 영주 시내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봉화·영주 일대 문화유산 답사를 겸할 수 있다. 영풍 부석사, 봉화 청량사가 자동차로 각각 30분 거리다. 부석사(054-639-6498)는 해질 무렵에 맞춰 갈 것. 절집 마당과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능선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

 

입장료 성인 1200원, 어린이 800원. 주차요금 3000원. 청량사(054-672-1446)는 그리 깊지 않으면서도 한껏 산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절이다. 김생, 원효, 의상, 퇴계에 얽힌 이야기가 내려온다. 주마등이 걸려 있는 경내 찻집에서 차 한잔도 빼놓지 말 것.

 

 봉화 닭실마을은 충재 권벌의 자손들이 모여 사는 전통 마을이다. 본래 ‘안동 권’이지만 ‘닭실 권’으로 부를 만큼 자부심이 높은 명가다. 충재 종택과 청암정 정도가 볼 만하다.

 

▲산수유꽃·생강나무꽃 너무 헷갈려

 

산수유꽃(사진 왼쪽)과 생강나무꽃(오른쪽)은 어떻게 구분할까? 둘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노랗고 자그마한 꽃이 핀다. 얼핏 보면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확연히 다르다.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 꽃이 가지에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이 또렷한 느낌. 생강나무는 꽃자루가 거의 없어 가지에 공처럼 달라붙어 핀다. 좀더 포실포실해 보인다. 줄기도 다르다.

 

산수유는 벗겨져 지저분하지만, 생강나무는 매끈하고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 잎이 나면 구분하기 쉽다. 산수유 잎은 길쭉한 타원형이지만 생강나무 잎은 공룡 발바닥 모양이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마을 근처에 심어진 것은 대부분 산수유, 숲 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은 생강나무가 많다.

〈봉화|글·사진 최명애기자〉[경향신문 2007-03-15 09:57]    

 

 

              옛사람들 ‘운치있는 상춘’

신윤복의 ‘상춘야흥’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봄은 완숙한 때보다 다가오는 그때가 제일”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이 막 깨어나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봄의 정수”라고 말했다. 지금이 그 때다.

 

땅 속 깊은 곳부터 가지 끝까지 나무마다 맑은 수액이 차올랐다. 태안반도에는 주꾸미가 알을 배기 시작했고 논에서는 가래질 소리가 들려온다. 집집마다 흙벽을 새로 바르고, 봄맞이를 준비한다. 야생 달래의 향긋함도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옛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깨우쳤다. 우리도 옛사람들의 정취를 따라 보면 어떨까. 조상들이 즐긴 봄놀이를 소개한다.

 

◇유상곡수연(流상曲水宴)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 한 수,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생각만으로도 향긋하고 달뜬 봄의 정취가 느껴진다. 곡수연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설화 중 ‘흐르는 물가에서 상서롭지 못한 액운을 말끔히 씻어내는 푸닥거리 행사’의 일종으로 기록됐다.

 

그 후 신라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시대까지 곡수연의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때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날씨가 포근하고 햇볕은 따사로운데 산들바람 가볍게 불어와 푸른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두건을 젖혀 쓰고 흐르는 물에 둘러 앉아 술잔을 띄우며 난정의 봄 수계를 그리워하고 하삭(河朔·황하의 이북땅)에 피서하던 술잔을 상상하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적 1호로 지정돼 있는 ‘포석정’도 신라 때 곡수연이 벌어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화전(花煎)놀이

 

삼월 삼짇날이 되면 집안에만 갇혀 있던 여인들도 밖으로 나와 봄볕을 즐겼다. 화전놀이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볕이 좋은 개울가나 산에 올라 즐기던 봄놀이다. 찹쌀을 동그랗게 빚은 위에 진달래(참꽃)를 올려 부친 참꽃부침뿐 아니라 벚꽃, 배꽃, 매화 등 여러 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오미자 국물로 만든 화채인 화면(花麵)도 만들었다. 오미자를 우려낸 국물에 녹두가루를 반죽해 익힌 것을 썰어 꿀을 타고 잣과 진달래 꽃잎 등을 띄워 만들었다. 조선시대 문인인 백호 임제는 화전놀이에 대한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 ‘작은 시냇가 돌로 받친 솥뚜겅에서/ 흰 가루 맑은 기름 진달래꽃을 지져내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자 향기 가득하고/ 한해의 봄빛이 뱃속으로 전해오는구나’

 

◇매화음(梅花飮)

 

조선후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이 쓴 ‘호산외사’에는 매화에 얽힌 단원 김홍도의 일화가 나와있다. 끼니를 잇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단원은 시장을 지나다 매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주머니가 비었던 그는 3000냥에 그림을 팔고 2000냥으로 매화 화분을, 200냥으로는 땔감과 식량을, 800냥으로는 친구들과 술잔치를 벌였다. 술값으로 생계비를 날렸다는 것보다는 매화가 전한 봄향에 흠뻑 취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봄이 어떨까.

 

◇창경궁 벚꽃놀이

 

‘봄의 창경원은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사랑이 무르익는 곳이다. 창경원의 밤벚꽃놀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이곳으로 달려온다. 그들의 관심은 꽃이 아닌,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담은 신명직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현실문화연구)’에는 봄을 맞아 벚꽃놀이를 나온 이들에 대한 묘사가 있다. 어린아이도 아이의 아버지도 벚꽃놀이의 시큰둥한 룸펜까지 밤벚꽃놀이를 위해 창경궁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책은 일제가 천황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조선왕조의 궁궐을 오락장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시도야 어쨌든, 그 시절 벚꽃놀이가 움츠려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설레게 했던 낭만적인 놀이였음에는 틀림없다.

〈장은교기자 indi@kyunghyang.com〉

 

'꽃불'
벚꽃·매화·복사꽃
주말에 보러갈까
전철로
꽃나들이 갈까?
수줍어 숨어 피었나
순천 금둔사 매화

 



Menuett - Cu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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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남그늘집

                                                                  

                                 

                                             추억속에 남을 즐거운 이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족 들과  마음과 마음에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 이쁜 사랑들 나누시며
                                               오손도손 행복한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