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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특파원 칼럼/ 최경주와 태극기

향기男 피스톨金 2007. 7. 11. 12:30

 

           특파원 칼럼/ 최경주와 태극기


    • 프로골퍼 최경주는 필드에 세 개의 태극기를 갖고 다닌다. 골프화 오른쪽 뒤꿈치에 조그만 태극기가 붙어 있고, 골프 백 한가운데에도 태극기가 있다. 또 ‘CHOI’라고 새겨진 캐디의 겉옷 앞에서도 태극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엊그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AT&T 내셔널 대회에서 최경주를 만났을 때도 태극기는 어김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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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그에게 “태극기를 왜 붙이고 다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텃세 심한 PGA 대회에서 내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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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시절 그가 유명 선수와 한 조로 경기할 때면,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사람 신경을 건드렸다고 한다. 경기 내내 한마디 말도 안 붙이는 ‘왕따’ 유형에서부터 “그것밖에 못 치느냐”고 야단치기까지 하며 별의별 방법으로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AT&T 대회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한 조를 이룬 스튜어트 애플비(Appleby)와 라운드를 끝낼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 ▲ 최경주 선수의 신발에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 여기에 갤러리가 가세할 때도 있다. 2004년 스위스 오메가 대회에서 그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스페인 출신의 골프 신동(神童) 세르지오 가르시아(Garcia)와 한 조를 이뤄 경기했는데, 스페인에서 올라온 아줌마 부대가 가르시아가 퍼팅할 때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내지 못하게 분위기를 잡더니, 최경주가 퍼팅할 때만 되면 부스럭거리면서 훼방을 놓는 것이었다.
    • 보다 못한 기자는 ‘쉿’ ‘쉿’ 하면서 분위기를 잡았고, 스페인 아줌마들과 말싸움까지 벌이면서 최경주를 응원했었다. 이처럼 선수들뿐 아니라 갤러리까지 텃세를 부리는 통에 그는 태극기를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는 것이다.
    • 그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오메가 대회 당시 파3홀에서 공이 그린 바로 옆 러프에 빠졌다. 세컨샷을 칩샷 한다는 게 그만 생크가 나고 말았다. 공은 미사일처럼 ‘쌩’ 하고 그린을 향해 날아갔다. 기자를 포함한 몇몇 한국인 응원단은 순간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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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 세이브는커녕 더블 보기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 조화인지 공은 핀을 정통으로 맞고 홀컵으로 들어가 버렸다. 버디였다. 경기가 끝난 후 “어떻게 된 거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라 망신시킬 뻔했지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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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이번 AT&T 대회 내내 기분이 좋았다. 출입증에 새겨진 기자의 이름을 본 수많은 갤러리들이 “최경주의 가족이냐”고 물었다. “뭐, 다 같은 패밀리”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더니,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떤 이는 “한국 출신 맞느냐”면서 “당신이 최경주 아들이냐”고 물었다. 약간은 어이없었지만(기자가 최경주보다 나이가 더 많다), 대회 내내 최경주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 힘든 줄도 모르고 18홀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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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난 것은 골프장을 찾은 한국 동포들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최경주 파이팅” “대~한민국, 짝짝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버디와 보기가 다 그게 그건 줄 아는 할머니들, 아빠 손에 이끌려 필드에 나온 꼬마들, 최경주 샷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는 골프 마니아들…. 젊은 한인 동포 2세들도 네이티브(native) 영어로 목이 터져라 최경주를 응원했다. 모두들 최경주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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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가 우승하자 주최측은 대형 태극기를 시상식 주변에 갖다 놓았다. 네 번째 태극기가 메릴랜드 하늘에 펄럭이는 순간, 자리를 뜨지 않고 시상식을 지켜본 수많은 한인 동포들은 저며 오는 가슴 뭉클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스포츠는 국경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어떤 것보다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 최우석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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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shikazu mera, counter-t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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