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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밴프(Banff) 국립공원/낯설음을 찾아 떠나는 길

향기男 피스톨金 2007. 7. 12. 11:54

 

                   캐나다/밴프/

 

      낯설음을 찾아 떠나는 길이 즐겁다

차는 어느새 밴프(Banff) 국립공원으로 넘어섰다. 레이크 루이스 전망 포인트에서 레이크 루이스까지는 차로 불과 30분 이내 거리. 레이크 루이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망 포인트에서 보았던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이 위엄을 갖추고 버티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기를 '손톱 밑의 때'로 치부한 나의 몰골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 보며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 호수에서 바라보는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
ⓒ2007 제정길
거리가 주는 인식의 차이는 대단했다. 수십 ㎞ 밖 산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그는 한 점 얼룩이요, 손톱 밑의 때였으나, 수십 m 근접한 거리에서 보이는 그는 거대한 성곽이요, 화려한 궁전이었다. 초라한 입성으로는 감히 들어가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것은 무엇인가. 거리가 주는 착각인가, 거리 밖에 선 자의 자기 위안적 오만함인가? 재야에 있을 때는 큰소리를 펑펑치다가 정부 기관에 한 자리 얻으면 마냥 굽신대기만 하는 인간들의 행태는, 거리가 주는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곳에 와서 보니 갑자기 들었다.

ⓒ2007 제정길

호수는 반쯤은 얼어있고 반쯤은 녹아 있었다. 절기가 이미 여름으로 들어섰는데도, 해발 1700m 고지에 위치한 호수는 완전히 해빙되지도 않아 이제 막 봄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고 호면 또한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이 독특한 청록색 호수 색깔은 주변 산에 덮힌 빙하가 녹으면서 암석입자를 깍아 내고, 그 입자들이 호수에 유입되어 햇빛이 비치면 이 입자들이 녹색과 청색만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한다.

ⓒ2007 제정길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호숫물은 생각만큼 그렇게 깨끗치는 않았다. 물은 투명하다기 보다는 뿌옇게 흐린 쪽에 가깝고 물 속에는 나무등걸들이 물때를 뒤집어 쓴 채 여기저기에서 삭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거였다.

세계 10대 명승지 중의 하나라는 루이스 호수도 적당한 거리에서 볼 때에만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멀리서는 '손톱 밑의 때'처럼 보이고 너무 가까이 에서는 '물때를 뒤집어 쓴 나무등걸'만 보일 뿐이었다. 참 세상 이치란….

ⓒ2007 제정길

호반가로 난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몇 개의 괜찮은 트레일이 있는 모양이나 단체여행의 단점인 시간 제약 때문에 부득히 가이드의 명에 의해 이 코스를 택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바람은 이제 눈을 틔우기 시작하는 호변 갯버들의 뺨에 살랑거리고, 햇살은 호수의 젖줄이자 호수를 감싸안고 있는 높이 3464m의 빅토리아 산의 만년설 위에, 반대편에서 호수를 호위하듯 지켜보고 섰는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의 지붕 위에, 타원형을 이루며 반쯤 동면에서 깨어나는 호수의 짙푸른 수면 위에, 그리고 호숫가를 경배하듯 돌고 있는 인간의 머리 위에도 따뜻하게 내려 앉았다.

▲ 보우 폭포
ⓒ2007 제정길

다음 행선지는 보우(Bow) 강이었다. 강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특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보우 폭포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볼품이 없었다. 낙차가 얼마 되지 않아 폭포라기보단 좀 큰 물굽이 같아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든지 하는 영화에 나온 덕분에 생김새 이상으로 과장되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왔다는 기차역
ⓒ2007 제정길

지나는 길에는 작은 기차역에서 잠시 차가 섰다. <닥터 지바고>를 촬영한 장소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장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이별을 하는 장면. 그러나 어쩐지 마음은 씁쓰름했다.

이 시대에는 사물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영화에 나왔는지, 어느 TV에 모습을 들어드러냈는지, 어느 미디어에서 언급을 하였는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한국의 어느 식당 골목에라도 가보면 즐비하게 붙어 있는 간판, '무슨 TV에 나왔던 집', '어느 TV에 방영 된 식당'. 그런 것이 자연을 찾아가는 이런 관광에도 끼어드는 것은 아닌지. 어느 영화에 나왔던 장소, 어느 영화가 촬영된 곳 하고.

▲ 해발 2998m의 캐스케이드(Cascade) 산
ⓒ2007 제정길

밴프 시내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한 시간이면 시내를 다 돌 수 있다는 작은 도시는 록키의 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형상이었다. 눈을 들면 캐스케이드(Cascade), 런들(Rundle), 노케이(Norquay) 등의 해발 2500m가 넘는 산들이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어디서나 보였다. 시내를 어슬렁 거리며 걸어 보았다. 캐나다의 도시 같지 않고 유럽의 작은 도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밴프 시내에 서 있는 마네킹 (마네킹이 아니고 진짜 사람임)
ⓒ2007 제정길

그곳 한인식당에서 때 이른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해물탕이었다. 음식은 비교적 정갈하였고 분위기도 단체 손님을 받는 집 특유의 산만함이 적었다. 4인 테이블에 최 선생 내외분과 같이 앉았다. 처음 승차시 소개 때 부인이 한 인물 하기에 유학 생활도 포기하고 결혼을 감행했다는 그의 말처럼 부인은 상당한 미모였다.

그들은 장녀가 이번에 버클리에 합격하여 이민 생활 20년 만에 생업도 접고 자축 여행을 왔다고 하였다. 듣는 사람까지 즐거워지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술을 전혀 하지를 않아 혼자 와인 한 잔을 마셨다. 오랫만의 즐거운 밥자리였다. 음식의 양이 조금 모자란 것만 빼고.

ⓒ2007 제정길

식사 후에는 잠자리를 위하여 캔모어(Canmore)로 이동하였다. 패키지 여행을 하다보면 스스로 할 때보다 이동거리가 상당히 많아지는데 그 주된 이유는 여행하려는 곳에서 자지 못하고 값이 싼 외곽으로 빠져서 자야 하는 비용 문제 때문이다. 다행이 캔모어는 밴프에서 그리 멀지 않고 마을도 아늑하여 분위기가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동행과 둘이서 술집 사냥(?)을 나섰다. 배도 좀 덜 찼고, 시간도 좀 남았고, 무엇보다도 작은 동네 선술집에서 그들이 일을 끝내고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고 싶었다.

몇 사람에게 물어서 근근히 작은 선술집(Pub)을 찾아내었다. 예상했던 대로 작고 허름하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크지도 않은 실내에 눈이 미치는 곳곳에 TV가 설치 되어 있었고 TV들은 하나 같이 농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맥주 잔을 손에 들고 농구를 보거나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 캔모어의 선술집(Pub)
ⓒ2007 제정길

창가 자리에 안내되어 (웨이트는 우리 더러 아무 데나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여기 캐나다 맞어?)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내가 늘상 마시는 캘리포니아 산 싸구려(?) 였다. 값도 괜찮고 (20불 정도) 맛도 괜찮아 여행 내내 즐겨 찾는 술이다. 한 모금의 와인은 코를 향긋하게 하며, 혀를 향긋하게 하며, 목구멍을 향긋하게 하며 식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여기 패키지에 끼어든 후 처음으로, 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향긋하게 전신을 감쌌다. 자유로웠고, 내가 필요한 만큼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고, 충분히 낯설었다. 어찌 보면 여행이란 낯선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음식, 낯선 공기, 낯선 시간까지도. 오늘은 낯선 선술집에 오게 되어 더더욱 즐거워진다.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7-07-12 02:28 기사원문보기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 평범한 '늘근백수'가 미국,캐나다 등지를 떠돌며 보고 느낀 것을 기술해가는 여행기입니다. 여행은 4월 25일 시작되었고, 7월 말 쯤 끝날 예정입니다.

 

                             yoshikazu mera, counter-tenor
                    
 

 

 

            

                                           

                                          향기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