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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위스, 루체른에서 융프라우까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8. 10. 13:07
 
         스위스, 루체른에서 융프라우까지

항공사 승무원들에게 물었다. 딱 한 장의 사진을 찍으라면 어디를 꼽겠냐고.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스위스 '융프라우'였다고 한다. 산과 호수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스위스는 어디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달력에나 등장할 법한 멋진 작품사진 한 장이 탄생하는 곳이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 자연의 풍광은 장대하지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해, 그 어울림이 절묘한 곳이 바로 스위스다. 알프스 산맥이 나라 한가운데를 관통하면서 높은 산봉우리가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 하늘과 맞닿아 있고, 그 산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들이 투명한 푸른빛의 계곡과 호수를 이루고 있다.

 

그뿐인가. 푸른 초원 위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나무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멀리서 들려오는 청아한 '댕그렁 댕그렁'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들꽃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푸른 풀밭에서 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오솔길저편 어딘가에서 빨간빛의 스위스 전통 의상을 입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래도 그 중 단연 압권은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이라 불리는 '융프라우'다. 이곳에 서면 하얗게 덮인 눈 속 깊은 곳에서 태고적 이야기가 들려올 것만 같다.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서늘한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바람은 아래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원시적인 맛이 그대로 들어있다.

 

베네치아에서 곧장 밤기차를 달려 스위스로 향하려 했지만 "그 좋은 풍경을 보지도 못하는 밤기차가 왠말이냐."는 한 친구의 조언에 결국 밀라노를 거쳐 4시간 동안 낮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향했다.

 

2시간 여를 지나니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멀리서는 가파르게 치솟아오른 산들이 보이고, 계곡으로 쏟아지는 물빛 역시 이탈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푸른빛이다. 눈이 시원해져 온다. "아, 이 맛이구나." 스위스의 청정지역에 들어온 상쾌함이 가슴속까지 전해졌다.

 

△루체른

기차에서 내리니 날이 어둑어둑했다. 잔뜩 드리운 구름 때문이었다. 밀라노에서 한여름 민소매옷을 입고 출발했는데, 루체른에는 초겨울 추위가 살을 엔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두꺼운 옷을 사러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이곳은 한여름이라도 비가 오거나 날이 조금만 흐리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곳. 그래서 다운타운에는 한여름 옷과 한겨울 옷이 함께 진열돼 판매되고 있었다. 알프스를 올라갈 계획이라면 얇은 윈드점퍼보다는 두꺼운 스웨터 하나쯤 꼭 챙겨가야 한다.

 

한기를 좀 떨쳐내고 나니 비로소 루체른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높게 솟은 교회의 첨탑과 오리와 백조가 유유히 헤엄치는 루체른 호수(피어발트슈테터), 그 위를 가로지르는 카펠교의 모습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유람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일단 루체른의 상징물이기도 한 카펠교를 건너며 스위스에 입성한 기분을 만끽했다. 지붕이 덮힌 이 다리는 약 200m 길이의 나무다리로 1333년 놓여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라고. 한참을 걸어 '빈사의 사자상'도 보러갔다. 자연석을 파내 사자상을 조각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머나먼 스위스 땅까지 날아와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던 것이다.

 

△필라투스를 향해

 

루체른에서 올라가 볼 수 있는 알프스 자락은 리기, 필라투스, 티글리스가 대표적이다. 리기는 알프스의 여왕봉이라 불리며, 티글리스는 만년설로 덮혀있는 곳으로 융프라우와 일정 부분 경치가 겹치는 곳. 융프라우를 올라갈 계획을 갖고 있다면 필라투스를 올라가는 것이 좋다는 네티즌들의 추천에 따라 다음날 아침 일찍 필라투스로 향했다. 이곳은 경사 48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산악열차가 설치된 곳이다.

 

유람선을 타고 필라투스로 향하는 1시간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려 과연 제대로 된 관광을 할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유람선 선장의 "It just rain"(단지 비일 뿐)이란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날씨가 무슨 상관이야. 비마저도 즐긴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비가 오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운해가 낮게 드리워 필라투스 꼭대기는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은 신비로움을 풍겼다. "아~" 그냥 탄성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산악열차는 생각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계단식으로 좌석배치가 된 빨간빛의 객차 2량이 전부. 그것도 칙칙폭폭 신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끙끙 도르레에 끌려올라가는 듯한 느낌의 열차가 해발 2천120m의 가파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알프스자락에서 뛰놀다

 

40여분간을 가파르게 올라간 기차가 필라투스 정상에 정차했지만 꼭대기에는 희뿌연 구름만 잔뜩 휘감고 있을 뿐이었다. 정상의 기온은 영하 6℃. 밖으로 나갔더니 테이블 위에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혹시나 날씨가 반짝 갤까하는 마음에 30여분을 기다렸지만 도무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내게 필라투스의 경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 산 반대편으로 내려오기 위해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갑자기 날이 개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치고, 쭉쭉 뻗은 나무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진 필라투스가 비로소 감춰졌던 속살을 드러냈다.

 

케이블카는 '프렉 뮌헨'이라는 곳에서 멈춰섰다. 이곳에서 다시 곤돌라로 갈아타고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갑자기 좋아진 날씨에 신이나서 역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야호~!" 갑자기 뭔가를 발견했다. 썰매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슬레이트 봅슬레이'라고 불리는 레포츠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8 스위스 프랑을 주고 티켓을 끊어 썰매에 앉았다. 스테인레스 반원형 통을 미끄러지듯이 질주한다. 속도의 쾌감이 제대로 전해졌다. 돌아갈 때는 도르레를 썰매에 걸어 아주 느린 속도로 산 위로 끌어올린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소들이 땡그랑 땡그랑 방울 소리를 내며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다양한 인종들을 그 큰 눈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소들이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꽤 색다를 것이다.

 

△융프라우의 관문 인터라켄

그날 오후 늦게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이동했다. 인터라켄이라는 지명은 '두 호수사이에 자리잡은'이라는 뜻으로 도시 양 옆으로 브리엔즈 호수와 툰 호수가 둘러싸고 있다.

융프라우 관광은 인터라켄 오스트(동)역에서 시작된다. 125 스위스 프랑을 주고 티켓을 끊으니 티켓 하단에 'Free noodle soup'(무료 라면 교환권) 쿠폰이 붙어 있다.

 

'울려퍼지는 샘'이란 뜻의 라우터부르넨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타면 곧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푸른 초원과 한가로이 노니는 소들, 꽃으로 치장된 예쁘장한 집들, 초원위를 가득 메운 작은 들꽃들 위로 하얗게 눈덮힌 융프라우의 모습이 보였다. 기차는 다시 융프라우요흐(요흐는 '봉우리'라는 의미)의 관문인 '클라이네 사이덱'에서 한번 더 멈춰섰다.

 

거기서 기차를 다시 한번 갈아타고 40여분을 터널로만 지나야 했다. 해발 3454m라는 엄청난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기차를 이용하는데도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부터 2시간 40분을 꼬박 앉아있어야 겨우 '융프라우요흐'에 닿을 수 있었다.

 

△눈으로 뒤덮힌 융프라우요흐

 

융프라우요흐는 새하얀 만년설로 완전히 뒤덮혀 있었다. 어느 방향을 쳐다봐도 하얀 빙벽만이 눈에 들어오는 얼음궁전이다. 여름 속 맛보는 한겨울의 맛. 살을 파고드는 짜릿한 한기가 제일 처음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신선노름도 이런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구름이 발 밑을 지나가고,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부서지는 새하얀 눈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선글라스가 필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실명하기 십상이란다. 멀리 스키를 신고, 양손에는 폴대를 쥐고 힘겹게 산을 올라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보인다. 마냥 탄성만 나올 뿐이다.

 

일단 무료 쿠폰을 주고 매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받아 꽁꽁 언 몸을 녹였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삼삼오오 둘러앉아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는 한국인들의 수가 꽤나 많았다. "캬~, 이맛이야." 융프라우요흐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세계 어떤 진미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성찬이었다.

 

너무나 고대했던 융프라우요흐 관광이었지만 사실 꼭대기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를 수는 없었다. 워낙 지대가 높은 곳이다보니 현기증이 일어 제대로 둘러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렴 어떠랴. 뜨거운 여름, 이것보다 더 좋은 피서는 없을 터. 바이바이 융프라우, 바이바이 스위스!

 

매일신문 | 기사입력 2007-08-09 17:21 기사원문보기

스위스에서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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