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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크로아티아,지상 낙원이 궁금하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향기男 피스톨金 2007. 9. 18. 16:08

   

                       크로아티아,

 

  “지상 낙원이 궁금하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800년 역사 간직한 ‘아드리아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 전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쪽빛 바다 따라 즐비한 고성 숨막힐 듯 아름다워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겐 낯선 땅이다. 지도를 펼쳐 봐도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할 정도이다. 그나마 크로아티아에 대해 아는 것은 1990년대 초반 신문지면을 장식한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인상이 전부다.

 

하지만 그것은 크로아티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 전에는 유럽인이 선호하는 최고의 관광지였으며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문화재와 황홀한 자연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땅이다.

 

아드리아해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와 마주보고 있는 반도에 크로아티아가 있다. 아드리아해의 북동 해안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슬로베니아와 헝가리를, 동으로는 유고슬라비아, 남쪽과 동쪽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국경으로 두고 있는 나라이다. 국가의 생김새부터가 흥미롭다.

 

초승달이나 부메랑 모양으로 묘사되는 크로아티아는 구 소련이 분리되면서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로 독립선언을 한 이후 5년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지금도 전쟁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나름대로 주변 국가 중에서 건실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서두에서 비친 것처럼 전쟁과 축구 외에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크로아티아의 여러 지역은 인기가 높은 관광지였다. 전쟁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한 해 동안 100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방문했다니 우리나라보다 관광에 관해서는 한 수 위였음이 분명하다.

 

수도인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놀라운 자연의 신비를 담고 있는 여러 국립공원도 볼거리로서 훌륭하지만 아드리아해 연안의 숨막히는 비경이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그 가운데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바로 중세 고성도시인 두브로브니크이다.

‘아드리아해의 보석’ ‘아드리아해의 여왕’, 이것은 크로아티아의 최고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의 애칭이다. 허망한 명성이 아니기를 기대하는 관광객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듯 이 중세의 도시는 감동을 선사해준다. 구불구불한 해안을 따라 두브로브니크의 도시 초입에 들어서면서 만난 평이해 보이는 항구도시가 어느덧 언덕을 하나 넘어서자 모든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모습으로 변한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등성이에 지그재그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도달하는 해안의 고성은 숨이 턱하고 막힐 만큼 아름답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닌 은은한 수은등 아래 다소곳하게 들어앉은 고성의 모습은 주변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면서 세속적으로 잣대질하면서 여행을 해온 사람에게 할 말을 잃게 한다. 그저 바라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심하게 흔들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굽이굽이 돌아내려가는 동안 보이는 두브로브니크의 파노라마는 끊임없이 가슴에 들어앉는다. 두브로브니크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것이나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지구상의 낙원을 보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한 말이 결코 허울 좋은 포장이 아니었음이 실감난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전쟁이 한창이던 1991년에 프랑스 학술원장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인이 범선을 띄우고 두브로브니크를 지키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두브로브니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어찌 국적이나 인종이라는 울타리로 제한을 받을 일인가. 이곳을 방문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크로아티아 최남단 아드리아해의 연안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세기부터이다.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수상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모양을 갖춘 것은 13세기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벌써 800여년의 역사를 두고 중세와 근현대를 두루 경험한 역사적인 장소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를 거치면서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선 두브로브니크는 험난한 정세에도 굳건히 자신의 영역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이 되어왔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침공 당시에도 주변 국가의 도움으로 전쟁의 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독립 과정에서 빚어진 전쟁에서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고성 위로 쏟아진 엄청난 양의 폭탄들. 부서지고 깨져버린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을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고성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가 말을 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뇌쇄적인 태양 빛이 아드리아해를 훑고 지나가면서 해안선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에 멈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름 사이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이 도시의 고성에 다양한 의미와 수식어를 붙이게 만든다. 바다와 조화를 이룬 고성의 모습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연인을 보는 듯 눈을 즐겁게 한다.

 

두브로브니크는 크게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지만 구 도시에 속하는 고성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어 성 주위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해안도로를 따라 고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점차 다가오는 성의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성은 높이 25m의 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둘레 길이만 해도 2㎞에 달한다. 가히 세계 최고의 성벽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한데 16개 탑이 각각의 모양으로 성의 중후함을 돕는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성벽 사이로 난 작은 도로를 지나게 되는데 성벽에서 전해오는 질감이 결코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손을 대면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낼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드디어 고성 내부에 들어서면 탄성이 터져나온다. 고성의 중심 거리라 할 수 있는 292m의 스트라툰이 고성을 관통하고 있는데 번들거리는 넓은 대리석 거리가 주변 건물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사실 이 거리만 해도 49개의 포탄 세례를 받아 다시 개보수를 해놓은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지만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고성 내부에 자리한 중심 거리인 스트라툰. 거리를 따라 오래된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천카페에서 차를 즐기는 시민과 관광객의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지중해 주변 국가의 모습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느낌만은 새롭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첨탑 아래의 조각상도 그러하고 작은 골목마다 하나하나 배어나는 중세적 도시에서 인간적 아름다움이 먼저 느껴진다.

 

그것은 관광지로 남기 위해 잘 포장된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지의 변모를 제대로 살리기에 앞서 옛 모습을 최대한 되찾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스트라툰을 중심으로 주요 볼거리들이 집중되어 있다. 거리의 시작점에 있는 성블레즈광장의 오란도 기사상을 중심으로 성당, 궁전, 미술관, 극장, 학교 등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도열하고 있다. 성 안에서 만나는 프란체스코수도원에는 1391년부터 운영되어온 약국이 있다.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중세시대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약국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 훌쩍 넘었다니 놀랄 일이다.

 

점차 아드리아해의 햇살이 빛을 잃어갈 무렵이면 두브로브니크의 고성은 낭만의 거리가 된다. 상점들이 서서히 문을 닫는데 이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불을 하나 둘 더한다. 이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결코 크지 않다. 작고 아늑한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을 지을 당시 커다란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성 안에 차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자는 그것이 전혀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테이블이 고작 대여섯 개인 작은 재즈바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그리고 재즈 뮤지션의 멋진 음악과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황홀한 추억거리가 된다. 흑맥주 한 잔에 나이 지긋한 뮤지션과 미소를 주고받다 보면 이국의 밤은 흥겹게 흘러간다. ▒


Tip> 넥타이와 볼펜

 

공식 행사나 비즈니스 때문에 차려입은 정장에서 넥타이는 빠질 수 없다. 패션 감각의 키포인트라고까지 여기기 때문이다. 일상적 필기구인 볼펜은 어떤가. 이 또한 우리의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물건이다. 뜬금없이 넥타이와 볼펜 이야기를 꺼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이들의 관계.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탄생된 물건이라는 것. 넥타이는 17세기에 크로아티아 사병이 착용하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고, 볼펜은 펜칼라(S. Penkala)라는 크로아티아의 한 기술자가 1906년에 발명했다.


/ 글·사진 = 오상훈 여행작가위클리조선 | 기사입력 2007-09-18 14:12 기사원문보기

 

고성에 자리한 프란체스코수도원의 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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