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스위스여행

유럽여행/버스타고 유럽여행 스위스~이탈리아 7박 8일

향기男 피스톨金 2008. 3. 6. 11:44

 

         버스타고 유럽여행 스위스~이탈리아 7박 8일



넘치는 자유시간에 외국인과 다국적 요리 즐겼더니 어느덧 우린 친구가 되었다

패키지 여행이란? '자유시간 거의 없이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다 꼬박꼬박 한식 지겹게 챙겨먹고 바가지 요금의 옵션투어도 몇 차례 해준 다음 마음에 없는 팁까지 줘야 하는 것'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지. 머리 싸매며 기차시간, 버스시간, 여행루트, 숙소 등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수 차례의 배낭여행을 통해 자유로움을 한껏 맛본 나로선 그저 답답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 하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과 함께 하는 패키지 여행이라면? 흐음, 적어도 한식은 먹지 않겠죠? 하하하! 100% 영어로 진행된다는 다국적 패키지 여행, 언어의 압박이 살짝 느껴지긴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바리바리 짐 싸서 출발!

어색한 인사, "Nice to meet you"

늦은 밤, 취리히의 클로텐 국제공항엔 곧 있을 '유로 2008' 홍보물과 포스터가 가득. 여행사의 픽업 서비스를 받아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정식 여행은 이튿날 낮 3시부터 시작이니 그때까진 자유시간. 투어 가이드인
오스트리아 여성 잉그리드가 엘리베이터 앞에 첫날의 일정을 미리 부착해 놓았길래 읽어보니, 3시 정각에 로비에 모여 인사를 나눈 다음 취리히 시내를 가볍게 구경할 예정이란다. "다국적 여행에선 시간 엄수가 생명입니다", 출발 전 몇 번이고 거듭해 얘기하던 여행사 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알았어요 알았어, 3시 잊지 않을게요.

드디어 여행의 시작인 오후 3시, 참가자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아, 왜 이렇게 어색한걸까? 입 안에선 학교에서 세뇌 당한 인사말 "Nice to meet you"가 맴돌지만 겉으론 그저 어색한 웃음만 날리고 있을 뿐. 나 그 동안 영어 공부 헛 한거야? 평소의 작렬하는 수다는 어딘가에 감춘 채 수줍은 미소만 날리려니 답답해 죽을 지경. 7박 8일의 여행이 끝날 때쯤엔 나도 이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까?

화장실까지 딸린 큼직하고 편안한 버스로 취리히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로 첫 저녁식사. 어느새 친해진 몇몇 사람들은 가게에서 와인과 치즈를 사 누군가의 방에 모여 한 잔씩들 하기로 약속하는 분위기다. 아, 나도 저기 끼어서 놀고 싶은데…. 이 죽일 놈의 영어 울렁증.

저 그렇게 곱게 자라지 않았거든요?

이른 아침, 식사 후 버스에 짐을 싣고 독일 뮌헨으로,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이동이다. 점심식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볍게 해결. 뭐라구, 화장실 사용료가 0.5유로(약 700원)나 된다구? 대신 겁나게 청결하긴 하구나.

여행 참가자들 대부분이 어느새 한 테이블에 모여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비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내 모습. 누군가 말을 붙이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을 하긴 하지만 내가 나서서 대화를 주도할 엄두는 나지 않으니 이를 어쩐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문장을 구성한 다음 입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나름 토익, 토플 고득점자인 (믿어주세요) 내가 영어 때문에 이렇게 헤매다니 좌절이야, 좌절.

그런 나를 보며 갈색 머리의 이본느가 한 마디. "넌 꼭 유리상자 안에 담긴 인형 같아." 헉, 저 그렇게 곱게 자라지 않았거든요? 주먹 불끈! 그리하여 그날 밤, 게리의 방에서 열린 와인 파티에 과감히 참석해 버렸다. 오 예, 건배건배건배! 그래, 영어 좀 못하면 어때? 일단 확 내뱉고 보는 거야. 오렌지든 어륀지든, 발음 좀 부족하면 어때? 난 이런 사람이다, 라는 걸 보여줘야 친해질 수 있잖아. 왠지 내일부터는 이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바보 같은 실수, 또 실수

날씨 좋다,
이탈리아로 고고씽!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에 가기 위해선 당연히 배를 타야겠지? 여행사 전용 쾌속정을 타고 순식간에 베네치아에 도착. 자유시간이 넉넉한 대신 어디에서 몇 시에 모인다, 라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져 산마르코 광장 구경을 실컷 한 다음 노천 식당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냠냠 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니 앗차차, 잉그리드와 약속한 곤돌라 투어 시간이 다 되었다. 꺄악 안돼~ 놓칠 수 없어~. 마구 달려 겨우 곤돌라에 올라 타 숨을 헉헉 몰아 쉬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걸까? 곤돌라 투어를 마치고 다시 혼자가 되어 잠시 자유시간을 즐겼다. 숙소로 돌아가는 쾌속정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돌아갔지만 익숙한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쩐다. 5분전, 3분전, 1분전…. 수 많은 선착장들 중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배라 절대 기다려 줄 수 없다고 잉그리드가 그렇게 경고했건만 어쩌면 좋지? 이미 시간은 출발시간을 10여분이나 초과한 상황. 망신살 제대로 뻗쳤구나, 아냐,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는 큰 일이잖아.

패닉 상태에 빠져 멍하니 서 있는데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우왓, 버스에서 내내 옆자리에 앉아서 왔던 제임스! 다행히도 잉그리드가 출발하려는 배를 무리하게 붙잡아 놓고서 기다려 주었다는 이야기에, 미안함과 부끄러운 감정이 솟아올라와 눈물이 나 버렸지 뭐에요. 잉그리드의 따뜻한 포옹과 모든 멤버들의 박수를 받으며 배에 올라타니 한 순간에 긴장이 확 풀리는 기분. 아이고 삭신이야~.

이거 혹시, 스파르타 식 어학연수?

이탈리아 베로나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히로인(heroine) 줄리엣의 생가가 있다. 오, 이 발코니가 바로 로미오가 타고 오르던 발코니란 말이지? 오, 이 동상이 바로 줄리엣의 동상이란 말이지? 사진 찍는 사람들마다 하도 만져대는 통에 반질반질하게 가슴이 닳아버린, 365일 성희롱을 당하는 가엾은 줄리엣(하지만 나 역시 같은 포즈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역시 넉넉한 자유시간이 주어진 이곳 베로나에선 베네치아에서의 악몽을 되새기며 만남의 장소와 시간을 거듭 확인 또 확인!

패션의 천국 이탈리아답게 거리에 가득한 옷이며 핸드백 매장의 쇼윈도엔 전부 'Saldi'라는 말이 붙어 있네요.

영어의 'Sale'이란 뜻이다. 그걸 미처 몰랐던 게리가 "대체 Saldi가 뭐길래 모든 가게에서 그걸 파는 거야?"라고 물어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여행 초반이었다면 수줍게 웃고 말았겠지만 이젠 '어, 그거 아주 좋은 거야. 여자친구 사다 줘~' 라고 농담을 건네고 있으니 스스로도 놀랄 노자! 여전히 문법 엉망, 발음 엉망인 영어이긴 해도 자연스레 입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짧은 시간 동안 스파르타식 어학 연수를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제서야 입이 트인 기분인데 여행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섭섭하기까지 하다.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다 무심결에 옆자리 조이에게 "다음주쯤이 내 생일이야"라고 한마디 했더니 그녀가 큰 소리로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다들 와인 잔을 높이 들며, 만국 공통의 축하송인 'Happy birthday to you'를 불러준다. 와, 이런 생일 축하를 언제 또 받아볼 수 있을까?

7박 8일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제임스의 방에 모두들 모여 급조한 와인 파티. 누군가의 노트북에서 팝 음악이 흘러 나오자 다들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끝없는 수다, 끝없는 사진 촬영. 나이와 국적 따위 상관없이 모두 친구가 된 느낌.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니 비행기 시간도 다 다르기 마련. 그걸 감안해 공항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니 편하다. 버스 안에선 가이드인 잉그리드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항상 웃는 활기찬 모습으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정력적으로 일하는 그녀. 이미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프랑스어까지 구사하면서도 새로 헝가리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잉그리드는 놀랍게도 70대의 할머니! 50대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보기 좋게 틀려버렸네. 언제나 젊은 몸과 마음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여행의 힘이겠지요. 과거에도 패키지 여행 경험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모두에게, 그리고 가이드에게까지 애정을 느껴본 것은 처음 있는 일.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되길.

(02)3481-9680
조선일보|기사입력 2008-03-06 09:13 |최종수정2008-03-06 10:05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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