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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금, 억, 억,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향기男 피스톨金 2008. 11. 18. 14:59

은퇴자금, 억, 억,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8.11.18 10:59

[[오마이뉴스 제윤경 기자

 

요즘 트리플 30이라고 하잖아요. 30세까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30년은 경제활동을 하고 나머지 30년은 은퇴해서 산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경제 활동을 하는 30년 동안, 은퇴해서 사는 30년 동안 쓸 돈을 준비하라고 하죠.

그렇지만 현실은 돈 버는 30년 동안 돈을 순조롭게 버는 것도 만만치 않잖아요. 돈 쓸 일도 천지구요.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나머지 30년 노후생활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 공포심까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펀드 자본주의라고 할 만큼 지난 몇 년간은 저축의 시대가 아닌 투자의 시대가 대세를 이루었다. 저축이 아닌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고령화와 자녀 교육비 문제였다.

트리플 30이라는 말에서처럼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30년이다. 사회 진출은 자꾸 늦어지고 경제 수명은 단축된다. 그런데 평균수명은 해마다 0.5세씩 늘어나고 있다. 돈 벌기 위해 30년을 투자하고 30년 어렵게 돈 벌어서 30년 동안은 쓰고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돈 버는 30년 동안의 자산 증식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자산 증식을 위해서는 적금 같은 단순한 저축으로는 세금 떼고 나면 마이너스 수익률이기 때문에 투자를 통해 수익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투자가 대세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은퇴자금 '억'을 위해 연금과 투자에 '몰빵'하라?



조기퇴직, 고령화시대를 맞는 386세대에겐 노후자금 마련도 만만치않은 과제다. 그러나 인생 이모작을 통해 경제 수명을 연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노후준비를 위해 '억'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공포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렇게 돈벌이 없는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법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해법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며 심지어 좌절감과 공포심을 준다는 것이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PB(private banking)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60세부터 필요한 노후 자금을 현재가로 매월 200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물가 상승까지 감안해서 지금부터 그때까지 대략 10억 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부터 매월 100만 원이 넘는 돈으로 오로지 노후를 위한 장기투자를 하라고 권한다.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소득은 320만 원가량이다. 그중 30%를 노후를 위해서만 저축과 투자를 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노후가 되기 전에 목돈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자녀 교육비 마련도 만만치 않고 주거비도 웬만한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 많은 돈을 다 지출하고도 30여 년 동안 10억 가까운 돈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이 사교육비 지출이나 주거비 지출이 크지 않았던 현재의 은퇴 세대들도 54.46세에 6천여만 원의 금융자산만을 가진 채 은퇴한다고 한다.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은퇴자 503명 대상 조사 결과)

하물며 엄청난 주택비용과 자녀의 대학등록금으로 천만 원을 넘게 지출해야 하는 지금의 경제활동 세대가 10억 가까운 은퇴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10억은커녕 무리한 주택 마련에 빚 갚느라, 아이들 사교육비 감당하느라 빚 안 지고 은퇴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 유발에 한때 은퇴자 협회에서도 '은퇴자금, 억, 억,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성명서에서는 "공교롭게도 은퇴 자금 월 470만원, 8억1천만 원, 11억5322만 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발표하는 곳은 삼성연구소나 금융계열이다. 사망보험을 '보장자산'이라는 말로 포장해 무섭게 안방을 파고들고 있다"라며 은퇴 공포를 유발하는 금융사와 그와 관련된 연구소들의 공포 마케팅에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다.

금융사 PB들의 은퇴 준비를 위한 조언을 담은 표를 살펴봐도 60세부터 200만원씩 쓰기 위해 120만원, 150만원씩을 장기 저축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전문가 조언은 장기 금융상품에 과도한 투자를 해야 하는 금융 과소비를 낳을 뿐이다.

공포 마케팅이 오히려 합리적인 노후 준비 의지 꺾어


한때 '보장자산'이란 말을 유행시킨 삼성생명 광고
노후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는 있으나 노후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는 30대 40대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현재 하고 있는 노후 대비도 자녀 교육을 위해 언제든 희생할 용의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PCA생명이 직장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녀 교육을 위해 은퇴 준비를 희생하겠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43%에 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노후 준비를 위해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라면 차라리 자녀교육에라도 제대로 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이다. 너무 과도한 공포 마케팅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후 준비를 아예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은퇴자 협의회 성명에서도 "은퇴가 돈, 돈으로 점철되는 노령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무차별한 마케팅으로 자포자기한 대다수가 '그래 까짓것 될 대로 되라지'라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 걱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차별 광고와 발표가 국민들에게 불안감, 불확실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공포 마케팅 탓에 자신의 소득에 비해 과도한 수준으로
연금보험에 가입한 사례가 적지 않다. 어느 신입사원은 입사 초기 재무 상담을 해준다는 이야기에 보험설계사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결국 소득의 절반인 100만 원가량을 변액유니버설보험 여러 개에 나눠 가입하기도 했다. 20세부터 조기 은퇴를 대비하면서 동시에 중간 중간 돈 필요할 때마다 찾아 쓸 수 있는 중도인출 기능을 활용해 자금 운용을 하라는 설계사의 강한 조언이 그럴듯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은퇴에 대한 공포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재테크 비법을 통해 큰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대박투자 기대심을 불어넣기도 한다. 쓸 돈은 많고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낮은 이자율로 저축을 해서는 어차피 준비가 안 되니 부동산이나 주식 등으로 큰 수익을 올려 노후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도한 부동산 투자를 해 현재 큰 곤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일산에 사는 어느 부부 교사도 노후준비를 위해 아파트 2채에 무리한 투자를 했다. 3억짜리 아파트 한 채에 이미 1억6천만 원의 빚이 껴 있는데도 5억짜리 아파트 분양에 뛰어든 것이다. 한 채는 부부가 노후에도 계속 거주하기 위한 용도로 매입했고, 다른 한 채의 경우 계약금 할인 분양에 중도금 무이자 대출이라는 조건이 붙은 아파트에 뒤늦게 노후준비용 투자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결국 중도금 2회를 무이자 대출로 유지하고 있는데 잔금 치를 때까지 전매가 전혀 없어 빚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엄청난 빚만 남은 현실로 돌아왔다.

소득 없는 노후가 아니라 오래 일하고 사는 행복한 노후 계획 필요


이제 노후대책은 억 단위 자산을 마련하는 것에서 은퇴를 연장해 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진은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노인들.

ⓒ 정정자
60세까지만 일하고 그때부터 오로지 자산으로만 노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실적으로 60세에 완전히 소득이 중단되어도 괜찮은 은퇴는 없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인 60세에 오로지 자산에만 의존해서 살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좋은 정보가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은퇴를 연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점점 길어지고 있는 고령화 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도록 교육을 하고 직업 설계를 돕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조언이 절실하다. 이미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사업을 진행하는 비영리 단체도 있다.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하는 해피시니어가 바로 그런 곳이다. 해피시니어에서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퇴직자 학교인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행복설계 아카데미는 이미 퇴직 직장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형 사회 공헌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바로 이와 같은 행복한 인생설계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모작을 통해 경제 수명을 연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노후준비를 위해 '억'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공포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보다는 인생 전 과정에 걸친 소득 흐름과 지출흐름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면 된다. 거기에 목돈이 지출될 몇 가지 재무사건을 중심으로 저축과 소액의 장기투자만을 준비해도 돈 때문에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휩쓸려 다니다 오히려 돈을 까먹는 시간은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은 애초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100세까지 살 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 끔찍하다는 소리부터 나오는 것은 그만큼 '돈'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 돈에 대한 두려움을, 금융상품 판매를 위한 공포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신 행복하게 오래 살 계획을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해 나가는 인생 이모작 계획, 인생 설계를 더 늦추지 않고 당장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