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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고 불경한 담배 이야기

향기男 피스톨金 2009. 6. 18. 16:08

엉뚱하고 불경한 담배 이야기

 

골초 임금 정조, 식후에 한 대 ‘큰 일’ 보며 한 대 … 나치는 금연 제국
고백한다, 나는 경력 22년차의 ‘골초’다. 하지만 나 역시 담배가 없었으면 한다. 500년 전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를 뒤져 이 요망스러운 풀을 인류에게 퍼뜨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랬으면 마야와 아스텍의 제단에서 신과 인간의 교감을 이루던 거룩한 안개로서나 이 풀을 기억했을 게다. 역사는 그러지 못했으니…. 1796년 11월 18일, 정조는 신하들에게 명한다. “남령초(南靈草·담배)를 주제로 답하라.” 조정까지 치밀고 온 금연 찬반론에 (흡연 찬성을 전제로) 정책 자문을 했다. 글이 어명에 대한 답일 수 있다면 영광이다. 담배의 해악을 자세히 적지 못해 돌아가신 국왕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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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건 1618년(광해군 10년)이란 게 ‘정설’이다. 일본에서 담배가 들어왔고 우리는 여진과 중국 북방 지역에 전했다고 한다. 담배를 ‘남령초(南靈草)’라 해서 남방에서 들여온 신비로운 풀로 여겼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담배를 배워 왔다는 기록도 전한다.

여진에 담배를 전한 건 임경업(1594~1646) 장군이다. 1640년 청이 명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 임경업 장군이 출병한다. 군량미가 떨어져 청에 보급을 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그는 수레에 싣고 온 담배를 동북 지방 여진인들에게 팔아 군자금을 조달했다. 중국 전체로는 다른 경로로 그 이전에 담배가 전해졌다.

세계적으로 담배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뒤 유럽에 전해졌다. 1560년 전후 유럽에서 담배가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남미에서 전해진 감자가 200년이 지난 뒤에야 밥상에 오른 것과 달리 담배는 반세기 만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미국 독립전쟁은 ‘담배전쟁’이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1774년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의 권리’라는 글에서 ‘인간의 권리’를 부르짖는다. “무력으로 우리를 죽일 수는 있지만, 자유로부터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아메리카의 ‘자유 정신’에 영국의 지식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흑인 노예를 부리는 자들이 자유를 외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 새뮤얼 존슨(1709~84)의 냉소다.

‘국부’ 조지 워싱턴(1732~99)과 마찬가지로 제퍼슨도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주였다. 담배 농장주 워싱턴과 제퍼슨은 영국의 무역 규제 탓에 당시 빚더미에 올랐다. 부채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한 시점에 독립전쟁이 터졌다. 영국이 식민지 담배 교역을 지나치게 통제한 게 독립전쟁의 실질적 동기였다는 해석이다.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은 5000만 파운드의 담배를 담보로 프랑스의 군사 지원을 끌어냈다.

1613년 신대륙 이민자 존 롤프(1585~1622)가 영국에 수출한 잎담배가 ‘대박’이 난 뒤로 미국은 ‘담배의 제국’이 됐다. 롤프의 부인이 그 유명한 ‘포카혼타스’다. 인디언 아내가 담배 재배법을 알려 줬다. 인디언은 미국에 너무나 많은 것을 줬다.

‘식후 담배’는 과연 맛있을까?

‘골초’들의 변명만큼 본인에겐 절실하고 남에겐 구차한 게 없다. 흔한 게 ‘식후 담배’의 유혹. 식후엔 ‘담배 맛이 달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4000여 가지 담배 연기 성분 중 ‘페릴라르틴’이란 게 있다. 침에 녹으면 단맛을 내는 성분이다. 식후에는 입안에 기름기가 남는데 혀끝엔 비교적 덜 남는다. 이 혀끝에 단맛을 느끼는 세포가 몰려 있다. 쓴맛을 느끼는 부위인 혀 표면은 식후에 기름기로 덮인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단맛엔 더 민감하고, 쓴맛엔 더 둔감한 이유로 식후에 담배 맛이 더 ‘달다’. 식후 담배가 단맛을 주는 건 사실이나 니코틴이 위액 분비에 악영향을 줘 위궤양 발생률을 높인다.

골초의 변명 중 또 하나는 담배 없이 ‘큰 일’을 볼 수 없다는 것. 조선의 ‘골초 임금’ 정조(1752~1800)의 담배 예찬론을 보자. “담배는 사람에게 유익하오. (중략) 밥 먹은 뒤에는 그 도움을 받아 음식이 소화되고, 변을 볼 때는 악취를 물리치오.” 임금도 변을 볼 때 악취를 피하려고 담뱃대를 물었다. 물론 ‘변’과 결합한 담배 냄새는 타인에게 더 지독한 악취겠다.

히틀러, 담배를 금하다

담배를 금지한 정권은 많다. 청나라도 담배를 금했다. ‘선참후문(先斬後聞)’이었다. 먼저 목을 벤 뒤에 죄를 물었다. 담배를 한 근 이상 소지한 자는 목부터 베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금연 정권’은 히틀러(1899~1945)의 제3제국이다. 히틀러는 특히 여성의 흡연을 싫어했다. 나치 여성 동맹은 우수 종족 번식에 헌신하겠다는 서약으로 담배를 끊었다. 1930년대 말 독일은 공공장소와 차량 이동 중의 흡연을 금했고, 야외 흡연 금지법을 부활시켰다. 히틀러의 금연정책은 ‘과학적’ 연구자료에 기반해 지금도 설득력이 있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처음으로 밝힌 의사도 나치 당원인 프란츠 뮐러였다.

팔수록 적자인 담배는 ‘이것’

KT&G에서 생산하는 2000원짜리 담배에 붙은 세금을 보자. ▶담배 소비세(641원) ▶지방 교육세(320.5원) ▶국민건강증진기금(354원) ▶폐기물 부담금(7원) ▶부가세(181.8원). 세금·기금 등만 합쳐도 1504.3원이다. 여기에 소매인 마진 10%(200원)가 붙는다고 한다. 2000원짜리 담배에서 세금과 소매 마진이 1704.3원이니 원료값은 얼마일까. KT&G에 따르면 2000원짜리 ‘이 담배’는 생산 자체가 적자다. 가격과 상관없이 20개비 한 갑에 붙는 담배 세금은 똑같다. 종량세이기 때문이다. 부가세만 종가세로 붙는다.

‘담배 다이어트’가 효과 있을까?

‘다이어트 흡연’이 유행하기도 했다. 담배로 살을 뺀다는 건데 흡연이 식욕을 억제한다는 게 그 이유다. 니코틴이 혈중 카테콜아민을 상승시켜 에너지 저장을 막고, 유리지방산을 증가시켜 지방 분해를 돕는다는 원리다. 일시적으로 살이 빠질지는 모르지만 ‘복부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기근 때 담배가 식욕 억제제로 사용된 사례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 전 농민들은 잇따른 기근을 담배로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담배는 지력(地力)을 급격히 떨어뜨려 다른 작물의 재배를 어렵게 한다. 담배로 버티는 기근은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담배 연기 87%는 옆 사람이 마신다

흡연 때 배출되는 연기는 4000여 종이다. 이 중 상당수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흡연 시 발생하는 담배 연기 중 흡연자가 실제로 들이마시는 연기는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87%는 담배가 그냥 타들어가서 생기는 소위 ‘간접흡연’ 연기다. 또 담배 연기 4000여 종 모두를 무게로 쟀을 때 담배 맛을 좌우하는 성분은 고작 9%라고 한다. 흡연자가 탐하는 쾌락에 비해 타인의 고통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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