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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제조기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28. 13:54

폭탄주 제조기



음식점에서 폭탄주를 제조할 때 주당들은 주인에게 "기계를 달라."고 말한다. 옛날에 한정식이나 요정에서 '기계'라고 말하면 화투를 뜻했다.

 

음식상이 들어오기 전에 한판, 음식을 다 먹고 난 다음에 상을 밀어놓고 또 한판, 담요를 펴놓고 고스톱 등 화투판을 벌이려는 것이다. 어느 덧 음식점에서 화투치는 풍경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대신 '기계'는 이제 폭탄주 제조도구를 뜻하게 됐다. 손님이 기계를 요청하면 주인이나 종업원은 쟁반이나 반듯한 접시에 젖은 물수건을 깔고 그 위에 빈 맥주잔과 양주잔을 들고 온다. 마치 임금에게 탕제를 올리는 임금님 전속 의사처럼 말이다.

 

젖은 물수건은 폭탄주를 만들 때 흐르는 술을 흡수시키거나 닦는 용도이다. 사실 말이 폭탄주 기계이지 특이할 것은 없다. 250-280CC정도 되는 유리잔인 맥주 글라스와 30CC정도의 작은 양주잔인 '샷 글라스'이다.

 

그러나 폭탄주를 만드는 기계 자체가 선물이 되고 이를 애지중지하는 주당들도 생기는 모양이다. 검찰의 고위간부인 L모씨는 폭탄주 제조때 늘 도자기로 된 자신의 뇌관(양주잔)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뇌관용 잔은 웃부분이 금박 테로 둘러져 있다고 한다. L씨는 자신의 도자기 폭탄주 도구를 갖고 다니다가 폭탄주를 제조할 때면 그 잔을 품에서 꺼내 사용한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그가 모 도자기 회사에 특별 주문해 제작한 폭탄주용 뇌관잔으로 알고 있다.

 

국내 한 신문사 간부들은 회사와 제휴한 일본 신문사의 간부들에게 폭탄주를 대접하고 폭탄주 제조용 도구-도구라봐야 맥주잔과 양주잔-를 선물로 증정했다. 일본 신문사 간부들이 이 폭탄주 도구를 들고 가 열심히 폭탄주잔을 마셔대는 바람에 폭탄주가 일본 신문사에 유행하게 됐다. 국내 신문사 사람이 전한 이야기이다.

 

대개 술을 마실 때 술의 알코올 도수와 잔의 크기가 반비례한다. 40도 이상으로 독한 위스키는 대개 30CC정도의 작은 이른바 '샷 글라스'로 마신다. 소주의 경우 20-25도선인데 그 잔의 용량은 50CC정도이다. 반면 알코올 도수가 5도 남짓인 맥주는 250-280CC정도의 큰 잔으로 마신다.

 
폭탄주를 마셔보면 역시 맥주잔의 절반 정도만 맥주를 채우고 여기에 양주잔을 넣는 게 부담이 없다. 맥주잔에 소주잔을 뇌관으로 넣고 양주를 부으면 마시기가 힘들다.

 

그릇이나 도자기 제조회사 사람들은 폭탄주 제조기를 만들어 상품화시킬 만도 하다. 이왕이면 폭탄주 기계를 만들 때 맥주잔 용량과 양주잔 뇌관을 보통의 맥주잔과 양주잔보다 적은 용량으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폭탄주의 거대한 폭발력에 주눅이 든 필자의 작은 소망이다. 그러면 나도 그런 폭탄주 기계를 하나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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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서울신문 논설위원
'폭탄주,그거 왜 마시는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