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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의 '현장력(現場力)'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2. 16. 10:18

       

         경영자의 '현장력(現場力)'

 

 

요즘 일본에서 ‘실패학’ 연구 대상은 미국 GM이 아니라 일본 소니다. 1970~80년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신화를 만든 소니가 적자 구렁텅이에서 직원이나 자르는 삼류(三流)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휘청거리는 똑같은 적자 제조업체를 두고 벌이는 연구지만 일본과 미국의 접근법은 문화의 차이만큼이나 확실히 다르다.

GM을 분석하는 미국은 “왜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았나?”라는 재무적(財務的) 접근법을 취한다. 그래서 GM의 재무구조를 망가뜨린 강성 노동조합과 기업의 의료비 부담 등 주로 외부환경적 요인에서 몰락의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소니를 분석하는 일본은 “왜 예전처럼 훌륭한 물건을 못 내놓았나?”라는 현장적(現場的) 접근법을 취한다. 근로자에 대한 금전 부담으로 따지면 소니가 GM보다 적을 리 없지만, “소니 직원의 보수가 너무 많아서 저 모양”이라는 비판은 일본 내에선 신기할 정도로 제기되지 않는다.

수개월을 갑론을박하다 일본의 전문가와 매스컴이 내놓고 있는 결론은 “경영이 현장 기술자의 사기를 꺾었다”는 소박한 명제에 집중되는 듯하다. 기술자 출신 창업주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트랜지스터·VTR·워크맨을 통해 현장에 이른바 ‘소니 DNA’를 심어놓았다.

 

그런데 1997년 이부카 사후(死後) 소니를 지배한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체제는 엔터테인먼트·인터넷·게임 등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소니 DNA’가 흐르는 공장 현장을 소외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현재 소니의 위기가 신사업 분야가 아니라 TV와 같은 소니의 전통적 절대강세 분야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뒷받침한다.


 

소니의 현장력이 고갈됐다는 것은 “소니의 공장은?” 하고 물으면 기업에 밝은 일본 사람들도 머뭇거린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도요타의 공장은?” 하고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도 “아이치(愛知)”라고 금방 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에 밝은 사람들은 ‘마쓰시타 가도마(門眞)공장’ ‘캐논 오이타(大分)공장’ ‘샤프 야오(八尾)공장’ 등 기업의 대표 현장을 하나씩 꼽을 수 있다. 이들 기업은 지금 일본 경제의 부활극을 이끄는 승자(勝者)들이다.

 

이들과 대비되는 소니와 비슷한 경우가 산요이며, 산요 역시 적자의 나락에서 인력 삭감과 공장 폐쇄에나 열중하고 있다.

일본에서 기업 성패의 열쇠로 논의되는 것은 천재적 경영자가 아니라 보통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의 ‘현장력(現場力)’이다. 이런 관점에서 상위 20%만 잘 챙기면 된다는 영미(英美)식 경영관은 일본에선 무너져 내렸다.

 

오히려 하위 80%의 현장력이 기업 운명을 좌우한다는 ‘인간 경영’에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런 경향이 평생 고용, 임금 인상과 같은 유치한 노동자 후대(厚待) 논란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평생 고용’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도요타 역시 종업원의 30%가 계약직인 기간제 노동자이며, 요즘 잘 나가는 마쓰시타 역시 구조조정을 밥 먹듯 한다.

일본이 천착하는 ‘인간 경영’은 “어떻게 하면 현장 노동자의 정체성과 창의성을 복원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며, 결론은 ‘노동자만큼 현장을 꿰뚫고 리드하는 경영자의 복원’으로 좁혀지고 있다.

 

즉 ‘경영자의 현장력’ 복원이다. ‘천재기업 소니의 실패학’ 이면에서 ‘범재(凡才)기업 도요타의 성공학’ 연구가 맹렬히 진행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