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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가슴의 털, 탐내지 마세요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21. 14:07

 

   내 가슴의 털, 탐내지 마세요"

    
[오마이뉴스 배한수 기자] 안데스 선인들의 묘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푸노(Puno)의 시유스타니(Sillustani) 유적.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르면 대부분 시유스타니의 석탑묘 만을 둘러보고 떠나지만,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안의 한 섬에는 해맑은 눈을 가진 특별한 존재가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페루의 3대 동물 중 하나인 비꾸냐.

시유스타니 유적 근처에는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 좋은 호수가 하나 있다. 이 호수의 이름은 우마요(Umayo).

▲ 구름이 호수에 비치는 아름다운 호수 우마요(Umayo).
ⓒ2005 배한수
시유스타니 유적을 배경으로 멋들어지게 펼쳐진 이 호수는 경치가 빼어날 뿐만아니라 하늘의 구름이 물 위에 그대로 비칠 정도로 너무나 해맑다. 그런데 이 호수안의 작은 섬에는 특별한 존재가 숨어 있다. 바로 이 호수 안의 외딴 섬에서 야생 비꾸냐 약 5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

일행은 비꾸냐를 보기 위해 시유스타니 섬 선착장에 있는 조그만 나룻배에 탑승했다. 시유스타니 유적에서부터 비꾸냐가 있는 우마요섬까지 많지 않은 관광객들을 나르는 이 배는 올해 열 살 먹은 꼬마아이가 홀로 노를 저어 운행하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아직 커다란 노를 젓기엔 너무나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꼬마는 손님을 싣고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노를 저어 나갔다. 학교는 안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태양에 그을려 검게 타버린 꼬마의 손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앞서, 노를 젓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건 내 일이야!"라면서 도움을 거절한다.

▲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를 저어 돈을 버는 소년.
ⓒ2005 배한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가길 30분여, 배는 우마요섬 한 귀퉁이에 세워졌다. 섬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언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행을 따라 섬 귀퉁이를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는 한 채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아름다운 전경 속에 위치한 이 섬의 유일한 가옥.
ⓒ2005 배한수
구름이 물 위에 그대로 비치는 배경에 아담하게 지어진 집은 흡사 동화책의 한장면을 연상 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집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슴 같은 동물 한 마리가 일행들 속으로 달려들었다. 그 동물의 정체는 바로 비꾸냐.

▲ 아름다운 빛깔의 털과 야윈 체구를 가진 비꾸냐.
ⓒ2005 배한수
소목 낙타과에 속하는 동물로 기다란 목과 야윈 체구를 가진 비꾸냐. 몸통 전체를 뒤덮은 연갈색 털과 가슴 부분의 흰색 털이 예쁘게 조화를 이룬데다 맑게 빛나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비꾸냐는, 사뿐사뿐 뛰어오더니 이내 일행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비꾸냐는 이미 낯선 사람의 방문에 적응이 되어 있는지, 두려움 없이 연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먹을 것을 찾는다.

▲ 일행에게 달려든 비꾸냐(연신 냄새를 맡으며 먹을 것을 찾는 중이다).
ⓒ2005 배한수
갖고 온 과자를 건네니 덥썩 물어 맛있게 씹어 먹는 비꾸냐. 알파카, 야마와 더불어 안데스 고지대 초원에서만 사는 동물인 비꾸냐는 유난히도 털이 곱고 색이 예뻐 옛부터 그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특히나 가슴 부분에 나있는 흰색 털은 털 중에서도 최고로 쳐, 1kg당 500달러에 이를 정도로 고액에 밀매되었기 때문에 비꾸냐는 밀렵꾼들에게 발견 즉시 무차별 도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비꾸냐는 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고, 도살은 물론 가까이에서 보는 것 조차 금지되어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꾸냐는 자신들을 무차별 도살한 사람들이 무서워서일까, 사람들이 반경 50m 이내에만 접근해도 멀리 달아나 버린다고 한다.

일행에게 달려든 비꾸냐는 이 섬에 거주하는 유일한 가구에서 키우는 것이었다. 오랜시간 사람에게 적응된 탓에 이 비꾸냐는 겁도 없고, 때로는 관광객들에게 달려들어 재롱까지 떤다고 한다. 이 비꾸냐는 고운 털 색깔은 물론이거니와 낙타와 같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져 방문한 이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 호수 같은 맑은 눈망울을 가진 비꾸냐.
ⓒ2005 배한수
섬 안에는 이렇게 예쁜 야생의 비꾸냐가 약 50여 마리 살고 있다. 이 섬에 살고 있는 비꾸냐는 수 년 전 페루 내 동물 보호단체에서 밀렵꾼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는 이곳에 암수 한 마리씩을 방목해, 현재는 이렇게 식구가 늘어났다고. 섬 정상에 가면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비꾸냐를 볼 수 있다 하여 일행은 섬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섬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 이 섬에는 비꾸냐 이외에도 양과 소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상당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새들을 제외한 양과 소들은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이 키우는 것이라 한다.

정상에 다다를때 즈음, 재미있는 광경이 목격됐다. 언덕 한켠에서 어미소의 젖을 놓고 우유를 짜려는 인디오 아주머니와 젖을 먹으려는 새끼 송아지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 어미소의 우유를 서로 얻으려는 인디오 아주머니와 새끼 송아지의 모습.
ⓒ2005 배한수
배고픈 송아지는 우유가 잘 안 나오는지 자꾸 우유를 짜놓은 통에 입을 가져다 대고, 인디오 아주머니는 한 손으로는 우유를 짜고 한 손으로는 새끼 송아지의 입을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국 힘들게 우유 한 통을 다 짠 아주머니는 어린 송아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이내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정상에 올라 섬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비꾸냐 무리가 군데군데에서 발견되었다. 항상 10여 마리 이상 암수가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말대로, 발견된 비꾸냐들은 모두 단체로 모여서 생활하고 있었다.

▲ 섬 정상에서 내려다본 섬의 전경(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비꾸냐 무리가 모여 있다).
ⓒ2005 배한수
망원경으로나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저 멀리 섬 한켠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비꾸냐. 넓은 초원 지대와 앞으로 탁트인 호수의 전경, 이곳에서 비꾸냐들은 사람들의 방해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호수의 경치와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비꾸냐들을 감상하고 나서 초원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는데, 일행중 한명이 바닥에 동그란 알들이 바닥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바로 비꾸냐의 배설물.

▲ 비꾸냐의 배설물(비꾸냐는 지정한 장소에만 배설한다).
ⓒ2005 배한수
비꾸냐는 특이하게도 이렇게 특정 장소를 지정해 그곳에만 단체로 배설한다. 무슨 이유에서 한 곳에만 배설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처럼 지정한 곳에만 배설을 해 놓은 것을 보니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꾸냐 구경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초원 한쪽 귀퉁이에서 시유스타니에서 본 것과 흡사한 석탑묘가 발견됐다. 자연 상태로 방치된 탓인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가까이서 이묘를 바라보니, 군데군데 허물어 지긴 했지만 원형의 분묘가 확실했다.

▲ 초원 한켠에서 발견된 분묘.
ⓒ2005 배한수
이 곳에 이렇게 초라히 세워진 작은 묘는 일반 서민의 것이라 한다. 추라혼의 분묘 문화를 미루어 볼때, 묘의 크기와 높이, 위치는 곧 권력과 부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외딴 곳에 엉성히 만들어진 묘는 서민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금 이렇게 한가구만 들어와 사는 외진 섬에도 수백년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페루 국기에도 등장할 만큼 신성시 여겨지는 동물인 비꾸냐.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동물이 그간 인간의 사리사욕에 의해 무차별 희생되어 왔고, 결국 인간의 손길과 동떨어진 이런 외딴 섬에서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몇 남아 있지 않은 이 동물들이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보호되어 그 맑은 눈망울을 영원히 간직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즐거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