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도 명사십리 백사장 |
ⓒ2006 최성민 |
한국 최고의 청정해역 2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완도 다도해의 관문 구실도 하게 되었다. 신지도와 가까운 금당도, 금일도, 약산도, 고금도, 생일도 등도 신지대교 이어짐에 덩달아서 뭍에 더 가까워졌다.
무엇보다도 신지도의 '얼굴'은 명사십리이다. '명사십리'란 이름은 '길다란 고운 모래밭'을 일컫는 보통명사이기도 하지만, 길고 고운 모래밭을 걸치고 있는 각 섬마다 그 모래밭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쓰는 경우도 많다. 신지도 명사십리는 신지도 남쪽 임촌리에 있는 4㎞, 폭 70~100m 모래밭이다.
신지도 하면 바로 명사십리가 연상될 만큼 신지도의 명사십리는 그 모래의 질이 곱고 백사장 규모가 길고 넓으며 주변 바다의 색깔이나 섬들과 어우러지는 운치가 좋다. 신지도 사람들은 명사십리를 '울모래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워낙 고운 모래알들이 한꺼번에 파도에 부딪히면서 "으엉~의엉~"하는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 명사십리 앞바다 |
ⓒ2006 최성민 |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은 한겨울인데도 화장실을 짓고 백사장가에 몽골천막을 여러 채 앉히는 등 지금 한창 새 단장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신지대교를 타고 들어온 겨울손님들로 명사십리에 발자국이 지워지질 않는다.
▲ 신지대교 |
ⓒ2006 최성민 |
명사십리에서 1㎞ 남짓 버스를 타고 가면 나오는 송곡마을에는 지석영이 살던 집(적소)이 남아 있다. 마을사람들은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종두전문가 지석영의 일면을 얘기해준다.
"그 양반이 멀쩡한 소 엉덩이들을 다 째고 댕겨서 마실 사람덜이 '저 영감탱이가 소 다 죽인다'고 소들을 감추는 난리가 났드랍니다. 또 사람들이 그 영감 침 안 맞을라고 어깨 사매고 도망 다니는 굿도 벌어졌고라우……"
송곡마을에는 또 동헌터, 장정터, 형장터, 무기고 등 임란 때 설치한 진(陣)의 여러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 있다. 신지도는 또 조선시대 궁중에서 쓸 말을 길러내는 곳이었는데 신지면 대곡리를 둘러싼 '독고재' 능선에는 말이 산을 넘지 못하도록 1미터의 높이로 돌담을 쌓아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 완도항 풍경 |
ⓒ2006 최성민 |
신지도 주변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많다. 조약도(약산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평일도), 황제도, 덕우도, 청산도… 그리고 각각의 섬들은 각자 앙증맞은 새끼섬들을 거느리고 있다.
▲ 완도항 앞 섬 주도. 99종류의 상록수가 살고 있다고 한다. |
ⓒ2006 최성민 |
▲ 완도항 |
ⓒ2006 최성민 |
태평양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바람따지여서 늘 굵직한 파도가 밀려오기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서핑(파도타기)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금일도 아이들은 여름에 서핑보드 삼아 널찍한 널빤지를 등에 업고 다닌다.
약산도(조약도)는 산이 깊어서 약초가 많다는 섬이다. 약초가 많은 약산도 산에 방목한 '약산 흑염소'가 유명하다. 완도읍 식당에서 흑염소 고기를 맛볼 수 있다. 우리 겨울 식탁의 보배 '김'(한자어로 '해태'라고 했었다)은 일제 때 약산도 사는 어느 김씨가 처음으로 양식재배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 드라마 <해신> 촬영장 |
ⓒ2006 최성민 |
덧붙이는 글
<신지도 가기>
서해안 고속도로-목포나들목-영산호방조제-해남-완도. 완도대교를 건너 완도읍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우회전하여 신지대교를 건넌다. 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해안도로를 타면 완도 본섬(읍) 순환도로를 달리게 되고 중간쯤에 드라마 <해신> 촬영장이 나온다.
조금 더 가면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이라고 하여 해남군과 '땅끝다툼'을 하는 정도리 몽돌해안이 나온다. 바다 위에 한쪽 다리를 세워 지은 씨월드관광호텔(061-552-3005)이 있다. 이 호텔 '신지도를 바라보며 핼레레..'라는 별칭의 해수사우나가 명물이다. 해수사우나가 그만큼 삼투압 기능이 세어서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면 몸이 처질 정도로 노폐물이 빠진다는 뜻이다. 바닷쪽 창문을 열고 낚시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