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청소로 촉촉해진 파리 거리 위를 하늘색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날씬한
‘마드모아젤’(아가씨). ‘프랑스 여자들은 살찌지 않는다’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이곳 여자들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가장
좋은 것으로 고르고 골라 조금씩만 음미하는 것’이라고 귀띔해준 책이다. 바게트건 초콜릿이건 향수건, 뭘 골라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는
‘파리지엔느’(Parisienne·파리 여성)가 돼 보기로 했다.
호텔 플라자 아테네 파리
디자이너들의 고급 부띠크가 줄지어 늘어선 ‘애브뉴 몽테뉴’(Avenue
Montaigne). 현관과 객실 발코니마다 빨간 휘장들이 펄럭이는 건물이 유난히 눈에 띈다. ‘세계에서 가장 여성스런 호텔’이라 불리는
‘플라자 아테네’(Plaza Athenee Paris)다.
미끄러질 듯한 대리석 바닥. 원을 그리며 놓인 유리화병마다 넉넉히 담아둔
빨간 장미다발.
“마담, 차 한 잔 하시렵니까?” 친절한 중년의 매니저는 “정원과 옥외카페를
구경하라”며 안내한다. 프론트 데스크 매니저가 “(일반) 객실에 사정이 생겼으니 (더 크고 더 비싼)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 해드리겠다”고
한다.
스타일 여행에서 이보다 더 큰 횡재가 있을까. 파리지엔느 되기, 출발이
좋다. (객실 1박 요금 2005년 6월 당시 520유로·3명이 함께 묵었다.)
달콤한 보석을 고르다
파리에서는 계절별 케이크와 초콜릿 콜렉션 쇼가 마치 패션쇼처럼 열린다. 유명
파티셰(patissier·제과장)들의 부띠끄로 간다. 극도로 모던한 피에르 에르메 (Pierre Herme·주소 185, rue de
Vaugirard)의 부띠끄는 빵집이 아니라 보석매장에 가깝다.
에르메가 디자인한 케이크와 초콜릿 ‘작품’을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파리 여자들. 이번 시즌에는 송로버섯 모양의 얼그레이향 트러플 초콜릿이 최고 인기다.
일본계 파티셰 사다하루 아오키(Sadaharu Aoki·주소 35, rue
de Vaugirard)는 일본 전통 재료를 프랑스 제과에 도입해 히트 쳤다. 요즘 파리지엔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사다하루의 화제작은
‘그린티 에클레르’(green tea eclaire·1개 3.35유로). 바삭한 빵에 촉촉한 녹차 크림을 채웠다.
향기를 입다
향기라는 예술세계를 펼치는 파리의 퍼퓨머(perfumer·향수 디자이너)들.
향수 마스터 9명이 각각 작품을 내놓는다는 ‘에디시옹 데 파르펭 프레데릭 말르’(Editions des Parfums Frederic
Malle·주소 37, rue de Grenelle)에 갔다.
화가의 아틀리에와 같은 실내. 향수병은 물감병, 테스트 스틱(test
stick)은 붓이다. 어리둥절한 우리 일행에게 직원이 차트를 내놓는다. 산뜻한 향, 가벼운 향, 달콤한 향, 따뜻한 향. “평소 즐기는
패션스타일은요? 어떤 기분을 위해 향수를 사용하시나요?”
마침내 나를 위한 향을 찾는데 성공했다. 고운 아이리스향. 전용 냉장고에서
보관돼 있던 향수병은 정성스러운 포장에 담겨 내게로 왔다.(50㎖ 1병 78유로)
파리 여자처럼 즐기기
카페 또는 티살롱(tea salon)에서 1~2시간 보내기: 서점에 들러
잡지나 책을 사들고 간다. 에스프레소도 좋지만, 샴페인이나 로제와인을 주문한다. 티살롱에서는 애프터눈티(afternoon tea)로.
추천카페
-카페마고(6, Place Saint-Germain des Pres)
-워터바(213, rue du Saint-Honore)
-라뒤레(16, rue Royale)
-라 메종 데 투아 테(33, rue Gracieuse)
-파크 하야트 호텔 야외 카페(5 rue de la Paix)
장보기: 포장이 예쁜 사탕, 차, 잼은
기념품으로도 훌륭. 샌드위치와 와인을 골라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라파예트 구어메(40,
boulevard Haussmann)
-동네마다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모노프리(Monoprix)와
재래시장들
* 파리 여행정보: www.paris-touristoffice.com
(김선경 dearskkim@yahoo.co.kr )
휘황찬란한 파리의 겨울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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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파리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우기(雨期)여서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렵고 도시 풍경도 우중충하다. 맑은 날
멋스럽게만 보이는 고색창연한 건물들도 이런 날에는 칙칙하게 보일 뿐이다.
파리지앵들은 그래서 겨울에는 밤을 즐긴다. 거리 곳곳을 수놓은 화려한 조명이
낮의 우울을 달래 주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파리의 밤은 ‘빛의 향연’이다.
시내 큰길은 물론 주택가 골목길도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이쯤
되면 파리지앵들이 파리를 ‘빛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화려해졌다. 파리 시청이 조성하는 ‘빛의
거리’가 지난해 5곳에서 올해는 12곳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파리의 겨울밤 풍경을 스케치했다.
오페라 극장 뒤편.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과 프랭탕 백화점이 나란히 있는
도로에선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번쩍거린다. 노란색 빨간색 전구를 붙여 만든 조명 장식으로 건물을 통째로 뒤덮은 갈르리 라파예트는
관광객들에겐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
프랭탕에는 붉은색의 조명이 건물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다. 건물 벽에
내걸린 분홍색 파란색의 등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노트르담 성당과 퐁피두 센터 중간에 자리잡은 시청 옆길은 도로 전체가
‘조명쇼’의 무대다. 하얀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수직등이 수백 m에 이르는 도로 위 허공을 촘촘하게 수놓고 있다.
이곳은 ‘빛으로 파리를 수놓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조성된 ‘빛의
거리’ 12곳 중 하나다. 각각의 조명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친 작품으로 별도의 제목이 있다. 시청 옆길의 제목은 ‘은하수’.
장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드 플로르가 있는 생
제르맹데프레 대로(大路)에는 가로수를 이용한 작품이 설치됐다. 벌거벗은 나무에 작은 전등을 매단 것.
‘크리스털 비가 내린다’는 작품 설명처럼 빗방울이 나뭇잎에 곱게 내려앉은
모습이다. 빨간색 등은 ‘마음’을, 파란색 등은 ‘육체’를 상징한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가까운 파시 거리는 길바닥까지 무대로 활용했다.
해가 진 뒤 정시마다 에펠 탑의 조명쇼가 시작되면 이곳도 함께 빛난다. 길은
파란색 조명으로 뒤덮이고 건물은 노란색 불빛이 감싼다. 전체 조명 사이로 여기저기 별 모양이 새겨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 밖에 파리 시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는 북쪽 18구에서 소르본대가 있는
5구에 이르기까지 길목 길목을 ‘빛의 거리’로 꾸몄다. 올해 파리 시가 정한 콘셉트는 너무 전통적이지도 않고 너무 전위적이지도 않도록 한다는
것.
‘빛으로 수놓은 도시의 심장’ ‘리볼리의 불꽃’ ‘겨울의 컬러’ 등 각각
다른 제목으로 빛의 향연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 준다.
대표적 볼거리인 샹젤리제의 조명은 올해도 변함없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자발적으로 조명 장식을 한 건물이 늘어났다는 점.
오랜 복구 끝에 지난달 문을 연 박물관 그랑 팔레의 유리 돔으로 비쳐 나오는 은은한 흰색 불빛도 샹젤리제의 조명과 대조를 이룬다.
겨울에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명심해야 할 팁 한 가지. 낮에 체력을 많이
소진하면 안 된다. 밤이 길고 볼거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관광 명소 외에도 구석구석 찾아 다녀라. 느닷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