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이 ‘영혼의 집’이라면, 여러 넋이 함께 묻혀있는 공동묘지는 ‘영혼의 공동주택’쯤 되는 걸까. 적어도 파리에선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동묘지인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Cimeti?re du P?re Lachaise). 폴란드의 작곡가 쇼팽과 그리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오스카 와일드와 미국의 록 그룹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까지 예술 세계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영혼의
국제도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파리의 동쪽 끝에 내리니 곧바로 묘지 입구. 2유로(2400여원)를 내고 안내 지도를 사니, A부터 Z까지 유명(有名) 인사의 이름과 묘지 위치만 수백 명이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사실 ‘유명’이라는 말은 너무 일방적인지 모른다. 이 곳에 안장된 나머지
7만여 개의 무덤들도 너무나 절실한 사연이 우주를 덮고도 남을 텐데.
계단을 수십여 개 밟고 올라가니, 마치 서울의 빌라촌처럼 묘지도 차곡차곡 배열돼 있다. 처음 발길이 멈춘 곳은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무덤. 불과 37세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오페라 ‘카르멘’과 ‘진주잡이’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발끝쯤에 놓여있을 법한 꽃다발들은, 인생의 값어치가 그가 살아온
햇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하긴 이 곳의 7만여 기(基) 가운데 가장 사랑 받는 곳도 27세로 숨진, 록 그룹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아니었던가.
중앙 화장터에 모셔놓은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비석으로
향한다. 푸치니의 아리아처럼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자 했지만, 사랑은 끝끝내 그녀를 버렸다. 햇볕도 스며들지 않는 화장터 지하 공간,
‘16258번’이라는 번호 밑에 박혀있는 기념비(碑)가 어쩐지 구슬프다.
관광객 여러 명이 묘지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고 있다. 코스는 모두
엇비슷하다. 칼라스 뒤에는 오스카 와일드, 와일드 뒤에는 짐 모리슨 식이다. 뒤를 따라 와일드의 묘지로 향한다. “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는
역사적 기념물”이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지만, 팬들은 아랑곳 않고 무덤에 붉은 키스 세례를 퍼부어 놓았다. 와일드는 세기말의 유미주의적 상상력과
동성애 취향으로 1970년대 글램 록과 1990년대 영화 ‘벨벳 골드마인’까지 자신의 감수성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드디어 북쪽 끝. 1871년 5월 ‘공동체’와 ‘자치’를 내걸고 무장 항쟁을
일으켰다가 사살 당한 코뮌 전사(戰士)들을 기념하는 ‘파리 코뮌의 벽’ 앞에 섰다. 코 끝이 찡하다. 바로 맞은 편에도 ‘2차 대전 당시
스페인의 자유를 위해 숨져간 사람을 위해’라는 문구와 함께 기념 조각이 서있다. “당시 1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강제 추방 끝에 숨졌다”고
적혀있다. 역사도, 비극도 끝없이 반복된다.
뉘엿뉘엿 해가 저문다.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무덤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지만, 팬들이 던져놓은 화환만 밝게 빛난다.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묘지에 도착하니, 어느새
한밤이다. 프랑스 최고의 신학자이자 수도사였던 아벨라르가 17세의 엘로이즈를 만난 건 38세 때. 성(聖)과 속(俗)을 넘나든 이들의 금지된
사랑은 어차피 비극일 수밖에 없었지만, 900여 년을 건너 지금도 세계의 연인들을 웃고 울린다. 연인들이 던져놓은 꽃다발 사이로 이들은 무덤에
함께 누워있다. 천국에선 이들도 영면할 수 있겠지….
(파리=글·사진 김성현기자 [ danp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