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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눈꽃성화로 바뀐 아름다운 길을 걷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5. 21:21

 

                     전남담양

 

    눈꽃성화로 바뀐 아름다운 길을 걷다

 
▲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설경! 흠뻑 내린 눈을 맞고 당당히 서서 우릴 반기는 하얀 눈꽃성화의 열병식
ⓒ2005 이규현
눈이 내리니 더욱 그 값을 발하는 것은 대나무나 소나무뿐만이 아닙니다. 가을을 채 떨치지 못하고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의 열병식은 하얀 눈에 덮여 더욱 아름답기만 합니다.

우리에겐 메타세콰이어라는 외래어로 불리워지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 나무에게 '수삼나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사실 메타세콰이어는 그 명칭과는 다르게 동아시아지역이 원산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 가장 오래 된 화석식물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경우 포항에서 이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식물로 알려져 있다가 우연히 1940년대에 중국 양쯔강의 한 지류 부근에서 발견되어 살아 있는 화석식물로 급속히 번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담양군이 1970년부터 가로수로 식재를 시작하여 당시 내무부로부터 표창까지 받으면서 군수가 수십 번 바뀌어도 자리를 오롯이 지키며 일관된 가로수 보호정책 속에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나무가 잘 자라고 수형이 좋아 일화에 의하면 주민들이 가지를 꺾어다가 삽목도 하여 키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처음에 식재하고 난 후 관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줌은 물론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치명적이어서 한켠에선 제거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음은 물론 국도 13호선의 확포장 공사와 함께 192그루가 베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가 시민들의 반대와 나무 살리기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최소 구간의 54주만이 베어져 주민들이 지켜낸 가로수 숲으로 그 상징성을 더하였습니다.

세상에 가로수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이렇게 있었던 곳이 전국에 얼마나 될까요? 아무튼 한 사람이 한 그루라도 붙들고 지켜내자며 시작했던 이 운동은 애석하게도 계속되는 도로의 확포장으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지금의 담양-순창간 구간은 아니지만, 담양과 백양사간 지방도의 4차선 확포장 공사로 인해 그 길가에 심어진 메타세콰이어가 다시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옮겨가기도 했지만 통신케이블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나 봅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처형당한 나무들도 부지기수입니다.

▲ 베어진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장승과 솟대를 만들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으로 사라져버린 나무들에 대한 경외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반성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싶은 곳입니다. 지난 여름에 찍은 사진입니다.
ⓒ2005 이규현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은 베어진 나무를 가지고 다시는 이와 같은 남벌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승과 솟대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베어져 죽어버린 메타세콰이어 장승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저 속도만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갓 생명조차도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문명의 이기가 현장에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삼십 년이 넘은 세월을 이기며 살아 온 나무들이 성장한 지난 시간은 결코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가 한갓 나무라고 쉽게 베어내고 다시금 어린 묘목을 이렇게 울창한 숲으로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한창 공사 중인 88고속도로 우회도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몇 년만 더 참았어도 저 많은 나무들 죽지 않고 공사비 아끼며 교통소통도 원활히 할 수 있었는데 당대의 치적을 위한 희생양으로 사라져버린 메타세콰이어에게 정말 미안하기만 합니다.

낙엽성 침엽수인 메타세콰이어는 참으로 특이합니다. 겨울이 한창인 지금까지도 침엽수였음을 자랑하듯 잎을 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가지 위로 하얀 눈들이 소복이 내립니다. 담양에서 태어나 농민들의 애환을 시로 표현하며 등단하였던 고재종 시인은 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초록 성화의 길로 표현하였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메타세콰이어는 성화 모양을 하고서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열병의 모습으로 도열해 있습니다.

초록 聖火의 길 / 고재종

 
▲ 끝없이 펼쳐진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저 자동차는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요? 하얀 은세계는 세사에 지친 우리를 다 받아줄 듯 넓은 품으로 맞이합니다
ⓒ2005 이규현
하늘에 닿을 듯 수려 찬란한 메타세콰이아.
저 나무를 커다란 초록 성화라 해도 괜찮겠다.
담양에서 순창까지의 시오릿길에 도열한,
저 초록 성화 천여 자루.
내가 너희로 인해 세상을 수긍할 때 나는 무엇을 본 셈일까.
초록 성화의 길 저곳으로, 싱싱 씽씽 은륜을 밟는 아이들의 꿈,
스치는 이팝꽃 향기.
아득했다 하자.
초록 성화의 길 저곳으로,
뒤뚱거리는 한 노부부의 어두운 귀,
저미는 까치집의 까치소리.
따뜻했다 하자.
나는 한숨과 탄식의 길을 걸어왔다.
초록 성화의 저 길로 어느 비바람 치는 날
非非非 잎새 날릴 때,
터덜거리는 시골버스는 나보다 더 터덜거렸다.
터덜거리는 뒤끝이 별들의 푸른 밀어 쪽이라면,
그 푸른 전설들이 가지끝마다 주저리주저리 열린다면,
저 나무가 한겨울 큰눈 뒤집어쓴들,
어느 나그네의 詩琴이 울려나지 않을 리 없겠지.
나는 때로 슬픈 것을 좋아한다.
저 나무에 걸리던 동박새와 소쩍새의 울음을 추억한다.
나는 또한 생생한 것을 좋아한다.
저 나무를 흔들던 쓰르라미와 씨르래기의 노래를 기억한다.
초록성화의 길,
저 길이 급기야 불끈! 청청!
하느님에게까지 닿는 길이거늘 나는 이제 고요하여도 되는가.
하면 저 길이 길이거늘 저 길을 잘라내고 웬 길을 내려는가.
마을에선 왜 弔鐘을 울려대지 않는가.
너와 나는 뜨거운 팔짱 끼고,
저 초록 성화의 길 아득한 소실점 속으로,
어떤 씩씩한 사랑으로 차마 사라지는가.
오늘은 염천,
저 초록 성화는 저희들끼리 분기탱천,
더욱 타오른다면,
나는 또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소리칠까.


지금은 하얀 눈꽃송이의 성화라고 할까요? 언제나 정겨운 그 길을 걸으며 푸르렀던 메타세콰이어의 모습과 지나 온 내 삶의 편린들을 끄집어내 봅니다. 그러한 나의 모습 위로 다시금 눈이 내립니다.

[오마이뉴스 2005-12-14 12:14]    
[오마이뉴스 이규현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