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내내 몸만 맡기면 되는 패키지 여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병대 훈련 처럼 몸을 학대할 정도로 고단한 배낭여행도 원치 않았다. 적절한 자극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행을 컨셉으로 잡았다. 목적지는 눈을 찾아 떠나는 겨울여행지인 일본 홋카이도다.
그런데 삿포로까지 직항으로 가면 항공료만 60만원대. 그래서 혼슈의 최북단인 아오모리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했다. 아오모리와 삿포로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칸 해저터널을 운행하는 하마나스 야간열차를 타고 오가면 기차에서 2박이 해결되므로 비용이 상당히 줄어든다.
아오모리 공항에서 내릴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줄 몰랐다. 아오모리 역으로 이동해 바로 야간열차를 갈아타는게 아니고 낮동안 홋카이도의 관문인 하코다테로 먼저 갔다.
열차의 창밖으로는 동해 정동진 해변과 비슷한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50여km 구간의 해저터널을 지나 2시간반 정도만에 도착한 하코다테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곳이었다.
19세기 후반 개화기 홋카이도에서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러시아풍의 이색적인 건물과 풍물이 눈길을 끌었다. 전차도 타보고,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타테야마 정상에 올라 안보면 후회한다는 시 야경을 구경했다.
도시 전체가 마치 인천과 강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반도 전체를 보는듯이 양쪽으로 바다가 보이는게 신기했다. 도시 전체는 흰눈에 덮여 불빛만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밤 1시20분, 샷포로행 기차에 몸을 실는다. 여기서부터 철도 이동은 홋카이도 전역에 적용되는 `홋카이도철도 패스`를 서울에서 끊어왔기 때문에 비용이 따로 들지 않았다. 열차를 타기 전 간식은 챙기는게 좋다.
일본인들은 다들 그 재미로 야간열차를 타는 분위기였다. 침대카인 카펫카는 예약이 끝난 상태라 드림카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드림카도 160도나 뒤로 젖힐 수 있어 그런대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새벽에 삿포로역에 도착하면 대학생들은 여전히 생생하지만 중년들은 온천으로 가는게 일단 몸이 편하다. 필자도 기차로 1시간 거리인 노보리베츠에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곰 농장을 방문하고 샷포로로 다시 들어왔다.
이제 삿포로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다. 일본 5대 도시에 속하는
샷포로는 도쿄 이북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다. 도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사투리를 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는 바둑판처럼 정비돼 있어 명소를 찾기가 너무 쉽다. 이 지역 유명한 눈 축제인 `유키 마쓰리`가 끝난 날이라 중심지인 오도리공원에는 아직 눈조각과 장식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삿포로 중심의 유흥가 스즈키노에는 라면의 발생지답게 라면골목이 있다. 주말에는 한참이나 줄을 서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이 식당의 라면 맛은 일품이다. 여기에 드라이한 일본 맥주의 원조인 삿포로맥주를 걸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다리 긴 대게를 맛보는 것도 삿포로 여행의 별미로 기억될 것이다. 입가심은 맛이 기막히는 이 지방 아이스크림이면 더욱 좋다.
스즈키노 다운타운가 호텔에서 1박한 다음날은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고장 오타루로 향했다. 오타루의 야경을 봐야 된다기에 삿포로 시에서 삿포로 맥주박물관과 초콜릿팩토리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낸후 오후가 되서야 느긋하게 출발했다.
삿포로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유럽풍 항구타운 오타루의 운하를 보는 순간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왜 전세계 관광객이 오타루로 몰리는지 알것 같았다.
운하의 수면과 눈 덮인 그 옆 산책로는 온통 촛불로 뒤덮인다. 오르골 상점에서는 태엽을 감은 수많은 오르골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귀를 즐겁게 한다. 연인들은 동화의 세계로 변한 이 순간 프러포즈하면 성공확률 100%를 확신한다.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 쇼타의 고향에 와서 생선초밥을 안먹을 수
없었다. 값이 싸지는 않지만 싱싱한 오리지널 초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이츠키가 근무하는 도서관으로 등장하는 일본은행 오타루 지점도 보고 곳곳에 진열된 화사한 색깔의 유리공예품들을 둘러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눈 덮인 오타루의 밤 풍경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일본 삿포로를 26만원에 3박 4일(호텔 1박 야간열차 2박, 호텔 1식 포함) 일정으로 다녀오는 ‘사서 고생’이라는 자유배낭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홋카이도 전역에 적용되는 ‘철도 프리패스’(9만~11만원)는 별도다. 가격 절감의 비결은 야간열차와 아오모리 항공편 이용. 아오모리와 삿포로는 쓰가루 해협의 세이칸 해저터널로 운행하는 철도로 오간다.
체류시간은 삿포로 이틀, 아오모리 하루 반. 여행박사(www.tourbaksa.co.kr) 02-2036-6687, 730-6166
서병기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