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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 20:01

 

              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 눈의 도시 하코다테·삿포로·오타루를 가다
반갑지도 귀찮지도 않은 눈이 사라진 원주민과 징용자의 땅에 고루 쌓인다
 

▣ 훗카이도=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ㄱ형. 일본 출장에서 돌아와보니 휴대전화에 형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몇 개 남아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전화도 못 받았군요. 미안합니다.

 

저는 구정 연휴까지 반납하고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를 반납한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홋카이도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곳이었습니다.

 

‘북국’(北國)의 정취라는 게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느꼈고요.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군요.

 

홋카이도에 대한 연상이나 이미지가 영화 장면과 닿아 있는 한국인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러브레터>의 첫 장면을 보고 “홋카이도라는 곳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하고 생각했답니다.

 

히로코가 눈 속에서 누워 있던 첫 장면과 그 장면에 녹아들던 레미디오스의 피아노 음악은 가벼운 정신적 충격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눈이 판타지로서의 눈이었다면 취재 도중에 본 눈은 ‘일상 속의 눈’ ‘생활 속의 눈’이었습니다. 홋카이도 사람들한테 눈은 특별히 귀찮거나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도시 가운데 한국 사람들한테 가장 친숙한 세 곳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하코다테, 삿포로, 오타루의 세 도시를 저는 각각 그레이 블루, 화이트 블루, 블랙 블루라는 색깔로 구별하고 싶어졌습니다.

 

ㄱ형. 판타지는 깨지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키와 골프만을 위해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미 많더군요. 저처럼 평생에 꼭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그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삿포로 근처 신치토세 공항에서 우리보다 하루 앞서 귀국한 사실은 또 어떻고요. 한술 더 떠 황우석 교수는 홋카이도대학에서 연구를 했더군요.

 

아름다운 풍광만을 얘기하다 자칫 이 땅이 지닌 사연을 쉽게 타자화할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 아이누족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나, 이곳이 일본 제국주의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공간이었던 탓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이 특별히 그랬습니다.

 

ㄱ형.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생활을 한다기에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궁금합니다. 주말부부는 금슬도 좋아진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기회가 닿는다면 홋카이도의 자연을 구석구석 음미할 수 있는 가족여행을 떠나보세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28일… 눈이 내리다

3미터 고드름과 경사진 지붕, 홈 깊은 신발의 훗카이도 풍경들

 


12월27일~4월19일.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에서 첫눈이 오는 날부터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까지의 평균이다. 1년의 3분의 1은 눈과 함께 사는 셈이다.

 

눈이 가장 많이 오는 달은 1월과 2월. 1월에는 30일 가운데 평균 28.1일 동안 눈이 내린다. 눈이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는 셈이다. 2월엔 30일 가운데 평균 25.2일 눈이 온다.

 

삿포로시의 1년 일반회계 예산의 2%가 넘는 돈이 제설작업에 쓰인다. 150억엔 정도 된다고 한다. 눈의 나라이자 눈의 세계다.

 

사람들은 눈이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스무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쓸까 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서너 차례 눈이 오다 말다 하는 때가 많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올 때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눈을 ‘후부키’라고 불렀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옆으로도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도 솟구친다. ‘흩뿌리는 눈’이라는 뜻이다.

 

홋카이도에 머무른 일주일 동안 눈싸움을 하는 이들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눈사람을 만들어놓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눈이 많이 쌓이다 보니 지붕의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려 길가는 이들을 덮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인들이 눈덩이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1년에 몇 건씩은 꼭 생긴다. 그래서 ‘낙설주의’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3m가 넘는 ‘흉기급 고드름’도 수두룩하다. 눈이 잘 흘러내리도록 지붕의 경사도도 높다.

 

홋카이도 사람들의 신발에는 홈이 깊게 패어 있다. 눈 위에 찍힌 사람들의 신발 자국은 우리의 신발 자국과 확실히 달랐다. 신발 밑바닥 생김새가 달랐던 것이다. 잘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자동차 바퀴도 사람의 신발을 닮았다. 홈이 확실하게 나 있는 스노타이어가 아니면 빙판길을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길을 운전하려면 특별한 운전기술도 필요하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두세 단계로 나눠서 밟아야 홋카이도식 운전을 할 수 있다.

 

눈 치우는 도구의 다양성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삽도 가지가지다. 잔디 깎는 기계처럼 생긴 가정용 제설기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아예 제설용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집들도 많다.

 

길을 가다 보면 바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이 있다. 얼음이 얼지 않고 눈도 쌓이지 않는다. 얼어붙은 주변 길과 확실히 구분되는 이런 곳들에는 보도블록 아래에 열선이 있거나 뜨거운 물이 흐른다. 눈과의 투쟁은 전방위적이다.

 

부잣집에서는 마당에 열선을 깐다고 했다. “너희 집 마당에 열선 깔았어?”는 홋카이도 청소년들이 “너네 집 부자니?” 하고 묻는 말인지도 모른다. 집 앞의 눈을 치워주는 업체도 있다. 한 번 부르는 데 보통 1만엔(약 9만원) 안팎이 든다.

 

이 정도면 눈만을 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홋카이도교육대학 이학박사 추네야 다카하시 교수. 그를 찾아 학교로 갔다.

 

구름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눈 결정 성장’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눈 결정 연구가 이곳 삿포로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인공 눈을 만든 이도 나카야 우키지로 홋카이도대학 교수라고 덧붙였다. 나카야 교수를 기념해 홋카이도대학 안에는 눈 결정체를 본뜬 기념비가 있다.

 

그는 “홋카이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눈의 높이는 평균 6m”라며 “눈을 속성에 따라 ‘젖은 눈’과 ‘마른 눈’으로 나누는데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전형적으로 마른 눈, 즉 ‘건설’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홋카이도 사람들에게 눈은 생활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친하게 지내야 한다”면서 “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층들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는 눈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눈이 교육의 소재로 쓰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눈은 기상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공학, 교육학, 미술, 사회학 등 거의 모든 연관 학문 분야에서 교육의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쿄 중심의 교육과 문화에 비판적인 그는 “눈에 관한 한 홋카이도가 중심”이라며 웃었다.

 

홋카이도를 떠나던 날 새벽부터 큰 눈이 내렸다. 삿포로 주재 대한민국 영사관과 항공사 사무실, 비행장 등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뜰 수 있는지를 연거푸 물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난리법석 떨지 마라. 이 정도는 눈도 아니다”였다. 호들갑을 떨다 머쓱해졌다. 신치토세공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