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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 삿포로,하코다데,오타루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22. 11:52

            홋카이도, 오겡키데스카?

 

            삿포로,하코다데,오타루


[한겨레]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 눈의 도시 하코다테·삿포로·오타루를 가다
반갑지도 귀찮지도 않은 눈이 사라진 원주민과 징용자의 땅에 고루 쌓인다
 

▣ 훗카이도=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ㄱ형. 일본 출장에서 돌아와보니 휴대전화에 형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몇 개 남아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전화도 못 받았군요. 미안합니다.

 

저는 구정 연휴까지 반납하고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를 반납한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홋카이도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곳이었습니다. ‘북국’(北國)의 정취라는 게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느꼈고요.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군요.

 

홋카이도에 대한 연상이나 이미지가 영화 장면과 닿아 있는 한국인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러브레터>의 첫 장면을 보고 “홋카이도라는 곳에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하고 생각했답니다. 히로코가 눈 속에서 누워 있던 첫 장면과 그 장면에 녹아들던 레미디오스의 피아노 음악은 가벼운 정신적 충격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눈이 판타지로서의 눈이었다면 취재 도중에 본 눈은 ‘일상 속의 눈’ ‘생활 속의 눈’이었습니다. 홋카이도 사람들한테 눈은 특별히 귀찮거나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도시 가운데 한국 사람들한테 가장 친숙한 세 곳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하코다테, 삿포로, 오타루의 세 도시를 저는 각각 그레이 블루, 화이트 블루, 블랙 블루라는 색깔로 구별하고 싶어졌습니다.

 

ㄱ형. 판타지는 깨지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키와 골프만을 위해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미 많더군요. 저처럼 평생에 꼭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그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삿포로 근처 신치토세 공항에서 우리보다 하루 앞서 귀국한 사실은 또 어떻고요. 한술 더 떠 황우석 교수는 홋카이도대학에서 연구를 했더군요. 아름다운 풍광만을 얘기하다 자칫 이 땅이 지닌 사연을 쉽게 타자화할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 아이누족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나, 이곳이 일본 제국주의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공간이었던 탓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이 특별히 그랬습니다.

 

ㄱ형.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생활을 한다기에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궁금합니다. 주말부부는 금슬도 좋아진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기회가 닿는다면 홋카이도의 자연을 구석구석 음미할 수 있는 가족여행을 떠나보세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28일… 눈이 내리다

3미터 고드름과 경사진 지붕, 홈 깊은 신발의 훗카이도 풍경들

 


12월27일~4월19일.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에서 첫눈이 오는 날부터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까지의 평균이다. 1년의 3분의 1은 눈과 함께 사는 셈이다. 눈이 가장 많이 오는 달은 1월과 2월.

 

1월에는 30일 가운데 평균 28.1일 동안 눈이 내린다. 눈이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는 셈이다. 2월엔 30일 가운데 평균 25.2일 눈이 온다. 삿포로시의 1년 일반회계 예산의 2%가 넘는 돈이 제설작업에 쓰인다. 150억엔 정도 된다고 한다. 눈의 나라이자 눈의 세계다.

 

사람들은 눈이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스무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쓸까 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서너 차례 눈이 오다 말다 하는 때가 많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올 때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눈을 ‘후부키’라고 불렀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옆으로도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도 솟구친다. ‘흩뿌리는 눈’이라는 뜻이다.

 

홋카이도에 머무른 일주일 동안 눈싸움을 하는 이들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눈사람을 만들어놓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눈이 많이 쌓이다 보니 지붕의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려 길가는 이들을 덮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노인들이 눈덩이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1년에 몇 건씩은 꼭 생긴다. 그래서 ‘낙설주의’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3m가 넘는 ‘흉기급 고드름’도 수두룩하다. 눈이 잘 흘러내리도록 지붕의 경사도도 높다.

 

홋카이도 사람들의 신발에는 홈이 깊게 패어 있다. 눈 위에 찍힌 사람들의 신발 자국은 우리의 신발 자국과 확실히 달랐다. 신발 밑바닥 생김새가 달랐던 것이다. 잘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자동차 바퀴도 사람의 신발을 닮았다.

 

홈이 확실하게 나 있는 스노타이어가 아니면 빙판길을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길을 운전하려면 특별한 운전기술도 필요하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두세 단계로 나눠서 밟아야 홋카이도식 운전을 할 수 있다. 눈 치우는 도구의 다양성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삽도 가지가지다. 잔디 깎는 기계처럼 생긴 가정용 제설기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아예 제설용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집들도 많다.

 

길을 가다 보면 바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이 있다. 얼음이 얼지 않고 눈도 쌓이지 않는다. 얼어붙은 주변 길과 확실히 구분되는 이런 곳들에는 보도블록 아래에 열선이 있거나 뜨거운 물이 흐른다. 눈과의 투쟁은 전방위적이다.

 

부잣집에서는 마당에 열선을 깐다고 했다. “너희 집 마당에 열선 깔았어?”는 홋카이도 청소년들이 “너네 집 부자니?” 하고 묻는 말인지도 모른다. 집 앞의 눈을 치워주는 업체도 있다. 한 번 부르는 데 보통 1만엔(약 9만원) 안팎이 든다.

 

이 정도면 눈만을 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홋카이도교육대학 이학박사 추네야 다카하시 교수. 그를 찾아 학교로 갔다. 구름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눈 결정 성장’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눈 결정 연구가 이곳 삿포로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인공 눈을 만든 이도 나카야 우키지로 홋카이도대학 교수라고 덧붙였다. 나카야 교수를 기념해 홋카이도대학 안에는 눈 결정체를 본뜬 기념비가 있다.

 

그는 “홋카이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눈의 높이는 평균 6m”라며 “눈을 속성에 따라 ‘젖은 눈’과 ‘마른 눈’으로 나누는데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전형적으로 마른 눈, 즉 ‘건설’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홋카이도 사람들에게 눈은 생활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친하게 지내야 한다”면서 “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층들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는 눈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눈이 교육의 소재로 쓰여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눈은 기상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공학, 교육학, 미술, 사회학 등 거의 모든 연관 학문 분야에서 교육의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쿄 중심의 교육과 문화에 비판적인 그는 “눈에 관한 한 홋카이도가 중심”이라며 웃었다.

 

홋카이도를 떠나던 날 새벽부터 큰 눈이 내렸다. 삿포로 주재 대한민국 영사관과 항공사 사무실, 비행장 등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뜰 수 있는지를 연거푸 물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난리법석 떨지 마라. 이 정도는 눈도 아니다”였다. 호들갑을 떨다 머쓱해졌다. 신치토세공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홋카이도, 시베리아 물개가 꼬리를 치네

[한겨레21 2006-02-21 11:03]    

[한겨레] 도쿄 사람들도 가장 가고 싶어하는 훗카이도, 그 미답의 공간들
환상적 풍경의 기차여행과 스키장·온천욕·삿포로 맥주도 유명
 

▣ 훗카이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일본의 행정구역은 1도(都) 1도(道) 2부(府) 43현(縣)이다. 앞쪽의 ‘도’는 수도 도쿄이며, 뒤쪽의 ‘도’는 가장 너른 땅을 가진 홋카이도다. 본토라고 불리는 혼슈의 오사카와 교토를 ‘부’라 부르며, 나머지는 모두 ‘현’이다.

일본에서 혼슈 다음으로 큰 섬인 홋카이도는 일단 그 면적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일본 전체 국토의 22%, 휴전선 이남 대한민국 영토의 80%가 넘는다. 그런데 인구는 서울의 절반 수준인 570만 명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180만 명이 삿포로에 산다. 사람이 적은 탓에 자연은 살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 마슈호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직선거리는 1천㎞ 안팎. 한반도의 직선 남북 거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도쿄 사람들도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홋카이도다. 일본의 전설적인 풍경사진 작가 마에다 신조는 홋카이도 풍광에 반해 이곳에 뿌리를 박고 죽을 때까지 홋카이도 사진을 찍었다는 말이 있다.

 

홋카이도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개척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에도막부는 19세기 이곳을 일본 영토로 병합했다. 그전까지는 원주민 아이누족이 살고 있었다. 아이누족들은 아메리칸인디언들처럼 박제화됐고, 현재 혼혈아로 잔존하는 이들이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취재진이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의 핵복합단지 취재를 마치고 홋카이도로 떠나는 하코다테행 특급열차를 탄 것은 지난 1월30일 아침이었다. 하코다테에 가는 길에 혼슈섬과 홋카이도섬을 잇는 세계 최장의 세이칸 해저터널(53.9km)을 건넜다.

 

아오모리현~하코다테~삿포로로 이어지는 기찻길 풍광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 될 만했다. 한쪽에는 태평양이 보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러브레터>의 ‘오겡키데스카’를 외칠 만한 산들이 연달아 등장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취재는 하코다테와 삿포로, 그리고 삿포로 근처의 오타루 등 3개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징용 탄광촌인 유바리와 시베리아 물개를 볼 수 있는 몸베쓰도 취재 동선에 포함됐지만, 각각 하루 일정이어서 주변 지역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다.

 

사실 홋카이도를 찬찬히 둘러보기 위해서는 3~4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여행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스키나 온천욕만을 즐길 목적이라면 홋카이도 남서쪽만을 방문해도 충분하다.

 

삿포로에서만 2년째 살고 있는 임문택(33)씨는 “한국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 홋카이도에는 많다”고 전했다. 그가 추천하는 여행 방식은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오토바이로 홋카이도 동쪽이나 북쪽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다. 사실 홋카이도의 광대한 자연은 ‘도북’(道北), ‘도동’(道東)으로 불리는 북쪽과 동쪽에 몰려 있다.

 

 ‘철도의 나라’ 일본에서 아직 철도가 놓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때를 덜 탔는지 알 수 있다.

홋카이도에는 130여 개의 스키장과 그만한 수의 온천시설이 있다. 둘 사이의 궁합은 잘 모르지만 스키 탄 뒤에 즐기는 온천욕의 기쁨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유황온천으로는 노보리베쓰가 있다. 벌거숭이 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지옥계곡’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곳이 이곳에 있다.

 

동북쪽 오호츠크해에 면한 아바시리와 그 북쪽의 몬베쓰에서는 ‘유효’를 맛볼 수 있다. 유효는 오호츠크해에서 언 뒤 조류를 따라 흘러와 아바시리 앞바다를 북극처럼 하얗게 덮는 얼음덩어리다. 2월 한 달 동안 볼 수 있다. 쇄빙선을 타고 나갔다가 운이 좋으면 얼음 위에 매달려 있는 물개를 볼 수도 있다.

 

오토바이로 동쪽과 북쪽을 가보라

 


동쪽의 도야호는 화산의 분화구에 물이 고이면서 생겨난 칼데라호로 둘레가 52km인 국립공원이다. 활화산이어서 근처에 온천이 많다. 구시로 지역에는 3개의 국립공원이 밀집해 있다. 아칸국립공원이 으뜸이라고 전해진다.

 

부부 산인 오아칸다케와 메아칸다케로 둘러싸인 아칸호와 일본 최대의 칼데라로인 마슈호도 유명하다. 마슈호는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1년 내내 안개로 덮여 있는 곳이어서 신비함과 애잔함의 극치라고 한다. 구샤로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비호르 고개도 전문가들이 꼽는 필수 방문 코스다.

 

북서 끝단인 시레토코반도에서는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다. 근처에는 2만1천㏊에 이르는, 일본 최대·최후의 자연습지 국립공원인 구시로 습원이 있는데 트레킹에 적격이다. 홋카이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라벤더 농원은 일본 국내에서도 관광객들이 찾는다.

 

취재진이 들르지 못했지만 홋카이도에서 또 하나의 주요 도시로 꼽을 수 있는 곳이 아사히카와다.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문학기념관이 있다. ‘행동전시’라는 구호 아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생동감 있게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은 동물원이 일본 국내에서도 주효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홋카이도를 매력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음식인데 맥주·대게·아이스크림·라면·칭기즈칸·초밥 등이 대표적인 품목이다. 삿포로가 맥주로 유명한 이유는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홉과 풍부한 물 때문이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혼슈 사람들에 비해 편하고, 친절하고, 개방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한-일 항공당국은 올여름부터 기존의 인천~삿포로 직항로 이외에 하코다테 직항로도 개설할 계획이다.

 

 

 

하코다데,최후의 사무라이, 여기서 잠들다
[한겨레21 2006-02-21 11:03]    

[한겨레] ‘그레이 블루의 도시’ 하코다테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 명소
류머티스 치료하러 온천 들렸던 김옥균과 조선인 징용의 자취도
 

▣ 하코다테(훗카이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하코다테는 그레이 블루의 도시다. 역사와 낭만이 어우러진 이 항구도시는 ‘북국’의 전형을 보여준다. 메이지유신을 반대하던 최후의 사무라이들과 정부군이 싸웠던 전투현장이자, 나가사키·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최초의 국제무역항이 된 역사를 지니고 있어 도시 곳곳에 ‘최초’ 또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도시 곳곳에 ‘최초’‘최고’의 유물들

 

시내 안내를 도맡아준 이는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지 않고서는 하코다테를 들렀다고 할 수 없다”며 해발 334m의 하코다테산 전망대로 차를 몰았다. 승강장에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난리를 치나’ 하는 의구심은 3분 뒤 정상 전망대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장구를 세워놓았다고 해야 하나, 한반도 모습을 빼닮았다고 해야 하나.

 

양쪽 허리가 잘록한 모양의 하코다테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깨끗한 북국의 공기 덕분에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시가지 야경이 주연이라면, 양쪽 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의 환한 불빛은 조연이었다. 바다에 떠 있는 은하수 같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 표현일까.

 


하코다테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 공간이다. 1858년 일본이 미국·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 등과 수호조약을 맺으면서 국제무역항이 된 이곳은 1871년 홋카이도 행정청이 삿포로로 옮겨질 때까지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중심이었다.

 

하코다테의 역사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은 쓰가루해협(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이 내려다보이는 하코다테산 언덕 모토마치의 산책로다. 외국인 묘지, 옛 하코다테 공회당, 하리스토스 정교회 성당, 페리 제독 동상 등이 4.7km의 산책로 주변에 흩어져 있다. 외국인 묘지에는 페리 제독이 1853년 이곳 앞바다에 전투함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 병사한 수병을 매장하면서 묘지가 조성됐다고 한다.

 

워터프런트의 붉은 벽돌 창고군 가까이에는 1923년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전신주가 있다. 홋카이도 개척 100돌을 기념해 만든 홋카이도 제1보 기념비도 있다. 다카다야 가헤이 자료관에는 일본 최초의 스토브가 복원·전시돼 있다.

 

유노카와 온천 근처에 있는 일본 최초의 여자수도원인 트라피스틴 수도원을 비롯해 일본 최고의 사진을 보관한 사진역사관, 일본 최고의 지방박물관이 남아 있다.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최초’들도 있어 보였다. 택시를 타고 하코다테역 근처를 지나던 순간 택시기사가 갑자기 “일본 최초의 유료도로”라면서 갑자기 주변 도로를 가리켰다.

 

한국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료도 있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망명했던 김옥균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일본 여성 스기타니 다마의 사진이 하코다테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시간이 없어 들러보지는 못했다.

 

일본으로 도피한 김옥균은 1886년 7월부터 2년 동안 오가사와라섬에 유배된 뒤 1888년 8월부터 홋카이도에 연금된다. 삿포로에 살던 그는 류머티즘을 치료하려고 종종 하코다테의 온천에 들렀는데 스기타니를 만나 애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하코다테에서 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김옥균과 그녀의 추억

 


하코다테는 일제시대 홋카이도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 사람들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모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1912명 홋카이도에 살던 조선인은 불과 41명이었지만, 1945년 8월15일 당시 홋카이도에 남아 있던 조선인은 11만498명이었다.

 

 80% 이상이 남성이었던 이들은 주로 탄광과 제철소 등에서 노동을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전시동원 체제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하코다테항은 당시로서는 한반도로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다.

 

당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눌러앉아 살다가 숨진 동포 1세들의 유골이 모여 있는 시내 공동묘지를 찾았다.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공동묘지 한켠에 위치한 유골안치소에는 동포 1세 16명의 유골이 모셔져 있었다. 영정 앞에 놓여 있는 소주잔에는 소주가 얼어붙어 있었다.

 

죽어서도 일본 땅에 묻히기 싫어한 그들의 삶이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코다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쪽 해안가에는 이국땅에서 살기 힘들어했던 조선 처녀들이 뛰어내렸다는 자살 바위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코다테에서 역사만을 꼽씹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분 전환을 위해 좋은 것은 언덕과 시내를 오가는 예쁜 전차인 ‘로멘덴샤’를 타는 것이다.

 

하코다테의 온천 가운데는 바다와 직접 면해 있는 곳이 많다. 조금 고급스런 온천에는 방마다 야외 온천욕을 할 수 있도록 창문 밖에 작은 규모의 욕조가 만들어져 있고 온천물이 준비돼 있다. 조금 싼 온천 가운데서도 바다를 직접 볼 수 있는 야외온천이 종종 있다.

 

 

 

     삿포로, 뽀드득 뽀드득 비켜나세요~
[한겨레21 2006-02-21 11:03]    

[한겨레] ‘화이트블루의 도시’ 삿포로는 눈과 얼음으로 지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녹을 새 없어 지저분하지 않은 도심의 눈을 밟고 눈축제의 황홀경으로
 

▣ 삿포로(홋카이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삿포로는 화이트 블루의 도시다. 도시의 중심인 역을 나서면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향기가 솔솔 난다. 도회적이고 세련됐지만, 메트로폴리스에서 으레 풍겨나오는 천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삿포로는 홋카이도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이 반드시 가는 곳이 도심 중앙에 위치한 오도리공원(폭 65m, 길이 1.5km) 입구에 있는 90m 높이의 TV탑이다. 전망대에서는 오도리공원뿐 아니라 삿포로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야에 세워진 계획도시여서 더욱 전망이 좋다. 물론 눈이 내리는 날에는 시야가 좋을 리 없지만, 눈이 왔다가 그쳤다를 계속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도 다양한 장면을 즐길 수 있다.

 

삿포로는 도시 전체가 2월6일부터 시작하는 눈 축제인 ‘유키마쓰리’ 준비에 한창이었다. 삿포로의 눈은 도시의 눈이지만, 지저분하지 않다. 워낙 양이 많은데다 기온이 낮아서 미처 녹을 새가 없기 때문이다. 도로 옆에 쌓인 눈이 자연 상태의 소음 방벽 구실을 하기 때문인지 도심을 걸어도 자동차 소음보다 뽀드득거리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오도리 공원의 200개 눈조각

 


오도리공원에는 200개가 넘는 거대한 눈조각들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맨 앞에 만들어놓은 문어 모양의 눈 조형물은 문어인지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가고 있었다. 만들어놓는 것보다 쌓이는 눈을 치우는 게 더 큰 고역인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조형물은 삿포로 시내에 있는 각종 모임과 단체들에서 하나씩 책임을 지고 만드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삿포로 BBS(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불우 청소년과 1 대 1 결연을 맺어 그들의 친구나 형, 부모로서 도와주는 운동) 모임은 만화 캐릭터를 조형물로 만들었다. 회원 한 명에게 조형물의 의미를 묻자 “1년 내내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눈 축제와 별도로 열리는 얼음 축제도 있다. 도쿄 이북 지역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삿포로 최대 유흥가인 스스키조 입구에서는 얼음 축제를 준비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전기톱으로 대형 얼음을 자르고, 깎고, 다듬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얼음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대형 맥주캔이 들어 있는 얼음 조형물도 있다.

 

겨울 삿포로의 밤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된다. 눈까지 오면 밤은 더 빨리 온다. 맥줏집을 찾았다. 홀짝홀짝하는 일본식 주점과는 달리 이곳에는 마치 한국에서 마케팅 전략을 배운 듯한 맥줏집이 있었다. 1인당 980엔만 내면 90분 동안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에겐 제격이었다.

 

맥줏집에서 만난 젊은 직장인 후쿠자와 다쿠는 홋카이도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에 양고기를 구워먹는 칭기즈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일본 중앙정부가 홋카이도를 개척하면서 유럽풍의 목축을 권장했는데 이로 인해 양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본인들이 혼슈에서 홋카이도로 옮겨오면서 천연두를 옮겨놓은 바람에 원주민인 아이누족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홋카이도 사람만의 정체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중앙정부가 홋카이도를 차별하는 실태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먹을거리를 자급할 수 있는 곳이 홋카이도다. 일본 전체에 그런 도움을 주는 곳이 홋카이도인데도 중앙정부는 이 지역 다쿠쇼큐은행 등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때 결국 도와주지 않았다.

 

” 그렇다고 해서 홋카이도가 정치적인 독립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키나와인’이라고 부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홋카이도인’보다는 ‘일본인’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홋카이도는 차별당하고 있다”

 

일본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임문택(33)씨는 이 지역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이자 일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임씨한테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인 사사키 스즈키(66)의 집은 삿포로 외곽인 기타히로시마에 있었다.

 

한국말을 한창 배우느라 하루 일과를 한국어로 직접 써 벽에 붙여놓은 그는 취재진에게 음식을 내왔다. 스모 선수들이 살을 찌우기 위해 매일 먹는다는 ‘장코나베’라는 음식이었다. 한국 식당에서도 파는 샤브샤브의 일본판이라고 할까. 튀김까지 배불리 먹고 나니 이곳이 한국 가정인지 일본 가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사키는 “홋카이도 사람들은 혼슈 사람들처럼 작은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넓은 땅에서 여유 있게 살아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한국 드라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겨울연가>를 35번이나 봤다고 털어놨다. 한류가 북국의 끝까지 전달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첫 번째가 권상우, 두 번째가 이병헌 그리고 배용준”이라고도 했다. 사사키의 집에서 나온 시간은 밤 11시30분이었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타루,그곳에선…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한겨레21 2006-02-21 11:03]    

[한겨레] ‘블랙블루의 도시’ 오타루에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생각함
영화 <러브레터>와 청어잡이의 추억, 운하와 창고가 명물
 

▣ 오타루= 글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타루는 블랙 블루의 도시다. 소박하지만 하찮지 않고,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다. 오타루는 전통과 현대의 공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래선지 오타루 시내를 걷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뜻밖에 건네받은 한글판 관광안내서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연안철도는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겨울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처럼 푸드덕거리며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설렘. 서른 즈음에서 훌쩍 마흔에 가까워져버린 사람, 마흔 고개를 넘은 사람, 오타루가 처음이 아닌 사람까지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오타루의 정체는 뭘까.

 

오타루역에서 제일 먼저 만난 이는 시청 경제부 관광진흥실 와타나베 가즈히로(41). 공무원 생활 17년째로 지역 토박이인 그에게서 건네받은 건, 뜻밖에 한글판 지도인 ‘나들이 오타루’와 관광안내서 ‘영화 <러브레터> 로케지를 찾아서’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처럼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당혹스런 안내지의 행간들이 오히려 따뜻한 웃음을 자아내고, 타국에서 받은 한글판 안내서는 고향의 진한 대추향처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역을 나서자마자 왼쪽에 있는 ‘산가쿠시장’을 지나 눈길 위를 조심조심 걸어 언덕길을 올랐다.

 

가파른 경사들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미끄럼틀 같다. 미끄러지는 통에 영화 같지 않은 현실에 산통은 깨져도, 연애편지를 더듬어가는 언덕길은 아직껏 숨차도록 뜨끈한 어떤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뒤를 돌아보라며 와타나베가 가리킨 팻말은 영화 속 그대로 ‘후나미자카’. ‘배를 바라다보는 언덕’이었다. 그리고 그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간 시선 끝에 바다가 한가득 밟힌다.

 


‘구일본 우선주식회사 오타루지점’ 건물은 <러브레터>에서 도서관으로 등장했던 곳이다. 오타루시 박물관이었다가 현재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건물로 들어서자 한국어를 한창 공부 중이라는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감사하므니다”를 연발한다.

 

 밖으로 나오니 오타루 운하 주변의 창고촌 공장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고 있는 일꾼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준다. 그랬다. 오타루는 또 괜스레 손을 흔들어주고 싶은 곳이다.

 

운하 지키기, 근대화 시정책에 맞서다

 

오타루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 운하다. 와타나베는 “한국에서 광고 촬영을 왔다가 다른 곳에 못 가니까 운하에다 대고 ‘오겡키데스카’ 하는 스태프들을 본 적이 있다”며 웃었다. 20세기 초반 오타루는 청어잡이의 중심지였다.

 

청어를 가득 실은 배는 항구를 거쳐 이곳 운하로 들어온 뒤 창고에 고기들을 내려놓았다. 원래 유리공예는 ‘우키다마’(어선의 램프)를 만드는 곳이 오타루가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데서 비롯했다.

 

게다가 메이지시대 ‘100만억 시대’라 불릴 정도로 청어잡이가 한창이었는데, 청어는 먹는 생선이라기보다는 ‘니싱가스’라고 불리는 일본 농가에서 쓰는 비료였다. 돈이 되는 생선이었던 셈이다. 이때 만들어지는 ‘어유’가 ‘우키다마’를 밝히는 기름이 되었으니 유리공예와 청어잡이와 운하는 한 지붕 세 가족이었다.

 

지금 운하와 창고는 애초의 용도를 잃고 새로운 용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운하와 창고가 이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1966년 오타루시는 시내 교통체증을 줄이고 항구를 근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운하를 메우고 6차선 간선도로를 뚫는 계획을 세웠다.

 

운하가 메워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주부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것은 1975년. 악취 나는 운하를 청소하고, 거리 연설과 신문 발행 등의 대중운동이 시작됐다.

 

‘오타루 운하 연구강좌’를 열어 전국 유명강사가 참가하도록 하면서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문화축제를 통한 선전전이 새로운 행동의 촉진제가 됐다.

 


토론과 협상, 투쟁 과정은 그 뒤로도 20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1986년 완성된 도로는 운하의 폭을 반으로 줄여놓았지만, 운하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대신 그동안의 논쟁 과정이 일본 내에 알려지면서 이곳은 일약 유명 관광지가 됐다.

 

창고도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식 주점과 식당으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일본은행 구 오타루지점 금융자료관이나 오타루 베인 등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그대로 쓰는 역사적 건조물들이다. 오타루시는 이런 노력을 통해 오타루시 전체 공간의 통일성을 기하고 있다는 게 와타나베의 설명이었다.

 

유리공예를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타루 운하 공예관’은 오징어 눈두덩이 같은 독특한 돔 양식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공예관 지하로 내려가면 섭씨 1천도의 가스 가마와 녹아내릴 듯한 결석이 투명한 유리로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한다.

 

눈빛 축제의 백미는 눈길 걷기

 

<러브레터>의 둥글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와타나베는 <일 포스티노>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시 청사에 들어서자 ‘유키 아카리(눈빛)의 길’ 축제를 준비하는 시 공무원들과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오타루시 직원 니시모토 유스케(25)의 맑은 미소는 눈축제 때 밝혀질 스노 캔들만큼이나 빛났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보통 5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몰린다.

 

2월10일부터 19일까지 오타루 운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행사의 백미는 산책로와 가스등이 놓인 눈길을 걷는 것이다. 연꽃을 닮은, 운하 표면에 피어나는 얼음 균열인 ‘하스하 고오리’도 놓치기 힘든 광경이다.

 

스시의 나라 일본에서도 오타루 스시라고 하면 알아준다고 한다. 취재진도 초밥집 130개가 몰려 있는 ‘스시도오리’로 발길을 옮겼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