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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쉬 지중해의 도시 카쉬로 가는 길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0. 16:40

 

                   터키 카쉬

 

      지중해의 도시 카쉬로 가는 길

 

 

 

 

 

 

 지중해의 도시 안탈랴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괜히 버스를 탔나' 싶은 생각에 여행 일정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너무 좋은 사람들, 너무 좋은 곳에서 너무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일정대로 떠나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스표를 이미 예약해 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도 기본 계획은 세우며 여행하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감정이 잘 추슬러지지 않았다. 마음은 되돌아가고 싶은데 몸은 버스에 실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어제 밤 내가 떠난다고 짐을 들고 나설 때 함디와 포도주를 함께 한 할아버지는 자신의 차로 오토갈(터키의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다고 난리였다. 고작 100m 거리에 있는 터미널인데 꼭 자신의 차로 데려다 줘야 한다며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짧은 길을 돌아 터미널에 날 내려주고 아쉬움의 포옹을 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관성의 법칙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그 헤어짐이 쓰라려 먼저 마음을 닫아버리고 거리를 둘 때도 있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헤어질 수 있지만 허무했다. 사람과 정에 대한 허기가 돌았다. 그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저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 카쉬(Kaş)에 가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거야.'

새벽에 안탈랴에 도착했다. 터키의 최대의 휴양지답게 휴가를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카쉬로 향했다. 안탈랴에서 지중해를 따라 동쪽으로 네 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도시 카쉬는 조그만 휴양지이다.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곳보다 좀 더 작은 도시에서 쉬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었다. 또한 카쉬는 터키에서 가장 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하루는 스쿠버 다이빙을 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카쉬를 향해 달리는 버스는 지중해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저 짙게 푸른 바다가 지중해구나.'

지도에서만 보고 온갖 매체에서 말로만 듣던 지중해를 보니 기분이 새롭다. 깎아질 듯한 절벽 옆 해안 도로로 버스는 곡예 운전을 하고 그 옆으로는 지중해가 보인다. 네 시간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절벽 아래 바다는 햇빛을 받아 총천연색을 뿜어낸다.
 
너무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다. 같은 바다인데 그 바다가 만나는 다른 지형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지형의 깊이에 따라 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나타나는 카멜레온이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피곤하고 지루할 것 같은 네 시간은 멋진 바다로 인해 환상 그 자체였다.

카쉬의 오토갈에서 내렸을 때 엄습해오는 더위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버렸다. 카파도키아는 건조해서 아무리 햇빛이 강해도 상쾌했다. 하지만 바닷가인 이곳은 전혀 아니었다.
 
한층 더 뜨거운 태양 그리고 바닷가에서 몰려오는 습한 공기가 내 몸 구석구석을 공격하고 있었다. 숙소를 잡고 밖에 나가봤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더위에 돌아다닌다는 것은 몸을 혹사 시키고 마음에 짜증을 일으키니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몇 군데 다이빙숖과 여행사를 돌아본 뒤 바로 노천카페에 앉았다.

▲ 카쉬 항에는 다이빙 보트로 항상 복잡하다.
ⓒ2006 김동희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는데 한국 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지만 터키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사기를 당하고, 아프고 힘들게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허무하게 헤어져버렸다.

'내가 왜 오렌지 주스 한잔을 사주지 못했을까? 함께 저녁이라도 먹자고 할 걸….'

더위에 지친 내 머리와 마음이 움직이지 못한 것일까? 후회가 된다. 나도 그 학생처럼 혼자 여행을 다닐 때 돈을 아끼며 생활하는 나에게 선뜻 밥을 사준 사람들, 혼자인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들, 함께 놀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많은 고마운 사람들 덕에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나도 그들처럼 여유롭지 못하지만 여행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에게 밥 한 끼 사주리라 생각했는데 그 첫 번째 기회를 이렇게 허망하게 놓쳐버렸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니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조그만 이 도시는 이미 휴가를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항구에는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온 배들이 촘촘히 정박해 있고 바닷가를 따라 줄줄이 자리 잡고 있는 음식점은 노천에 예쁜 테이블을 내놓고 손님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

▲ 카쉬의 밤 거리
ⓒ2006 김동희
순간 옆에 있는 큰 식당에서 난리가 났다. 큰 함성으로 떠나갈 듯하다.

"무슨 일이예요?"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 중이에요. 이 지역 팀이 골을 넣었나 보네요."

2002 월드컵 때 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역시나 터키도 축구에 열광하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경기장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경기를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축구 하나에 함께 열광하는 모습은 이제 나에게도 익숙한 광경이다.

▲ 깜깜한 밤의 카쉬 항구
ⓒ2006 김동희
소란스럽지만 정감이 넘치는 이 작은 도시에 밤이 찾아왔다. 바닷가 방파제를 따라 산책을 했다. 파랗던 바다는 어둠 속에 묻혀지고 단지 파도소리와 바다 냄새만이 이곳이 바다임을 말해준다. 방파제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아마 카파도키아에 대한 아쉬움도 점점 사라질 거야. 내일 바다로 나가면.'
[오마이뉴스 2006-03-08 16:56]    
[오마이뉴스 김동희 기자]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