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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지중해에서 '비행' 소녀가 되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5. 22:41

 

     터키 지중해에서 '비행' 소녀가 되다

 

 

 하루의 시작은 역시나 터키식 아침 식사와 엊그제 사놓고 다 못 마신 체리 주스를 먹는 것부터다. 큰 슈퍼마켓만 보면 들어가서 신기한 먹거리를 사가지고 와 처리하느라 힘겹다.
 
혹 실패하기도 하고 혹 너무 큰 걸 사서 다 먹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맛을 찾아 헤매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터키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곳은 카쉬(Kaş)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두 시간 가면 도착하는 유명한 휴양도시 폐티예(Fethiye). 요트 여행의 시작이나 종착점으로 많은 여행객이 몰리는 이곳도 너무 더워 오래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잠깐 동안에도 온몸에서 진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더위를 참고 내가 폐티예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하늘을 날기 위해서다.

▲ 1000m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 준비 중
ⓒ2006 김동희
여행사에 들어가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하고 픽업 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폐티예에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인터넷을 찾아봐도 나머지 두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이곳이 진짜 3대 활공장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그만큼 유명한 곳이리라.

주변에서 밥을 많이 먹고 하늘을 날면 속이 좋지 않아 하늘에서 멀미를 할 수 있으니 적게 먹고 가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제가 되지 않았다. 포만감을 느끼며 픽업 트럭에 타니 사과와 복숭아를 하나씩 나눠준다. 시골길을 달리는 트럭 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과일을 먹고 온 힘을 다해 남은 씨앗을 집어 던지는 기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 기다림.
ⓒ2006 김동희
폐티예에서도 패러글라이딩 업체들이 몰려 있는 곳은 욜루데니즈(Ölüdeniz)라는 유명한 해변가다. 이곳까지 와서 필요한 장비들을 차량에 싣고 산으로 올라간다. 해발 1000m에서 나는 하늘로 뛰어 갈 것이다. 40분간을 꼬불꼬불 비포장 산길을 올라갔다. 갈수록 공기가 청명해진다. 하늘에 가까이 오를수록 서늘하다.

한참을 가더니 멈춰선 곳은 욜루데니즈 해변이 보이는 산꼭대기였다. 그곳에 넓은 공터가 있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하늘을 날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 멀리 그리스의 로도스 섬(Rodos Island)도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녹아내린 것처럼 몽롱하다. 아직 하늘을 날지도 않았는데 그저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였다. 왜 이곳을 세계 3대 활공장이라고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 하늘 위에서 본 욜루데니즈 해변
ⓒ2006 김동희
함께 하늘을 날 가이드와 장비를 챙겼다. 초보자가 전문 가이드와 함께 타는 것을 탄뎀(Tandem) 패러글라이딩이라고 한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헬멧을 쓰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조그만 카메라만 손에 꼭 쥐고 모든 짐도 등 뒤로 올렸다. 우리의 날개가 되어줄 큰 패러글라이더를 땅에 활짝 펼쳐놓고 앞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제가 달리라고 하면 계속 달려야 해요. 앞에 잘 봐요. 달리다 말면 위험해요. 발이 하늘에 떠 있기 전에는 계속 달려요. 알았죠?"

▲ 해변을 따라 바다색이 아름답다.
ⓒ2006 김동희
입술을 깨물며 열심히 달리려고 몇 발자국 내딛자마자 더 달리려고 해도 달릴 수 없었다. 이미 발은 땅과 멀어져 있었다. 순식간에 내 몸은 가벼운 깃털처럼 하늘로 떠올랐다. 긴장을 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너무 쉽게 하늘은 나를 품안으로 받아주었다.

몇 분후 패러글라이더가 자리를 잡고 나니 그제야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 욜루데니즈 해변이 보인다. 특이하게 생긴 해변과 눈부신 옥색 바닷물이 천상의 세계인 듯 너무 아름답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저 감탄사, 감탄사만 연이어 나올 뿐이다. "와! 너무 아름다워요. 너무 아름다워요." 하늘에 떠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 하늘에서 본 욜루데니즈 해변 끝 블루 라군
ⓒ2006 김동희
가이드는 나에게 로도스 섬과 성 니콜라스 섬(St Nicholas Island)과 욜루데니즈의 블루 라군과 그 주변에 대해 설명했다. 운이 좋아서 날씨가 너무 맑아 멀리 있는 로도스 섬도 잘 보인다.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언제 다시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30분 동안 하늘을 날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을 끝낸 후 바로 바닷가로 향했다. 하늘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이 해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햇빛을 받으며 쉬고 있는 사람들과 해변을 따라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파도를 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나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향했다.

▲ 해변의 풍경
ⓒ2006 김동희
파도타기는 모두에게 신나는 놀이다. 조금 깊은 곳에서 집채만한 파도가 올 때면 모두들 고개를 내밀고 박자를 세기 시작한다. 바로 앞에 도착하면 리듬감 있게 몸을 파도에 맡긴다. 파도의 힘에 의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얕은 물에서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해변으로 밀려나간다.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렌즈 한쪽이 바닷물에 쓸려갔다.

해변 한가운데 있는 작은 샤워장에서 소금기를 씻은 후 하늘에서 본 특이한 모양의 욜루데니즈 해변을 걸었다. 조금만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이곳에도 가족끼리 연인끼리 여름을 즐기기 위해 온 인파로 가득하다. 특히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잔잔한 바다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만으로 들어온 곳의 바다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저녁이 되니 에메랄드 빛 바다는 사라지고 어두워진다.

▲ 즐거운 파도타기
ⓒ2006 김동희
어두운 바다를 뒤로 하고 폐티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안경점을 찾았다. 잃어버린 렌즈를 대신할 일회용 렌즈를 구해야만 했다. 여행 전 하나 준비해놓는다는 것이 출발할 때까지 안경점 근처도 가지 못했다.

"렌즈 사려고 왔어요. 제 시력에 맞는 일회용 렌즈 주세요."
"시력을 알고 계세요?"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하기 위해 한 번 체크 해보고 싶어요."
"우리는 의사가 아닌걸요. 그저 판매만 해요. 시력 체크 하시려면 병원에 가셔야 해요."

터키에서는 안경점은 그저 판매만 하는 곳이었다. 간단한 시력 체크도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했다. 발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시력 체크를 위해 또 병원에 갈 수 없어서 기억하고 있는 내 시력을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렌즈가 없어요. 주문을 해야 해요."

카탈로그 안에는 내 눈에 맞는 렌즈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 없단다. 마이너스도 아니고 난시가 있거나 특이한 증상이 있는 눈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는 렌즈를 받으려면 3일 정도 기다려야 해요. 주문을 하면 안탈랴 또는 이스탄불 같은 큰 도시에서 배달이 오죠."

터키에선 큰 도시를 제외한 소도시 안경점에는 어떤 렌즈도 가지고 있지 않단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분을 챙기지 못한 결과다. 결국 렌즈를 구입하는 것은 포기하고 흐릿한 눈을 앞세워 슈퍼마켓에 들렀다. 눈은 흐릿해도 이상하게 먹어보고 싶은 것들은 눈에 잘 보인다. 손에 먹을 것을 들고 흐릿한 거리를 따라 걷는다. 하늘을 날았던 터키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오마이뉴스 2006-03-24 15:07]    
[오마이뉴스 김동희 기자]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