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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케코바섬,지중해의 품에 가라앉은 문명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5. 20:59

 

                   터키 케코바섬

 

         지중해의 품에 가라앉은 문명

 

 

 

 

어제의 다이빙은 실망이었다. 이곳이 터키 최대의 다이빙 포인트라지만 동남아시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산호도 보기 힘들었고 물고기도 보기 힘들었다. 그저 황량한 느낌이었다. 거센 조류와 순간 몰려오는 차가운 냉기는 날 긴장시켰고 힘이 너무 들었다. 즐기려고 한 다이빙은 육체 노동보다 더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일찍 숙소로 들어와 쉬고 다니 바다로 나갔다. 케코바 섬(Kekova Island) 투어다. 카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섬은 비잔틴 시대의 유적들이 섬 해변을 따라 가라앉아 있어 유명해졌고 가라 앉은 도시(Sunken ci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여행사 버스를 타고 조그만 어촌 마을의 부둣가로 향했다. 우리 팀 가이드인 제레미는 가는 길에 좌판에서 파는 포도를 싹쓸이 해오는 센스를 보였다. 보트에서 먹을 잘 익은 포도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부둣가에는 우리를 지중해 한가운데로 띄워줄 작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 가라앉은 도시를 보는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2006 김동희
배는 천천히 출발했다. 신을 벗어 던지고 발을 배 밖으로 바다를 향해 뻗었다. 바닷물과 배의 속도가 발 끝에 느껴졌다. 이스탄불부터 아프기 시작했던 발의 통증이 없어져 기분도 너무 좋았다. 한참을 달린 후 섬의 해안가에 도착했다. 수영을 즐길 수 있는 30분이 주어졌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 옥색 물빛이 아름답다.
ⓒ2006 김동희
잔잔한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수영을 해서 해변 가에 도착하니 가라앉은 도시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부는 섬 한가운데 남아있다. 2세기에 걸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6m 아래 바다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수영을 하면서 그 흔적을 만날 수 있었고 배가 돌면서 더 많은 가라앉은 도시의 흔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지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무서운 것 같다. 한 번에 삶의 터전을 빼앗아 버리고 무너트리는 강력한 재앙임에 틀림없다.

▲ 가라앉은 도시의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
ⓒ2006 김동희

▲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남아있는 계단
ⓒ2006 김동희
한참을 해변에서 고대의 돌들을 보다가 배로 돌아가려고 발을 디뎠는데 발에 무언가 많은 것이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 쉬지도 않고 배로 향했다. 배에 오르자마자 발바닥을 보니 까만 가시가 여섯 개나 박혀 있었다.

큰 것 하나를 빼냈지만 다른 것들은 좀처럼 빠져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제레미와 선장까지 나와서 내 발을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오일을 바르고 두 개를 더 빼냈지만 세 개는 빼낼 수가 없었다. 이제야 발 근육이 아프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이다. 하지만 가장 큰 두 개를 빼 내서 그런지 통증은 가라앉았다.

“성게 가시가 많더라구요.”

함께 온 여행객은 마스크를 끼고 본 바다의 바닥을 이야기 해준다. 내 발에 박힌 것이 부러진 성게의 가시였던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놔둘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지나니 아픔도 가셨다. 내가 부주의해서 다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인 제레미는 되려 더 미안해 했다.

그 발로 칼레쿄이 (Kaleköy)라는 고대 시메나(Simena)의 유적이 가득한 섬으로 향했다. 섬 위에는 시메나 성이 우뚝 솟아있다. 섬 위로 올라갈 때마다 바다는 너무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메나 성에 도달하니 작은 원형 극장 터, 그리고 공중 목욕탕의 흔적 또한 다양한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제레미의 말에 의하면 성벽의 세 가지 다른 모양은 각각 리시안(Lycian) 시대의 것, 비잔틴 시대의 것 마지막으로 오스만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 시메나 성 위에서 보는 지중해. 성곽의 모양이 세가지이다.
ⓒ2006 김동희
그 성벽 뒤로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성 하나가 이곳이 거쳐 지나간 시대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새파란 바다에 떠있는 하얀 요트들이 더더욱 멋들어지게 만들었다.
 
성 뒤에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만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라 바다 색부터 앞쪽 바다와 다르다. 돌산에 올올이 박혀있는 나무들과 옥빛 바다 그리고 하얀 요트가 절경을 만든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 한가롭게 요트들이 떠있다.
ⓒ2006 김동희
내려오는 길에는 리시안의 묘를 만날 수 있었다. 리시안 유적지는 터키의 남해안에 거쳐 펼쳐져 있다고 한다. 카쉬 시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이 묘는 무척이나 인상 깊게 생겼다.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죽은 그들의 삶이 묘에서 보여진다. 그들이 죽으면 배를 뒤집어 놓는 풍습이 있었고 이 배를 뒤집은 형상이 그대로 묘의 지붕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 리시안의 무덤.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2006 김동희
배를 타고 해안가를 돌면서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고, 햇빛을 받으며 음악도 듣고, 아침에 사온 포도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수영도 한다. 터키에서 수영을 하니 수영을 하면서도 짜이를 마시는 광경도 보게 된다. 정말 짜이는 터키 사람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차인 것 같다.

투어를 마치고 카쉬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해가 지면 카쉬는 더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변신을 한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정말 예쁜 액세서리들로 가득하고 하나하나가 모두 예쁘다.
 
마찻길에 조명이 반사되어 온통 거리가 노란 빛이 나는 것 같다. 이곳은 터키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노후를 즐기기 위해 온다고 한다. 그래서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아주 많다.

▲ 카쉬의 저녁 풍경
ⓒ2006 김동희
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거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고대 원형 극장에 갈 수 있다. 해지는 것을 보려고 급하게 갔는데 이미 해가 들어간 후였다. 하지만 높은 원형 극장에서 바라보는 저녁 바다는 포근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편안하고 따뜻해 보였다. 한참을 앉아 카쉬의 마지막 밤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데 몇몇 무리들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 앞에 왔다.

▲ 원형극장에서 본 바다
ⓒ2006 김동희
“어디셔 오셨죠? 영어 할 줄 아세요? 방송국 취재 나왔는데 인터뷰 하려고요.”
“네? 아 그래요? 어떤 내용이죠?”
“카쉬 방송국에서 관광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어요. 왜 터키에 오셨고 어떠셨는지 일반적인 내용을 물어보려고요.”

얼떨결에 시작된 인터뷰는 몇 분 동안이나 이어졌고 지금까지 터키를 지나온 여정과 터키가 좋은 이유 그리고 왜 여름 휴가를 이곳으로 정했는지 몇 마디 터키어까지 곁들여 정신없이 이야기했다. 모두 편집되지 않고 방송에 내 모습이 나갔을지, 안 나갔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방송국 첫 인터뷰를 이런 곳에서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 아닌가!

그들이 가고 나서도 난 그곳에 잠시 앉아있었다. 왜 터키에 왔냐고? 왜 이곳을 여행지로 정했냐고? 인터뷰에서는 터키에는 고대 문명이면 고대 문명, 바다면 바다, 자연이면 자연 없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왔다고 식상한 이야기 했지만 내가 진짜 이곳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평안한 바다와 사람들, 그 자연스러움과 친절함. 그것이 진짜 터키의 매력이 아닐까.

▲ 원형 극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포근하다.
ⓒ2006 김동희
[오마이뉴스 2006-03-15 10:28]    
[오마이뉴스 김동희 기자]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