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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동서양 교차로·인류사 박물관

향기男 피스톨金 2006. 4. 22. 10:56

 

              터키, 新 실크로드를 가다

 

                                 기독교 성지를 찿아서
터키의 상징인 아야 소피아 성당. 데오도시우스 황제때인 서기 415년 완공된 성당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크다. 후대엔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으나 터키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4년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의 공존을 위해 박물관으로 바꿨다.

터키는 역사와 문명이 압축된 땅이다. 히타이트, 프리지아, 우라티아, 리디아와 로마문명,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가 뿌리 내린 종교의 성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이자 문화의 교집합 지역. 그래서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박물관’이라고 표현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이기도 했다. 동·서양 문물 교류가 시작된 이후 실크로드 상인들이 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터키를 거쳐야 했다.

 

터키의 아시안하이웨이는 아그리~호라산~에르진잔~시바스~앙카라~볼루~이스탄불로 이어진다. 하이웨이 노선만 2,000㎞가 넘는다. 동부와 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거치게 되는데 이 일대는 고대 상인들의 옛 실크로드와 비슷하다. 캐러밴은 아프간 협곡을 넘어서 터키로 진입하든지 아니면 카라코롬 산맥을 넘어 이란을 지나 터키땅으로 들어왔다.

 

요즘은 그 길을 따라 관광객들이 몰려다닌다. 사실 터키 실크로드의 역사를 따진다면 2,000년이 훌쩍 넘는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옛상인들이 머물렀던 고도들이 제법 있다.

 

앙카라에서 3시간 거리인 샤프란 볼루. 실크로드 상인들이 머물던 마을이다. 샤프란은 꽃의 종류이다. 1,000개의 씨를 뿌렸을 경우 1개의 꽃이 필 정도로 재배하기 힘들지만 향료로서는 최고급품. 1g에 100달러를 호가한다. 보라색과 빨간색, 노란색 꽃은 염색약으로도 썼다.

 

샤프란을 재배하는 농부 후세인은 “아시안 하이웨이가 완전히 뚫리면 실크로드 시대처럼 앞으로 다시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백년된 고택들이 모여 있는 볼루 시내는 1994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묵었던 집은 겉모양은 유럽식인데 희한하게도 대문은 한국 전통의 문고리처럼 생겼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들이 미로처럼 퍼져있는데 집주인은 상인들이 물건을 도둑맞지 않도록 일부러 복잡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인들이 머물던 집은 호텔로 바뀌었다.

 

하이웨이의 종착점인 이스탄불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의 접합점이다. 유럽 지구는 3%, 나머지 97%는 아시아지구다. 이스탄불의 역사를 보면 동양과 서양을 결코 떼낼 수 없다. 323년부터 동로마제국의 수도, 1453년 비잔틴제국이 무너진후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은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6세기에 이미 인구가 50만명, 9세기에는 1백만명이 넘었다. 지금은 1천2백만명.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다보니 관광객도 많다. 지난해 터키 관광객은 2천1백30만명이었다.

 

 


이스탄불은 이슬람 국가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란이나 아프간 같은 회교원리주의가 판치지 않는다. 거리에는 차도르를 쓴 여인부터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까지 보인다. 현지인들은 이교도에 대한 관용의 역사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터키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정책이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소피아 성당은 당시 유럽기독교의 심장이었죠. 정복자 메흐메드 2세는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이슬람사원으로 바꿨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그는 그저 하얀 천으로 벽화를 가렸을 뿐이죠.”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에 들러 주민들을 학살했지만 이슬람은 오히려 성당을 보호했다니 아이로니컬하다. 실제로 이스탄불은 각종 종교의 성지다.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 있으며 아르메니아교회도 남아 있다. 유태인도 많이 사는데 15세기 스페인 제국에 의해 쫓겨난 유태인까지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동굴도시. 기독교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굴을 파고 성당과 수도원 등을 지었다.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곳이라 큰 시장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곳이 그랑바자르. 역사는 500년. 현재 무려 4,500개의 상점들이 몰려있는데 연간 방문자만 2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중해기행’을 쓴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콘스탄티노플에 가면 꼭 그랑바자르를 보고 와야 한다.

 

이 도시의 심장부가 거기 있다”고까지 했다. 보석가게, 골동품가게 등 독특한 상가가 많다.

수많은 상가 중에서도 바자르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은 카펫 가게. 낡고 오래된 카펫이 더 비싸고 인기가 높았다. 최고급 헤레케 카펫은 1억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어른 몸을 겨우 덮을 만한 카펫이 4천만~5천만원이나 한다.

 

요즘 터키 정부는 철의 실크로드로 불리는 철도로 아시아와 연결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과거 동서양 가교역할을 하면서 국부를 쌓았던 터키는 아시안 하이웨이가 개통될 경우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묵었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볼루.

터키 먹자골목인 치체크 파사지. 오스만시대의 건물을 개조한 레스토랑이 많다.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동서양 교차로·인류사 박물관

1600년 동안 세계의 수도 역할을 했던 이스탄불은 길이 30㎞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지만 사회,문화,경제의 중심지는 여전히 옛 수도인 이스탄불이라 할 수 있다.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던 이스탄불의 볼거리는 유럽쪽 구시가지에 집중돼 있다. 골든혼과 마르마라해,테오도시우스 성벽에 둘러싸인 구시가지엔 톱카프 궁전과 아야 소피아 박물관,술탄 아흐메트 사원(블루 모스크) 등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오스만 왕조의 지배자들이 살았던 톱카프 궁전은 세개의 대륙을 거느렸던 술탄의 영화가 오롯이 남아 있다. 보물과 의상 등을 전시한 제3정원 남쪽의 보물관이 가장 볼 만하다. 3개의 커다란 에메랄드와 황금으로 만든 톱카프의 단검과 86캐럿의 대형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수많은 보석이 눈을 부시게 한다.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은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 서기 360년에 완공돼 수차례의 화재를 겪은 뒤 537년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완공됐다. 지름이 31m인 대형 돔 지붕과 요한과 함께 그려진 그리스도의 모자이크가 눈길을 끈다.

 

동서양의 물자가 모이는 그랜드 바자르는 지붕이 있는 시장. 아주 넓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같은 출입구로 나올 수 없다. 가계의 수는 무려 4400개나 되지만 같은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는 대개 한곳에 모여 있어 쇼핑하기 쉽다.

 

보스포러스 유람선을 타보지 않았다면 이스탄불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보스포러스 크루즈는 에미뇌뉘에서 출발해 2개의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 돌아오는 1시간30분 동안 도르마바흐체 궁전 등이 연속으로 펼쳐져 옥외박물관 관광코스로도 불린다.

이스탄불(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그 옛날 지하성전 문명을 비웃다…카파도키아

[국민일보 2006-04-20 15:42]

 


동양과 서양,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터키는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기독교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땅이기도 하다. 에베소서 등을 집필한 사도 바울은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해 에페스(에베소) 등에 기독교를 전파했다.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에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동굴에서 신앙을 지켜온 기독교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파묵칼레로 유명한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사도 빌립이 순교한 땅이기도 하다. 기독교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 하는 터키로 성지순례를 겸한 여행를 떠나본다.

 

 

 

    로마시대 기독인들 박해 피해 도시건설

 

 


형형색색의 거대한 열기구들이 여명의 하늘을 오른다.

버섯을 닮은 기암괴석과 벌집 형태의 석굴 주거지,그리고 지진으로 갈라진 듯 지그재그로 뻗어나간 계곡의 장관이 발아래 펼쳐진다. 순간 지평선에서 솟은 태양이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을 연분홍으로 채색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터키 아나톨리아(소아시아) 고원 중부의 황량한 화산지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이었다. 골프장 형태의 완만한 고원은 카파도키아에 발을 딛자마자 순식간에 풍경을 바꾼다. 황토색 붉은색 노란색 갈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지층과 원뿔형 송곳형 원통형 버섯형 등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그리고 적갈색 땅이 마치 미지의 혹성처럼 숨은 비경을 드러낸다.

 

카파도키아는 3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응회암층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버섯이나 죽순 모양의 기암으로 변한 특이한 지형으로 198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기묘한 자연과 석굴교회로 대표되는 초기 기독교 문화가 인류의 유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네우세히르를 비롯해 우치히사르,위르깁,괴레메,아바노스 등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로 이루어진 카파도키아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곳은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괴레메와 우치히사르 일대의 계곡.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살리메 마을의 계곡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 ‘스타워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수천 개의 석굴교회가 존재했던 기독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2000년 아나톨리아 최초의 통일국가인 히타이트 시대부터 동서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카파도키아는 1∼4세기에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기독교인들이 바위와 지하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석굴 주거지가 온전하게 보존된 괴레메 야외 박물관엔 모두 10개의 석굴교회가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엘마르 키리세(사과 교회),벽화의 인물이 샌들을 신고 있는 차르크르 키리세(샌들 교회),천장과 벽에 그리스도 일대기가 그려진 토칼르 키리세(버클 교회),빛이 스며들지 않아 프레스코화가 선명한 카란르크 키리세(어둠의 교회) 등이 대표적 석굴교회.

 

석굴교회의 프레스코화는 8∼9세기 우상파괴운동 때 훼손돼 초기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프레스코화는 대부분 12∼13세기의 작품으로 그나마 극단적인 무슬림들에 의해 성화의 눈이 집중적으로 훼손돼 가슴을 아프게 한다.

 

카파도키아 유적의 하이라이트는 1968년에 발견된 데린쿠유의 지하도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건설한 데린쿠유의 지하통로는 베트남의 구찌터널을 방불케 한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개미집처럼 지하로 뻗은 수십㎞의 미로가 나타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정도.

 

4만여 명의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지하 80m 높이의 환기구와 침실,주방,식료품 창고,학교,교회 등을 만들어 공동생활을 했다고 한다. 곳곳에 적의 침입에 대비해 둥근 돌로 통로를 막을 수 있도록 했으며,십자가를 상징하는 십자로도 만들었다. 카파도키아에는 이외에도 카이마크르,오즈코낙 등 기독교인들의 지하도시가 즐비하다.

 

1950년대까지 사람이 거주했던 카파도키아의 수많은 계곡은 석굴 교회와 석굴 주거지,그리고 현대식 집들이 적당히 섞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응회암의 균열로 생긴 구멍에 비둘기들이 둥지를 튼 피전 계곡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압권이다. 응회암 절벽에 석굴을 파고 산 기독교인들은 비둘기의 배설물을 모아 포도밭의 비료로 사용하고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교회에 성화도 그렸다고 한다.

 

연분홍색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로즈 계곡은 노을에 붉게 물들면 더욱 신비스러운 빛을 발한다. 우치히사르에서 괴레메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메칸 계곡은 희고 매끄럽게 반복되는 지표의 주름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끝없이 교차된다. 특히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는 오후엔 굴곡 부분의 음영이 뚜렷해지면서 전혀 다른 풍경을 그린다.

 

12㎞ 길이의 우흐라라 계곡은 뜻밖의 풍경을 보여준다. 황무지로 이루어진 카파도키아지만 이곳에는 계곡 아래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수많은 석굴 주거지 앞에는 포플러 나무가 자란다. 이곳에도 5000여 개의 석굴 주거지와 100여 개의 석굴교회가 보존되어 있다.

 

파샤바의 버섯바위는 카파도키아의 상징. 만화영화에 나오는 스머프 마을처럼 바위에 석굴을 파고 산 사람들의 흔적이 뚜렷하다. 스머프 작가도 이곳의 버섯바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벨리댄스의 현란한 선율이 석굴 틈새로 흘러나올 때 쯤 카파도키아 계곡에는 밝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그러면 달빛에 젖은 푸르스름한 기암괴석들은 어둠 속에서 그 옛날의 영화를 꿈꾼다.

카파도키아(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여행메모

 

 

 

[국민일보 2006-04-20 15:56]

 

카파도키아는 공항이 있는 카이세리에서 차로 2시간 거리. 이스탄불에서 카이세리까지는 터키 국내 항공이 연결하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카펫과 도자기로도 유명하다. 괴레메에서는 일반 호텔보다 응회암 동굴 속에서 묵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 카파도키아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열기구를 타야 한다. 이른 아침 한번밖에 운행하지 않으므로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요금은 약 200달러.

 

터키 문화관광부의 일한 오우즈 동아시아지역 국장은 19일 배낭여행 중 피살된 임지원씨 사건과 관련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여행 중 외진 곳을 다니지 말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며 접근하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터키에서 사고를 당하면 전화 155번으로 터키 경찰에 긴급 구조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현재 터키에는 20만명의 경찰 외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안전과 언어 지원을 위해 80개 주요 관광지에 3000명의 관광경찰이 별도로 있다(터키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02-776-2062).

 

 

 

          고대도시로 시간여행

 

[한겨레 2006-04-19 22:57]    

 


[한겨레] 고대로부터 동서 문명이 교차했던 터키는 유서깊은 고대도시의 유적이 많은 역사박물관이다. 특히 그리스와 로마에 인접한 에게해 연안의 디딤을 비롯해 에페수스, 파묵칼레 등은 그리스와 로마 유적의 보고로 불리는 곳이다.

 

아폴론 신전 돌기둥 3개 남아

 

디딤

 

에페수스에서 남쪽으로 약 60여㎞ 아래에 자리잡은 디딤(디디마)은 그리스 델포이와 더불어 고대에서 가장 신성한 2대 아폴론 신전의 도시였다. 현지 가이드 사다트는 “에게해가 태양빛이 좋아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폴론 신에게 신탁을 얻기 위해 거대한 신전을 건설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아폴론 신전은 현재 지진 등으로 파괴돼 109개의 돌기둥 가운데 코린트 양식으로 꾸며진 기둥 3개밖에 남아있지 않다. 신전 주변은 거대한 벽으로 조성되었으며, 고대에는 4년마다 스포츠를 비롯한 대규모 연회가 열렸으나 지금은 잔재만 남아있다. 또 목욕을 하고 신탁을 받았던 목욕탕터와 신전 입구에는 유명

한 메두사의 머리 조각상이 놓여있다.

 

인근 도시 아이딘에서 관광을 나온 여고생 야세민(아나톨리안고1)은 “처음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아폴론 신전의 규모가 너무 거대해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불가사의한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수스

 

에게해 해안 도시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약 70여km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에페수스(에페스)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작은 도시다. 그러나 로마시대에는 25만여명의 인구가 북적거렸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특히 신약성서에 ‘에베소서’를 뜻한 이 도시에서 사도 바울은 3년간 선교활동과 강론, 집필을 벌였다. 또한 예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 사도 요한이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으로 와서 전도에 힘썼던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에페수스에서 7㎞ 떨어진 산속에는 성모 마리아가 영면한 교회가 있어 해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잇는다.

 


동서문물의 교역중심지였던 에페수스에는 대리석 신전, 작은 무대인 오데온과 대극장, 아고라와 대형 스타디움, 목욕탕, 화장실, 분수와 정원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고대 도시생활을 엿볼 수 있다. 찬란했던 유물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서기 135년에 완공된 로마제국 최대 도서관으로 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이다.

 

로마 귀족들의 온천 휴양지

 

파묵칼레

 

남서부 데니즐리 주에 위치한 온천도시 파묵칼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자연을 지닌 곳이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면 하얗게 뒤덮힌 거대한 바위 언덕과 호수 때문에 놀란다.

 

산에서 쏟아나온 석회성분의 온천수가 수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었기 때문이다. 터키어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을 뜻한다. 이곳 언덕 위에는 기원전 2세기경에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졌던 유서깊은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남아있다.

 

예부터 섭씨 35도의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어 일찍부터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기원전 130년에 로마는 이곳을 정복한 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치료와 휴식을 위해 황제들과 귀족들이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로 불려졌다.

 

그뒤 파묵칼레는 대지진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최대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로마시대 대형 원형극장과 신전, 1200기의 무덤이 남아있는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있어 1988년 유네스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현대식 온천욕장이 세워져 야외 온천욕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터키 배낭여행 안전하게 즐기는 법

 

[노컷뉴스 2006-04-10 15:02]    

 


도심 변두리는 피할 것… 과도한 호의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현재와 과거과 공존하는 곳. 동양과 서양의 매력이 합쳐진 곳. 그리고 한국에게는 '피를 나눈 친구의 나라'로 통하는 곳.

 

터키의 재발견이라고 할만큼 터키에 대한 국내 여행객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터키 배낭 여행객의 사망사건으로 해외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변안전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안전과 관련한 현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철저히 대처하는 것이다.

오지를, 아니면 대도시의 관광유적지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늘상 소홀한 부분이 안전이다. 아마도 여행의 신변 안전도를 확률로 따지자면 산간오지의 여행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산간오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오지에 살기에 돈에 대한 애착이 도회지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간 시골마을의 현지인들이 대개 심성이 후덕하고 고운 것처럼 해외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재물을 삶의 큰비중으로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도심 변두리 지역을 주의하자

 

여행중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지역들은 유명 관광지이거나 배낭 여행객들이 호기심에 찾는 이름 없는 변두리 도회지다. 이런 곳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한다.우리보다 경제력이 열악한 국가를 여행할수록 꼭 주의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국경 인근의 도시 및 변두리는 항상 경계를 해야한다. 실업율이 높고 경제 인구가 많지 않은 탓에 그런 곳은 개별여행을 자제해야 한다.

 

한국 속담이 틀린 게 없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

 

사람이 무섭다고 현지인의 환대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게 해외여행. 만일 그런 자세로 여행을 한다면 현금 꾸러미만 가슴에 꼭 품고 관광버스 안에만 있던가 아니면 피켓만 쫒아 다니는 관광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들의 환대를 받게된다. 뿌리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이방인의 호의라도 먼저 몇 가지를 판단해보자.

상대의 호의가 외국인에 대한 순수한 환대일지라도 청년이라든가 아니면 혈기 왕성한 삼삼오오 청년그룹이라면 어떤 경우이든 호텔방으로 초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간단한 뒷풀이에 초대를 받는다면 밝게 트인 공공장소에서 만나는게 좋다. 특히 동양 여성 여행객의 경우는 현지인의 과도한 친절이 있게 마련인만큼 과도한 친절 숨어있는 일부 남성의 검은 속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확실한 이들의 초대는 환영하자

 


해외여행 중 꼭 현지인들의 생활에 부딪혀 보고 싶다면 가급적 어린아이가 있는 현지인 가족을 찾아보는 편이 안전하다. 가족의 구성원만 봐도 초대나 환대의 의미가 확실하다.

 

또한 최근 배낭 여행객 사망사고가 난 이스탄불과 같이 터키의 유명 관광지의 현지인들은 한국인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보이며 차이(터키 홍차)을 수도 없이 권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바자르(시장)와 같은 넓은 개방된 장소에서 상인들이 권하는 차정도는 악의가 없다. 상술의 하나일 뿐이다. 그저 한잔하고 구경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스탄불 바자르의 변두리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큰 바자르에서 공공연하게 습관적으로 받아 마셨지만 이런 곳에서는 반드시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상인이라도 즉 한적한 상가 한편에서의 호의는 위험하다.

 

그런 곳에서 차이(홍차)를 한잔 받아 마시게 되면 분명 다음날 다른 곳으로 가는 여행 가이드를 해주겠다거나 또다른 유혹적인 제안이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절대 둘 이상의 동행이 없다면 약속을 못지키더라도 그 제안을 받아드리지 말자 .

 

이스탄불은 역사적인 관광자원이 풍요로운 곳이다. 또한 터키의 현금이 움직이는 곳인데다 해외에서 돈을 들고 구경을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수없이 많다. 역사적으로 유명한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다양하기도 하고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꼬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사고가 난 이스탄불 뿐 아니라 모든 유명관광지가 마찬가지이지만 여행객에는 전세계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중요한 것은 현지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위기 대처방법을 꼭 숙지하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위진닷컴 남기환 (www.overland.co.kr)/노컷뉴스 제휴사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