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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부 맥로드 간지 ,달라이라마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1. 22:37

  

 

      인도 북부 맥로드 간지,달라이라마


인도 히말라야산맥에 다람살라(Dharamsala)라는 마을이 있고, 여기서 약 12㎞ 정도 더 산길을 올라가면 맥로드 간지(McLeod Ganj)라는 곳이 나온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히말라야산맥 속, 해발 1800m에 위치한 이 포근한 마을은 영국인들이 개발한 여름 산간 휴양지였다. 1959년 중국에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대와 티베트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티베트인들의 마을이 되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하는 순간 한국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다. 티베트인들의 얼굴과 표정이 우리와 비슷하고 허름한 목조건물들이 들어선 길거리 풍경은 과거의 우리 모습이다.

 

그리고 티베트 음식점에서 얼큰한 칼국수 ‘툭파’나 수제비 ‘덴툭’ 등을 먹는 순간 고향의 맛을 느끼며 감격하는 이들이 많다.

 

이곳에는 티베트 문화가 곳곳에 숨어 있다. 산 언덕에 달라이 라마 14대가 거주하는 아담한 왕궁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밑에서부터 한바퀴 돌아 올라가는 산길이 있다.

 

티베트인들은 이 길을 코라라고 부르는데, 이 길에는 ‘옴 마니 반메 훔’을 새긴 깃발이 나부끼며 바위들에도 이 진언이 새겨져 있다. 티베트인들은 아침이면 이 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옴 마니 반메 훔’을 왼다.

 

방편과 지혜가 하나가 된 수행, 이타심의 실천, 연꽃과 같은 지혜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 바라는 진언인데, 티베트인들은 이 진언이 새겨진 둥근 통 ‘마니차’를 돌리기도 한다.

 

왕궁 앞에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중앙 사원으로 종교 정치와 관련된 의식을 집행하는 남걀사원이 있고, 티베트인들이 중국에서 넘어올 때의 사진들이 전시된 작은 티베트 박물관이 있다.

 

발품을 들여 조금 걸어가면 박수 나트에 있는 폭포를 볼 수도 있고, 티베트 임시정부 청사들이 모여 있는 아랫마을의 티베트인촌에 가서 티베트 분위기를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모습 뒤에는 티베트인의 암담한 현실이 있다. 이곳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장사가 잘되자 건물주인인 인도인들이 직접 장사에 개입했다.

 

결국 티베트인들은 상권이 좋은 곳에서 밀려났고, 후미진 골목길이나 노점에서 생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인도 각지에서 유입된 인도인들과 티베트인들과의 갈등이 생겼으며, 급기야 몇 년 전에는 티베트인들이 살해되고 티베트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해 한때 달라이 라마 14대는 남인도로 거처를 옮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사태가 진정되었지만 나라 없는 설움이야 어디 가겠는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설법을 하러 나오는 달라이 라마 14대, 달라이 라마 14대의 스승이었으나 열반 후 환생한 고승, 링 린포체(현재는 10대 후반), 오체투지 하는 티베트불교도, 남걀사원에서 교리 문답을 하는 티베트 스님들

 

 

그래도 티베트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 곳곳에 숨겨진 허름한 가정집에서 요가 강습, 티베트 요리 강습, 티베트어 교습 등을 하고 있는데, 여행자들은 이런 것을 통해 티베트의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달라이 라마 14대다.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은 스승’이란 뜻이며, 종교 수장인 동시에 정치 수반이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계속 환생하며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 달라이 라마 14대는 그저 평범한 승려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티베트가 독립을 하면 자신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탄압을 하고 있는 중국조차 미워하지 않으며 용서한다. 그리고 욕망을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지혜의 수행을 통해 무지와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실천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자발적인 추종자들이 생겨나서 티베트 불교와 문화는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티베트의 젊은 세대들 중에는 ‘관념에 질식했다’며 무장투쟁 같은 화끈한 행동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많은 티베트인은 달라이 라마 14대의 평화 노선을 따르며 자신들의 정체성만 잘 지키면 언젠가 독립의 기회가 온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 14대가 세상을 뜨면 온건파와 강경파가 갈리면서 내분이 일어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바,

 

티베트인의 가까운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그렇더라도 100년이나 200년이 흐른 뒤 그들의 먼 미래는 밝을 수도 있다. 몇십년 전의 한국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백년 전의 중국이 지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티베트인이라고 그 일을 못해낼 까닭이 없지 않은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람살라 거리, pc방, 국제전화할 수 있는 곳, 티베트 요리를 강습하는 요리사, 바위에 새긴 ‘옴 마니 반메 훔’

 

 

여행작가 (blog.naver.com/roadjisang)

◇툭파(티베트 칼국수)

 

■여행 에피소드

 

1990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달라이 라마 14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 1년 후였다.

 

티베트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남걀 사원에서 설법을 하던 달라이 라마 14대도 쾌활했다.

 

티베트불교를 믿고 그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미국의 영화 배우 리처드 기어도 그때 와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모두 티베트 독립에 대한 밝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정책은 요지부동이었고, 달라이 라마 14대가 독립을 포기하고 다만 지방 자치 정도만 허락해도 티베트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양보를 했지만 중국 정부는 냉담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티베트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세계의 손길은 끊이질 않고 있는데, 2006년 1월에 갔을 때 한국인들이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은 ‘티베트 독립 자금’을 전달하러 온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티베트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전달하러 왔다는데, 크게 소문 내지 않고 이런 활동을 하는 이들의 순수함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여행 정보

 

성수기는 여름철이나 봄가을도 좋다. 겨울철에는 추운데 혹한은 아니고 영하를 오르내리는 정도. 습기가 차고 난방시설이 안 되어서 잘 때 춥다는 것이 애로 사항이다.

 

뉴델리에서 다람살라 혹은 윗마을인 맥로드 간지까지 밤 버스가 오간다. 약 12시간 정도 걸린다.

 

배낭족을 위한 5000∼6000원짜리 게스트 하우스부터 6만∼7만원짜리 고급 호텔까지 다양한 숙소가 있다. 비수기 때는 깎아준다.

 

 

[세계일보 2006-03-16 16:42]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