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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앙코르와트,아는 만큼 가리고 정든 만큼 느낀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5. 22:31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아는 만큼 가리고 정든 만큼 느낀다

 
▲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오래된 사원 '타 프롬'<br>사원을 휘감은 쑤뿌엉 나무, 돌틈에 떨어진 씨앗 한 알의 위대함
ⓒ2006 박경
힌두신화와 우주론이 구현된 앙코르 건축물들은 대부분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한가운데 제일 높은 중앙 성소가 있고, 이곳은 사제들이 거주하던 장소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 이곳은 일반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에워싸여 있다. 중앙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진다.

▲ 앙코르 와트 가장 높은 곳에 이르는 계단. 가파르고 좁은 이유가 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몸을 숙임으로써 신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경외심을 갖게 하려는 것.
ⓒ2006 박경
중앙 성소의 탑을 메루산(불교의 수미산)이라고 하는데, 이곳으로 이르는 계단은 가파르고 좁다. 사람들은 천상으로 통한다는 이 좁은 계단을 아슬아슬 오르내리고 있었다.

▲ 앙코르 와트의 압살라
ⓒ2006 박경
수리야바르만 2세 때(12세기 초) 건설된 앙코르 와트는 왕의 생전에는 신을 섬기는 사원 역할을 하다가 사후에는 무덤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부분 사원이 동쪽에 입구를 둔 것과는 달리 앙코르 와트의 입구는 서쪽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쪽 회랑엔 주로 탄생과 시작, 서쪽 회랑엔 전쟁과 죽음을 주제로 한 부조들이 있다.

▲ 앙코르 와트(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1. 회랑의 부조. 중요한 부분은 사람들의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하다. 2. 벽면을 파내어 장식한 벽감. 3. 중앙성소 4. 앙코르 건축물 내부에 들어서면 향 피우는 곳을 종종 만날 수 있다.
ⓒ2006 박경

▲ 앙코르 와트 회랑(왼쪽) 유해교반 가운데 바수키의 머리 부분(오른쪽)
ⓒ2006 박경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힌두교의 창세신화인 ‘젖의 바다 휘젓기’(유해교반 乳海攪拌)다. 신들과 악마들이 큰 뱀 바수키의 꼬리와 머리를 붙잡고 바다를 휘젓는 가운데 불로장생의 명약 암리타가 생겨나고, 천상의 선녀 압살라가 태어나고 여신 락슈미가 태어난다는 내용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돌을 조각해 만든 것 중 최고로 평가된다는 이 부조 앞에서, 나는 전날 마주친 소년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일몰을 만나기 위해 톤레삽 호수로 달리던 중이었다. 우기 때 물이 들어왔다 빠진 땅이라서인지 흙먼지가 말도 못했다. 톤레삽 호수가 가까워지자 길 양편으로 늘어선 전통가옥이 나타난다.

지상에서 반 층쯤 공중에 지은 집들, 내남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누추한 살림들, 흙먼지를 고스란히 맞아 뽀얗게 분단장한 듯한 아이들. 달리는 툭툭을 멈춰 세워 사진을 찍을까 말까 잠깐 망설였다.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주춤하는 사이, 집 난간에 앉아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가슴에 닭을 안고 있었다. 개도 아니고 테디베어도 아니고 닭을 말이다. 목을 꼿꼿이 세운 닭은 소년의 가슴속에서 도도했다. 나와 마주친 소년의 눈은 검은 얼굴 속에서 진주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은 처연하고도 의연해 보였다. 가난한 캄보디아의 현실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던 나 자신이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꼭 사진을 찍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는데, 톤레삽에서 일몰 몇 장 찍고 나니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마을에는 전기조차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두런두런 가족들이 모여앉아 초라한 만찬을 나누는 것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배터리가 나가지 않았어도 찍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다시 마을을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게 죽어 있는 과거보다 땟국물 흐르는 현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아무래도 유적지에 대한 내 식견의 부족에서일까.

▲ 캄보디아 국기를 본 딸의 첫마디 " 캄보디아 애들은 되게 힘들겠다, 국기 그리려면".
ⓒ2006 박경
앙코르 와트를 둘러본 후 프레 룹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난 한갓진 오후였다. 큰 유적지가 아니라서인지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사원 전체가 붉은빛이 감돌고 묘한 기운이 흘렀다. ‘죽은 육신의 그림자’라는 뜻의 프레 룹. 죽은 사람을 화장한 곳이어서인지, 아직 해는 쨍쨍한데도 고즈넉함마저 느껴졌다.

▲ 장례 의식을 치렀던 곳 '프레 룹'. 가운데 참호처럼 생긴 곳에서 화장을 한 듯.
ⓒ2006 박경
죽음과 삶이 만나는 순간. 죽음과 삶이 교차하고,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먼 세월을 관통해 온 죽음의 흔적들이 숨결처럼 떠도는 걸 느낄 수 있는 프레 룹. 이 대목에서, 더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 프레 룹의 탑(왼쪽) 천년을 지켜온 사자상의 외로운 뒷모습(오른쪽)
ⓒ2006 박경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천 년 세월을 버텨온 사자 석상의 뒷모습이 쓸쓸함을 더해 주었다. 돌덩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사위는 조용하고, 귀를 기울이면 마치 돌덩이 속에서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올 듯한 침묵의 순간.

앙코르가 천천히 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유적에 대한 설명을 책에서 열심히 미리 보고 온 덕분이 아니었다. 힌두신화를 미리 알고 부조를 파악했던 덕분도 아니었다.

툭툭을 타고 달려왔던 바람의 길들, 기대치 않았던 작은 유적지가 성큼 다가오는 친근함, 오랜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인간의 땅을 지켜온 것들. 어쩌면 이런 것들에 대해 애틋함이 생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인간들은 정이라고 부르겠지.

말하자면, 난 앙코르에 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오히려 내 앎이 내 눈과 가슴을 가렸던 것은 아닐까.

앙코르 와트의 모습은 이미 멋진 사진으로 세상에 유포되어 있다. 평소에 눈만 한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앙코르에 와서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어떤 각도에 서도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앙코르 와트가 연출되지 않았다. 언젠가 사진으로 보았던, 연꽃이 피어오른 물가에 어룽거리는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내 기억 속 최고의 모습이다.

앙코르 와트에 대한 소문은 이미 신비롭다. 정글 속에서 천 년 가까이 감추어졌다가 앙리 무오가 1860년대에 비로소 발견했다는 건 어쩌면 강대국의 과대포장인지도 모른다. 그 이전부터 크메르인들은 앙코르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단지 그것을 본격적으로 서방세계에 알린 게 앙리 무오라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이미 많은 정보를 담아 온 나는 그 이상을 앙코르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적어도 내게 앙코르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는 만큼 가렸다. 이미 알고 있는 신화가 내 상상력을 방해했고, 이미 책에서 보고 온 유적 설명이 느끼기 전에 알게 할 뿐이었다.

빡빡 땀 흘리며 올라간 산꼭대기에서 전망 둘러보고 올라온 길 돌아볼 겨를도 없이 깃발 꽂을 생각만 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산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주는 건 산꼭대기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산을 오르는 길에 발길에 차인 작은 야생화들, 먼저 길을 낸 사람들이 걸어놓은 빛바랜 리본들, 땀으로 고스란히 흘러내린 시간 그리고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 발자국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산을 산답게 해주는 모습일터인데.

이제야 비로소 앙코르를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앙코르 맥주를 한 캔 마시고 고단하게 늘어진 몸을 침대에 뉘었다. 그날 밤, 내 감은 눈꺼풀 속에서, 프레 룹의 붉은 기운이, 바욘의 후덕한 미소가,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한 부조 속 크메르인들이, 자꾸만 명멸해갔다.

▲ 톤레삽 호수의 해넘이
ⓒ2006 박경
[오마이뉴스 2006-03-24 09:49]    
[오마이뉴스 박경 기자]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