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포 토 에세이

진달래 꽃길에서 꽃멀미하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4. 4. 13:46

 

        진달래 꽃길에서 꽃멀미하다
 
ⓒ2006 김연옥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함민복의 '봄꽃')

살바람에도 봄꽃은 저마다 환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삭막하고 칙칙한 세상을 화사한 색깔로 덧칠하는 봄꽃. 나는 3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에 연분홍 진달래 꽃침을 맞으러 청량산(323m, 경남 마산시)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집을 나선 시간이 저녁 5시 20분이었다.

▲ 나는 연분홍 진달래 꽃길에서 꽃멀미를 했다.
ⓒ2006 김연옥
청량산은 내게 상큼한 첫사랑 같은 산이다. 산을 찾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게 한 산이 바로 청량산이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진하게 물들이는 봄이면 청량산은 참으로 예쁘다. 청량산 진달래를 바라보면 연분홍 물을 들여 곱게 바느질한 옷을 입은 가냘픈 여인이 떠오른다.

키 큰 나무들을 배경으로 연분홍 물감으로 점점이 꽃무늬를 찍어 놓은 듯한 진달래들이 먼저 나를 반겨 주었다. 가녀린 진달래들이 이곳저곳에 서 있는 모습은 한 폭의 투명한 수채화였다.

▲ 진달래 꽃길을 걷는 내 얼굴도 연분홍 색깔로 꽃물이 든다.
ⓒ2006 김연옥
진달래들이 피어 있는 산길을 걷는 내 얼굴도 연분홍 색깔로 꽃물이 든다. 늦은 시간이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적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미 나는 진달래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언젠가 이해인 시인의 산문집에서 꽃멀미라는 신선한 말을 발견하고 즐거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나도 청량산 진달래에 흠뻑 취해 꽃멀미가 났다.

▲ 청량산을 찾을 때면 나는 마음의 배를 타고 바다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돝섬으로 간다. 하산길에 바라본 바다 풍경
ⓒ2006 김연옥
청량산 정상에 이르는 길에는 푸른 바다도 따라다닌다. 나는 종종 잔잔한 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돝섬을 바라보며 바지 주머니에서 달짝지근한 밀감을 꺼내 먹는다. 밀감 알갱이가 내 입안에서 탁 터지면서 과즙이 경쾌하게 튀는 느낌이 좋다.

ⓒ2006 김연옥
돝섬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늘 거기에 머물러 있어 더욱더 마음에 와 닿는다. 돝섬에는 내 젊은 날의 풋풋한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청량산을 찾을 때면 마음의 배를 타고 그 섬으로 간다.

▲ 청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2006 김연옥
청량산 정상에 이른 시간이 저녁 6시 30분쯤. 산에는 어둠이 빨리 내린다. 정상에는 아무도 없어 마음이 더 급해졌다. 진달래가 사람 잡겠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점차 어둑어둑해지는 청량산에는 진달래가 연분홍 등불을 밝혀 주는 듯했다.

▲ 청량산 정상에서 저녁노을을 보다.
ⓒ2006 김연옥
청량산은 평탄한 길이 많아 나는 혼자서 달음박질치기도 했다. 숨차서 더 이상 뛰어갈 수가 없으면 걷다가 또 뛰다가 하면서 내려갔다. 그래도 간간이 부는 꽃바람에 연분홍 꽃잎을 팔락이는 어여쁜 진달래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눈을 맞추기도 했다.

청량산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과 마주친 일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나도 그들처럼 진달래 꽃길 따라 밀려오는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고 싶은 마음이었다.

청량산을 뛰다시피 하며 내려오니 임도에는 벌써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마산의 야경이 그 날만큼 편안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봄은 메마른 내 마음에도 연분홍 꽃침을 놓았다. 연분홍 꽃물이 마음밭 깊은 곳까지 번져 가는 봄날에 나는 어느새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 공설운동장→ 해안도로→ 월영마을→ 청량산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I.C.→ 마산고속버스터미널→ 경남대학교→ 청량산

[오마이뉴스 2006-04-02 18:00]    
[오마이뉴스 김연옥 기자]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