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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폭1m 골목 ‘판자촌 정글’ “일행 놓치면 책임 못져요”

향기男 피스톨金 2006. 8. 26. 23:14

 

                         브라질

 

              폭1m 골목 ‘판자촌 정글’

 

             “일행 놓치면 책임 못져요”


브라질 인기 관광상품 된 빈민촌 '파벨라' 르포
경찰도 설레설레 무법천지 가이드 앞세워야 안전보장
물 도둑 막느라 개 길러 “이렇게도 사는군” 입이 딱…
 

세계 3대 미항(美港)인 브라질 남부의 리우 데 자네이루. 요즘 이곳의 최고 인기 관광상품 중 하나는 ‘파벨라’다.

 

도시 근교의 대규모 불법 거주 빈민촌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중남미의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곳. 하지만 그런 곳이 외국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리우의 명물인 그리스도상이 서있는 코르코바두 봉우리.

 

발 아래의 경관에 감탄하던 외국인들의 눈길이 멈추는 곳이 있다. 상 콩하두 해안에서 1㎞쯤 떨어진 언덕 기슭의 정글 같은 판자촌. 세계 최대의 ‘파벨라’인 ‘호싱냐’이다. 이곳 거주민은 약 25만명으로 추산된다.

 

동네 입구에서 만난 가이드 루이자(28)는 노란 티셔츠 차림이다. 이 옷은 공식 가이드임을 말해주는 유니폼이다. ‘무법천지’인 이곳을 다니는 중에 이런 ‘유니폼’ 차림의 공식 가이드를 앞세운 일행은 안전을 보장받는다. 요금은 2~3시간 코스에 60헤알(약 3만원).


 

파벨라 출신의 인상 좋은 그녀는 출발 전 단단히 주의를 줬다. “혼자 처지거나 딴 길로 샜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사진도 허락한 곳에서만 찍으세요.”

 

700개가 넘는 리우 내 파벨라 중에서도 호싱냐는 규모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1996년 뮤직비디오를 이곳에서 찍기 위해 리우시 당국에 문의하자, “거긴 정부가 따로 있다”는 답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안내를 따라 나선 지 얼마 안 돼 눈 앞에 골목길이 미로처럼 펼쳐졌다.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에, 흙과 시멘트길이 번갈아 나온다.

 

골목마다 머리 위로는 검은 전깃줄이 수십 다발씩 얽혀있다. 이곳을 지나는 주 전선에서 도둑질해 쓰는 것들이다. 당국도 손을 든 지 오래. 검침원도 징세원도 올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제일 큰 민생고는 식수 공급. 주 당국의 무료 식수차가 주 3회씩 오지만, 그것으론 태부족이다. 없는 살림에 물탱크는 집마다 2~3개씩 된다. 시끄러운 개를 기르는 것도 간밤에 물 도둑을 막기 위해서다.

 

파벨라는 범죄조직의 ‘통치’를 받는다. 보육원 같은 시설도 지원하고 도둑질이나 폭력·강간 같은 범죄도 단속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오히려 도심보다 치안이 낫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마약·무기밀매·은행강도·청부살인 같은 흉악범죄를 일삼는 조직을 두고 ‘의적’이라 보는 이는 없다. 경찰이나 라이벌 갱단 간의 충돌이 벌어질 때는 이곳은 전장(戰場)으로 변한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 한 2층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방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탁아소다. 부촌의 파출부 등으로 일을 나간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나절을 보낸다. 이런 간이 학교가 15곳이나 된다.

동네 어귀엔 무인은행·약국도 있고 지역 전용 케이블TV, 라디오 방송국도 있다. 불법건축물에 주소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자체적으로 붙인 번호 체계가 있어 우편물도 자율 배달한다. 마을회관에 자치회도 있어 회장을 대통령처럼 4년에 한 번씩 투표로 뽑는다.

 

곳곳에서 배가 남산만하게 부른 소녀들이 눈에 띄었고, 골목 안 으슥한 곳에는 약물엔지 술엔지 취한 듯한 사내들이 널브러져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대학의 파울 스니드 교수가 창립한 ‘투 브라더스’ 재단은 이곳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교육을 지원하고 자립을 돕는다. 이곳 주민 스스로가 소양 교육을 거쳐 관광가이드로 나선 것도 자활의 한 예다.

 

“구경 잘 하셨나요? 오늘 여러분이 보셨듯이 이곳에도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부디 돌아가시더라도 관심과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안내를 마친 루이자는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좁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리우 데 자네이루=전병근특파원 bkjeon@chosun.com )

 

[조선일보 2006-08-2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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