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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초원,엎드린 야성이 꿈틀댔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9. 7. 11:04

 

         몽골 초원,엎드린 야성이 꿈틀댔다

▲ 몽골 초원
ⓒ2006 배지영

ⓒ2006 노마드클래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 초원을 달리면서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오줌이 땅으로 스며들면서 흐를 때 꽃잎이나 개미를 그 위에 띄우며 놀아봐서 괜찮다. 아이는 남자라서 괜찮다. 걸리는 건 조카 완소였다. 하지만 그 애는 처음부터 초원에서 오줌 싸는 일을 즐거워했다.

몽골에서는 시속 80km 쯤으로 달릴 만한 포장도로도 별로 없었다. 우리가 탄 ‘델리카’ 라는 일제 승합차는 냇가를 가로질렀고, 초원을 미끄러지며 달렸고, 생 멀미를 할 정도로 덜컹이는 길을 달렸다. 아이와 조카는 짜증내지도, 서로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몽골이 나한테 내린 축복처럼 여겨졌다.

떠나오기 전날까지도 아이와 조카는 싸웠다. 그 전에도, 그 전에도, 둘은 만나면 잠깐은 사이 좋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싸우기도 했다. 언젠가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참다못한 내가 그 둘보고 내려버리라고 윽박지른 적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셋이서 세운 이번 여행의 목표가 '우리, 싸우지 말자' 였을까.

둘은 좋아보였다. 조카 완소는 아이를 재우기도 하고, 코피를 흘리면 닦아주고, 자다 깨면 밖에서 놀고 있는 내게 업어서 데리고 오기도 했다. 어릴 때 내가 조카한테 한 것처럼, 완소도 우리 아이 똥을 닦아주고 난 다음에는 똥 색깔이 어떤지를 살펴보았다.

ⓒ2006 배지영

▲ 어거데이칸의 여름 궁전
ⓒ2006 노마드클래스
이 평화는 어디서 왔을까? 초원과 하늘의 구름과 별과 우리가 흥얼거리는 노래들은, 우리의 본능을 순하게 만드는 듯 했다. 있는 그대로 따를수록 우리 속에 갇혀 있던 긍정적인 성정이 살아났다. 날이 갈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리 멀리 가도 초원이 있고, 오보가 있고, 동물뿐이었지만 그게 지겹지 않았다.

밤마다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든 겔 안에는 따로 목욕탕이 없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노총각처럼, 집 밖에다 오줌을 갈겨도 괜찮았다. 이빨을 닦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겔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사라진 줄 알았던 야성을 불러왔다. 초원에서 오줌을 싸고, 풀밭에 앉고, 씻지 않고도 잘 자고, 발밑으로 똥이 굴러도 더럽지 않았다.

소를 키웠던 어릴 적 기억

▲ 볼 게 없는 몽골이지만 가장 재밌는 여행이라고 말한 아이.
ⓒ2006 배지영
초원에 풀어놓은 말은 남자 어른이 돌보고, 여자와 아이들은 양과 염소를 돌보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소치는 아이였다. 키웠다고 하는 것은 ‘애지중지’라는 정서가 들어간다. 닭하고 개는 마당에서 그냥 자유롭게 있었다. 우리 집은 소 한 마리를 키웠다.

학교 파하고 오면 소한테 풀을 '뜯기러' 가곤 했다. 소하고 나란히 서서 지는 해를 봤다. 소가 미쳐 날뛰어서 도망가 버리는 날이면, 지금의 내 아이보다 겨우 한 살 밖에 안 많던 나는 눈물범벅이 돼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는 나보다 먼저 집에 와서 따스한 소여물을 먹고 있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를 어미 소가 핥아주던 것, 어미 뱃속에서 묻혀온 미끈미끈한 양수가 마르면 송아지가 곧바로 걷던 것, 겨울날에 외양간에서 뿜어져 나오던 하얀 숨결도 생각난다. 그리고 곧 먹먹해진다. 소는 들짐승을 잡기 위해 놓은 농약을 먹었다. 괴로워하면서도 우리 집으로 돌아와 죽었다.

▲ 돌을 던지며 바람을 말하는 오보, 소중한 말이 죽으면 오보 옆에다 말대가리만 갖다 놓는다
ⓒ2006 배지영
엄마의 긴 울음소리가 잦아들었을 때에 아빠는 죽은 소를 판 돈으로 <만화 어린이 한국사>를 사 오셨다. 소 뜯기러 가지 않게 된 나는 토방에 엎드려 닳도록 그 책을 읽었다. 몽골은 소중한 말이 죽으면 말대가리만 들고 와서 오보 옆에 둔다. 나 살던 곳에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면, 우리 집 소대가리는 고향 마을 뒷산 어딘가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그네들이 키우는 동물도 좋아하고, 길들이지 않은 짐승도 좋아한다.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겔의 천장에 새 그림자가 비치면 특히 좋아한다. 우리가 밥 먹던 겔 안에서도 어미 제비가 벌레를 잡아다 새끼 제비에게 먹이고 있었다. 나는 제비처럼 아이와 조카에게 밥을 한술이라도 더 뜨게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 겔 안에 집 짓고 사는 제비. 몽골 사람들은 겔 천장에 새 그림자가 비추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는다
ⓒ2006 배지영
몽골에서 보는 별은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지리산 장터목에서 본 별보다 훨씬 강렬했다. 풀밭에 누워서 마음을 쏟아 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몇 백 킬로미터도 갈 수 있고, 몸뚱이는 하찮아진다는 <테스>의 구절은 거짓말 같았다. 몸에서 찌릿 찌릿 감동이 왔다. 별은 하늘 한가운데나 언저리나 골고루 반짝였다.

차가 도시로 들어간다는 것은 여행이 끝나간다는 거다. 여행이 길어지면,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며칠만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었다. 울란바토르에 못 미쳤을 때에 나타난 쌍 무지개가 허전한 우리 마음으로 들어왔다. 평평한 초원에 뜬 무지개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 몽골 초원에 뜬 쌍 무지개
ⓒ2006 노마드클래스

▲ 일부러 불을 질러놓은 듯 타오르는 노을.
ⓒ2006 노마드클래스
곧 이어 일부러 질러놓은 불처럼 타는 노을을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둠에 '까일 줄' 알면서도 진정을 다해 물들던 노을처럼 살아가리라, 일상에 치인 내 그림자가 고단해 보이는 때에는 다시 몽골에 오리라, 초원을 지나는 구름 그림자 아래를 달려보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남은 캔 맥주를 알뜰하게 마셨다.

여행 내내 "죽는 건 아니야"라는 말투가 배인 아이와 조카는 몽골은 볼 게 제일로 없었는데 제일로 재밌었다는 평을 했다. 우리는 양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서 배가 고플 때도, 비가 안 그치고 밤새 추워서 선잠을 잤을 때도, 막막한 초원에서 배고픔과 기다림, 추위를 견뎌온 몽골 사람들의 말 "죽는 건 아니야"를 주고받았다.

울란바토르에 와서 처음으로 깨끗한 침대에다가 화장실과 샤워기가 딸려 있는 호텔에 묵게 됐다. 누구도 선뜻 씻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면, 꼬질꼬질해서 눈에 띄겠지만 초원의 겔에서 자는 것처럼 아이를 그냥 재웠다. 이왕 안 씻은 거, 하루 더 안 씻는다고 죽는 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 2006-09-07 09:28]    
[오마이뉴스 배지영 기자]

 

 

 

 

                                                뉴에이지 곡
                   Richard Abel - Le Lac De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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