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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바위의 전설이 깃든 바이칼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2. 8. 18:23

 

         샤먼 바위의 전설이 깃든 바이칼

 

              눈이 시리도록… 넓다


이곳이 도대체 호수인가, 바다인가.
 

지구의 담수 20%가 담겨 있다는 이 거대한 호수 앞에 서자, 걷잡을 수 없는 경외감이 밀려든다. ‘지구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 등 감탄 성격의 갖가지 수식어도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바이칼(Baikal).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바이칼은 그 물리적 거리만큼 멀고 낯선 곳은 아니다. 바이칼 호수 박물관 방명록에 “바이칼 호수 물을 원 샷 !”, “나이에 놀라고 규모에 감동했어요” 등 한글 문구가 가득할 정도로 바이칼은 한국인에게도 제법 친숙한 여행지가 되고 있다.

 

#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 바이칼

 

바이칼 호수 면적은 3만1500㎢. 제주도를 17개 이어붙인 것보다 넓다. 초승달 모양인 호수 양끝을 이은 직선거리는 636㎞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1.5배가 넘는다. 호수 어디를 가도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30여개의 섬마저 둥둥 떠 있으니 어찌 호수라 여길까. 바이칼은 매년 2, 3㎝ 확장되고 있어 수백만년이 지나면 바다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겨울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전체가 견고한 빙판으로 변하고, 그 위로 차가 다닌다. 호수 남쪽에는 웅장한 하마르 다반 산맥이 버티고 있다. 몽골까지 뻗쳐 있는 이 산맥은 부랴트의 수도 울란우데에서 바이칼 남부 도시인 슬류댠카까지 호수와 평행선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러시아횡단철도(TSR)가 바로 이 구간을 달린다.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의 접경 도시인 리스트비얀카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수.

 

슬류댠카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객은 “TSR를 타고 떠나는 바이칼 호수 여행의 백미는 ‘좌(左) 하마르 다반, 우(右) 바이칼’”이라며 “왼쪽으론 소나무·자작나무 숲과 함께 웅장한 산맥이 이어지고, 오른쪽엔 바이칼 호수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광활한 호수 전체가 붉게 물드는 바이칼의 낙조도 일품이다.

 

지는 태양을 품는 하마르 다반은 호수 남쪽 지역을 여행할 때 늘 바이칼을 따라다닌다. 마치 1727년 청과 러시아의 국경 협약인 캬흐타조약으로 러시아로 넘어간 옛 몽골 땅 바이칼을 그리워하는 듯….

 

# 샤먼 바위의 전설이 깃든 바이칼

 

최고 수심 1637m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은 12월 말부터 얼어 4월쯤부터 녹기 시작하며, 6월 초가 되면 모든 얼음이 사라진다. 하지만 오래된 여행 서적을 뒤져보니 결빙, 해빙 시기가 다르다. 11월 중순부터 얼기 시작하고, 적어도 6월 말까지 빙판이 이어진다고 적혀 있다.

 

지구 온난화로 광활한 빙판을 내달리는 트럭을 볼 수 있는 시기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수 전체가 빙판이 돼도 호수와 앙가라강의 접경 지역은 얼지 않는다.

336개 지류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바이칼은 오직 앙가라강으로만 물을 흘려보낸다. 한겨울에도 유속이 빨라 이곳만 얼지 않으며, 수온이 높아 하얀 연기를 뿜어댄다.

 

앙가라강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이유를 샤먼 바위에 얽힌 전설에서 찾기도 한다. 아들 336명과 아름다운 딸 앙가라를 둔 바이칼 신은 앙가라를 이웃 이르쿠트와 혼인시키려 했다. 그러나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찾아 야반도주하다 바이칼 신이 던진 바위에 깔려 숨진다.

 

앙가라가 숨진 곳이 바로 샤먼 바위다. 앙가라가 지금까지도 청년을 잊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 앙가라강이 됐고, 눈물이 계속 흐르기에 강이 얼지 않는다는 것이다.

 

2500만살이 넘은 호수의 중간 쯤에는 ‘샤머니즘의 성소’로 불리는 알혼 섬이 자리하고 있다. 알혼 섬에는 6∼10세기에 만들어진 고분과 벽화에 샤머니즘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일부 학자들은 알혼 섬 인근의 유적과 언어 등을 연구해 ‘바이칼에 살던 사람들 일부가 한반도로 흘러들었다’고 주장한다. 한민족과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남시베리아의 이 웅장한 호수 앞에 서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여행이 끝날 때쯤 몽골인 가이드 바트(26)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어 “여행 내내 바다로 착각했는데 이제야 호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는 중”이라고 답했더니 한참을 웃는다.

 

 

''전쟁과 평화'' 주인공이 살았던 곳에서…

바이칼 호수 주변에는 러시아 격동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풍광이 뛰어나 꼭 둘러볼 만한 도시와 마을이 적지 않다.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 바이칼 여행의 시작점인 리스트비얀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환바이칼철도가 만나는 슬류댠카, 소박한 어촌 마을 쿨툭 등 바이칼 남쪽 지역의 도시와 마을을 소개한다.
 

#12월 혁명의 자취가 서린 이르쿠츠크

 

3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르쿠츠크는 남시베리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이르쿠츠크는 19세기 초 ‘12월혁명(데카브리스트 혁명)’에 가담했던 귀족 장교들의 유형지로 유명하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쳐들어오자 러시아 정규군은 이를 물리친다. 전쟁을 치르며 서유럽의 자유를 맛본 젊은 장교들은 자국에 남은 농노제를 개탄하면서 1825년 12월14일 개혁을 요구하며 봉기했으나 실패한다. ‘데카브리’는 12월을 뜻하는 러시아어.

 

이르쿠츠크 곳곳에는 12월 혁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이곳으로 유배당한 귀족 장교 볼콘스키가 살았던 집은 이제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볼콘스키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먼 친척.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이 바로 볼콘스키다.

 

◇바이칼스크시 인근 별장 마을. 러시아의 지방 도시를 다니다 보면 쉽게 만나게 된다. 멀리 보이는 산은 하마르다반 산맥.

◇이르쿠츠크와 리스트비얀카를 잇는 바이칼스크 도로 양 옆으로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펼쳐진다.

◇리스트비얀카 마을의 노점상. 청어의 일종인 오물, 바이칼 물범인 네르파의 인형 등을 판매한다.

 

볼콘스키의 아내 마리아도 유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에서 자식들마저 버리고 이르쿠츠크로 남편을 찾아 온 마리아의 이야기는 1985년 ‘나의 별 마리아’라는 오페라로도 제작됐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에는 데카브리스트 수십명이 묻혀 있다.

 

여행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키로프 광장. 이곳을 중심으로 시청사와 분수, 앙가라 호텔이 앞쪽에 늘어서 있다. 광장 뒤쪽의 ‘꺼지지 않는 불’은 2차 대전 때 전사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곳. 향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세주 교회와 예수공현성당, 폴란드 교회는 이르쿠츠크의 교회 삼인방으로 불린다. 모두 앙가라 강변에 있다.

 

중심가인 칼 마르크스 거리에는 중앙 백화점과 상가 등이 몰려 있다. 인근 상하이 시장에는 중국산 제품들이 즐비하지만 살 만한 물건은 거의 없다.

 

#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리스트비얀카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리스트비얀카는 바이칼 호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는 어촌마을. 바이칼 여행의 전초기지로 여겨진다. 여행객이 둘러볼 만한 곳으로는 샤먼 바위, 바이칼 호수 박물관, 체르스키 스키장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본 석양도 일품이다.

 

바이칼 호수의 역사와 생태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에는 네르파(nerpa·바이칼에만 사는 물범) 모자(母子)가 여행객에게 손짓이라도 하듯 재롱을 부린다. 수심 1000m 이하에서 사는 물고기들과 호수 생물들의 박제도 전시돼 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내부의 성상들과 휘장들

◇이르쿠츠크의 앙가라 강변에 위치한 예수공현성당은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회, 유럽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시베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잠수함 모양으로 꾸민 전시관에서는 1995년 촬영한 호수 밑 풍경을 생생하게 담은 ‘바이칼 다이빙’이 올해부터 진행된다. 바이칼 수질 정화의 일등공신인 심해 새우와 호기심 많은 네르파가 머리로 카메라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러시아어로만 안내한다.

 

체르스키는 인근에서 좌식 리프트가 설치된 몇 안 되는 스키장 중 하나. 여름에도 리프트로 정상에 올라 바이칼 풍경을 감상하려는 여행객이 많이 찾는다.

이르쿠츠크에서 리스트비얀카까지는 차로 1시간20분 정도 바이칼스크 도로를 달려야 한다.

 

가는 길에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중간쯤에 있는 탈치 민속박물관에서는 부랴트인들이 나무로 만든 게르, 핀란드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유리공장, 성곽과 교회 등을 통해 17세기 시베리아 땅에 정착한 러시아인들과 부랴트인들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다.

 

# 호수 주변의 작은 마을들

 

슬류댠카는 이르쿠츠크와 마찬가지로 12월혁명 가담자들의 유배지 중 하나이고, 쿨툭은 바이칼 호수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 모두 TSR의 중간역이다.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바이칼 명물인 오물을 팔려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든다. 또 바이칼 호수 풍광이 빼어난 곳이라면 어김없이 오물 장수들이 진을 치고 여행객을 기다린다. 오물과 함께 잣과 캐비아도 판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이어지는 이르쿠츠크 기차역의 아침 풍경.

◇이르쿠츠크 시청사 뒤편에 자리한 ‘꺼지지 않는 불’. 2차대전 때 희생된 5만여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35루블(약 1000원)짜리 오물 한 마리를 사서 먹고 있자니 상인이 먹는 법이 틀렸단다. 꼬리를 먼저 잘라내고 뼈와 머리를 한 번에 발라낸 뒤 먹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훈제 오물이나 말린 오물은 약간 비릿하면서 고소한 맛이고, 튀긴 오물은 우리 조기 맛과 비슷하다. 회로 먹을 때엔 짭짤하게 간을 하고, 절인 양파와 레몬 등을 곁들인다.

 

슬류댠카에서 쿨툭으로 가는 길에 베니케를 파는 상인들도 보인다. 잣이나 자작나무 잎으로 만든 베니케는 러시아식 사우나인 바냐를 할 때 몸을 두드리는 데 사용한다.

 

슬류댠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소보리나야 스키장이 있는 바이칼스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주 찾는 소보리나야 스키장은 T자 모양으로 생긴 리프트에 매달려 정상까지 올라야 한다. 현지인들에게 스키장 이용료가 적잖게 부담스러운 탓인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운전사로 동행한 이고리(22)씨는 “가난한 젊은이들은 1분 정도 스노보딩을 즐기기 위해 스키장 대신 인근 야산을 30분쯤 걸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르쿠츠크·리스트비얀카=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여행 정보

 

 

몽골·바이칼 전문 여행사인 세븐데이 투어(www.7daytour.com)는 새해맞이 ‘바이칼·몽골 여행 8일’ 상품을 내놓았다. 이르쿠츠크에서 시작되는 러시아 일정은 바이칼 호수와 인근 마을,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시베리아 삼림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바이칼스크에서는 스키·스노보드도 탈 수 있다.

 

몽골에서는 역사박물관과 간등사원 등 몽골 문화 체험에 이어 광활한 초원에서의 겨울 승마, 유목민 생활, 몽골 초원 겨울사냥 등을 경험한다. 바이칼 명물인 오물과 몽골 전통요리인 허르헉을 제공하고, 보온병을 가져오면 여행 내내 차가버섯 차도 준다.

 

몽골·러시아 비자 발급 수수료 등 모든 경비를 포함해 1인당 183만원. 출발일은 2007년 1월14·21·28일, 2월 4·11일. 8명 이상 출발. (02)3210-0507

 

러시아 방문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발급 비용은 기간과 단·복수 여부에 따라 4만5000∼28만원. 여행 2주 전까지는 비자를 신청해야 최저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출국 전에 체류 예정인 호텔이나 초청자로부터 여행자 방문 확인서(거주등록증과 여행 바우처)도 받아 둬야 한다.

 

세관에서도 필요하지만 러시아 경찰이 요구할 때마다 여권과 함께 보여줘야 별 탈 없이 여행할 수 있다. 러시아 화폐 1루블은 우리 돈으로 36원 정도. 공항에선 환전이 힘들다. 달러로 바꿔가 현지 호텔에서 다시 루블로 바꾼다. 호텔에서 한국으로 전화하면 1분 통화료가 35달러 정도.

 

 

바이칼(러시아)=글·사진 정재영, 그래픽 최진영 기자

 [세계일보 2006-12-08 09:30]    

 

 

 

 

                                        연속듣기 /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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