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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향기男 피스톨金 2006. 5. 2. 11:19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파묵칼레는 데니즈리에서 버스로 30분 거리. 이스탄불에서 데니즈리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10분 걸린다. 터키항공(02-777-7055)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매주 3회 논스톱으로 왕복 운항한다.

 

월·목·토요일 오후 1시2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고,수·금·일요일 오후 7시30분에 이스탄불을 이륙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 정도.

 

하나투어(02-2127-1306)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터키의 이스탄불,에페수스,파묵칼레,카파도키아,앙카라 등을 둘러보는 10일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200만∼250만원). 투어몰(02-311-4441)과 자유여행사(02-3455-0156)는 터키 이스탄불,카파도키아,안탈랴,파묵칼레,에페수스 등을 둘러보는 8일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130만∼150만원에 판매한다.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사도바울 흔적따라 2000년전 시간여행

[국민일보 2006-04-27 18:4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에베소서 1장 1절)

 

2000여 년 전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에게해 연안의 도시인 에페수스(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옥중서신(에베소서)을 보냈다. 당시 20만 명이 거주했던 에페수스는 아르테미스 여신 등 우상을 숭배하는 도시로 바울은 전도여행 중 3년간 이곳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야생 양귀비가 빨간 꽃을 활짝 피운 꽃밭에 대리석 기둥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인 에페수스는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인들의 약탈과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면서 잊혀진 도시가 되었으나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황제 도미티아누스를 기리는 신전,전형적인 로마 목욕탕,수세식 화장실,대리석에 새겨진 발자국보다 발이 작으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유곽 등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이 마치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 생생하게 발굴됐다.

 

에페수스 유적 중 가장 웅장한 건물은 켈수스도서관과 2만4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 1만2000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켈수스도서관은 사도 바울이 군중들에게 설교한 장소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북쪽 출입구 인근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교회는 두 차례의 종교회의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으로,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증축되면서 ‘더블처치’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

 

에페수스 유적이 위치한 셀주크는 작은 도시로,사도 요한이 동정녀 마리아를 모시고 만년을 보냈다는 곳이다. 에페수스 유적의 출토품을 전시한 에페수스 박물관과 성 요한 교회,동정녀 마리아가 살았다는 집도 셀주크에 있다.

에페수스(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로마황제 즐겨찾던 자연이 만든 온천풀

 


시간의 앙금이 만든 석회암 온천 파묵칼레(Pamukkale)는 사도 빌립의 순교지인 터키 남서부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언덕을 순백으로 채색하고 있다.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란 뜻의 파묵칼레는 멀리서 보면 목화를 쌓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만년설에 덮인 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석회층으로 이루어진 파묵칼레는 수천년 동안 히에라폴리스 언덕에서 솟아난 뜨거운 온천수가 리쿠스 계곡 언덕의 비탈을 흘러내리면서 형성되었다.

 

온천수에 함유된 산화칼슘 성분이 굳어지면서 중국 쓰촨성의 황룽처럼 계단식 자연 풀장을 만든 것이다.

 

파묵칼레 최고의 절경은 기하학적 곡선의 턱을 가진 야외 풀 모양의 ‘테라스 풀’이다.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이 떠받치는 테라스 풀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풍경은 파묵칼레를 소개하는 책자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와 귀족은 물론 클레오파트라까지 찾아와 온천욕을 즐겼다는 파묵칼레는 1980년 이후 인근에 온천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온천수가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쪽빛 하늘을 담은 파스텔 톤의 온천수가 찰랑거리며 넘쳐흐르던 테라스 풀은 바싹 말랐고,순백의 천연 풀장도 물이 말라 누렇게 퇴색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한 1988년 이후에는 석회층의 보존을 위해 파묵칼레에서의 목욕을 금지시키고 맨발로 걷게 했다. 다랑논을 닮은 18개의 커다란 웅덩이 중 아래에 위치한 절반 정도는 온천수가 흘러 넘쳐 아쉬우나마 바지를 걷어 부치고 온천수의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나 파묵칼레 정상 북동쪽에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지금도 수십 개의 ‘테라스 풀’이 자라고 있다. 풀 가장자리 턱의 유려한 곡선과 거울 파편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은 한 폭의 그림. 특히 해질녘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테라스 풀은 파묵칼레가 숨겨놓은 비경 중의 비경으로 꼽힌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파묵칼레 온천수영장은 비록 석회암층에서 즐기는 온천욕만큼 운치는 없지만 온천수영장 바닥에 로마시대의 기둥 등 유적이 굴러다녀 저 유명한 로마목욕탕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히에라폴리스엔 유난히 석관묘가 많다. 북쪽 성 밖에 산재한 1200여 기의 다양한 석관묘는 파묵칼레의 온천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부터 온천수가 류머티즘,피부병,그리고 신경통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병자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고 한다. 병을 치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천 옆에 묻히면서 히에라폴리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무덤의 도시로 변한 것이다.

 

석회봉 위쪽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는 기원 전 190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에 의해 건설됐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는 로마,비잔틴 시대까지 번성했으나 결국 셀주크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도시 전체가 파괴된 것은 14세기의 대지진 때문.

 

유적 중 가장 볼 만한 것은 야산 중턱에 위치한 원형극장이다. 2세기에 건설된 로마의 원형극장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파묵칼레 시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관중석에 서서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리면 검투사의 기합소리와 관중들의 환호성이 메아리칠 듯하다.

 

이밖에도 히에라폴리스에는 박물관으로 변한 목욕탕과 교회 터,바실리카,극장,잡초밭에 나뒹굴고 있는 아폴로 신전의 잔해,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미티안 문 등이 푸른 이끼를 훈장처럼 달고 그 옛날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다.

 

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팔각형의 건물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인 사도 빌립 교회. 사도 빌립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던 중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옥사했다고 한다.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도 빌립은 4명의 딸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해질 무렵 히에라폴리스의 푸른 초장에서 만난 풍경 하나가 낯익다. 양떼에 둘러싸인 양치기가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으로 귀가하는 풍경은 성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파묵칼레(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터키의 명소 카파도키아

 

 

 

[세계일보 2006-04-21 16:15]    

 


스머프의 고향인가 요정들의 집인가
 

유럽과 아시아의 문명 교차로 터키. 이곳에는 기원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명이 교차하며 이룩한 인류의 문화유산이 지천이다. 터키는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길목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한 종교의 격랑지였다.

 

또한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은 시민사회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적이 산재해 있다. 스포츠월드는 현지 취재를 통해 최근 한국인들에게 주목받는 관광지로 떠오른 터키의 명소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세상은 놀라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사람에 의한 작품이든 자연이 연출한 것이든 간에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살아가면서 이 경이로운 광경과 마주할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터키 카파도키아를 보기 전까지 우리는 감탄사를 아껴두어야 한다.

 

이곳에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한데 어우러져 빚은 걸작이 숨겨져 있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고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네브쉐히르 위르굽, 궤레메, 우치사르 등 남한의 4분의1 크기(2만5000㎢)의 땅이 우후죽순 격으로 솟은 버섯바위들로 채워져 있다.

 

 

◇버섯바위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궤레메(왼쪽).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본 젤베 계곡과 버섯바위들.

이 기묘한 바위들은 화산과 비바람에 의해 형성됐다. 카파도키아는 30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재가 고원지대에 두툼하게 쌓여 응회암층을 형성했다. 이 응회암층은 단단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무른 부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살아남아 지금같은 버섯이나 죽순모양의 기암군이 형성됐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연출한 신기한 형상에 한가지 기이(奇異)를 더 보탰다. 버섯 모양의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이곳의 버섯바위들은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환자의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이 모두 인간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이런 암굴집은 기원 전부터 유래가 시작되어 1950년대까지도 사람들이 이 버섯 모양의 집에서 살았다. 카파도키아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의 자연과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사람들이 암굴을 파고 살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자연적인 요건을 따져보면 바위가 무르다는 것이 큰 이유다. 이곳의 바위는 화산재가 쌓여 만든 응회암이라 쉽게 굴을 팔 수가 있다. 또 황량한 고원지대라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를 구할 수 없는 것도 한몫을 했다.

 

 

◇궤레메 야외박물관의 ‘어둠의 성당’에 그려진 벽화(왼쪽). 우치사르의 한 암굴 레스토랑에서 공연하는 민속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카파도키아가 늘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BC 20세기부터 앗시리아 히타이트 페르시아 리디아 그리스 로마 셀주크 오스만투르크가 차례로 지배했다.

 

또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로여서 언제나 약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적당한 암굴을 주거지로 선택한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암굴 주거지가 도시화된 것은 8세기 전후다.

 

이때는 이슬람교가 크게 확장하면서 터키에서 기독교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슬람교도의 탄압을 피해 카파도키아로 몰려온 기독교인들은 데린쿠유나 카이마르크 같은 암굴도시를 건설했다. 11세기 경에는 카파도키아의 인구가 7만명에 달했고, 그들이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 성당이나 수도원이 360여 개나 됐다.

 

기독교인들이 만든 암굴도시는 유사시에 대비해 만든 피난처였다. 데린쿠유의 경우 땅속으로 80m를 파고 들어갔다. 12층 규모로 방만 1200여개에 달한다. 이 방들은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비좁은 미로로 연결되어 있다.

 

최대 1만명까지 피난할 수 있는 암굴 도시에는 주택과 학교, 식량저장고, 우물, 환기용 굴뚝, 예배당, 주방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데린쿠유에서 10㎞ 떨어진 카이마르크까지는 마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지하 통로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궤레메 야외박물관은 기독교인들이 만든 암굴 교회와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암굴벽에 그려진 벽화는 8∼9세기 우상파괴 운동과 이슬람교인들에 의해 대부분 훼손됐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9세기 후반에서 13세기의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카랑루크 키리세(어둠의 성당)의 벽화다. 동굴이 어두워 훼손의 손길을 피했다는 이 암굴성당에는 지금도 색감이 선명한 벽화가 남아 있다.

 

 

◇파사바기의 버섯바위 사이로 거니는 트레커들.

 

젤베계곡은 버섯바위의 형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부로 깎아놓은 것 같은 버섯바위들이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1981년 미국에서 TV 에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스머프’에 등장하는 버섯집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터키)=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열기구 타고 특별한 여행을

 

 

1시간 내외 20만원가량

 

자연과 인간이 빚은 카파도키아의 비밀스런 작품을 돌아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두 발로 걸어서 다니는 고전적인 트레킹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투어도 있다. 이 가운데 카파도키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열기구 투어는 비싼 만큼 제값을 하는 투어다.

 

열기구 투어는 해돋는 시간에 맞춰 진행된다. 오전 5시30분 호텔을 출발해 궤레메의 계곡에 닿으면 여기저기서 열기구를 달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단한 스낵과 차로 한기를 달래면 동이 튼다. 이어 계곡 여기 저기서 열기구가 둥실 떠오른다.

 

최대 20명까지 태울 수 있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오르면 아침 햇살을 받고 깨어나는 카파도키아의 ‘요정의 집’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하늘에는 10여대 이상의 열기구가 떠올라 마치 미국 엘버커키나 일본 사가 열기구대회를 보는 듯하다.

 

열기구는 최대 1000m까지 상승한다. 때로는 버섯바위에 닿을 듯이 낮게 날며 카파도키아의 이름난 포인트로 안내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버섯바위 위로 날아다니는 열기구는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투어를 마치고 지상에 상륙하면 ‘열기구 탑승증’을 주고 간단하게 샴페인 파티도 열어준다.

 

열기구 투어는 1시간15분과 45분, 2가지가 있다. 가격은 각각 160∼190유로(약18만7000∼22만원)와 110유로 내외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1시간15분 투어가 제대로 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투어를 하는 업체는 많다. 이 가운데 궤레메발룬(www.goremeballoon.com)이 추천할 만하다.

김산환 기자

 

[여행쪽지]동부산악지대 소요사태 개별 여행 자제해야

 

◇열기구 투어는 하늘에서 카파도키아를 내려다보는 기쁨을 안겨준다.

터키는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다. 서쪽은 지중해, 에개해와 접해 있다. 동쪽으로 갈수록 산악지형이 많고, 황량한 고원이 펼쳐진다. 북쪽은 흑해와 접해 있으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다. 남쪽은 시리아와 이란, 이라크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터키의 인구는 7130만명, 종교는 이슬람교도가 98%다. 화폐는 리라를 쓰며 1리라는 약 750원이다. 시차는 한국에 비해 6시간 느리다.

 

한국에서는 터키항공이 주3회(월·목·금) 운항하며 비행시간은 12시간이다. 대한항공도 5월 초에 정식 취항할 예정이다.

 

터키는 최근 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대체로 안전한 편이다. 대도시와 지중해 연안은 혼자서도 별 무리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

 

특히 관광지에는 관광경찰이 배치되어 있어 외국 관광객을 도와준다. 다만 쿠르드족 소요사태가 있었던 동남부 지역과 인구 밀도가 희박한 동부 산악지대는 개별 여행을 자제하는 게 좋다.

 

터키여행객은 성지순례, 일반여행, 개별여행 순이다. 이 가운데 성지순례가 앞도적으로 많다. 올들어 한국인의 터키 방문객은 20% 이상 급증했다. 1/4분기에만 4만3300명이 터키를 찾았다.

 

한국인이 즐겨찾는 여행지는 동로마의 수도였던 이스탄불과 고대 로마 유적지 에페수스, 온천수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계단 위로 흘러내리는 파묵칼레 등이다.

 

최근에는 지중해와 접한 안탈리아로 가는 허니문 상품도 등장했다.

터키로 가는 패키지 상품은 ‘터키일주 8일’ 130만∼150만원(자유여행사·02-3455-0156), ‘그리스-터키 10일’ 200만∼250만원(투어익스프레스·02-2022-6430), ‘터키 허니문 6일’ 200만원(유로투어·02-732-1337) 등이 있다.

건강한 웃음 푸른 희망, 스포츠월드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