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전항의 아침 |
ⓒ2007 김민수 |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의 체제에 대한 우월감으로 바라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꼬마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자 혀를 쭉 내밀고 '메롱'으로 화답을 한다. 그 아이들은 금강산 관광객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분단의 세월이 남기는 상처가 끔찍해 보인다.
▲ 장전항에 있는 해금강호텔 |
ⓒ2007 김민수 |
저녁식사 후 장전항 근처의 고성횟집에 들렀다. 아직 북한에서는 양식업이 발달하지 않아 완전 자연산만 취급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음식에 대해서 까탈스럽지도 않고 음식 맛도 잘 모르지만 고성횟집의 회맛은 그동안 접했던 자연산 회와는 달랐다. 더군다나 북한접대원들의 대접과 대화는 음식의 맛을 더해준다.
자연산 회에 대한 극찬을 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회 맛이 참 좋습니다. 자연산이라서 그렇지요? 북한 여성동무들도 참 예쁘네요. 남남북녀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북한 여성동무들도 꾸미지 않은 자연산이네요" 했다. 그러자 곧바로 날아오는 대답이 있었다.
"남한에서는 사람에게도 자연산이라고 합네까? 자연미갔지요?"
ⓒ2007 김민수 |
북한접대원 동무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장전항을 걷는다. 바람은 잔잔하고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빛난다. 저 별, 그래 남녘땅에서도 보던 그 별이다. 그 별과 달과 햇살과 바람과 공기, 같은 하늘 아래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 첫날 바라본 장전항의 노을빛 |
ⓒ2007 김민수 |
문익환 목사님을 아느냐고, 문규현 신부는, 임수경은 아느냐고. 문익환 목사님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두 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통일의 꽃'으로 그들을 기억했고, 그때 우리도 마음으로 하나였다고 하니 너무 반가워한다.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사는 날,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을 꿈꾸었던 문익환 목사님은 이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꿈은 남아있다. 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지금 내가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전항에서 그 바다를 바라보면 고성횟집에서 북한접대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장전항의 밤 |
ⓒ2007 김민수 |
▲ 건물이 보이는 곳은 장전항 해수욕장이다. |
ⓒ2007 김민수 |
눈에 많이 담아두자, 마음에 많이 담아두자. 저렇게 다르지 않은 꽃들 마음에 많이 담아주자. 그리고 통일, 그날이 오면 이 길을 다시 걸으며 가장 예쁜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을 담자고 했다. 지금 나에게는 그들을 한 컷 담는 것보다도 북녘땅을 한 걸음 더 걷는 것이 우선순위다.
여행길,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을 좋아했고 여전히 그런 걸음걸이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발자국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어서. 산책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남한에서는 사람에게도 자연산이라고 합네까? 자연미갔지요?"라는 딱 부러지는 북한 접대원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여오는 듯하여 웃음이 나온다.